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76화 (176/325)

#1. 널리 세상을….

#1. 널리 세상을….

악마신!

악과 마가 결합되어 탄생했다는 특수한 돌연변이 같은 신으로서, 대다수의 정복 전쟁은 그들로 인해 발생한다고 했다.

“반대로 정의에 선함이 깃드는 경우도 있긴 하지.”

그 경우, 극단적이던 처벌 수위에 융통성이 생긴다는 것인데, 이 역시 순서에 따라 나뉘고는 했다.

선신에게 정의라는 기준점이 생길 경우, 개과천선을 하더라도 합당한 징벌이 떨어지는 등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악마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마에 악이 스미면, 정복 전쟁이 활성화되지.”

하지만 악에 마가 깃들면?

“파괴신이 탄생하는 거야.”

과연, 지구를 침략하는 건 어떤 종류일까?

“거기까진 나도 잘 모른다네. 하지만 중요한 건 저항하고 또 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고, 그 때문에 헌터들이 탄생한 것이지.”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신들이 존재하는데, 크게 분류되는 게 네 종류고, 그들이 대표적인 주류이기에 이들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거라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일종의 락 같은 게 걸려 있어서. 이 이상은 알려 줄 수가 없다네.”

4대 신에 관해 언급한 건, 여러 세상에서 이미 퍼질 만큼 퍼진 정보다 보니 이는 큰 비밀은 아니었고, 그 때문에 부담 없이 알려 준 것이었다.

“PP의 도서관만 잘 이용해도, 이런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네. 쯧! 게임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상하면 뭐해, 치고받으면서 사냥터만 즐기려고 하지, 그 세심한 퀄리티는 신경도 쓰질 않으니.”

투덜거리는 실버 박사의 모습에 마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역시 꾸준히 도서관을 살피는 중이었지만, 관련 정보는 처음 들어 보기 때문인데, 그 기색을 읽은 실버 박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대외적인 정보 중에선 그래도 좀 상급이라서. 왕실이나 마탑의 상급 도서관을 이용해야 한다네. 크흠!”

안타깝게도 아직 마루는 중급까지만 오픈된 상태였다.

애초에 조건이 너무 황당했던 터라, 마루의 눈빛이 짜게 식었다.

그도 그럴게 상급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선, 거의 3차 전직에 맞먹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당장 사냥터 뛰기도 정신없는 대다수의 유저 중, 누가 도서관에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려 하겠는가.

하지만 실버 박사는 당당하기만 했다.

“뭐? 왜? 어쩌라고?”

왕국이나 마탑의 도서관을 들어간다는 건, 그곳에 대한 입성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니만큼,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며 배 째라는 태도를 내비칠 뿐이었다.

확실히 그는 유저라기보단, 게임 개발자의 입장이니만큼, 그런 세세한 퀄리티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이후로도 여러 이야기가 더 이어졌는데, 이는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커피 한 잔까지 비울 즈음에서야 마무리됐다.

“슬슬 밖으로 나갈 시간이네.”

더 많은 시간을 붙잡고 있는 건 시스템적인 한계라 어렵고, 지금부터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마루의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자리를 정리하는 그를 향해 마루가 물었다.

“다시 뵈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실버 박사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Money!”

“…예?”

“엔트라 스토어의 특수 상품에 이용권 판매 중일세. 많은 이용 바라네. 자네는 골드 환전이 가능하니까. 가격 좀 세게 불러도 되지?”

“…….”

떨떠름한 마루의 표정에 실버 박사가 한차례 웃음을 터트린 뒤, 몇 가지 조건을 더 추가했다.

“3차 전직 이후에만 이용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추가적으로 신앙심도 올려놓는 게 좋을 거네. 그만, 가 보시게나.”

실버 박사가 가볍게 등을 떠밀었고,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 * *

대격변의 경우 기본적으로 3단계에 걸쳐서 변화가 이뤄진다.

첫 번째, 그 시작점을 알리는 웨이브였다.

대격변의 규모만큼 마수지대 내의 몬스터들이 외부로 밀려 나오는 것인데, 이때는 기존 현실계 몬스터들의 등장이니만큼, 일단 마굴의 정보 조사만 철저하다면, 대응법도 제법 세부적으로 나오고는 했다.

안타깝게도 산타카타리나는 그런 경우에는 속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큰 마수지대는 외곽 정보를 수집하는 것만도 적잖은 시일이 걸리고, 게다가 수시로 영역 정보가 갱신되는 터라, 정보의 일치 여부가 반절로 뚝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저 깊은 심처로 넘어가면 고위종들의 영역 경계가 분명해, 오히려 정보 수집이 쉬웠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 이르는 길이 너무 험난했다.

그리고 두 번째, 웨이브에서 본격적인 대격변의 시작점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서, 바로 이 시점에서 몬스터들의 변이가 이뤄지고는 했다.

