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75화 (175/325)

#25. 배후.

#25. 배후.

6차 웨이브가 진행되지 않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설마, 정말로 끝난 건가?”

“데일이 움직였는데?”

“2대 협회장의 권한까지 내세웠잖아?”

“…노망이 들었나?”

“골 때리네!”

시간이 제법 흐르고, 헌터들의 당혹감이 커져 가는 가운데, 점차적으로 긴장감이 풀어지려는 기색과 함께, 곳곳에서 흐트러진 모습들이 하나둘 비치기 시작했다.

데일은 그런 흐름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에 대한 유언비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사실, 그 역시 조금은 당혹스러운 감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격변을 의심하진 않았다.

‘6차 웨이브는 온다.’

무려, 존슨이 보낸 메시지였다. 대영웅으로 불리는 형제가 헛소리를 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신의 수하들에게 긴장감을 늦추지 말라 전했다. 그 본인이야 몸을 숨긴 채, 조용히 활약하고 있다지만, 수하들의 경우에는 당당히 진영마다 발을 걸치고 있었고, 덕분에 즉흥적인 영향력 역시 발휘 가능했다.

그렇게 적당히 흐트러지고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6차 웨이브가 시작됐다.

지난 기다림은 이를 위한 거였다는 듯, 마치 서너 차례의 웨이브가 한 번에 뭉쳐서 밀려들 듯, 거대한 해일이 되어 밀려들고 있었다.

“젠장! 갑자기 뭐야?”

“사격! 사격!”

“진형 무너트리지 마!”

“버텨! 버텨! 버텨!”

다급한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가운데, 잠시 멈춰 있던 웨이브가 다시금 시작되고, 한층 치열한 격돌이 이어졌다.

‘왔구나!’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선희는 기다렸다는 전방으로 뛰어들며 한껏 존재감을 발산했다.

“얼음여제?”

“오오! 한국의 랭커가 움직인다.”

“드디어 랭커가 뛰는 건가.”

“간다! 할 수 있다.”

여태껏 랭커를 비롯한 최상위급 헌터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는 다가올 진짜 대격변을 대비하며, 각자 힘을 비축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마족의 등장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 하는데, 뛰어난 마족들의 경우 홀로 랭커 2~3인을 상대하기도 했고, 때때로 그들의 등장으로 인해, 고위종의 격이 한층 성장하는 일도 발생하는 터라, 극 후반을 바라보며 힘을 비축하는 거였다.

그런 와중에 뜬금없이 이선희가 움직여 버렸으니, 기존 랭커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당혹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초짜라서 그런가?”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닌데, 거참….”

“저러다간 후반부에 기력이 쪽 빠질 텐데.”

“으음… 어쩐다?”

고민하는 와중에 몇몇 랭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수 상황이니까. 적당히 응수해야겠지.”

“이 정도 웨이브라면,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겠네.”

“후… 일단 급한 불 먼저 끄자고.”

현장에는 이선희를 제외하고 10명의 랭커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중 절반가량이 현장에 투입됐다.

과연, 랭커들의 지원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그 거대한 해일이 일순간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방파제에 부딪친 파도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랭커들의 투입이 분명 큰 힘이 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피해가 뒤따랐는데, 한 번에 대량 웨이브가 뭉쳐서 밀려든 여파가 컸다.

어마어마한 피해가 나와 버렸다.

“시기적절하니 랭커들이 개입해서 다행이네.”

“저들 아니었으면, 아주 작살날 뻔했어.”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은 지켰네.”

“다음 웨이브 대비해서 한 라인 더 당길 준비도 해야겠는데.”

대다수가 지쳐 너부러진 가운데, 헌터들 사이사이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6차 웨이브일 것이건만, 피해가 너무 크단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지친 와중에도 다가올 7차 웨이브를 대비하는데, 당혹스럽게도 또다시 장시간 대기가 이어졌고, 자리를 지키던 헌터들은 연신 마른침만 삼켜야만 했다.

“이거, 설마… 또?”

“빌어먹을! 총알 좀 잔뜩 준비해 놔.”

“역대 최악일 거라더니, 이런 식으로 초반부터 피를 말리네.”

다음 웨이브 역시 6차 못지않을 거란 생각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숨 막히는 대기시간이 이어졌다.

