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밀물.
#17. 밀물.
세상이 들썩였다.
그도 그럴 게 대격변에 관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 결코 조용히 끝날 수 없는 대사건이었다.
적당히 존슨의 라인에서 그의 지인 그리고 소수의 정부 및 단체 지원 정도로 끝내는 것이 아닌, WHA의 2대 회장이 직접 나서며 판을 짜는 무대였다.
당연하게도 관련 소식이 세계로 퍼지는 건 순간이었다.
―What the….
―대격변이라고?
―건너 건너 들었는데, 존슨이 커버 치고 있다더라.
―나도 건너 건너 듣기론, 존슨 사망설 도는 것 같던데. 누구 말이 진실이냐?
―존슨이잖아. 사망설 따윈 헛소리임.
―외쳐! 제로 원.
―제로 원!
―010101~!
일정 부분 의도적으로 퍼트린 감도 있었다. 존슨의 사망설이 슬슬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낌새를 감지했기에, 일찌감치 이런 불씨를 정리하고자 판을 깐 것이다.
그러는 한편 관련 정보도 조금씩 풀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대 최악이라는 말이 있던데?
―장소만 봐도 각 나오잖아.
―산타카타리나라니. 남미에서 손꼽히는 마수지대에 대격변이면, 역대 최악을 찍어도 이상할 게 없지.
―마족이 몇 놈이나 나올까?
―아무래도 규모가 있으니, 셋 정도는 봐야 할 것 같은데.
―항공편 난리 난 거 보면,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닌 듯.
―남미 쪽 국가들은 죄다 단체 이동 중이라더라.
―뉴스도 관련해서만 때리고 있다던데.
―그건, 지구 반대편도 마찬가지야. 대격변 앞에선 세계가 평등하다.
이선은 댓글 몇 자를 적어 내리는 한편, TV의 속보도 놓치지 않았다. 현재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대격변 소식으로 인해, 모든 채널이 마비가 된 상황이었다.
‘이레귤러는 닫힌 줄 알았는데. 으음….’
그로 인해 정규 편성된 만화 방영이 미뤄지며, 초롱이와 루미가 울상이 돼 버렸는데, 따로 다운을 받기도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보니, 이에 관해서는 이선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적당히 달콤한 군것질거리로 달래 주는 게 최선이었다.
물론, 컴퓨터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의 관심사를 돌려놓는 한편, 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대격변과 관련한 소식들을 살폈다.
‘데일이 직접 움직였다는 건, 존슨이 살아 있다는 뜻이겠지.’
세계 최악의 대격변?
그 정도로는 데일이 저리 적극적으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협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존슨과는 다른 의미로 세상과 등지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물론, 대격변의 장소가 데일의 거처와 인접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가 사는 뉴욕과 산타카타리나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대륙적으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연결점에 큼지막한 마굴을 끼고 있는 만큼, 거의 타 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좀 더 깊이 있는 정보들을 수집하고자 엔트라넷에 접속했을 때, 뜻밖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존슨!’
그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던 것이다. 짧지만 굵은 내용으로, 데일이 받았던 바로 그 메시지였다.
겨우 한 줄의 짧은 내용에서, 여전히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단 그가 살아있다는 부분에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자연스레 마루 일행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는데, 아이들이 혹여 눈치챌까 싶어서 애써 표정을 관리해야만 했다.
‘존슨의 말대로라면, 마족이 다섯 개체라는 건데.’
역대 최악의 대격변의 현장에 마루 일행들이 있는 것이다. 내심으로는 당장 달려가서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이내 팔의 깁스를 보며 고개를 저어 버렸다.
과거였다면 대격변에 랭커의 지원의 필수였지만, 현 시대는 상황이 좀 달랐다.
격변의 초창기와 달리 이제는 헌터 전력이나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졌고, 랭커들의 숫자 역시 늘어난 만큼, 국가마다 최소 안전 장치는 남겨 놓은 뒤 지원하는 형식으로 바뀐 탓이었다.
그 때문에 안심하는 부분도 있었다.
‘지구 반대편 일이라서 다행인가.’
거리가 거리인 만큼, 이선희가 출동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역대 최악일 수도 있는 대격변에 그녀가 나서지 않는다며 안도하는데, 뜻밖의 기사가 떠 버렸다.
[이선희도 출동?]
그녀가 공항에서 찍힌 사진이 뜬 것이다.
“뭣?”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져 버렸고, 그 때문에 한참 만화에 집중해 가던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돌아봤다.
