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머…머리?
#16. 머…머리?
삐이이익….
머리 위, 뜨겁게 타오르는 신비한 새의 울음소리가 수시로 경고를 해 왔다.
-곧 시작된다.
-대비하라.
존슨은 최선을 다해 포스를 채워 넣고 몸 상태를 점검하며, 불기둥 바깥의 이레귤러를 관찰했다.
‘대격변….’
오래지 않아 그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것임에, 균열의 상태를 봐 가면서 수준을 유추하는 거였다.
게다가 이를 잘 주시하고 있노라면, 때때로 저 너머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도 있었다.
이는 눈으로 본다고 하기보단 감각으로 읽어 내는 느낌으로써, 이를 꾸준히 관찰하며 위험도를 체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마족 다섯의 분신을 예고편으로 내보낸 만큼, 그 수준이야 역대 최악일 건 확실했지만, 대격변이라는 건 애초에 마족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정리를 끝낼 수는 없었다.
그들과 함께 쏟아져 나올 수많은 몬스터의 물결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몬스터 웨이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놈들이 직접 이끌고 오는 만큼, 이곳에 정착 중인 몬스터들과 달리, 완벽하게 마족의 지휘를 따르는 놈들이니만큼, 몬스터라기보단 일종의 군단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릴 터였다.
삐이이익….
머리 위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통해, 끝이 가까워 옴을 느꼈다. 점차적으로 외침이 낮아지고, 불길의 농도가 옅어지는 걸 느낀 탓이다.
‘여기까진가.’
놀랍게도 여전히 포스는 완벽히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만전에 가까웠고, 지금 상태만으로도 과거의 그는 압도하기에 충분할 정도였음에,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고생했다.”
드디어 그의 말문이 트이고, 기다렸다는 듯 마지막 울음을 터트리며 새의 현상이 자취를 감췄다.
삐이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불기둥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그러며 주변 일대가 크게 흔들리는데, 대격변의 징조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 신성한 새가 이레귤러를 막고 있었던 만큼, 불길이 걷히면서 이레귤러도 막바지 변형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불기둥이 사라지자 주변을 압박하던 검은 안개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그 와중에도 존슨은 자신이 허공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았다.
아직 그의 주변에는 불길이 남아 있던 것인데, 마지막 외침에서 좀 더 휴식을 허락한다는 듯, 불길 일부가 주변에서 일렁거리며 포스를 채워 주고 있었다.
이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불길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격변의 현상을 살폈고, 드디어 완벽한 게이트가 열렸을 때, 불길을 거두며 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쿠쿠쿠쿠쿠쿵….
마치 유성이 떨어지듯, 대격변 게이트 전면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됐다.
* * *
프링쿨스 팀과 일행들은 바삐 이레귤러 발생 지점으로 달렸다.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는 데다가 진형을 흩트릴 수 없음에, 일정 부분 속도를 조절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빠른 속도였다.
원래라면 대격변 발생과 동시에 현장에서 빠져나간 뒤, 외부에 소식을 전하고, 헌터들과 합류해서 새롭게 대형을 짜는 게 맞았다.
하지만 존슨의 생존 여부가 걸려 있는 만큼, 그들은 대격변의 파동과 동시에 심처를 향해 달려야만 했다.
그러던 중, 묘한 의문이 뒤따랐다.
“이상한데?”
“보통, 이쯤 되면 웨이브가 밀려와야 하지 않나?”
“그러게. 충분히 빨리 이동 중인 것 같은데.”
“뭐지?”
모두가 의문을 내비치고 있을 때, 랭커들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꼭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 봤던 것 같단 느낌 속에서, 무언가를 눈치챈 듯, 이반나의 동공 가득 파문이 일었다.
‘설마?’
파아아앙….
갑자기 진형을 흩트리며 달려 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프링쿨스가 팀원들에게 손짓하며 진형 유지를 명령했다.
그리고는 마루에게 눈빛을 보내는데, 이에 마루가 따로 속도를 더하며 이반나의 뒤를 쫓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자 방어력이 우수한 그를 보조로써 붙인 것이다. 레오 역시 뒤를 따르려고 들썩였지만, 프링쿨스가 손짓으로 진정시키며 팀의 균형을 맞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토비와 끊임없이 눈짓을 나누는데, 그들 역시 이반나의 반응에서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맞는 것 같지?’
‘그런 것 같네요.’
어떠한 의견을 나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 * *
시산혈해(屍山血海)!
