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64화 (164/325)

#14. 개벽.

#14. 개벽.

이레귤러와 관련된 정보는 모든 헌터들에게 있어, 언제나 최고 등급의 주요 정보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대격변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데일 역시 존슨의 마지막 게시글을 수시로 확인하며 엔트라 데스크에 접속하고는 했다.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WHA의 2대 회장이었고, 지금도 나름대로 충분히 의미 있는 자리에 있는 만큼, 이렇게 수시로 체크하는 걸 잊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오랜 친우이자 형제의 마지막 유언장과 같은 게시글이다 보니, 수시로 눈에 담으며 형제의 흔적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도 컸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더욱 자주 열어 보게 되는 걸지도 몰랐다.

덕분일까?

반짝… 반짝….

메시지창에 불이 들어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메시지의 아이디를 확인했을 때, 그는 전율해야만 했다.

“존슨!”

어찌나 놀랐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렇게 멍청하니 서 있던 것도 잠시,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답지 않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크하하하! 그래. 그럼, 그렇지. 네놈이 죽었을 리가 없지. 크하하하하하!”

신나서 아이디를 바라보던 것도 잠깐이었다.

“으음….”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표정은 무너졌고 신음성마저 새 버렸다.

아주 간단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격변 : 산타카타리나 +5]

다른 무엇보다 뒤의 [+5]라는 내용이 시선을 끌었다.

‘마족 다섯?’

앞전의 게시글이 떠오르는 한편, 역대 최악의 대격변을 예고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던 만큼, 표정이 구겨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젠장!”

욕지거리와 함께 그가 바쁘게 움직였다.

이젠, 형제만이 아니라 제자까지 머물고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간만에 WHA 2대 회장의 이름값을 내세워야 할 듯싶었다.

* * *

기이한 불기둥의 영향일까?

이레귤러로 인하 여파일까?

‘둘 다인가?’

존슨은 엔트라넷의 접속이 자꾸 끊어지는 현상을 느끼며, 어렵사리 몇 자의 메시지를 적어서 몇몇 지인들에게 발송했다.

느낌적인 느낌이라 해야 할까?

‘왠지, 불기둥과 이레귤러 둘 다 작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레귤러와 맞닿아 있을수록 엔트라넷 신호가 낮아지긴 하지만, 그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평소에도 이 정도였다면, 그가 앞서의 게시글을 올리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일단 보내기는 했는데….’

과연 몇이나 그의 메시지를 읽었을지 걱정이었다.

엔트라넷은 따로 접속을 하고 있지 않으면, 메시지 확인이 어려웠기 때문에, 일상 중에는 메시지 확인이 힘들었다.

그런 이유로 접속 중인 이들이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마냥 희망적인 상황을 기대할 순 없는 만큼, 그는 최악을 대비해야만 했다.

다행이라 한다면, 마족과의 전투가 제법 괜찮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금이라도 흐름이 요상해지면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만큼, 긴장감을 일부 털어 내며 기운 충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여전히 포스―스페이스(Space)는 빈 공간이 상당한 탓에, 한참 더 머물며 채워 넣어야 하는 만큼, 외부 흐름이 달가울 수밖에 없었다.

개중 특히 그를 놀랍게 만든 건, 새로운 형제, 마루의 전투였다.

마족을 상대로 버티기만 해도 충분하다 여기고 있었건만, 의외로 그의 전투가 가장 먼저 엔딩을 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펼쳐진 일격도 놀라웠다.

‘허… 그걸 흉내 내다니.’

단번에 자신의 일격을 따라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어설픈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분명 일정 부분 닮아 있던 건 확실했다.

‘대단한 놈!’

짧게 감탄하던 것도 잠시, 새로운 전장으로 눈길이 갔다.

이반나!

연인의 전장인 탓에 우선적인 관심이 가는 것도 있지만, 그곳도 슬슬 막바지를 향해 가는 탓에, 자연히 시선이 가는 것이리라.

붉은 코 사슴이 분노하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멋져!’

콩깍지란 건 원래 쉽게 벗겨지는 게 아니었다.

* * *

무려 레이드 클래스의 고위종이었다.

어지간한 길드에선 팀 단위로 움직이며 사냥해야 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이반나는 그런 괴수가 한둘도 아니고 우글거리는 수준으로 에워싸고 있건만, 밀리기보단 오히려 밀어붙이며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스킬 특성상, 코가 붉어지면 붉어질수록 괴력도 더해지는데, 분노로 인해 한껏 붉어져 버린 그녀의 콧잔등으로 인해, 말도 안 되는 괴력이 꾸준히 발휘되며, 괴수들을 오히려 힘으로 압도하는 모습까지 보여 줬다.

