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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트 비트!

#7. 하트 비트!

아드리안 데일!

WHA의 2대 협회장으로서, 실질적으로 협회의 체계를 잡고 몸집을 부풀린 건, 그의 손에 의해 이뤄진 성과였다. 지금의 WHA는 결국 그가 일군 것이나 다름없었다.

1대 회장 마르코의 영웅적 희생이 큰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지만, 그를 아는 이들은 대부분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여겼다.

[시간문제일 뿐, 결국 데일은 WHA를 지금 수준으로 키웠을 거야.]

[굳이 WHA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덩치를 불렸을걸.]

[뭘 해도 성공했을 작자지.]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니까.]

저 유럽의 제퍼드처럼, 초감각을 타고난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는 스킬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머리’가 비상했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의 위치를 읽는 것으로 충분히 해소 가능했다.

미국의 두 번째 히어로!

협회장을 비롯하여 각종 업무를 보느라 수행에 소홀했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 저와 같은 자리를 얻었다는 건 실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 많은 업무를 보며 벽을 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라 할 수 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에게도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남모를 흠이 존재했다.

각성 우월주의!

전 세계인과 함께하며 그들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WHA의 모토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너무도 철저하게 각성자와 비각성자 사이에 색안경을 끼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대격변의 초창기, 아직 각성자를 ‘영웅’보다는 ‘괴물’로 여기던 시절에 입었던 상처로 인한 부작용으로서, 유독 민간과의 접촉을 꺼려 하는 면이 컸다.

하지만 마르코의 제자가 되고, 존슨과 어울리며 조금씩 사람들과 마주하는 횟수가 늘면서, 일부분 그런 경향을 숨기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훌륭히 WHA의 2대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던 것이다.

사실, 1대 회장 마르코의 유산이 아니었더라면, 자신만의 그룹을 새로 만들어서, 각성자만을 위한 협회를 새로 세웠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본능과 유산 사이의 갈등 속에서 키운 협회였다.

분명 덩치는 어마어마하게 부풀었지만, 그 내실은 마치 본인의 내적 갈등처럼, 수많은 비틀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3대 회장의 노력으로 현상 유지가 되긴 했지만, 4대 회장으로 넘어간 시점에선 조금씩 그 같은 문제점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 손으로 일군 까닭인지, 데일은 그런 문제점들에 관해 귀를 기울이고는 있었는데, 의외로 관련 보고를 들으면서도 그다지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유럽 이면의 레메거톤이라….”

WHA의 회장직은 내려놨다지만, 그 개인적으로 운영 중인 정보 단체를 통해 세계 각지의 다양한 소식들이 접수되었는데, 지금 확인한 내용도 WHA가 엮여 있는 이면의 부정한 거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확인만 하고 말 뿐이었다. 그렇게 몇 줄 더 읽어 내려가던 그가 혀를 차며 보고서를 내려놨다.

그러더니 서재 한편에 세워진 사진으로 시선을 보냈다.

‘존슨….’

같은 스승을 둔 친우이자 형제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거기 있었다. 요 근래 WHA 관련한 소식이 크게 와닿지 않는 건, 아마도 오랜 친우의 소식 때문이리라.

어지러운 심경에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뒈진 거냐?”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프링쿨스를 통해 전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프링쿨스는 결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어린 수제자를 산타카타리나로 보냈다.

직접 움직이기에는 그를 주시하는 눈길이 너무 많았던 터라, 가장 믿을 만한 제자에게 형제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 유해를 직접 거둬 오라 보낸 것이다.

프링쿨스가 움직인 걸 알고 있지만, 그가 제대로 보조하지 못했기에 존슨의 사망설이 돌고 있단 생각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형제의 일이기 때문일까?

여러모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어린 제자 레오를 직접 보낸 것인데, 홀로 떠났음에도 걱정되지 않는 건, 그 못지않은 천재성을 지닌 제자이기에 때문이었다.

‘실버 박사의 유산을 제대로 계승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자신의 천재적인 두뇌와 제자의 천부적인 육신이 합쳐져서 탄생한 걸작을 떠올리니, 형제의 죽음 속에서도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 *

프링쿨스 팀이 둘로 나뉘었다.

