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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158화 (158/325)

#8. 어쩌면… 어쩌면!

#8. 어쩌면… 어쩌면!

과연, 자신과 같은 증상이라고 해야 할까?

“하아아아….”

뜨거운 숨결 속에 한 줌 여유가 느껴졌고, 그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염화석이 제대로 작용하는구나.’

발록은 안도하며 딸아이 산드라를 바라봤다. 올해로 15살이 되는 아이건만, 연구소에서 고생을 한 까닭일까?

겨우 10살 남짓의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 때문에 천사 같은 외모가 더욱 부각되긴 했지만, 그래도 마냥 거기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저 같은 모습이 일종의 부작용 때문임을 알기 때문인데, 이마저도 자신과 비슷한 증상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발록도 어느새 50대 중반이 훌쩍 넘었건만, 그 외형은 30대처럼 보이는데, 이는 초인 특유의 신체 발달 및 노화 방지 때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뮤턴트!’

딸아이 산드라에게 시행된 ‘발록’ 프로젝트의 원형, 뮤턴트 프로젝트의 여파로서, 신체가 오랜 시간 전성기를 유지하려는 작용으로 인해, 노화가 늦게 찾아오는 것이다.

짐작건대 딸아이가 다 크려면 30대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역시 바람일 뿐이었다.

‘성장이 멈추는 경우도 있었지.’

그의 경우에는 함께하던 다른 실험체 동료들이 그랬다. 하염없이 멈춰 버린 세월 속에 허우적대다, 결국 미쳐서 죽어 버린 경우가 상당했다.

부작용의 농도가 짙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미래의 부작용보다, 당장 눈앞의 부작용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기도 했다.

‘으음… 화염초는 다 떨어져 가고, 열염수도 곧 바닥이고… 그래도 염화석이 유지 기간이 꽤 되긴 할 테니, 다행인가.’

따로 염화석을 구하기 위한 루트를 또 알아보고 있긴 하나, 아티팩트처럼 특수하게 나오는 물건이다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최고의 방법은 딸아이가 각성자로서 성장하며, 스스로 이런 부작용들을 다스리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마저 쉽지가 않았다.

‘후… 몸이 너무 약해.’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강골이었다. 덕분에 뮤턴트 프로젝트를 이겨 낸 것이기도 하지만, 산드라는 그 부분에 있어선 부족함이 있었다. 신체 강도가 나쁘진 않지만, 일반인보다 좀 더 뛰어난 정도일 뿐이었다.

실험 부작용으로 인해 그마저도 많이 다운된 상태였다.

게다가 발록 프로젝트의 경우, 기존 뮤턴트 프로젝트의 잔재를 긁어모아서 시행된 것이다 보니, 완성도 역시 많은 부분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실버 박사의 유산!’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만났던 사내가 떠올랐다.

‘마루라고 했었지.’

잠시 그에 대해 생각하다가 산드라를 향해 물었다.

“혹시, 한국이라고 아니?”

그 순간 산드라의 눈이 번쩍 떠졌다.

“…K―POP …좋아 …헤헤!”

수줍게 대답하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었다. 이에 헤죽거리며 웃는 와중에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이 팍이라는 놈이 누구냐?”

“…….”

딸아이의 눈이 짜게 식었다.

* * *

무려 두 명의 아이를 24시간 풀로 돌봐야 하기 때문일까?

이선은 제법 고생할 거라 여기며 바짝 긴장을 했었는데, 며칠 지나기도 전에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초롱아, 밥 먹고 양치해야 한다고 했지.”

“초롱아, 양말 신고 다녀.”

“초롱아, 정리 정돈!”

“초롱아!”

생각지도 못한 돌보기의 프로가 함께하고 있던 것이다.

‘루미가 이렇게 애를 잘 봤나?’

한때는 루미도 이리저리 뛰어노느라 정신없어 보였건만, 어느 시점부터는 완벽한 누나가 되선, 아이를 돌보는 데 한 팔 거들고 있던 것이다.