기간트에게 일부분 밀렸다고는 하나, 거의 대등하게 힘겨루기를 했을 정도의 괴력이었다.

그런 만큼 아무리 고위종이라 해도, 괴력으로 그녀를 당해 낼 만한 놈들은 몇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분노와 함께 휘둘러 대니, 그야말로 원시적인 폭력이 따로 없었다.

퍼억! 퍽! 뻐어억… 빠악….

크워어어어….

어어허엉….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몇 놈들은 테이머에게 컨트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뒷걸음질을 치는 모습을 보여 줬고, 점차적으로 놈들의 진형에 붕괴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구분이 한결 쉬워졌고, 마족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순간도 늘어났다.

애초에 정면 격돌은 이반나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만큼, 그렇게 기척을 잡고 난 이상, 상황을 뒤집는 건 어렵지 않았다.

‘찾았다!’

일단 놈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드러내기보단 숨긴 채 흥분한 연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뒤가 잡히는 순간,

“뒈졋!”

정확히 카운터를 먹여 줬다.

콰아아앙!

크게 일격을 맞고 튕겨 나가는 몬스터가 보였다.

바닥을 뒹구는 와중에 그 형상이 변형되더니, 이내 마족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를 쫓아서 이반나가 달려드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다른 몬스터들을 움직여 가드를 세우고, 이내 다른 몬스터들 사이로 뛰어들며 모습을 감췄다.

‘칫!’

놓쳤지만 크게 아쉽진 않았다.

조금씩 놈의 대미지가 누적되고 있다 보니, 그만큼 영향력도 줄어들었고, 자연히 몬스터들에 대한 통제권도 약화되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보여 주는 기세에 질겁한 몬스터들이 스스로 뒷걸음질까지 치니, 진형과 함께 균형도 급속도로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구나.’

놈의 기척을 발견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낚시를 하듯 흥분한 모습을 보여 주며,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 번 당한 게 있어서인지, 한층 신중해진 모습으로 빙빙 돌기만 하는데, 이에 진짜로 흥분해서 먼저 달려들면 안 됐다.

‘참자, 참아….’

덕분에 진짜 열이 뻗쳐서, 분노하는 연기가 오스카상급의 퀄리티를 지니게 됐다는 걸 다행으로 봐야 할까?

제법 감칠맛 나는 미끼의 연기력에 넘어온 듯, 결국 놈이 움직였다.

푸욱!

정확히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오는 놈의 발톱에 미간이 구겨졌지만,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고 있었다.

그 일그러진 미소에 놈의 동공 가득 당혹감이 깃드는 게 보였다.

확실하게 낚기 위해서, 이번에는 일말의 손해를 감수한 것인데, 반 박자 늦은 반응이 놈을 반걸음 더 깊게 유인할 수 있었다.

“잡았다!”

씨잇, 핏빛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반나가 놈의 팔뚝을 낚아 올렸다.

우득!

경쾌한 뼈 울림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끄아아아아악~!”

시원한 샤우팅이 뒤따랐다.

* * *

야수화의 단점은 아주 간단했다.

‘크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성이 대부분 날아가 버리는 탓에, 마치 술 취한 주정뱅이처럼 기억이 끊겨 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닌 데다가, 단편적인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결국 전체적인 흐름을 되새길 수 있지만, 그 과정에 제법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겨우 정신을 차린 프링쿨스는 주변을 돌아본 뒤, 단편적인 기억을 겨우 더듬으며 상황 유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잡았구나.’

승부는 났다.

야수화에 취해 마치 너 죽고 나 죽자는 듯, 미쳐 날뛰며 달려들었다.

그에 당황한 마족이 다양한 스킬들을 구사하며 두드려 댔지만, 야수화의 장점 중 하나는 감각도 일정 부분 마비된다는 점에 있어서, 그야말로 불도저 같은 돌진이 가능했다.

와중에 감각은 또 매섭게 살아 있어서, 안개 속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마족을 정확히 캐치하며 쫓아다녔다.

장기전으로 승부를 끌고 갔다면 또 모를까. 단기 결전을 각오한 프링쿨스로 인해, 마족은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시간에 쫓기듯 덜미를 잡힌 채, 사나운 야성에 굴복해야만 했다.

승리를 취했다.

