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격변의 격변!
#19. 격변의 격변!
마루는 실버 박사의 유산을 세상에 퍼트리는 걸 계획하고 있긴 했다.
그 결심의 첫 스타트를 끊었던 게 레베카였고, 그녀를 통해 따로 리튜브에 계정까지 마련하지 않았던가. 아직 스타트만 하지 않았을 뿐,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구상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준비하면서 내심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과연, 어디까지 유산을 전파할 수 있을까?]
일찌감치 그 답을 확인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건, 뭐… 스포일러가 따로 없네.’
여의주의 도움 없이도 저런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상당 부분 신기하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수시로 레오를 관찰하게 돼 버렸다.
* * *
휴식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30분 남짓?
전투에 지친 육신을 제대로 달래기에는 너무도 짧았다. 더 늘어져 있고 싶었지만,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이한 기운을 보며 자세를 가다듬어야만 했다.
“온다!”
존슨의 외침과 함께, 새로운 밀물 타임이 시작되는데, 골치 아픈 건 밀물 타임은 한 턴 넘어갈 때마다 퀄리티가 올라간다는 점이었다.
앞서보다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그렇지만, 종족 간의 구분에 두서없이 나오던 게 조금씩 맞춰지면서, 놈들 사이의 단결력도 높아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종들이 섞여 나오는 것보다, 같은 종의 몬스터가 밀려 나와 뭉치는 게, 기본적인 단결력 면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밀물 턴이 넘어가면서 대격변의 후반부에 다다를 경우, 다시금 종족의 구분이 없어지는데, 이는 초반의 두서없는 등장과는 달리, 종족 간의 상성을 통해서 연계의 극대화를 시킬 수 있는 조합인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균열에도 일종의 주파수 같은 게 있어서, 초반에는 두서없이 몬스터들이 넘어오지만, 밀물 턴이 넘어갈수록 주파수가 맞춰지면서, 종족 간의 상성 조합을 적용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 균열 너머에서 몬스터를 보내는 미지의 존재들도, 그 주파수를 맞추기 전까진, 일종의 ‘조합식’을 짜기가 어렵다는 게 이레귤러 전문가들의 주장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아직까진 밀물 타임의 순도가 낮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쳐 버린 육신 탓일까?
“후우… 훅… 후우우욱….”
“미치겠네!”
“이번 일 끝내면, 한동안 휴식기 좀 잡죠.”
이반나와 프링쿨스 그리고 토비 등은 연신 진땀을 빼며 힘겹게 몬스터들을 쳐 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마루의 체력이 기이하게만 느껴지는 것이기도 했다.
가장 팔팔한 레오의 경우에도 어느새 거친 호흡을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건만, 마루는 시종일관 균일한 페이스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똑같이 쉬었는데.’
‘대체 어떻게 돼 먹은 몸뚱이야?’
‘골 때리네.’
쉬는 시간에 정비하기보단, 이상한 체조를 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던 게 떠올랐고, 어쩌면 그 몸짓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를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
우워어어어어….
크아아악!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에 의해, 결국에는 잡념에 잠길 틈마저 사라져 버린 까닭이었다.
흥미로운 건, 랭커를 포함한 5인보다 존슨 개인이 보여 주는 활약이 더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 힘겨운 밀물 타임을 꾸역꾸역 막아 낼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존슨 덕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벽을 넘기 이전에도 홀로 소규모 대격변 정도는 커버하던 그가 아니던가.
지금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의 가벼운 손짓 발짓 한 번이면, 고위종이라 불리는 레이드 클래스급의 몬스터들마저 우르르 쓰러지고는 했다.
때때로 몬스터들이 잔뜩 쌓여서 이레귤러 주변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될 경우, 작정하고 포스를 뿜어내며 양팔을 크게 휘두르는데, 그 결과가 또 놀라웠다.
촤르르륵….
그의 손끝을 타고 뻗어 나간 포스가 마치 부채꼴처럼 넓게 퍼져 나가며, 주변 가득 쌓인 몬스터들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푸후우우우!”
그때는 존슨도 한 차례 호흡을 길게 늘어트리지만, 딱 그 정도에서 그칠 뿐이었다. 대충 ‘힘 좀 썼다!’라는 느낌이랄까?
이마저도 충분히 놀라운 광경이지만, 만약 일행들이 존슨의 생각을 알았더라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터였다.
‘슬슬, 폼이 올라오는 것 같은데.’
여전히 몸풀기 수준으로 여기고 있던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S급에서 한 차례 더 도약해 버린 그의 시야나 감각 등은, 그야말로 아득한 경지에 머물고 있었다.