상황이 어찌 됐건 포로를 잡아 버린 이상, 그들을 외부로 안내할 책임까지 떠안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환각계 능력자를 통해 몇몇 정신력이 약한 문제아들을 침식한 뒤, 이들을 기본 호위로 삼은 채 팀원 일부가 밖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을 떠나보낸 뒤, 프링쿨스 일행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본격적인 휴식에 들어갔다.

공간 자체도 위험도가 낮았지만, 마루의 마석 결계술이 깃들여지니 안전지대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일행들이 일제히 감탄을 연발했다.

“역시 마석 결계술!”

“하… 이 어려운 걸 이렇게 쉽게.”

“트랩의 달인이라더니, 정말 대답하십니다.”

“이거, 불침번은 최소로 제한해도 되겠네요.”

덕분에 정말 편하게 늘어질 수 있었는데, 치열했던 격전의 여파인지 짧은 정비 후 바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결계술의 보답인지, 마루는 꿀침번이라는 첫 번째 불침번을 설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경계를 맡은 건 이반나였다.

그녀와 프링쿨스 그리고 토비까지, 이들 세 명의 랭커가 불침번의 처음 중간 끝으로 나뉘어, 경계의 한 축을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마루는 불침번을 서는 한편, 간단한 연공법을 통해 꾸준히 상태를 관리하며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몸 상태를 확실히 점검한 뒤 취침하고자, 일부러 불침번 말번초가 아닌 초번초를 선 것이기도 했다.

[들숨날숨]

회복률은 낮지만 어떤 자세에서건 할 수 있는 연공법을 운행 중일 때였다.

“리퍼, 죽인 거냐?”

함께하던 이반나가 깜짝 놀랄 질문을 해 온 것이다. 마루와 리퍼가 붙었다는 걸 아는 건, 오직 워리어 한 명뿐이었다.

하나 그는 토비의 손에 죽어 버린 만큼, 그들의 격전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야 옳았다.

실제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 리퍼의 모습에, 팀원 대부분이 도망쳤다는 식의 이야기가 오갔을 정도였다.

이런 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반나는 그 격전을 알고, 또 결과까지 아는 듯 이야기를 건네 오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네가 입고 있는 방호복. 그거 리퍼가 착용 중이던 그림자 사슬이잖아.”

마루는 처음 듣는 명칭이었지만, 그게 새로운 무구의 이름이란 걸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 이름이었나.’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여전히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반나가 실소하며 말했다.

“그림자 사슬 특유의 기운이 있어. 리퍼와는 몇 번 부딪쳐 봐서 대충 감이 오더라. 그리고 묘하게 리퍼의 기운까지 묻어 나오는데, 어떻게 모르겠냐. 말은 안 하지만, 프링쿨스나 토비도 눈치챘을걸.”

랭커쯤 되면 단번에 알아본다는 것이다. 이에 마루는 묘한 눈으로 자신의 방호복을 바라봤다.

‘특유의 기운이라.’

한층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고 여겼다.

이반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게다가 그건 죽음을 통해서만 이전되는 아티팩트인데, 그런 물건이 너한테 있으니. 리퍼가 어찌 됐는지는 물으나 마나 아닌가?”

이에 또 한 차례 놀라야만 했다.

‘죽음으로 계승된다고?’

그의 경우와는 너무 달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에 비밀이 들켜서 그러는 거로 착각한 이반나가 실소하며 물었다.

“리퍼의 시체는?”

“어… 음….”

그냥 내버려 두고 왔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몬스터들의 한 끼 식사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미리 말하는데, 랭커의 시체는 기왕이면 확실히 처리하고 오는 게 좋아.”

의아한 소리였다. 이에 이반나가 이야기했다.

“고급 정보긴 하지만… 너는 알아 두는 게 좋겠네.”

게이트의 비밀과 같은 특수 정보였지만, 마루는 수차례 랭커와 부딪쳤을 뿐만 아니라, 이젠 리퍼라는 초인까지 잡아냈다.

그 방법이야 알 수 없지만, 그가 숨겨진 자신만의 비밀을 통해 초월적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존슨 말대로라면, 제퍼드도 거의 요 녀석이 잡아낸 거나 마찬가지니.’

그런 만큼 이 특수한 정보를 풀어도 된단 결론을 내렸다.

