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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대승급.

#21. 대승급.

그야말로 박빙이라고 해야 할까?

존슨과 사일론의 격전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실로 치열하게 서로를 밀고 당기며 쳐 내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사일론의 전투 방식이었다.

‘특이하네.’

시간이 흐를수록 존슨은 그와의 격전이 마족과의 대결이라기보단, 인간 대 인간의 대결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각종 스킬에 의존하며, 이를 발달 진화시킨 마족 특유의 전투 방식과 달리, 사일론은 마치 존슨의 주된 전투 방식처럼, 순수한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시킨 격전을 선호하고 있던 것이다.

존슨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감히 자부하건대, 그는 현존하는 헌터들 중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체술의 달인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아는 이들은 전부 그가 최고라 하지만, 적당히 겸손을 떨며 스스로 한 손에 꼽는다고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가 바로 존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웬일?

‘내가… 밀린다고?’

시간이 흐르고 격전의 열기가 한껏 달아오를 즈음, 존슨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킬 없이 순수 박투만으로 이런 상황에 처한 건, 근 10여 년 만에 처음인 듯싶었다.

이는 마족들과의 전투도 포함되는 내용으로서, 새삼 눈앞의 존재가 특별하다는 걸 상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가 알고 있던 정보를 되새겼다.

‘후우… 실버 박사… 정말, 대단하네.’

상황을 봐서 그 정보를 통한 반전을 꾀할 생각이었다.

‘정보가 진짜라고 해도, 먹힐지는 반반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일단 당장은 지니고 있는 것들로 좀 더 부딪쳐 보기로 했다.

‘새로운 스킬도 활용해 봐야겠지.’

앞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사건을 통해, 그에게 신규 스킬이 생성됐는데, 이는 기존 방식처럼 ‘진화’ 계열이 아닌, 아예 새로운 종류의 스킬이었다.

그도 이젠 ‘멀티’ 스킬 각성자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이라면 더블 스킬도 충격적인 대사건이지만, 마루와 레오로 인해, 이 부분의 임팩트가 덜하기는 했다.

‘적응도 마쳤으니, 이제는 실전인가.’

밀물 타임에서 시운전을 해 봤지만, 아무래도 사일론과 같은 실력자를 상대로 활용한다는 게, 살짝 부담감이 생기기는 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으니.’

하지만 연신 밀려나는 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슬슬 변화를 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킬이 발동되고,

퍼퍼퍼퍽!

사일론이 뒷걸음질을 쳤다.

‘이게, 무슨…?’

갑자기 반전 일격을 맞고 물러난 것인데, 자세를 바로잡는 그의 얼굴 가득 의문의 빛이 떠올랐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동그래진 두 눈이 지금 상황을 이해 못 하는 듯 보였는데, 의문을 해소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쉴 틈 없이 달려드는 존슨 때문이었다.

퍼퍽! 뻐억!

또다시 시원한 타격성과 함께 밀려나고, 이번에도 두 눈 가득 물음표가 떴다.

‘뭐지?’

연속되는 이해 못 할 상황으로 인해, 공격보단 수비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태세를 전환하며, 한 호흡 움츠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며 상황을 냉정히 바라보고 분석하려는데,

후우우욱….

존슨의 공격이 크게 휘둘러지는 게 보였다. 마치 반격을 하라며 미끼라도 던지는 모양새라, 분석을 하는 와중에도 몸이 반응하며 카운터를 노렸다.

‘막고, 친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어 내고자 존슨의 주먹을 쳐 내려는 찰나였다.

휘익….

황당하게도 커버를 치던 손길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는 것이 아닌가. 정확한 타이밍에 뻗은 손짓이건만,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의문이 이어지는 와중에 존슨의 주먹이 빈 공간을 파고드는 게 보였다. 그림처럼 뻗어 오는 일격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뻐억!

제대로 들어온 권격에 턱이 휙 하니 돌아가고, 신형이 부웅 떠오르며 시원하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쿠쿠….

크게 한 방 먹어 버린 탓일까?

숲 전체를 크게 뒤엎으며 쭈욱 길을 내 버렸다. 대략 100미터가량은 날아간 듯싶었다.

어질어질한 머리가 이번 타격의 심각성을 전해 주는 가운데, 사일론은 한껏 움츠리며 완벽한 수비 자세를 취했다.