[1차 지원 부대와 합류? 응원?]
[브라질로 가는 여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그가 군것질거리를 추가하며 애들을 달랜 뒤, 급히 다른 기사들도 살피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니, 그 위험한 장소를 왜?’
이선희가 1차 지원 부대와 함께 비행기에 오르는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 * *
뒤늦게 도착한 프링쿨스 팀은 이레귤러 주변의 상황에 한 번 놀라고, 멀쩡히 살아 있는 존슨의 모습에 두 번 놀랐으며, 그가 보여 주는 어마어마한 기세까지, 연달아 이어지는 충격으로 인해, 턱관절이 빠질 정도로 뻐끔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 어!”
존슨이 특유의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준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리며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어라? 너 레오냐?”
그들을 반가이 맞아 주던 존슨이, 뜻밖의 얼굴이 끼어 있는 걸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헤헤! 삼촌, 오랜만이야.”
존슨이 활짝 웃으며 그를 안았다.
“아니. 언제 이렇게 큰 거야? 수행이다 뭐다 해서, 몇 년 못 봤더니. 그새 어른이 다 됐네.”
이반나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예전이 좋았는데. 쯧!”
이에 레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한편, 존슨의 어깨 너머 이레귤러의 풍경을 살폈다.
‘휘유~! 역시, 삼촌이야. 어마어마하네.’
균열을 넘어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미지의 기세가 그들을 짓누르는 듯, 등장하는 족족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털썩, 쿵… 풀썩….
이 주변 대기를 장악하고 있는 미지의 기운, 흐름, 분위기 등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인디안 존슨!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등허리를 치고 가는 전율을 느꼈다.
감탄을 거듭하며 쌍 엄지를 날리는 레오에게 한 차례 꿀밤을 먹여 준 뒤, 프링쿨스 팀을 향해 다가갔다.
“…살아 계셨군요.”
프링쿨스의 떨리는 음성 가득 감정의 격랑이 느껴졌다. 그의 생존에 감격하며 넘쳐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인데, 만약 이곳이 전장이 아니었다면, 당장 눈물을 쏟아 내며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의외로 여린 구석이 있다니까.’
실소하며 존슨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 많았다.”
그러며 팀원들을 쭈욱 돌아보니, 그 시선이 닿을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보였다.
‘하여간에 팀장을 꼭 닮아서는.’
재차 실소한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발길을 돌려 이레귤러로 향했다.
프링쿨스가 그 뒤를 따르며 물었다.
“일단 자리를 피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대격변이었다.
그것도 무려 마족 다섯의 분신이 활동하던 이레귤러가 아니던가. 어쩌면 역대 최악의 규모가 될지 모르는 만큼, 일단은 지원군을 요청한 뒤, 그들과 합류하는 게 정석이었다.
이에 존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적당히 힘 좀 빼놔야 돼.”
그러면서 이야기하는데,
“너희가 상대했던 마족의 분신들, 내가 상대했던 놈들과는 다른 놈들이야.”
충격적인 내용이 튀어나왔다.
“그게… 무슨…?”
일행들이 일제히 경악하는 게 보였다. 그가 어떻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은 채, 바로 핵심으로 넘어갔다.
“비슷한 스킬도 몇 놈 보였지만, 스킬만 비슷했지, 외형 같은 건 전혀 달랐어. 몇몇은 아예 스킬 자체도 달랐고. 마족 놈들 생긴 게 거기서 거기라, 잠깐 헷갈리기도 했는데. 전혀 다른 놈들이더라고.”
그 의미인즉,
“아마 균열을 뚫고 나올 마족 놈들도, 전혀 다른 놈들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커.”
기력 팔팔한 마족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그들과 같은 베테랑 헌터들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며 활동하는 게 기본이었다.
덕분이 이 긴 시간을 생존하며 경력과 실력을 쌓은 것이다.
충격적인 정보로 인해 일행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존슨이 재차 이야기를 이었다.
“빠지긴 빠져야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그놈들이 나와서 부릴 군단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 놔야지.”
균열을 넘어온 몬스터의 숫자가 부족하다면, 마굴에 도사리고 있는 몬스터들을 움직이려 할 터, 그것만으로도 마족들은 기운의 상당 부분을 소모하게 될 터였다.
게다가 군단 몬스터의 수가 줄어들 경우, 마굴에 끼치는 영향력도 함께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
‘으음….’