당장 내부의 포스만 하더라도, 이전과 비교하면 호수와 바다의 차이만큼 어마어마하지 않던가.
A급과 S급 랭커들의 격차가 하늘과 땅이라 여겼듯, 지금도 그 이상의 차이를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딱 아슬아슬하게 일행들이 한계를 넘나들 정도로만 뒤를 봐주며, 전장 전체를 컨트롤하는 것도 가능했다.
여유가 넘쳐 난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신체 감각을 조정하며 폼을 끌어 올리는 한편, 마루와 레오 등을 관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중에서 특히 많은 시선을 주는 건, 아무래도 역시 마루일 수밖에 없었다.
* * *
다양한 스킬 연계의 효과라고 해야 할까?
파파파파파팍….
마루는 어지러이 손발을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몰아붙이는데, 단 한 순간도 그의 연계가 멈추는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 숨 고르기 타임에도 몸을 놀리고 있을 정도였다.
권, 장, 각 등을 비롯하여 온몸을 활용하며 쉼 없이 두드리는데, 그 와중에 발동되는 스킬은 박투 계열의 한계를 수시로 벗어나게 만들어 주고는 했다.
[날치기]
손날을 도끼처럼 활용하며, 몬스터를 도륙 내기도 하고,
[검결지]
손가락으로 검기를 뿜어내며 치명적 관통상을 남기는 등, 그야말로 단순 박투를 넘어서는 몸놀림을 통해, 스스로를 인간 병기처럼 활용하니, 일행들에게 어느새 그는 탱커가 아닌 근접 딜러라는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을 정도였다.
저격수에서 탱커 그리고 이제는 근접 딜러까지.
그 놀라운 다양성에 일행들은 새삼 놀라야만 했는데, 만약 이곳이 전장만 아니었다면 넋 놓고 감탄만 연발하고 있었을 터였다.
인간 병기라는 기준은 그저 몸뚱이에서 끝나지 않았다.
단순한 숨결이나 눈빛 그리고 발자국 등, 모든 흔적에서 그는 스스로를 무기화해 놓았다.
[환각안]
눈이 마주친 순간, 몬스터의 시야가 빙글 돌아가며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스킬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환각 효과가 있는 것으로, 고위종의 레이드 클래스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심각하게 걸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주 잠시 감각적 마비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반 호흡도 안 될 만큼 짧은 시간이지만, 그 정도면 치명상을 넣고도 남았다.
[신성한 숨결]
PP 메달 하나를 소모한 성직계 스킬로서, 그가 내쉬는 숨결 사이사이 신성한 기운이 담기며, 주변 몬스터들의 폐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마수지대의 몬스터와 달리, 균열을 타고 바로 넘어온 몬스터들의 경우, 특히 더 마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터라, 마족과 마찬가지로 성력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는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보경―시련(步步經―試鍊)]
그가 남긴 발자국마다 일종의 트랩 효과가 깃드는 것인데,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간단히 높낮이를 조절하는 정도로, 밟는 순간 푹 꺼지게 한다거나, 반대로 상승효과를 주는 것이다.
고위종 대다수가 워낙 무게감이 있는 놈들이다 보니, 그 정도로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지만, 아주 잠시 주춤거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철권][잠력][발진]…….
놀랍도록 다양한 스킬의 연계 속에서, 그는 훌륭히 제 역할을 다 해냈고, 그렇게 이번에도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훌륭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이어진 휴식 시간, 그리고 잠시간의 휴식 후 시작되는 밀물 타임.
정신없이 이어지는 몬스터들의 물결 속에서, 어느새 다섯 번째 턴까지 마무리되는데, 그즈음에는 일행들 중 멀쩡히 서 있는 건 존슨밖에 없을 정도였다.
휴식 때마다 연공법으로 컨디션을 끌어 올렸던 마루 역시도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그마저 이럴진대, 일찌감치 체력이 방전되었던 다른 일행들은 어떻겠는가. 말 그대로 지금까진 정신력으로 버티는 수준일 뿐이었다.
존슨은 이들 모습에 더 이상은 감당하기 어렵겠단 결론을 내린 뒤, 슬슬 복귀를 준비하는데, 그즈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즈즈즈즉….
균열 방면에서 알 수 없는 잡음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대격변 게이트가 일렁이며, 뜻밖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랭커들이 일제히 경악성을 터트렸다.
“저건 또 뭐야?”
베테랑 헌터이자 랭커로서, 격변의 현장도 여럿 뛰어 봤고, 관련 정보도 빠삭하게 꿰고 있건만, 이런 상황은 생전 처음이었다.
