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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반인반마!

#23. 반인반마!

당장 육감은 상대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간혹 기이한 스킬들이 있어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마른침을 삼키며 상대를 살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버 박사의 정보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공 사일론, 별다른 스킬은 없을 텐데….’

저 웃음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홀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즈음, 한껏 폭소하던 사일론이 그 해답을 내어 줬다.

―이게 얼마 만의 패배인가. 크하하하하하! 비록 분신체라고는 하나,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놀아 봤다. 크하하하하하!

저 웃음의 이유?

그건 말 그대로, 순수하게 지금 이 상황이 즐거워서 웃는 거였다. 허리를 세워 앉은 그가 존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추 100년 만인 것 같군.

존슨은 사일론의 정보를 떠올렸다.

[마계 대공 사일론]

[마족과 인간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半人半魔)의 사생아.]

[무능(無能)의 마인!]

[강자존의 절대 법칙을 따르는 마계의 율법으로 인해, 일찌감치 처분되었어야 하는 나약한 존재.]

사일론에 관해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었다.

‘인간 노예였던 모친이 사실은 용사의 일행이었댔지.’

그 같은 이유로 약체인 반인반마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유년기를 버텨 낼 수 있었고, 그렇게 치열한 성장기를 거듭한 뒤, 성년기에 이르러선 당당히 한 개체의 마족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마족들은 헌터들의 스킬과 비슷하게 이능이라 불리는 것들을 타고나는데, 사일론은 아무 능력도 없이 태어난, 그야말로 약체 중의 최약체의 존재였다.

그로 인해 한때는 ‘무능의 마인’이라는 별명까지 따라다녔었다.

하지만 약한 건 몸뚱이지 정신이 아니었다.

용사 일행이자 전사였던 모친에게 전수받은 공부를 통해, 매 순간 한계에 도전하며 본인의 육신을 극한까지 단련해 냈고, 그렇게 최약체에서 최강의 존재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여타의 마족들과 달리, 유독 인간적으로 생긴 외형에는 그런 스토리가 숨겨져 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인생사를 되새기고 있을 때, 사일론이 말문을 건네 왔다.

―반인반마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군. 한… 500년? 하하! 내 앞에서 감히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있다니. 시간이 꽤 지나서 그런가? 예전처럼 불쾌하기보단, 오히려 좀 신선하군. 큭큭큭큭….

물론, 놀란 것 역시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겨우 되찾아 오던 흐름을 완전히 놓치면서, 승부가 완벽히 넘어가 버린 것이기도 했다.

―그 정보도 관찰자가 구한 거겠지. 보통이 아니군. 우리 세상을 엿보려면 보통 재주로는 어려울 텐데. 하하!

시원하게 웃어 젖힌 사일론을 묘하게 바라보던 존슨이 물었다.

“반인반마라면, 반은 인간이라는 소린데, 굳이 이렇게 인간들을 괴롭히는 일을 해야겠나?”

―큭… 관찰자도 전부를 아는 건 아니군.

그러며 나온 이야기가 뜻밖이었다.

―내 모친과 용사 파티는 인간들이 보낸 희생양이었다. 덕분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 그런 내게 인간 놈들이 곱게 보이겠나?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머님의 고향은 내 손으로 직접 짓이겨 줬지. 크하하하하하!

한껏 광소를 터트린 그가 엉덩일 털며 일어났다.

―뭐, 마족 놈들도 맘에 안 들긴 하지만, 거긴 그래도 내 고향이잖아. 게다가 맘에 안 들면 한 놈씩 잡아다가 줘 패면 되는 거고. 심심해서 패고, 짜증 나서 패고, 그냥 패고, 그렇게 작살 낸 놈들만, 사열 종대로 대미궁 두 바퀴다. 큭큭큭큭….

묘하게 귀에 붙는 내용이라는 건 뒤로하고, 존슨은 새삼스러운 얼굴로 사일론을 바라봤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고독이 칠흑 같은 어둠처럼 깃들어 있단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한참 떠들어 대던 사일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라면 이 상태에서 자폭이라도 해서, 네놈을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 놔야겠지만.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즐겁게 해 준 보답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 주마.