* * *

뜻밖의 연공법으로 인해 급한 불은 껐다고는 하나, 그래도 일행 모두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일제히 복귀를 서둘렀다.

사일론의 등장으로 인해 이레귤러에 문제가 생기면서, 대격변도 함께 중단된 건 아닌가도 싶었지만, 오래지 않아 이레귤러가 제 형태를 갖춰 가는 걸 확인했고, 대격변이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다행이라 한다면 사일론이 늘려 놨던 크기가 다시 좁혀지면서, 기존 형태로 돌아갔다는 점이었다.

대격변의 등급이 상승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기존 수준도 역대 최악 수준이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인 건 분명했다.

그렇게 바삐 이동하는 중간중간, 존슨의 시선이 레오를 살피고는 했는데, 이는 친우이자 형제인 데일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실버 박사의 유산!

마루의 등장으로 데일의 오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듯, 레오가 쓰게 웃어 버렸다.

‘스승님의 연구가 의미 없을 리가.’

레오는 일단 그렇게 생각하며, 차후 스승과 의논을 해 봐야 한다고 여겼다.

사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스승은 환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일부 들었다. 이게 참, 웃기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그의 스승이 실버 박사의 유산에 얽매이게 된 이유가 좀 황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각성 우월주의자다.]

고로 일반인들이 싫다.

하지만 세상은 비각성자가 더 많이 살아 숨 쉬며,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각성자를 늘리면 될 일.]

황당하게도 그 방법이 바로 실버 박사의 유산이었다.

잠시 생각해 본 결과, 스승이 정말로 반길 것 같아서 당혹스럽기만 할 따름이었다.

오랜 연구가 레오를 만나 성과를 이뤘고, 머지않아 이를 토대로 자료를 정리한 뒤, 세상에 발표하는 게 예정되어 있기는 했다.

과연, 그의 스승이 마루를 향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좀 궁금하기도 하네.’

기대감과 불안감이 묘하게 뒤섞인 눈빛으로, 꾸준히 마루를 관찰하며 복귀를 서둘렀다.

* * *

이동하는 내내 마루는 실버 박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들의 대화 중 상당수는 PP와 관련된 내용이 많았었는데, 그중 하나, 유독 마루를 놀랍게 했던 게 있었다.

“3차 전직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네.”

이유를 물으니, 그 내용이 놀라웠다.

“현상과 환상의 경계가 일부 허물어지거든.”

“…예?”

“자네가 만약 각성자라면, 게임 내에서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네. 스펙도 현실에 맞춰서 조정할 수 있게 되지. 게이머 입장에서야 다운그레이드겠지만, 헌터 입장에선 이야기가 또 달라지지.”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되면… 꿀꺽!”

“일단, 기본적으로 생존율이 확 올라가겠지.”

기존에도 PP를 통해 헌터의 생존율이 높아지기는 했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몬스터들의 정보를 토대로, 게임 내에서 모의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완벽하기 어려웠는데, 게임 속 캐릭터와 현실 속 본인의 스킬이나 스펙 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발생하는 탓에, 똑같은 조건을 설정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이유로 캐릭터를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결국 PP로 뽑아낼 수 있는 패턴 정의 정도가 최선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스킬이나 스펙을 게임 속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면?

“모의 훈련이지만, 실전이나 다를 게 없어지는 거지.”

새삼 PP라는 게임에 대한 놀라움이 커졌다. 정말 여러모로 세상을 위해 만들어졌단 생각이 들었고, 이를 개발한 실버 박사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커져 가는 순간이었다.

“허허! 이거 또, 내 추종자를 하나 만들어 버렸나.”

민망하니 웃으며 농을 던지는데, 그 모습마저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확실히 그에게 넘어가 버린 건 확실했다.

그 와중에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면?

“3차 전직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아시나요?”

실버 박사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

첫째로는?

“시스템이 완전하지 못해.”

그 때문에 헌터라고 해서 무조건 스펙 보정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2차 전직을 하면, 각자 신앙을 선택하지?”

“…설마?”

“신앙 스펙이 현실 보정 시스템과 연동된다네.”

마루는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이름 없는 신!

오염된 여의주의 실제 주인으로 여겨지는 의문의 존재.

그로 인해 이어진 의문 하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신앙이라는 거… 진짜입니까?”

