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74화 (174/325)

#24. 전수.

#24. 전수.

대격변이 시작됐다.

저 마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드는 강대한 마기가 그 증거였다.

마치, 그 흐름에 떠밀리듯, 마수지대 외곽의 몬스터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실질적인 이유는 확장되는 마기를 쫓아, 경계 너머로 발을 들인다고 보는 게 옳았다.

실질적인 대격변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시작점을 확인하는 건 가능했다.

확장되는 범위를 쫓아 우르르 밀려 나오기 시작하는 몬스터들을 보며, 진영마다 준비된 사수들의 총격이 시작됐다.

타타타타타탕….

타타탕….

대격변의 초기는 언제나 그러하듯, 총화기의 요란한 총성으로 포문을 열고는 했다.

굳이 총기 계열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총을 쏠 줄만 알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일단 자리를 잡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그렇게 요란한 총성이 한참 이어지는 가운데, 점차적으로 몬스터들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오래지 않아 총성이 줄어들며 타격성이 우위를 점하는 시간이 찾아든다.

“죽여 버려!”

“아주, 작살을 내 주마!”

“우아아아아아!”

“This is Sparta!”

본격적으로 헌터와 몬스터들의 격돌이 시작된 것이다.

이즈음부터 총기를 사용하는 건, 대부분이 총기 계열 각성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주된 목표는 1선의 접전지가 아닌, 2선 너머에 있었다.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밀려 나오고 있었고, 그런 만큼 저 너머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괴수들이 그들의 표적이었다.

“숲에서 나오는 놈들만 조져!”

“방향만 잘 잡으라고! 대충 쏴도 맞잖아.”

“이렇게 원 없이 탄환 소비해 보는 게 얼마 만이냐.”

“공짜니까. 맘 놓고 갈겨!”

“조져 버려!”

그러는 한편, 1선의 헌터들을 지원하는 사격 역시 놓치지 않았다. 난전이다 보니, 제대로 된 지원을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상황이 허락하는 한 틈틈이 1선도 체크하는 것이다.

“조준 잘해라. 팀 킬 하면 족 되니까.”

“자신 없으면, 후방 사격이나 해!”

“총기 계열 전용 각성자 아니면, 지원 사격 자제해!”

“아직 여유 있어! 여유 있어! 욕심부리지 마!”

다행이라 한다면 대격변은 이제 막 시작됐고, 그런 만큼 아직까진 문제 될 만한 몬스터들이 나오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개, 2~3차 웨이브 전까지는 마수지대 내부의 약체들이 튀어나오고, 그 이후부터 점차적으로 수준이나 퀄리티가 올라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격변 발생 지점에 따라, 초기 등급의 구분이 나뉘는데,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곳 산타카타리나는 마족의 유무와 무관하게, 최고 등급을 점칠 수 있는 장소였다.

그 때문에 초반부터 제법 사나운 몬스터들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대격변이란 상황에 어울리게 모여든 헌터들도 보통이 아닌지라, 별다른 피해 없이 1차와 2차 웨이브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3차 웨이브부터는 슬슬 피해가 나오기 시작했고, 4차 웨이브 즈음에는 사망자가 속출하더니, 5차 웨이브가 들이칠 때부터는 전장 가득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끄아아악!”

“빌어먹을! 오우거. 벌써 오우거나 튀어나왔어.”

“젠장! 이럴 땐, 상급계가 움직여야지.”

“일단 버티기 들어가.”

슬슬 변수가 늘어 가는 가운데, 어찌어찌 잘 버텨 내며 5차 웨이브까지 막아 낼 수 있었다.

이선희가 도착한 건 바로 그즈음이었다.

다가올 6차 웨이브를 대비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전장에,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 날아온 지원군들이 도착한 것이다.

대격변의 소식이 전해지고 바로 준비하며 움직였지만, 워낙 먼 거리였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던전 물품을 통한 신기술로 인해, 비행 속도가 더해져서 5차 웨이브 정도였지, 그게 아니었다면 최종 전면전이 펼쳐질 즈음에나 도착했을지도 몰랐다.

‘엄청나군.’

다행히 휴식 시간이었던 터라, 체계 전파 및 진영 배치 등을 차분히 전달받으며 전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웨이브 중에 도착했더라면?