프링쿨스는 난감한 얼굴로 존슨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게 이는 한 개인이 언급할 만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를 부정하기 어려운 건, 존슨은 이런 식으로 대격변을 초기 진압한 역사가 여럿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경우에는 지금과 달리 마족도 한 개체 정도로, 그야말로 최소 규모의 대격변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그는 성공했던 경험치가 있었다.
이는 몬스터 웨이브와는 다른 대격변만의 특수성 덕분에 가능한 것으로, 웨이브 발생 시점부터 다중 게이트가 발생하며, 사방에서 두서없이 몬스터를 쏟아 내는 웨이브와 달리, 대격변은 저 거대한 게이트 하나에서만 대량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겨우 하나라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실로 어마어마했고, 쏟아지는 몬스터의 수준 차이도 하늘과 땅만큼 났지만, 어쨌든 저것만 잘 틀어막을 경우, 대격변의 규모에 따라선 초기 진압의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프링쿨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무려 마족이 다섯 개체나 예고된 대격변입니다. 밀물 시기를 최소 5턴은 버텨야 합니다.”
이마저도 가장 작게 잡은 수치로서, 재수 없으면 배수로 10턴 이상의 밀물 타임이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에 존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딱 그 정도면 적당하겠네. 나도 너무 길게 비비고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며 생각했다.
‘5턴 정도면, 이 몸뚱이에 완벽히 적응하기엔 충분하겠어.’
황당하게도 그 말도 안 되는 규모를 몸풀기 정도로 여길 만큼, 그의 상태는 전에 없이 최상의 상태였다.
컨디션도 최고조를 찍고 있었다.
단지, 완전히 새로운 육체를 장착하기라도 한 듯, 묘한 이질감이 남아 있던 터라, 무모한 도전을 할 생각까진 없었다.
실제로 키도 살짝 커지기도 했다.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변화가 있는 것이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반나가 물었다.
“가능한 거야?”
이에 존슨이 오히려 되물었다.
“나 못 믿어?”
결국, 일행들은 남기로 결정을 내리는 가운데, 존슨이 고개를 저으며 구분을 했다.
“나중에 빠져나갈 땐, 뒤도 안 돌아보고 튈 생각이니까. 발바닥에 곰팡이 핀 놈들은 먼저 나가.”
적당히 농담을 섞어서 발 빠른 이들만 남으라고 한 것인데, 존슨의 기준을 채울 만한 건 결국 랭커들밖에 없었다.
“너만 믿는다.”
프링쿨스는 그리 말하며 헤더에게 재차 팀을 부탁했다.
“맡겨 주십시오.”
“길목 정리도 좀 부탁한다.”
존슨이 잡아 놨던 루트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대격변 발생 이후부턴 마굴 전역에 걸쳐 마기가 들끓으며 광기를 부추길 터, 새로운 경로를 검색해야 하는데, 이를 팀에게 맡긴 것이다.
“편하게 표식만 보고 오시면 될 겁니다.”
헤더는 그리 말하며 팀을 이끌었다. 한데, 그 와중에 의외의 인물들이 추가로 남았다.
마루와 레오!
일단, 마루의 경우에는 앞서 보여 준 게 있는 만큼 팀원들도 납득할 수 있었지만, 레오는 실로 뜻밖이란 분위기였다.
하지만 존슨이 직접 지목한 만큼,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팀이 갈라지는 가운데, 존슨이 이레귤러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대기 가득 퍼트려 놓은 그의 기운을 매개체 삼아, 이 공간 전체를 그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런 영역 전체를 크게 내리누르며 몬스터들의 무릎을 꺾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진 탓인지, 슬슬 적응하는 놈들이 나오면서, 몇몇 고개를 들고 오금을 세우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남은 일행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준비됐지?”
일제히 고개가 끄덕여지고, 존슨이 대기 가득 펼쳐 놓았던 기운을 거둬들었다.
그 순간 수많은 몬스터들이 자세를 바로잡는 게 보였다.
크워어어어어….
크아아악!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사나운 포효가 놈들의 감정선을 제대로 표현해 주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보통 이쯤 되면 눈부터 깔 텐데.’
존슨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끼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은 여전히 사기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일행들이 그 같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존슨이 이레귤러를 가리키며 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
“테이머!”
그거면 충분했다.
저기 이레귤러를 통해서 또 다른 미지의 존재가 놈들의 광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다시금 확인하니, 몬스터들의 동공이 상당 부분 뒤집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눈에 봐도 멀쩡한 놈들이 없어 보였다.
“온다.”
존슨의 경고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몬스터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