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사일론.
#20. 사일론.
저 옛날 아직은 부족함이 넘치던 무렵, 스승을 따라 처음으로 고위종의 레이드 클래스를 마주했던 때가 떠올랐다.
‘오싹하네!’
존슨은 그리 생각하며 마족을 바라봤다. 마침 저쪽에서 그를 돌아보던 터라, 이내 둘의 시선이 얽혀 들었다.
―그래 네놈이구나.
무거운 침묵이 그들 사이를 채워 가려는 찰나, 마족 측에서 먼저 말문을 건네 왔다.
―번번이 우리 일을 방해하는 인간 놈이 있다기에,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생겼었군.
“잘생겼지?”
―흐음~! 이 동네의 미적 기준은 구린 건가.
존슨의 표정이 와락 구겨지는 가운데, 마족이 성큼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이에 존슨도 성큼 다가가며 둘 사이의 거리가 확 하고 좁혀졌다.
그렇게 지척 거리에서 그들은 서로를 관찰하듯, 어지러이 시선을 교차시켰다.
―제법이군. 인간 주제에 종의 한계를 벗어나다니. 번번이 우리 애들이 죽어 나가는 이유가 있었어.
마족이 그리 말하며 슬쩍 존슨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흥미로운 인간도 있고.
그 시선은 정확히 마루에게 닿아 있었다.
“크윽….”
마루는 그저 눈빛이 마주쳤을 뿐이건만, 동공을 불에 지진 듯 뜨거워짐을 느껴야만 했다. 그 같은 반응을 통해, 존슨은 마족의 시선이 누굴 겨냥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에 격을 잃어버린 반푼이 신의 가호를 받는 놈이 있다기에 기대했는데, 흠… 아직은 애송이였군.
‘격? 반푼이? 신?’
생각지도 못한 정보에 존슨의 귀가 활짝 열리는 가운데, 마족이 어깨너머로 보냈던 시선을 회수하며 물었다.
―이름이 뭐지?
“보통 그런 걸 물을 땐, 자기소개가 먼저 아닌가?”
―…재미있군. 내 이름을 묻다니. 하긴, 세상이 다르니 이해해 주지.
짧게 실소하는가 싶던 마족이 입을 열었다.
―사일론이라고 한다. 이제 네 이름을 밝혀라 초월자.
“인디안 존슨. 별다른 소속 같은 건 없고, 그냥 홀로 빛나는 고고한 별이라고 해 두지.”
멋지게 턱을 들며 폼까지 잡는 순간, 뒤에서 지켜보던 일행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사일론의 압박에 몸을 떠는 와중에도 참을 수 없는 쏠림 현상을 느낀 것이다.
열렬한 추종자인 프링쿨스와 토비가 고개를 바로 했지만, 두 눈은 질끈 감겨 있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존슨의 태연한 물음이 이어졌다.
“사일론… 그렇군. 네가 대공 사일론인가?”
그 순간 사일론의 동공이 부릅떠졌다. 이름밖에 밝히지 않았건만, 그의 정보를 알아냈다는 게 놀라웠던 것인데, 이내 떠오르는 게 있던 것인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곳에도 차원 관찰자가 있다더니. 헛소문이 아니었군.
존슨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가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실버 박사를 알아?’
기이한 일이었다. 좀 전의 모습으로 봤을 때, 마루에 대한 정보도 일부분 넘어가 있는 듯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에 대한 해답은 마족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었다.
‘…이곳에‘도’라고 했지.’
앞서와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차원 관찰자, 실버 박사!’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른 세상을 엿보는 특별한 스킬, 그게 꼭 실버 박사 한 명의 전유물이라 할 수는 없단 생각에 닿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저 마족의 세상에도 그와 비슷한 능력자가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흐음… 우리를 살필 정도라니. 이곳의 관찰자 수준이 생각보다 더 뛰어난 모양이군.
그리 중얼거리던 사일론이 문득 안광을 번뜩이며 존슨을 바라봤다.
―네놈을 잡아다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 둘 필요가 있겠어.
이에 존슨이 실소를 터트렸다.
“하… 내가 봉다리 할아버지로 보이냐?”