실버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으로 만든 게임의 신앙이 아니라네. 전부 다른 어딘가의 세상에 존재하는 신들의 신명을 따온 거지.”

그런 이유로 스펙 보정 시스템은 그들 신들의 손길을 거쳐서 완성되는 거였고, 그 때문에 신앙도가 보정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으음….”

전문적인 신관 계열 유저가 아니고서야, 신앙심을 높이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헌터 중에서 이런 기능을 확인한 이들이 제법 될 터, 여전히 의문은 진행 중이었다.

거기서 두 번째 이유가 나왔다.

“정보 통제가 있는 거겠지.”

실버 박사는 아련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정 박사의 결과물이 짓뭉개졌던 것처럼, 몇몇 골 때리는 놈들이 정보 조작을 하고 있을 게야. 쯧! 그딴 짓거리가 존슨을 밖으로 내몬 것인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을 보며, 마루는 그게 가장 큰 이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밝혀지게 될걸. 정 박사 때와는 달리 그럴 수밖에 없는 흐름이니까. 흐흐! 그렇게 되면 고놈들 골 좀 때릴 거야.”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실버 박사가 마루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자네가 3차 전직을 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솔직히 규격 외의 존재가 되어 버려서, 나도 짐작을 할 수가 없구만. 그래서 더 기대되고 흥미로워.”

현실 스펙을 게임에서 사용한다?

사실, 마루 입장에선 그리 메리트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이미 그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란 건, 게임의 가능성에 대한 감탄이었고, 그로 인해 발생할 파장에 대한 충격이었다.

마루 스스로도 3차 전직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호기심이 커지는 가운데, 실버 박사가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쩌면 실버 박사와의 대화 중,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부분이었다.

“자네는 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금 뜬금없는 내용이었지만, 앞서 신앙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터라, 자연스레 이어지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루를 보며 박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신들은 크게 네 종류로 나뉜다네.”

천신, 선신, 악신, 마신!

그 차이가 뭘까 궁금해서 물으니,

“천신은 정의를 집행하지. 선신은 선행을 좋아하고, 악신은 장난기가 심하다고 해야 하나? 마신은 패도적이지.”

그러면서 또 이야기했다.

“천신이 정의롭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자비롭진 않아. 장발장은 빵 하나를 훔쳐서 감옥에 갇혔지만, 천신에게 걸렸다면 바로 사형일걸.”

하지만 선신이라면?

“어떤 악인이건 뉘우치는 기색이 있다면, 일단 기회를 주고 보는 분이시지.”

그리고 악신은?

“새하얀 캔버스를 찢어 버리듯, 그들은 타락시키는 걸 좋아해.”

마지막으로 마신은?

“그들은 무언가를 발아래 놓는 걸 즐겨 하는 존재들이지. 타고난 정복자라서, 다른 신들과의 다툼이 가장 잦은 편이야.”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실버 박사가 물었다.

“그럼, 여기서 질문. 현재 지구를 건드리는 건 누굴까?”

대격변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님은 이젠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신적 존재가 끼어있을 줄이야.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단 생각이 들며, 마루는 가장 그럴듯한 보기를 골랐다.

“…마신… 입니까?”

“땡!”

실버 박사가 히쭉 웃으며 말했다.

“보기에만 충실하면 안 되지.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야.”

이게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마루가 그에 대한 존경심이 살짝 흐트러지는 걸 느끼는 가운데, 박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신이 패도적이다 보니, 여러 신들과의 다툼이 잦은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세상을 침공하려 들 정도로 막장은 아니야.”

이에 마루가 물었다.

“그러면 악신입니까?”

“말했잖아. 보기에만 충실하지 말라고.”

“그렇단 말은… 천신이나 선신도 아니라는 거네요?”

“보기에 충실해도 그건 아니지.”

실버 박사가 히쭉 웃으며 말했다.

“놀리는 건 적당히 하고, 슬슬 답을 말해 주지.”

농락당했단 생각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때론 악에 마가 깃들고, 마에 악이 스미는 순간이 있다네.”

“아….”

“악마신이라 표현되는 존재들. 그들은 정복이나 지배가 아닌 파괴를 즐기는 궁극의 돌연변이 변태들이지.”

현재 지구를 침공하는 실질적 배후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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