훌쩍 날아든 존슨의 연타가 매섭게 파고든 까닭이었다.

파파파팡….

좀 전의 경험 때문인지, 제대로 쳐 내기보단, 가드를 한다는 개념으로 양팔을 전면에 굳건히 세웠다. 시야가 흔들리고 있는 탓에, 섬세한 흘리기가 무리이기도 했다.

그러며 갑작스러운 반전의 이유를 재차 분석해 나갔다.

머릿속으로 좀 전, 그리고 앞의 상황까지 수없이 반복 재생하길 한참,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특수 능력이구나!’

그것도 보통 특별한 게 아니었다.

‘시간 계열… 으음!’

여러모로 골치 아픈 능력임을 깨달았다.

존슨은 가드 너머로 변화하는 사일론의 표정을 보며, 그에게 자신의 신규 스킬을 들켰다는 느낌을 받았다.

‘벌써 알아챘다고?’

놀랍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지금 이 우위를 놓치지 않고자 쉼 없이 몰아치며 손발을 내질렀다.

빠바바바바박….

존슨의 신규 스킬, 그건 사일론의 예측처럼 ‘시간’ 계열이 맞았다.

데스워치!

과거, 그의 손으로 직접 최후를 선사했던 지인의 능력, 그중 일부가 그에게로 넘어온 것이다.

짐작하건대 신물에 담겨 있던 데스워치의 기운이, 그를 살리는 과정에서 일부 전이된 게 아닐까 싶었다.

[스킬 : 페스트 맨(Past Man)]

데스워치의 스킬인 ‘페스트 푸드(Past Pood)’의 하위 버전으로서, 원본처럼 주변의 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 오직 시전자 본인에게만 발휘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능력은 이러했다.

[단일 회귀]

무슨 판타지 소설처럼 실제 시간을 되돌리는 건 아니었다.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 반 호흡도 안 되는 미묘한 시간, 존슨의 몸짓을 뒤로 되돌리는 것으로, 그로 인해 평범한 내지르기도 분할 공격처럼 나뉘니, 타이밍에 혼선이 빚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 같은 오류가 사일론의 반격기를 엇나가게 한 것이고, 역으로 반격의 반격으로써 찐한 카운터로 돌아오게 만든 거였다.

존슨은 냉정히 상황을 판단했다.

‘정면 대결은 내가 반수가량 밀려.’

하지만 그에게도 스킬다운 스킬이 생성되었고, 이를 활용한다면?

‘반수 정도 우위를 잡을 수 있겠네.’

말 그대로 상황 역전의 순간이었다.

사실, 신규 스킬은 아낄 수 있다면 최대한 아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분신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주고 싶진 않았지만.’

이미 앞서 다섯 마족의 분신을 홀로 상대하며 그의 정보 상당수가 넘어갔을 터, 거기서 새롭게 변화한 그의 정보마저 바로 업데이트되게 생겼으니, 지금 이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일론은 뭔가를 아껴 가며 상대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죽어나게 생겼는데, 아끼다 똥 되지!’

아직까진 횟수도 제한적이고 연습량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워낙 특수한 스킬이다 보니 제대로 먹힌 듯싶었다.

다음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정면으로 이겨 낼 수 있도록 고행을 거듭해서 성장하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아직 ‘정보’라는 카드가 남아 있지 않던가. 조금씩 흐름이 넘어오고 있는 만큼, 잘하면 정보 카드는 아낄 수 있을 듯싶었다.

‘이대로 승부를 가져온다!’

한 차례 우위를 잡고, 이를 고스란히 흐름으로 이끄는 그의 저돌적인 공격 앞에, 사일론의 뒷걸음질이 점차적으로 늘어 가기 시작했다.

* * *

저 멀리, 절대자들의 격돌 속에서 실로 말도 안 될 만큼 고위의 체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몽크!

마루도 그런 체술로 궁극을 도전하는 만큼, 단순한 관전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는 걸 느꼈다.

그게 어느 정도인고 하니,

‘어… 저거?’

‘설마?’

‘맙소사!’

함께하던 3인의 랭커가 일제히 숨을 죽이게 만들 정도였다.

이는 아주 특별한 이유 때문이었다.

우우우우우웅….