“간단히 설명할게, 우리들이 고위 몬스터의 몸뚱이에서 수준 높은 마석이나 마정석을 뽑아내지?”

마루의 발달된 두뇌는 그것만으로도 답을 유추해 냈다.

“설마, 랭커의 육신은 몬스터에게 양질의 영양분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눈치가 제법이네. 그래. 대충 그런 거지. 좀 더 자세히는 랭커의 심장에는 마석이나 마정석처럼, 상당량의 에너지체가 응축되어 있어서, 몬스터들이 이걸 삼키면 성장하게 되는 거야.”

‘아… 그래서.’

마루는 기간트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그를 먼저 보냈던 이반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금세 뒤따라 왔었지만, 아마도 그 잠깐의 시간을 통해 기간트의 시체를 깔끔히 처리했을 거라 여겼다.

“그렇다면 설마….”

마루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모습에, 이반나가 실소하며 말했다.

“어떤 놈일지는 모르겠지만, 리퍼의 시체라면… 이 근방의 힘의 균형이 헝클어지겠네. 크게 신경 쓸 건 없어, 그래 봤자 아직 마굴 중반부잖아. 여기서 나올 만한 놈들이야 다 고만고만하니까.”

개중에 레이드 클래스의 고위종도 제법 끼어 있지만, 그녀 입장에선 확실히 별거 아닌 수준이리라.

문득, 마루는 이 정도 내용이 특급 기밀로 분류되긴 어렵다는 생각에 닿았고, 뭔가가 빠졌다는 예감과 함께,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몬스터에게 스킬까지 넘어가는 겁니까?”

이반나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 부분까진 언급할 생각이 없었건만, 스스로 거기까지 연결 지었다는 게 놀라웠던 것이다.

그녀의 반응으로 답을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마루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리퍼의 스킬은 나한테 있잖아?’

좀 더 정확히는 그림자 사슬을 물려받은 상황이 아니던가.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스킬 부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물론, 그에 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며, 마루는 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랭커만 주의하면 되는 겁니까?”

그도 나름 15년 경력의 베테랑이건만, 이런 내용은 너무 생경했다. 관련해서는 풍문으로라도 떠도는 이야기가 없었던 터라, 이래저래 궁금한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래.”

오직 랭커에게만 제한된 이야기였고, 그 때문에 그들의 리그에서만 공유되는 정보라는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몇 가지 더 알려 줄게.”

그렇게 몇몇 비밀들이 더 풀려 나오는 가운데, 그들의 불침번 타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 * *

랭커 대전을 비롯하여, 톱클래스급 실력자와 팀 등의 결전을 거친 이후였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몸조리를 하며 컨디션을 끌어 올려야 하지만, 일정이 빠듯하기에 반나절의 휴식을 끝으로 바로 움직여야만 했다.

프링쿨스 왈!

“워리어, 기간트, 뱀파이어 퀸, 리퍼. 벌써 이만큼 많은 이들이 움직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또 어떤 불청객이 찾아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바삐 움직여야 한다며 일행들을 채찍질하니, 꾸역꾸역 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 한다면 존슨이 올려놓은 이동 루트가 워낙 훌륭해서, 몬스터와의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단 점이었다.

물론, 데스크에는 워낙 엉망으로 게시가 됐지만, 프링쿨스는 개떡 같은 내용도 찰떡같이 알아먹을 만큼 존슨에 대해 통달해 있었기에, 존슨의 루트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며 일행들을 이끌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어렴풋이 하늘을 꿰뚫을 듯 치솟은 불기둥이 보였다.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남아 있었건만, 불기둥의 기세가 대단해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즈음, 돌연 프링쿨스가 정지 신호를 보냈다.

모두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그가 팀원들을 돌아보며 다급히 외쳤다.

“측정기 돌려!”

이 뜬금없는 소리에 팀원들의 안색이 하얘졌다.

마수지대, 그것도 심처에 가까워진 상황에서 갑자기 측정기를 입에 담는다?

그건 하나밖에 없었다.

이레귤러!

아니나 다를까.

“반응… 있습니다.”

측정기를 읽던 팀원이 떨리는 음성으로 보고할 때였다.

킥킥킥킥킥킥….

키히히히….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불길한 웃음성이 저 심처 깊은 곳에서부터 날아들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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