이런저런 생각할 것 없이 당장 현장에 투입되었을 터였다. 그럴 경우 대부분 기존 체제의 하위 그룹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요원들이 찢어지는 건 기본이었고, 자연히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을 터, 일행의 리더 격인 이선희는 내심 안도하며 웨이브 현장을 바라봤다.

‘진짜 대격변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 정도라니. 과연, 산타카타리나인가.’

한국 측 헌터들의 등장으로 인해, 해외에서 활동 중이던 한국계 헌터들의 상당수가 그들 밑으로 편입되었다.

따로 길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타국이나 단체에 소속돼서 고기 방패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은 탓에, 바삐 한국 측 진영으로 찾아왔고, 단숨에 규모가 배 이상 부풀어 있었다.

사실, 이선희가 실질적으로 하는 건 얼마 없었다.

그저 적당히 폼 잡고 서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국 측 헌터들의 위엄을 살려 줄 수 있었다.

랭커!

그들이 지닌 존재감만 분명히 보여 주면 되는 것이다.

갓 승급한 랭커라고는 하나, 그마저도 없는 국가들이 상당했다. 그런 만큼 존재만으로도 큰 의미가 됐다.

한국 측 헌터들은 좀 더 많은 일을 요구하는 눈치였지만, 애써 이를 무시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일에 치여서 여기 온 건데, 여기서도 일하라고?’

그녀가 이곳에서 할 일은 대격변에 뛰어들어 몬스터들과 한바탕 시원하게 치고받는 거, 딱 거기까지였다.

‘슬슬 시작하려나?’

상황을 전달받은 만큼, 곧 다음 웨이브가 발생할 거라 여기며 기세를 가다듬고 준비하는데, 이게 웬일?

“왜 아직도 안 나와?”

“뭐지?”

“갑자기 무슨 일이야?”

“설마, 끝난 건가?”

“헛소리! 데일 협회장이 움직인 거야. 겨우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잖아.”

모두가 당혹감에 물들어 가는 와중에,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6차 웨이브는 나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 * *

승부는 났다.

―다음을 기대하지!

사일론은 그 말을 남기며 먼지가 되어 흩어졌고,

“다신 보지 말자!”

존슨은 가운뎃손가락으로 화답해 줬다.

“푸후우우우….”

지쳐 너부러진 채 잠시간 숨을 고르고 있노라니, 저 멀리서 달려오는 일행들이 보였다.

이에 존슨이 인상을 구기며 일어난 뒤, 손을 뻗어 접근을 차단했다. 일행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멈춰 서는데, 그 순간 존슨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틀더니, 크게 포효했다.

“으아아아아아―~~~…”

그 순간 천둥성이 터져 나오며, 그의 주변이 크게 폭발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란 일행들이 급히 뒷걸음질을 치는 와중에, 점차적으로 천둥성이 줄어들고, 강대한 파장도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폭풍의 중심지를 바라봤다.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고 그 가운데에 지친 듯 너부러진 존슨을 볼 수 있었다.

이반나가 급히 달려가고, 나머지 일행들도 뒤따르는 가운데, 존슨이 누운 상태로 손을 흔들었다.

“왔어?”

그리 말하며 웃는 모습에 이반나가 울상이 돼선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존슨의 하얗게 질린 안색 때문에 걱정이 된 것인데, 아무래도 좀 전까지 상대하던 존재의 특별함으로 인해, 이래저래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바로 전까지만 하더라도 존슨이 죽었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그녀의 걱정이 부푸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모습에 존슨이 애써 힘을 내며 허리를 세워 앉았다.

“몸은 멀쩡해. 그냥… 좀 지쳐서 그럴 뿐이야.”

의심 어린 이반나의 눈빛에 존슨이 애써 이두박근을 띄우며 말했다.

“믿어도 돼. 그냥 잠깐, 탈진 현상이 온 것뿐이야.”

기력이 쭉 빠져서 생긴 것으로, 이는 사일론과의 전투 후폭풍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둘의 전투는 겉으로 보기에는 실로 조용하기 짝이 없어서, 언뜻 일반인들의 격투기를 보는 것 같단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폭풍을 각자 내면 깊숙이 때려 박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폭풍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새로운 폭탄을 준비하며, 안팎으로 치열한 생존 격돌의 연속이었다.

승부는 끝났지만 사일론이 심어 놓은 태풍이 뱃속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

좀 전의 포효는 이를 정제한 뒤 내보내는 과정이었다.

“빨리 처리하면 처리할수록 후유증이 줄어드니까.”