그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풍경이 저 멀리 이레귤러 앞으로 펼쳐져 있었다.
바로 그 중심, 웬 야생의 자연인 한 명이 묘하게 고고한 자태로 서 있었는데, 이를 본 이반나가 버럭 외쳤다.
“이… 멍청아!”
이에 자연인이 돌아보는가 싶더니, 하얗게 웃는 게 보였다. 뒤따르던 마루는 그 정겨운 미소를 보며 고개를 저어 버렸다.
인디안 존슨!
그가 이레귤러 앞에서 양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양발을 이리저리 어지러이 움직이자, 순간 대기가 갈라지며 튀어나오던 몬스터들이 쩌억 갈라지더니, 그대로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경이로운 몸짓과 능력에,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이반나와 마루 모두 직감했다.
‘넘었구나!’
존슨이 랭커라 불리는 초인 영역의 한계마저 깨트렸음을 깨달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렇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어떠한 기세도 내비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이반나를 비롯한 여러 랭커들이 그의 존재감을 읽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이 정도로 많은 시체와 핏물을 깔아 놓을 정도라면, 어떤 분명한 기세가 넘쳐나야 할 것이건만, 존슨의 주변은 그야말로 새벽녘 호숫가를 연상시킬 만큼, 실로 고요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 때문일까?
크워어어어어….
워어어어….
이레귤러만이 아니라 주변 일대의 몬스터들도 몰려들고 있었는데, 놈들은 존슨의 모습에서 어떠한 위협도 읽지 못한 채, 마치 먹잇감으로 여기듯 거침없이 달려들고는 했다.
그에 맞춰 손발이 움직이고,
퍼버버버벙!
마치 폭죽놀이라도 하듯, 그 손짓 발짓에 맞춰서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실로 전율적인 광경에 이반나와 마루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존슨이 훌쩍 거리를 좁혀 왔다.
“왔어?”
그러며 이반나를 향해 양팔을 활짝 벌리며 안겨 들 때였다.
뻐억!
매서운 간장 펀치가 존슨의 허리를 꺾어 놓았다.
“크으… 으으으… 흐흐!”
고통스레 신음하는 와중에도 기어이 웃음을 내비치는 존슨의 모습에 그녀도 결국 웃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러다 눈시울을 붉히며 외쳤다.
“정말 죽은 줄 알았잖아. 이 멍청아!”
그리고는 화악 안겨 드는데, 존슨이 그녀를 꽈악 껴안으며 말했다.
“흐흐… 살아서 다행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온기 숨결 체취 등, 모든 것들이 그로 하여금 이 순간에 감사하게 만들었다.
그 북받치는 마음 때문일까?
“결혼하자!”
“…뭐?”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프로포즈가 튀어나와 버렸다. 곁에서 구경 중이던 마루도 화들짝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말을 꺼냈던 본인도 놀란 기색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모두가 기겁하던 그때, 사단을 낸 존슨이 먼저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 겪으면서 깨달았어. 앞으로는 네 곁에 꼭 붙어서 살고 싶다. 그러니까 결혼하자.”
뒤늦게 이반나와 마루도 정신을 차린 듯 보였는데, 마루는 한 걸음 물러나서 제3자의 입장으로 냉정히 상황을 판단했다.
‘미쳤구나!’
등 뒤로 몬스터가 쏟아지고, 사방에서 괴수들이 몰려드는 대격변의 한 가운데서, 뜬금없는 프로포즈?
게다가 현재 존슨의 몰골을 보라. 저도 모르게 묻게 만들고야 만다.
“형님, 머…머리가….”
“머머리?”
존슨이 울컥해서 돌아보다가 아차 싶었다.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상기해 낸 것인데, 새삼 상황이 좋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의 모습에 마루가 멍한 얼굴로 존슨의 정수리 쪽을 바라봤다.
‘다 어디로 간 거야?’
언뜻 탈모 증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일반인 수준은 유지하고 있었건만, 지금의 존슨은 아주 시원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좀 전의 경이롭던 일격들을 떠올렸다.
‘머리카락과 괴력을 바꿨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리가 허전했다. 게다가 복장은 또 어떠한가?
‘하… 몰골 진짜….’
몬스터들의 거죽을 벗겨서 엮은 것인지, 그야말로 아마존의 ‘자연인’이 따로 없었다.
존슨 본인도 이를 깨닫고 당황 중이었다.
‘내… 내가 무슨 짓을… 망했다!’