‘저 모습이 원래 성격인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이는 루미의 상황에 의한 변화로서, 현실에 넘어온 초창기의 루미는 ‘신세계’에 대한 각종 호기심에 의해, 쉼 없이 둘러보기 바빴던 터라, 말 그대로 아이 같은 모습이 가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법 현실에 적응을 한 터라, 본연의 모습인 ‘도우미 요정’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루의 지시도 있지 않았던가.

[초롱이 좀 잘 돌보고 있어.]

그리 말하며 이선도 잘 도와 달라고 했기에, 루미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돌보미 서포터에 전념하고 있는 거였다.

덕분에 이선의 아이 돌보기는 한결 편해졌지만, 다른 방향에서 또 다른 괴로움이 그를 덮쳐왔다.

“삼촌, 설거지를 할 땐 물을 받아 놓고 해야죠.”

“삼촌, 씻고 난 뒤에는 물기 깨끗이 닦아요.”

“삼촌, 불 좀 끄고 다니세요.”

“삼촌!”

루미의 돌보기는 초롱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선까지 커버 치고 있던 것이다.

‘…시어머니냐?’

잔소리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괜히 루미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 생겨 버릴 정도였다.

‘내가 어쩌다….’

이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마트 가자!”

“놀이터 갈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밖으로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요~!”

“저요~!”

신나서 방방 뛰는 아이들을 챙겨 입힌 뒤, 기분 좋게 밖으로 나갈 때였다.

“우으….”

문득, 초롱이가 울상을 짓는 게 보였다. 갑자기 왜 그러나 싶어서 쳐다보는데, 루미가 저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며 의아한 소리를 했다.

“삼촌….”

자신을 부르는 건가 싶었는데, 이내 그게 아님을 알았다.

‘마루?’

그의 시선도 루미를 쫓아 하늘 위로 향했다.

* * *

음산한 웃음이 날아든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이거구나!’

마루는 어느 시점부터, 연신 가슴을 두드리며 불안하게 만들던 느낌의 정체가 ‘이레귤러’와 연관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4인의 랭커 때문이 아닌, 바로 이 웃음의 주인들 때문이라는 걸 확신했다.

급격히 올라가는 심박수가 그 증거였다.

물론, 여전히 그 실체를 확인한 건 아니었지만, 들려오는 웃음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게다가 그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의 도화선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여의주!’

내부 깊은 곳에서 꿀렁이는 이 기운을 모를 수가 없었다. 평소 잠잠히 숨죽이며 그의 성장에만 힘을 써 주던 녀석이건만, 지금은 작게나마 그 실체를 드러내며 그에게 경고를 보내오고 있던 것이다.

특히, 웃음이 들려오던 시점부턴 숲 전체가 크게 요동을 치고 있었는데, 이는 인근의 몬스터들이 동요하며 발생하는 파동의 흔적일 터였다.

산타카타리나 마굴의 심처인 만큼, 이곳에 머무는 몬스터라면 하나같이 최고위 종의 몬스터밖에 없을 것이건만, 그런 놈들마저 몸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팀 전체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깃드는 가운데, 프링쿨스가 입을 열었다.

“이레귤러 수치는?”

“아직 풀 오픈은 아닙니다.”

팀원의 보고에 프링쿨스는 바삐 생각을 거듭했다. 이 불쾌한 기분 알고 있었다. 모르지 않았다. 모를 수 없었다. 앞서 실패를 맛보게 했던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존슨을 불러야만 했고, 결국 최악의 결과로 존슨의 최후를 마주하지 않았던가.

프링쿨스가 토비를 바라보며 의견을 나눴다.

“네 예상은 어때?”

“아무래도 저번과 같은 상황 같습니다.”

토비는 첫 이레귤러 원정 실패에서 초인의 벽을 넘는 계기를 발견했다.

결국, 워리어의 예상과 달리 랭커가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세 컨트롤이 완벽한 건, 험난한 실전으로 잘 다져진 날 선 감각 덕분이었다.

어쨌든 계기가 되었던 지난 원정의 수혜자이다 보니, 그는 이곳 이 장소에서 특히 더 예민할 터, 그의 의견을 묻는 건 당연했다.