한숨만 돌리고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일행들의 접근에 할 수 없이 바로 토해 낸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 일행들은 주변을 쭈욱 돌아봤다.

좀 전, 존슨의 포효로 인해 주변 일대가 크게 뒤집혔는데, 그 범위가 족히 수백 미터는 되어 보였다.

‘어째, 조용하다 싶었더니.’

‘허… 이런 걸 뱃속에 담아 두고 있었다니.’

‘소름 끼치는군!’

등허리가 쭈뼛 설 만큼 어마어마한 괴력이 그들 내면에서 폭풍우 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그와 동시에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천외천!

정점이라 여겼던 랭커들마저 발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존재들의 전투, 괴력,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포스 컨트롤까지.

그 힘의 여파를 쭈욱 돌아보며, 일행들은 일제히 마른침만 꼴깍댔다.

침묵이 깊어 가는 와중에, 마루가 존슨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몸에 좋은 거 있는데. 함 배워 보실라우?”

“…카마수트라냐?”

빠악!

이반나의 핵꿀밤이 정수리를 폭격했다.

* * *

마루는 실버 박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중에서 특히 많은 대화를 나눈 건, 아무래도 실버 박사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헌터 육성 프로그램’에 관한 부분이었다.

[부디, 자네가 깨달은 걸 세상에 널리 알려 주게.]

그러며 또 이야기했다.

[자네 국가에선 그런 말이 있다고 하더군.]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해 주게나.]

그 같은 이유로 대승급이 끝난 뒤,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을 때, 이반나를 비롯한 일행들에게 ‘연공법’을 전수했다.

이미 레베카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준비 중이었던 터라, 가르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직 분류 작업이 끝난 건 아니지만.’

일반인도 익힐 수 있는 연공법을 고르고, 그에 맞는 육성 루트까지, 이래저래 고민거리가 많았기에, 당장은 시작하지 못하고 있긴 했다.

그래도 기초 기반 작업에 관한 부분은 몇 가지 정해 놓은 게 있었고, 그걸 먼저 전파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활력의 춤이었다.

‘회복에는 이게 갑이지.’

일행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라 여긴 점도 컸다.

“허… 이게 실버 박사의 유산이란 말이지.”

존슨은 새삼 감탄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초월의 벽을 넘으며 남다른 감각을 얻은 덕분일까?

그는 마루가 알려 주는 동작을 단번에 이해하며 따라 했고, 덕분에 활력의 춤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었다.

연공법의 효능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중이었는데, 다른 무엇보다 서늘하던 내부가 따뜻하니 데워지는 감각이 좋았다.

일행들 중 가장 늦게 시작했건만, 가장 빨리 효능을 보고 있었다.

기운 자체의 회복보단, 몸 상태의 회복에 집중되어 있던 터라, 하얗게 질렸던 안색도 빠르게 제 색을 찾아갔다.

“이런 게 얼마나 있는 거냐?”

마루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관련 콘텐츠를 만들 정도?”

“호….”

놀라운 이야기였다.

회복 속도도 느리고 기운은 제대로 충전시키지도 못한다. 신체적인 부분에 대한 영향력만 클 뿐이었고, 그런 만큼 분명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그 한 가지 장점이 인상적이었다.

‘이건, 각성자가 아니라 비각성자를 위한 거야.’

포스와 같은 기운에 중점을 두기보단, 육체적인 관점에 집중한다는 게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일반인도 얼마든지 익힐 수 있고, 충분한 효과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사의 유산답네.’

게다가 이런 게 한둘이 아니라고 했으니, 개중에 전문적으로 포스와 연관된 게 없을 리도 없었다.

실버 박사를 생각해 봤을 때, 분명 안배되어 있을 거라 여겼다. 이런 존슨의 흥미 가득한 눈빛에 마루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중에 영상물 올리면, 추천, 구독, 좋아요! 꾸욱! OK?”

이에 실소를 흘린 존슨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정말 카마수트라 같은 건 없냐?”

빠악!

이반나의 시원한 내려찍기가 존슨의 정수리에 꽂히면서, 마귀는 퇴치되었다.

그 비참한 모습을 보며 마루는 생각했다.

‘있긴 있는데….’

이계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던 것인데, 웃기는 건 이는 PP가 아닌 알파 버전의 세상 속, 실버 박사의 책장에서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한번 알아봐?’

존슨 때문인지 그도 살짝 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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