뜬금없는 드립에 마루와 이반나가 내상을 입는 가운데, 존슨이 포스를 화악 끌어 올렸다.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한판 붙자는 건 알겠군.
사일론이 그리 말하며 마찬가지로 기세를 내비쳤다.
쿠르르르르르….
그 순간 그들 사이의 그 협소한 공간에서 천둥성이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둘의 신형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일으킨 포스와 마기가 중간에서 부딪치며 주변을 흔들었다.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던 덕분일까?
“후우우욱….”
“푸하~!”
일행들을 압박하던 사일론의 기세가 사라지면서 일제히 무릎을 펼 수 있었다. 맘 같아선 바로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물러나!”
이반나의 외침과 함께 일행들이 일제히 전장에서 몸을 뺐다.
랭커들 입장에서도 괴물이라 불리는 두 절대자의 격돌이었다. 현장에 머무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A급의 헌터들이 랭커들의 대전을 멀찍이서 관전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들 역시 전력을 다해서 그곳을 벗어났다.
마석 결계술이 펼쳐져 있어서 중간에 멈춰 서기도 했지만, 마루가 앞장서서 길을 연 덕분에 이는 해결할 수 있었다.
“뛰어!”
“최대한 멀리, 달려!”
저들 두 괴물들의 격돌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 했다.
그리고 이들이 멀찌감치 점이 되어 갈 즈음, 사일론이 실소하며 말했다.
―제법이군.
단순히 기세 싸움만 했던 것 같지만, 사실 그사이에 그들은 보이지 않는 수 싸움도 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마루 일행을 치려고 각을 보던 사일론, 그리고 이를 차단하고자 시야 한편에서 반격을 꾀하던 존슨.
이는 사일론의 등장 이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던 것으로, 만약 일행을 향해 발톱을 드러냈다면, 그 즉시 카운터가 들어오며 사일론을 쳐 냈을 터였다.
“제법이기만 할까.”
존슨이 그리 말하며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파앙!
허공을 격하며 밀려든 권격에 사일론이 손을 저으며 쳐 내는데, 그의 눈가에 옅은 경련이 일었다. 손끝에 마비 증상이 온 까닭이었다.
―확실히… 보통은 아니군.
주먹을 쥐었다가 피며 잔여 기운을 털어 내는 가운데, 존슨이 먼저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다.
한걸음에 제로 거리까지 다가든 그가, 바쁘게 손발을 놀리며 무수히 많은 연타를 집어넣고, 사일론은 이를 막고 흘리며 카운터를 쑤셔 박았다.
퍼퍽!
동시에 터져 나온 타격성과 함께 둘의 신형이 주르륵 밀려났다.
서로 복부와 턱에 한 방씩 얻어맞은 것인데, 존슨이 얼얼한 턱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좀 치네.”
그리고는 재차 달려들며 타격전을 벌이는데, 흥미로운 건 그들 격돌의 파장이었다.
대개 랭커 대전쯤 되면, 단순 박투라 하더라도 거기서 뻗어 나온 기운의 여파가 주변을 크게 뒤집으며 휩쓸고는 하는데, 이들은 격돌은 전혀 달랐다.
마치 비각성자들의 일반적인 격투를 연상시키듯, 너무도 평범하게 별다른 파문 없이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초월적 존재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언뜻 장난하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는데, 실상은 아주 치열한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별다른 파동이 발생하지 않는 건, 주변으로 퍼지는 잔여 기운까지 전부 모으고 모아, 내지르는 그 한순간에 담아내기 때문인데, 이마저도 정확한 타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거짓말처럼 회수하며 다음 타격의 불씨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타격이 이뤄지는 순간은 어떠할까?
퍼억! 퍽….
역시나 별다른 파문이 없었다.
‘젠장!’
존슨은 복부를 타고 밀려드는 사일론의 기운을 흘려서 뿜어내고 싶었지만, 마치 찰거머리처럼 그의 내부에 달라붙으며 더욱 깊이 파고들려 하는 걸 느꼈다.
이는 사일론 역시 겪고 있는 현상으로서, 한 점에 잘 응축된 그들의 기운은 쉬이 흘려보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그 때문에 타격의 순간에도 여전히 주변으로 피해가 퍼지는 일은 없었다.
그 때문일까?
“뭐야?”
“너무 조용한데.”