마족들의 등장과 함께, 몇몇 몬스터들이 갑작스러운 진화 및 변이를 거듭하는데, 이를 통해서 갑작스레 한 차원 높은 상위 개체가 등장하니, 놈들의 동족 간에 일종의 체계를 잡아 주며, 한층 까다로운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대개 이를 살피며 등장하는 마족의 숫자나 밀려들 최종 대격변 웨이브에 대한 견적을 내고는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마족과 그들이 이끄는 대격변 웨이브의 군세였다.

실지적인 최종 결전으로서, 이를 막아 내는 것으로써 대격변이 끝을 맺는 것이다.

과거의 경우엔 첫 번째인 기본 몬스터 웨이브에서 대개 전멸하는 일도 허다했지만, 지난 세월 꾸준히 성장해 온 헌터들의 전력 덕분일까?

“드디어 웨이브가 끝났네.”

“안심할 때가 아니야. 지금부터가 진짜니까.”

“그래도 변이 타이밍에는 좀 쉴 수 있잖아.”

“늘어질 시간이 어딨어. 이참에 정비해, 정비!”

기본 웨이브를 끝마치고 몬스터 변이 타이밍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건, 몬스터들이 일제히 뒷걸음질을 치며 마굴 속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이 타이밍을 노려서 역습을 하는 건 어떠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대개 이쯤 되면 헌터들의 진영 측도 기진맥진한 상황인 데다가, 변이 타이밍에 잘못 건드리면 ‘광폭화’ 모드로 넘어가는 탓에,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됐다.

광폭화는 짧은 순간 폭발적으로 잠재력을 폭주시키는 것으로, 몬스터들이 단체로 미쳐 날뛰는 터라, 특히 더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차라리 이 타이밍에 정비를 한 뒤, 차분히 다음 턴을 노리는 게 낫다는 거로 결론이 나온 것이다.

잠깐의 휴식 시간을 통해, 각자 숨 고르기를 하는 상황 속에서, 몇몇 헌터들이 앞 상황에 대한 의문들을 끄집어냈다.

“아니, 6차 웨이브는 그렇게 빡세더니, 7차 웨이브는 왜 그렇게 시시했던 거야?”

“그러게. 바짝 긴장했었는데, 괜히 힘 빠지게 하더라.”

“역대 최악이니 뭐니 하더니, 변수도 많네.”

“중간에 한번 빡세게 들이쳐서 그런지, 덕분에 이후로는 좀 여유가 있었어.”

“그래도 피해는 어마어마하지만.”

“…대격변이니까.”

“그렇지. 대격변이지.”

그들 이야기의 흐름에서 알 수 있듯, 앞서 6차와 7차 웨이브는 많은 의문만 안겨 줬는데, 사실 이는 저 깊은 마굴의 내부 사정을 모른다면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갑작스러운 변수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일론!

6차 웨이브 당시, 그 마계의 초강자가 등장했던 게 웨이브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인간과 달리, 몬스터들은 마기를 비롯하여 마족과 마계의 향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들이었다.

그 때문에 마계 대공의 출현이 마굴 전역에 영향을 끼친 것인데, 본체가 아닌 분신체이다 보니, 따로 몬스터들의 변이 현상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몬스터들의 등을 떠밀며 대규모 웨이브를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유독 6차 웨이브가 힘겨웠던 건 바로 그런 이유였고, 7차 웨이브가 허무했던 건, 이렇게 한차례 힘을 뺀 이후에 이어진 웨이브다 보니, 전체적으로 수준이 확 낮아진 까닭이었다.

이후로 8~9차 웨이브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다시금 조금씩 웨이브의 규모가 정상화됐고, 본격 대격변의 전조인 변이 현상에까지 이른 것이다.

놀랍게도 웨이브는 총 12차까지 이어졌는데, 역대 기록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였다.

“기존 기록 최고가 7차였지?”

“확실히 역대 최악이라 불릴 법하네.”

“다들 한가락 하는 놈들인데, 벌써 전력 절반이 아웃이야.”

“랭커들이 일찌감치 도와줘서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후우….”

그런 이유로 많은 헌터들의 뇌리 깊이 각인된 존재가 있었다.

“첫 스타트 끊었던 게, 얼음여제라고 했던가? 그 한국의 랭커.”

“다른 랭커들 눈치 때문에라도 섣불리 움직이기가 어려웠을 텐데. 크으~! 멋졌어. 게다가 얼굴도 예쁘더라.”

“몸매도, 오우야!”

“얼음 방벽 세울 때 지려 버렸잖아. 멜사님 현신하신 줄 알았다.”

“오늘부터 난 여왕님 팬이다!”

그저 스트레스 좀 풀어 보고자 확 뛰어든 것이건만, 뜻밖의 화제 몰이를 하며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쌓아 올리고 있었다.

랭커들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전체적인 균형이나 흐름으로 봤을 땐, 결국 그녀의 행동이 옳았던 터라, 이를 놓고 태클을 걸 수도 없었다.

데일은 이 뜻밖의 분위기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멀리 보이는 각 랭커들의 진영을 살폈다.