당혹감 어린 그의 모습에 이반나가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좋아. 하자. 결혼!”
그야말로 반전 그 자체였다.
‘와….’
마루가 벙찐 표정으로 그들 연인을 바라보는 가운데, 먹구름 가득하던 존슨의 얼굴 위로 햇살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만세!”
벅찬 와중에 이반나를 훌쩍 들어 올리며, 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빙글빙글 돌리는데, 마루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야생의 복장을 하고 있다 보니, 빙빙 돌때마다 코끼리가 빠끔거리며 까꿍 거리는 게, 참으로 눈에 해로웠다.
‘아… 썅!’
안 본 눈이 절실했다.
급한 대로 자신의 옷을 벗어 주며 말했다.
“이거라도 좀 입어. 어디 원주민 족장인 줄 알았네.”
“오~! 땡큐.”
그림자 사슬이 옷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만큼, 딱 속옷만 남겨 놓고 전부 건네줬다.
‘속옷은 나누는 게 아니지.’
금세 환복을 마친 존슨이 슬쩍 이레귤러 쪽을 바라봤다.
그 잠깐 사이에 우르르 쏟아져 나와 있었는데, 과연 대격변이란 말이 아깝지 않는 듯, 이제 겨우 1차 밀물 타이밍일 뿐이건만, 어지간한 몬스터 웨이브는 씹어 먹을 만큼, 어마어마한 머릿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족의 분신이 다섯이었던 만큼, 적어도 밀물 타임이 5번 이상은 될 터였건만, 초반부터 이 정도라는 점에서, 새삼 이번 대격변의 규모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몬스터들의 수준도 보통이 아니었다.
걱정이 늘어가는 가운데, 존슨이 묘한 소리를 입에 담았다.
“슬슬 몸뚱이에 적응도 된 것 같으니까. 재주 좀 부려 볼까?”
그러더니 이내 지금껏 감춰뒀던 기세를 드러냈다.
화아악!
그 순간 쏟아지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경직되는 게 보였다.
오싹….
이반나와 마루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줄기가 짜릿해질 정도로 아찔한 기세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존슨이 크게 호흡을 들이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내쉰다.
“푸후우우우우….”
별거 없었다.
들이키고 내쉬고, 그저 숨만 쉬었을 뿐이다.
쿠쿠쿠쿠쿠쿵….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은 다리가 풀린 듯,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많은 덩치들이 일제히 땅바닥을 찧어 대니,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주변 일대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상위종으로 보이는 놈들도 휘청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존슨이 재차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니, 결국 상위종마저도 한쪽 무릎을 바닥에 찍어버렸다.
쿵… 쿠쿵… 쿠웅….
이반나는 그 모습에 고위종 중에서도 최고위급의 레이드 클래스로 분류되는 몬스터를 떠올렸다.
드레이크!
용족 계열의 최고위 몬스터로서, 랭커라 불리는 이들도 합을 맞춰서 잡아야 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괴수였다.
마족들도 부릴 수 없는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했다.
고위종 이상쯤 되면 하나 같이 ‘피어’라 할 만한 걸 발산하지만, 드레이크가 뿜어내는 피어는 그 궤를 달리하는 터라, 진정한 피어는 드레이크의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 존슨의 모습에서 그와 같은 모습을 엿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존슨이 보여 주는 기운이었다.
‘달라졌어.’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기존의 그가 보여 주던 포스와는 그 농도나 깊이에서 큰 차이가 느껴졌다.
상위종들 마저 굴복하면서, 남아 있는 건 고위종의 레이드 클래스들뿐이었는데, 이를 본 존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세를 더욱 피워 올렸고, 그 상태로 한 걸음 크게 내밀었다.
너무도 무거워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올 만큼, 그런 답답한 한 걸음이었다.
주변 대기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마루는 왠지 모르게 대기가 비명을 지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쿠웅!
그렇게 존슨의 걸음이 바닥을 딛는 순간,
드드드드드드….
커다란 지진이 발생하며 기어이 고위종들의 무릎마저 꺾어 버렸다.
“피휴우우….”
이번엔 피어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순수한 한숨인 듯, 존슨이 길게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개운하네!”
마치 기지개라도 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며 히쭉 웃어 보이더니 이반나를 향해 V 표시를 하는데, 그게 마치 ‘나 멋있지?’하는 것 같아서, 결국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마무리가 좀 한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멋지네!’
눈부시게 반짝이는 정수리마저 후광처럼 보일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