그러며 또 이야기했다.

―대신, 다음에 만날 땐 지금보다 더 강해져 있어야 할 거다.

이유인즉,

―지금 이대로라면, 제대로 저항도 못 해 보고 죽을 테니까.

그 단호한 이야기에 존슨이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더니, 이를 앞뒤로 까딱이며 말했다.

“네. 다음 패배자.”

―기분 나쁜 제스처군.

이내 사일론이 움직이고, 존슨이 화답하며, 격전의 막바지를 알리는 충돌이 이어졌다.

* * *

이반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들 경계 구역의 중심부를 바라봤다.

“저게… 저럴 수 있나? 원래 저런 건가?”

“그럴 리가요. 이건 특수한 상황 같습니다.”

떨떠름한 얼굴로 의문을 내비치던 이반나는 프링쿨스의 대답에 입맛을 다셨다. 그녀도 잘 아는 바였기에, 답을 바라면서 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혼잣말일 뿐이었다.

프링쿨스 역시 대답을 했다고 하기보단, 비슷하게 혼잣말이 대답처럼 나와 버린 것이었다.

이들을 이처럼 벙찌게 만든 특이 현상, 그건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으로 그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사내, 마루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우웅… 우웅… 우우우웅….

대승급 현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의 주변으로 강렬한 기운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강대한 파장에 이끌린 심처의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이반나를 비롯한 일행들이 구역별 경계를 서며 바리케이드를 세워 봤지만, 지쳐 버린 육신과 바닥난 포스의 한계일까?

결국, 하나둘 틈이 발생하며 몬스터들이 안쪽으로 파고들고야 마는데, 바로 거기서 변수가 발생했다.

강대한 기운의 마루를 중심으로 크게 소용돌이치는가 싶더니, 달려들던 몬스터들을 튕겨 내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그 같은 파문이 소용돌이 내부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마루의 편안한 표정으로 봐선, 그저 외부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인 듯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일행들은 당황했다.

“이거, 우리가 굳이 커버 칠 필요가 없었던 거 같은데요?”

레오의 이야기에 일행들이 일제히 도끼눈을 뜬 채 그를 노려봤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던 핵심을 굳이 집어냈으니, 그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 살벌한 눈빛에 합죽이가 된 레오는 조용히 구석으로 찌그러졌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승급 현상이네.”

이반나의 이야기에 프링쿨스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뒤로 빠져서 좀 쉬시죠.”

몬스터들은 마루 주변의 소용돌이에 정신이 팔려 있던 터라, 언제든 몸을 빼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저 기현상의 안전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으나, 당장은 그들의 상태가 바닥이다 보니,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리라는 판단에 내린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반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장 눈으로 보기에는 별 이상 없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잖아.”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바리케이드를 세워야 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고, 결국 일행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꾸준히 벽을 세우며, 몬스터와의 치열한 접전을 이어 가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우우우우우웅….

문득, 마루 주변의 대기가 크게 요동을 치는 걸 느꼈다. 이에 깜짝 놀라며 돌아볼 때였다.

쿠르르릉….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소용돌이가 폭발하는가 싶더니, 사방으로 강대한 파문이 퍼져 나갔다.

“우웃!”

화들짝 놀랄 정도로 강렬한 파문 속에서, 일행들의 얼굴 가득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피어나는 흙먼지 사이로 너무도 반가운 얼굴 하나가 눈을 뜬 것이다.

“푸후우우우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길게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가다듬는 사내, 마루가 차분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기도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성공했구나!’

대승급을 무사히 마쳤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고, 그와 동시에 일행들은 편안히 너부러질 수 있었다.

원래 승급 현상이 발생할 경우, 몸 상태의 대부분이 회복되기 마련이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거나 하지 않았다면, 기력 체력 등의 전력이 만전의 상태로 갖춰지는 것이다.

말인즉,

“고생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맡도록 하죠.”

마루의 지금 몸 상태는 베스트 중의 베스트라는 뜻이었다. 슬쩍 엔트라넷의 정보창을 확인해 본 결과,

[컨디션 : 9]

역시나 최상이었다.

“쉬고 계십시오.”

파아아앙….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그가 움직였다.