멀찍이 물러났던 이반나와 일행들은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대치 중인 것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현장이 보일 만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풀 수 없는 의문이 쌓여만 가는 가운데, 마루 한 사람 만큼은 그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궁외][명안]
저격수 특화 스킬이라 할 수 있는 연계기를 통해, 한쪽 눈을 감아서 시력을 증가시키고 시야까지 밝히니, 아주 선명하게 전장을 살필 수 있었고, 그게 상황 이해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허… 저게… 저럴 수 있나? 아니, 저게 가능한 건가?’
등허리가 짜릿해지는 전율 속에서 마루는 그들 전투에 점차적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때로는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남다른 스탯으로 극한까지 개발된 그의 뇌와 육신 그리고 감각 등은, 두 절대자의 전투를 지켜보며 그 모든 몸짓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놓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의 머리는 상황을 기억 중이었고, 감각은 이를 쫓을 것이며, 몸뚱이는 조금씩이나마 이를 체화하려 들 터였다.
지금 당장은 전투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한편에서 레오가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 * *
존슨의 생존을 알게 되고, 이후 대격변의 흐름까지 읽게 된 뒤, 아드리안 데일은 거의 풀타임으로 엔트라넷을 열어 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엔트라넷은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포스 소모가 발생하는데, 엔트라 데스크를 얼마나 활발히 살피느냐에 따라, 그 소모량도 늘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런 이유로 매 순간 기력이 소모되고 있었는데, 대격변을 대비하고자 2대 협회장의 권한을 내세우고,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면서도 이를 유지했다는 건, 그를 배로 피로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어 둔 건,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격변 발생]
[밀물 타임 통제 중]
[이레귤러 2차 변형]
[삼촌, 한계 돌파]
따끈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날아들며, 그의 고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줬다.
정보원은 현장에 나가 있는 제자 레오였다.
특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엔트라넷을 통해 메시지를 남기라 했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확인한 정보들은 하나같이 충격적인 것밖에 없었다.
‘이레귤러가 변화도 한다고?’
듣도 보도 못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해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쉬이 표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 그마저도 놀람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협회장 권한은 딱 여기까지만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쯧! 아무래도 좀 더 유지해야겠군.’
4대 협회장의 견제가 한층 심해질 걸 떠올리니, 벌써부터 피로감이 올라왔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면서 미래가 아닌 당장의 사건에 집중했다.
제자가 보내온 정보 중, 특히 그를 놀라게 했던 건?
‘실버 박사의 정통 계승자라니.’
긴 세월 노력하며 겨우 그의 유산을 일부 구현했건만, 뜬금없이 오리지널이 나타났다는 것이 아닌가.
‘존슨 그놈이 웬 뜬금없는 하급 헌터를 형제로 삼았을 땐, 반쯤은 괴벽인 줄 알았는데.’
당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게 생각났다.
‘이런 걸 숨기고 있었다니. 존슨 이 자식!’
왜 자신에게 감추고 있었는지, 이래저래 물어볼 것들이 많았고, 자연히 존슨과 재회하면 나눌 첫 대화 목록으로서 체크됐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으면 좋을 텐데.’
메시지 전달도 등급에 따라 이용 횟수 및 글자 수, 그리고 포스 및 포인트 소모량 등, 이런저런 다양한 제한이 있다 보니, 상세한 내용까진 전해 들을 수 없었다.
급변하는 상황으로 인해, 메시지의 내용을 최대한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다른 두뇌는 그 짧고 단편적인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파악해 내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사일론이라고?’
데일은 제자가 보낸 최신 메시지를 떠올리며 턱을 쓸었다.
‘설마, 그 사일론일까?’
또 다른 벽을 넘었다는 존슨과 박빙으로 승부 중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그가 생각하는 바가 맞을 확률이 높았다.
이럴 때마다 새삼 감탄하고야 만다.
‘실버 박사!’
그 한 사람이 깔아 놓은 수많은 안전장치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꾸준히 많은 변화를 가져오며, 그들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박사의 유산은 필히 재현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다시금 마루에게로 생각이 닿아 버렸다.
‘B급 A형 정마루!’
존슨과의 재회 이후, 그가 해야 할 다음 행동 목록이 체크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