마루 주변의 대기가 크게 일렁이며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보라, 이는 랭커라 불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법한 특수 현상이었다.

‘대승급!’

일반적인 승급이 아닌, 아주 특별한 승급 현상으로서, 이는 모든 헌터들이 바라는 궁극의 영역과 닿아 있었다.

랭커!

주변의 대기가 크게 일렁이며, 곳곳에 퍼져 있던 기운들이 점차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루를 중심으로 빙빙 돌면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데, 3인의 랭커들은 조용히 숨죽이며 주변 공간의 차단에 들어갔다.

레오 역시 역할을 부여받으며, 사주 경계에 투입되었다.

외부에서 발생한 대승급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재 이곳은 마굴 내부, 그것도 무려 가장 위험하다는 심처가 아니던가.

저 강대한 기운의 파동은 주변 몬스터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할 터, 자칫 마루의 대승급에 변수가 발생하며, 승급 자체가 취소되거나 재수 없으면 아예 폐인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실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왜 하필 이 순간에 대승급인가도 싶기도 했다. 대부분은 그런 기미가 보일 경우, 따로 안전한 장소를 찾아 폐관에 들어가며, 특수한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건 본인도 예상 못 한 것 같은데.’

‘이번 원정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한 건가?’

‘각성하고 겨우 1년 만에 대승급?’

일행들은 기겁할 만한 상황 속에서도 착실히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크르륵… 큭… 크흑!

쿠웅… 쿵… 쿠우우웅…….

심처 주변의 몬스터들이 하나둘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이건 뭐, 거의 몬스터 웨이브 수준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죽어나겠네.’

‘이번 일 끝나면, 정말 휴가 좀 써야겠다.’

이반나와 프링쿨스 그리고 토비, 그들 3인의 랭커는 한계를 느끼면서도, 애써 바닥난 포스를 박박 긁어모은 뒤, 다가올 전투를 대비했다.

* * *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득한 하이 레벨의 격전이었다. 그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나, 남다른 스탯으로 개발된 두뇌 덕분일까?

마루는 그 모든 상황들을 영상으로 담듯,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돌려 볼 수 있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장면들이 쉼 없이 반복되고, 새롭게 저장되는 장면들이 그 위로 겹쳐 드는 와중에, 수많은 장면들이 어지럽게 얽혀 들었다.

얼마만큼의 정보가 저장되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전장을 보고 있지 않았다. 가만히 눈을 반개한 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재생되는 영상들을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 반복 작업의 결과, 이해되지 않던 장면들이 하나둘, 그 해답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난해하기만 한 퍼즐을 앞에 두고, 이리저리 짜 맞추다 보니, 조금씩 전체 구도가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맞아! 거기서 팔을 흔든 건, 시선을 잡아 두는 동작이었어.’

‘보폭을 저렇게 쪼개는데도 간격을 저렇게 넓히다니.’

‘손 따로 발 따로, 모든 부위에 다른 의미를 심었구나.’

‘허… 손가락 하나하나 따로 놀아날 수도 있다고?’

존슨과 사일론의 격돌에선 별다른 힘의 파장이 발생되지 않았지만, 분명 그들의 내면은 아주 바쁘고 정신없이 기운을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대개, 이런 건 결코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종류이건만, 기이하게도 그 흐름들이 시야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저들이 격전 중 활용한 기운의 운용법이 이해되고 있었다.

여의주와 PP의 절묘한 콜라보로 인해, 현존하는 모든 헌터들 중 가장 많은 스킬을 알고 있으며, 그 섬세한 흐름까지도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그가 아니던가.

보이는 만큼 알게 되니, 이제는 아는 만큼 보이는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이즈음부터 주변 대기가 크게 요동을 치며, 그를 대승급의 현상 속으로 깊이 끌어들였고, 그렇게 벽 너머의 세계가 그를 초대했다.

* * *

현상과 환상의 경계!

PP의 알파 버전이라 불리던 미지의 세상.

“호….”

찻잔을 입에 가져가던 실버 박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지러이 흔들리며 창공과 쉼 없이 요동치는 대기가 오랜 시간 기다려 왔던 시간이 왔음을 알려 줬다.

“…손님이 오겠군.”

그리 중얼거리며 새 찻잎과 찻잔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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