하나, 안타깝게도 그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야수화가 풀린 건 승부가 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상태가 엉망인 탓도 컸다.

‘중독인가.’

은빛 늑대라 불리던 자신의 몰골이 완전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잿빛 늑대라고 해야겠네.’

독에 중독되어 빛을 잃은 거죽과 곳곳의 상흔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핏물이 그의 상태를 짐작게 해 줬다.

“쿨럭….”

기침에 섞여 나오는 핏물도 시꺼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거 엿 됐는데.’

야수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단기 결전으로 승부를 낸 건 좋았지만, 그 후폭풍이 너무 크게 작용했다.

몸을 막 굴리다 보니, 언제나 중상을 달고 살았다.

바로 팀에 복귀해서 지원을 해야겠지만, 일단 최소한의 회복이라도 하고 움직여야 한단 생각으로, 신체 변형을 풀지 않은 채, 늑대화를 유지하며 회복에 들어갔다.

스킬을 유지하며 포스를 태우는 대신, 늑대인간 특유의 회복력을 가속화한 것이다.

다행이라 한다면 단기 결전을 한 덕분에, 포스 용량이 충분하다는 점이었고, 불행이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과 중독 증상이 심각해, 완치가 어려울 거란 점 정도였다.

“푸후우우우….”

호흡을 고르는 한편, 회복을 위해서 내면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 * *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그리고 밀려드는 고통!

“크으으으….”

몸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그 짜릿한 고통 덕분에 깨닫는 바가 있었다.

‘살았구나!’

마루는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태인지라, 연공법을 발동하며 회복에 들어갔다.

[들숨날숨]

어느 자세에서건 발동되는 만큼, 누운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연공법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슴의 답답함이 일부 해소되었을 즈음, 마루는 눈을 뜬 뒤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엔트라넷!”

그리고 떠오르는 상태창.

[정마루]

[각성 등급 : A]

[컨디션 : 3]

[스킬 : 오염된 여의주] [#] [*] [@]

[특수 스킬]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컨디션이 3까지 떨어졌다고?’

목숨이 경각에 처했다는 2점대의 바로 윗줄로, 어지간한 상황에선 3점대도 아슬아슬하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의 경우에는 즉각 회복을 위한 연공을 할 수 있기에 이 와중에도 일정 부분 여유가 발휘되는 것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정말 심각하게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는 맨 마지막 목록으로 시선을 보냈다.

‘특수 스킬….’

기절하기 전 그에 귓가에 울렸던 알람을 상기하며, 조심스레 그 부분에 손을 가져갔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환한 빛무리가 어리는가 싶더니, 스킬 목록이 펼쳐졌다.

[특수 스킬 : 개벽권]

상세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어떤 종류의 스킬인지 대략적인 유추가 됐다.

대다수의 각성자들이 이야기하고는 한다.

―스킬? 대충 감이 와.

―각성 패시브로 기본 정보가 대가리에 박혀.

―그래도 상세 내용까진 알아서 파헤쳐야지.

―스킬 해부야말로 초심자의 기초잖아.

그들의 이야기처럼 어떤 스킬인지 감이 왔다. 좀 더 자세한 건 스킬을 발동하며 확인해야겠지만, 일단 이해되는 건 간단했다.

‘전력을 한 방에 꽂아 넣는 스킬인가.’

이를 통해서 한계 이상의 괴력을 한순간 발현하는 것으로 보였다.

존슨의 일격을 흉내 내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슴이 울컥하는 걸 느꼈다.

신규 스킬이 등록된 건 이게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전부 ‘오염된 여의주’에 귀속되어 있는 스킬들로서, 그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편법’처럼 여겨지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 스킬은 어떠한가?

마치, 나는 여의주와 무관하다는 듯,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거기에서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스킬을 보고 있노라면, 그럼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너의 오리지널이다!]

어쩌면 그도, 여의주라는 신물을 통한 로또 같은 기적이 아닌, 본인 능력만으로 각성의 길을 열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있던 건 아니었을까?

꾸준히 지녀 왔던 의문, 그에 대한 해답을 내려 주는 것 같았다.

빌어먹게도 눈가가 뜨거워지나 싶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물꼬가 트인 듯 줄줄 새 나오고 있었다.

“썅! 쪽팔리게….”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 * *

저 멀리 불기둥 속, 존슨이 뭔가를 발견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저건 왜 저렇게 질질 짜?’

어찌나 짠하게 우는지, 괜히 시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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