‘제대로 한 방씩 먹었군.’

내심 고소한 마음이 컸다. 차후 대격변의 후반을 목적으로 힘을 아낀다는 명문을 앞세우지만, 사실 지금 전력으로 봤을 땐, 적당히 한 팔 거들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래야 옳았다.

하나, 어느 시점부터 저들은 일종의 계급주의 같은 게 생겨나면서, 언제나 뒷짐을 지고 후방에서 너털웃음만 터트리는 요상한 흐름 같은 게 생겨 버렸다.

‘웃기는 놈들.’

그 존슨마저 언제나 최전선에 뛰어들며 최선을 다하고 있건만, 저들은 세월 네월 하며 방관만 하는 것이다.

‘제 놈들이 뭐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분명 각성 우월주의자였지만, 이는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나누는 기준일 뿐, 그들 각성자들 내부적으로 결코 신분이나 계급 등의 등급을 나누진 않았다.

때문에 저들의 행태가 더더욱 맘에 안 드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저 웃기지도 않는 태만으로 인해 수많은 각성자들이 희생됐다는 것 역시 맘에 들지 않았는데, 그 와중에 더더욱 짜증이 나는 건, 그 역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존슨과는 달리 그는 이리저리 얽매여 있는 게 많았고, 그 때문에 한 걸음 내디딜 때도 신중을 거듭해야만 하는 것이다.

“후우….”

한숨을 푸욱 내쉬는 그의 머릿속으로, 새삼 형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체, 언제쯤 올 생각이냐?’

형제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그리워지는 찰나, 마치 환청처럼 들려오는 외침이 있었다.

“브라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저 멀리 너무도 그립던 얼굴이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인디안 존슨!

그가 도착한 것이다.

“브라더!”

데일 역시 마주 외치며 달려갔고, 그들 의형제는 서로를 얼싸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 * *

마루는 한숨을 푹 내쉬며 대격변의 현장을 돌아봤다.

“후우….”

그야말로 피바다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 많은 피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격변의 중간 지점도 넘지 못했다는 게, 여러모로 입맛을 쓰게 만들었다.

나름 15년간 이런저런 경험치를 쌓아 왔지만, 이 정도로 처참한 현장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몬스터 웨이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저들 희생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무엇이 저들을 이곳으로 이끌었고, 또 저렇게 죽음을 불사하게 만들었을까?

1년 전만 하더라도, 저 많은 시체들 중 하나만 움직여도 벌벌 떨어야 했을 터, 주변 상황이나 분위기에 더해, 겨우 1년 남짓 만에 자신의 위치가 크게 달라졌다는 점까지, 이래저래 묘한 파문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최전선의 고통을 돌아보는 한편, 저 최후방의 비극도 눈에 담았다.

각성자들이 주를 이루는 전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각성자들의 역할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이곳에서 나름의 활약을 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방아쇠만 당기는 게 전부로, 전선의 후방에서 멀리 마굴을 향해 쉼 없이 총격을 쏟아붓는 것이다.

산타카타리나 같은 고위 마굴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에게 일반 탄환이 먹힐 리가 없었고,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뱀플!

비각성자의 필살기라 불리는 카드를 쉼 없이 들이키며, 스스로를 반각성 상태로 만든 상황에서, 특수탄을 쉼 없이 갈겨 대는 것이다.

그렇게 도핑을 해도 비각성자라는 한계로 인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그저 멀리 마굴을 나오는 몬스터들로 하여금, 아주 잠깐 시선을 뺏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겨우 그 정도 효과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컸다.

뱀플과 사념폐해의 후유증이 이중고로 덮쳐들며, 빠른 속도로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특히, 웨이브가 연달아 이어지는 탓에,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연달아 뱀플을 꽂아야 했고, 그로 인해서 빠른 속도로 미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저 최후방에는 마치 약이라도 한 것처럼, 반쯤 눈이 풀린 채 너부러져 있는 비각성자가 상당했다.

이들에 대한 처우가 실로 안타까웠다.

―우린 죽을 각오로 뛰고 있잖아!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 아닌가?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

대충 이런 분위기였다.

확실히 그들 말이 틀렸다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대우를 해 줬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저들 중 상당수가 정신병을 앓게 될 것임을 알기에, 더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멀쩡한 이들이 눈이 풀린 이들을 옮겨 주는 게 보였다. 타국의 비각성 헌터들이 투입될 리는 없으니, 하나같이 브라질의 헌터들이리라.

저들과 같은 입장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보니, 아무래도 감정 이입이 진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새삼스레 실버 박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홍익인간이라….’

설마, 타국의 고대 이념까지 언급할 줄은 몰랐지만, 확실히 뜻깊은 의미가 있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 더없이 와닿는 걸 느꼈다.

‘준비가 확실히 되기 전까진 자제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계획을 실행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그의 뒤로, 그림자가 하나가 다가들었다.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마루가 돌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드리안 데일!

그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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