쿵… 쿠웅… 쿠우우웅….

진각을 거듭 밟으며 크게 권격을 내지르는데, 그 한 번의 찌르기에 걸리면, 고위종이건 뭐건 할 것 없이 일제히 무너져 내릴 뿐이었다.

이리저리 튕기고 구르는 등, 두 눈을 시원하게 만들 만큼 강렬한 임팩트는 없었다. 하지만 숨 막히는 무게감은 가득했다.

존슨과 사일론의 격전을 보며 깨우친 걸, 일부분이나마 응용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자신의 새로운 시야에 대한 감탄도 거듭했다.

‘이게, 랭커들이 보는 세계!’

그렇잖아도 예리한 감각을 지닌 그였다. ‘눈치코치’의 오감계 스킬을 완성한 덕분에, 초감각이라 할 만한 걸 얻어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뛰어넘고 있었다.

그게 어느 정도이고 하니, 굳이 감각계 스킬을 발동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발동시킨 것 이상으로 날 선 감각이 주변 정보를 세세히 물어다 줬다.

감각이 예리하다는 건, 그만큼 주변 상황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는 것이고, 많은 걸 ‘본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했다.

이는 즉 정보였고, 그렇게 정보에 통달한다는 건, 상황을 그의 입맛대로 조리할 수 있는 설계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남다른 감각으로 그려 낸 그의 설계도가 펼쳐졌다.

쿵… 뻐어억….

진각과 함께 뻗어 내는 일격이 전방의 방해물을 걷어 내는데, 놀랍게도 놈이 나자빠지는 방향이 다른 몬스터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절묘하게 얽히며 나뒹구는데,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는 뜻밖의 연쇄 작용이 발생하며, 언뜻 난장판처럼 보이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사실, 이는 마루가 정확히 상상하고 그려 냈던 구도 그대로였다.

좀 전의 공격으로 저 방향의 진입 루트에 굴곡을 ‘만든’ 것이다. 반 호흡? 어쩌면 한 호흡 가량까지, 저쪽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는 주변의 배치도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만들 수 있는 연쇄 작용으로서, 그는 이런 식으로 설계도를 그려 내길 반복했다.

그 덕분에 치열한 격전이 펼쳐져야 할 전장임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적절한 여유를 챙겨 가며 주변의 몬스터들을 휩쓸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짓뭉갰을까?

문득, 주변 풍경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아직도 몬스터들은 가득했지만, 어느새 뒷걸음질을 치는 놈들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종래에는 걸음아 나 살리라며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루는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주변을 살피고 확인한 뒤, 길게 호흡을 늘어트리며 두 주먹을 내려놨다.

“퓌휴우우우우~!”

놀라운 건 그렇게 치열했던 격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몰골은 너무도 단정하다는 점이었다.

그림자 사슬이 만들어 낸 복장이니만큼, 흐트러짐이 없는 거야 당연할지도 모르나, 그렇다 하더라도 핏물 하나 묻어 있지 않은 모양새란, 그저 감탄만 나오게 만들 뿐이었다.

잠시 호흡을 정리한 마루가 일행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일행들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갑자기 시작된 대승급부터해서, 뜬금없는 몬스터 웨이브에, 소용돌이, 그리고 눈앞에서 펼쳐진 말도 안 되는 1인 액션까지.

“와… 씨,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이반나가 결국 참지 못한 듯, 그리 묻고야 마는데, 이에 마루가 어깨를 으쓱여 보이더니,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몸에 좋은 공부가 있는데, 한번 배워 볼 생각 없습니까?”

너무도 뜬금없는 흐름이었고, 이에 이반나가 멍하니 그를 보다가 물었다.

“어째, 도를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돌은 좀 압니다. 어쨌든 약 파는 거 아닙니다.”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갑자기 웬 공부?”

이에 마루가 일행들을 쭈욱 돌아보며 말했다.

“상태들이 전부 메롱 해서, 쌈짓돈이라도 좀 나눠 드려야겠다 싶더라구요.”

“쌈짓돈?”

일행들이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릴 때, 마루의 폭탄 발언이 투척됐다.

“실버 박사의 유산이요.”

한바탕 폭풍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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