이레귤러의 대격변 게이트는 한번 모양새를 갖추고 나면, 그 상태로 고정되는 게 그간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한번 모양을 잡은 상태에서 재차 변화를 거듭한다?
“맙소사!”
랭커들에게 있어서도 충격적인 광경이었던 터라, 일제히 입을 쩍 벌린 채 대격변 게이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존슨이었다.
이반나는 뒤늦게 연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그가 현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 거야?”
그녀의 물음에 존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도 잘 몰라. 이런 현상은 나도 처음이라서, 단지….”
그가 이레귤러 전체를 넓게 살피며 이야기를 이었다.
“…게이트의 크기는 대격변의 규모나 수준과 연관이 있다는 건 알지.”
“설마?”
이반나가 뭔가를 눈치챈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래 예정됐던 것보다 센 놈이 나오려나 보네.”
흥미로운 건 게이트의 모양이었다.
대기가 갈라지며 균열이 일고, 그게 거대하게 벌어지며 마기를 쏟아 내는 게 이레귤러의 기본 현상이며, 이게 일정 형태로 굳혀지며 나름의 모양새를 갖추는 게 대격변 게이트였다.
그러면서도 대기의 균열은 꾸준히 남아 있어서, 이레귤러 속 대격변 게이트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마치 이를 역행하기라도 하듯, 굳어져 있던 게이트가 다시금 형태를 잃어 가며, 이레귤러의 일부처럼 변형되며 녹아드는 게 보였다.
너무도 침착한 그의 반응을 보며 이반나가 물었다.
“뭐야? 대체, 뭐가 나오는 건데?”
이에 존슨이 꾸준히 크기를 불려 가는 이레귤러와 대격변 게이트를 보며, 앞서 불기둥 내부에서 느꼈던 걸 떠올렸다. 그리고는 짧게 답했다.
“마족을 초월한 무언가?”
그 역시 마땅히 정의를 내릴 수는 없었다.
단지, 마족과 같으면서 그들 이상의 특별함을 지닌 뭔가가, 저 너머에서 섬뜩한 숨결을 보내오고 있다는 것 정도만 느낄 뿐이었다.
몬스터에게도 등급이 있듯, 마족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을 거라 확신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저 존재로 인해, 그가 한시바삐 전체적인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 올리고자 한 것이기도 했다.
벽을 넘고, 그야말로 진정 초월적 존재가 되었다고 자신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허리가 쭈뼛 서게 만들던 존재감이란, 그저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마른침을 삼키게 할 정도였다.
‘설마, 벌써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게다가 저런 식으로 문을 두드릴지도 몰랐다.
‘허… 정말 말도 안 되는군!’
마치 강제로 길을 여는 느낌이었다.
격변의 격변이라고 해야 할까?
이레귤러와 대격변 게이트의 변형에 따라,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놈의 숨결이 한층 진하게 전해져 왔다.
이즈음에는 다른 일행들도 이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소름 끼치는 존재감에 일제히 전율하며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으음….”
신음성이 반복되는 가운데, 대격변 게이트의 변화가 끝난 듯, 확장이 멈추는 게 보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찰나, 미지의 존재가 넘어왔다.
마치 거대한 성처럼 커져 버린 균열과 달리, 균열에서 등장한 건 너무도 작고 평범한 존재였다.
언뜻 보면 인간이 아닐까 싶은 체형과 외형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행들은 한눈에 그 정체가 ‘마족’이라는 걸 알아봤다.
놈들과 똑같은 기운을 내비치고 있던 것인데, 차이가 있다면 숨 막히는 농도였다.
신음성마저 조심하게 만드는 가운데, 미지의 존재가 입을 열었다.
―흠… 겨우, 분신 정도가 한계인가.
놀랍게도 일행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괴성만 내지르던 기존 마족과 달리, 그 뜻이 분명하게 전달된 것이다.
마치, 특수 번역기를 사용하는 듯, 입 모양과 매치가 안 됐지만, 그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에서 또 놀라야만 했다.
‘저게 겨우 분신이라고?’
‘이 존재감이?’
‘맙소사!’
문득, 마족의 시선이 일행들에게 닿고, 놈이 한마디를 뱉었다.
―꿇어라!
그리고,
쿵… 쿠웅… 털썩….
일제히 무릎을 찍었다.
‘이게, 대체….’
한 박자 늦은 경악성이 일행들을 휩쓰는 가운데, 마족의 시선이 한군데로 고정됐다. 여전히 꼿꼿이 서 있는 사람이 남아 있던 것이다.
인디안 존슨!
그가 굳은 얼굴로 마족을 주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