토비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프링쿨스는 웃음의 정체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마족인가.”

이반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지켜보며 그녀도 상황을 짐작한 까닭이었다.

‘분신!’

연인의 숨결을 끊어 버린 놈들, 그 원수들이 저 멀리서 웃고 있는 것이다.

“침착하십시오. 몇 놈이나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존슨의 게시글에는 다섯이나 된다고 나와 있었다. 만약 그 숫자가 전부 등장했다면, 지금 인원만으로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분신은 본체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했지만, 그래도 랭커급은 될 테니.’

프링쿨스는 일단 후퇴하는 방면으로 가닥을 잡는 한편,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정찰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의 시선이 재차 토비를 향했다.

“부탁하마.”

부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그의 실질적 재주는 수색 정찰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인의 벽을 넘으면서 더더욱 수준이 높아진 만큼, 안전하게 상황을 살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토비가 바람처럼 수풀 너머로 사라졌다.

마루는 걱정스레 이반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기세를 삼켜 내는 중이었는데,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서 대략적인 생각이 읽혔다.

‘다 때려 부수고 싶은 표정이네.’

일단, 팀의 리더는 프링쿨스인 만큼, 그의 의견을 존중하며 참아 주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토비의 보고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한편, 각자 정비를 하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욱… 훅….”

토비가 상당히 지쳐 버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짐작건대 호흡을 완벽히 죽이며 정찰을 하고 온 여파이리라.

저처럼 지쳐 보인다는 건, 안쪽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모두 있습니다.”

존슨의 게시글에 나왔던 숫자와 딱 들어맞았다. 이반나의 표정이 한층 험악해지는 가운데, 그의 보고가 이어졌다.

“이레귤레는 아직 균열 상태로, 형태가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진행 중이라는 의미였고, 그 말이 뜻하는 건 간단했다.

“…마족의 분신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프링쿨스를 비롯한 그의 팀원 모두 이반나처럼 표정을 구기는 게 보였다. 이반나와 마찬가지로 이들 모두 존슨을 향한 마음이 깊은 이들이었다.

동경과 존경, 그야말로 그들의 우상이며 영웅이었다. 원수가 눈앞에 있건만 발길을 돌려야만 하다니, 마음이 편치 않을 터였다.

하나, 그들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으로서, 이미 휴식을 취하면서 어느 정도는 심적 컨트롤을 마친 상태이다 보니, 각기 무거운 한숨을 게워 내는 것으로, 감정적인 흔들림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뭔가 고민에 빠진 것 같던 토비가 일행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잠시… 잠깐만요.”

이에 프링쿨스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는 거야?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되는 상황이니까. 기왕이면 간단히 하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비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뭔가 더 생각하며 고민을 하는 듯 보였는데, 상황의 급박함 때문인지 프링쿨스가 재촉하려던 찰나였다.

“어쩌면….”

토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존슨께서 살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

무거운 침묵이 일대를 감쌌다.

* * *

어느 순간 갈라지기 시작한 허공의 균열 너머로, 시꺼먼 안개가 넘실대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굴의 심처를 밝히고 있던 거대한 불기둥마저 이를 피할 순 없었는지, 점차적으로 불빛의 색깔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붉은빛 사이사이 검은빛이 섞여 드는 게 보였다.

점차적으로 검붉은 빛에서 검은빛으로 색감에 변화가 짙어지려는 찰나,

삐이이익….

알 수 없는 새의 울음이 터지는가 싶더니, 불기둥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화력이 솟구치며, 검은 안개를 크게 몰아내기 시작했다.

검은빛이 되어 가던 불기둥의 색감도 다시금 붉은빛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안개도 쉬이 물러나진 않으려는 듯, 끊임없이 기둥을 향해 돌진했다.

성난 불길에 사그라지는 와중에도 질척거리며 달라붙는데, 그럴 때마다 불길 속에서 알 수 없는 새의 울음이 터져 나오며 화력을 높였다.

삐이이익… 삐이익….

거센 불길과 검은 안개의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희미한 신음성 하나가 흘러나왔다.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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