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79화 (179/325)

#4. 아이언슈트 ― 벌크버스터!

#4. 아이언슈트 ― 벌크버스터!

대격변이었다.

인간사 최대 악몽이라 불리는 현상이니만큼, 당연히 대피령이 떨어지며 주변 도시들은 민간인 통제 구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같은 특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안쪽으로 발길을 하는 민간인들이 있었다.

방송국!

물론, 대격변의 현장은 마기가 넘실대는 만큼 아주 평범한 이들은 들어올 수 없었다.

각자 헌터 실습이나 현장 교육 정도는 받아 본 이들로서, 민간인에서 반걸음 빗겨 나 있는 이들이라 봐도 될 터였다.

현대에는 대개 이 같은 이들이 종군 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도 했다.

이들이 그나마 내부에서 촬영 가능한 이유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바로 뱀플의 정확한 사용법을 알고 있단 점이었다.

그냥 꽂고 삼키고 흡입하면 끝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또 얼마만큼의 비율이나 양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유지 시간이나 활용 폭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함부로 사용하는 건 위험했다.

직접적으로 정신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물건이다 보니, 더더욱 주의해야 하는 물품인 것이다.

게다가 방송국 자체적으로 마련한 정화계 아티팩트나 아이템 등을 준비하고 움직이니, 유지 시간이나 활용 폭 역시 더욱 넓어질 수 있었다.

전투라는 개념으로 활동한다면야 전부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만, 그저 뒤에서 카메라만 돌리는 만큼, 그 세부적인 요소들이 전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역대 최악일지도 모른다는 평가 때문일까?

아니면 아드리안 데일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금 세상에 나선 탓일까?

세계 각국의 방송사들이 움직였다.

“CMN방송국의 카벨 레이나 기자입니다. 이곳은 현재….”

“BEC의 조이 울렌이 전해 드립니다.”

“CBA 크리스 토드의 현장….”

일찌감치 도착한 이들은 기본 웨이브 현장의 중반부 즈음부터 투입되어 촬영에 들어갔고, 늦게 도착한 이들도 웨이브가 끝날 즈음에는 도착해서, 현장의 처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었다.

대격변 이후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변화한 탓일까?

피바람이 부는 장면들이 화면 가득 넘실거렸지만, 굳이 이를 숨기거나 외면하는 모양새는 보여 주지 않았다.

모든 장면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담아내는데, 이를 통해서 화면 너머의 많은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과거와 달리 헌터 전력이 상승하고 많은 부분에서 안정감을 회복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계는 위기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불안감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저 처절한 상황을 딛고 이겨 내는 걸 비춰 주며, 절망 속 희망을 언급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워… 12차 웨이브라니. 저거 막을 순 있는 거냐?

―이미 전력이 반절 가량은 깎여 나간 것 같던데.

―여차하면 산타카타리나는 버려야 할 듯.

―랭커들 투입돼서 저 정도라는 게 소름 끼치네.

―얼음여제가 스타트 끊었다며?

―멜사님은 사랑이다!

―잡담 그만, 시작하려나 보다.

화면 가득 마수지대의 경계선이 담기고, 그 너머의 수풀이 일제히 들썩이는 게 비쳤다.

아니나 다를까.

우워어어어어….

크워어어….

수많은 몬스터들이 마치 파도처럼, 아니,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일제 사격!”

타타타탕… 타탕… 타아앙!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소름 끼치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촬영되었다.

―무시하고 달려드는데.

―아니, 광폭화 모드도 아닌데, 눈 벌게져서 뛰어오는 거 봐라.

―클로즈업. 클로즈업! 화면 좀 확대시켜 봐.

―그게 들리겠니? 그냥 얼굴을 화면에 갖다 대.

―돌+High니?

―젠장! 병신 같은데, 효과가 있다.

―그걸 또 하냐? 미친놈!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광폭화에 돌입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 달려드는 이유가 뭘까?

남다른 맷집 때문에?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저거 아무래도 변이 개체 때문인 것 같지?

―딱 봐도 정신 지배 계열이네.

―명령 때리면 총이고 뭐고 달려들어야지.

―이래서 2차 변이 몬스터가 무섭다는 거야.

―대격변 진화 개체는 스킬 하나씩은 추가로 붙으니까.

일반적인 진화와 달리 무리 생활에 특화된 스킬들이 추가되는 것인데, 그 때문에 상황 자체가 기본 웨이브보다 한층 까다로워지는 게 당연했다.

―최종 웨이브는 저기서 더 체계적으로 변하니.

―벌써부터 이 정도면 정말로 산타카타리나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네.

―듣자 하니 이미 후방으로 경계선 다시 치는 것 같던데.

―ADC방송국 쪽에서 관련 뉴스 올라온다.

―상황이 진짜 안 좋긴 안 좋나 보다.

대개 변이 개체가 움직일 즈음부터는 랭커들도 팔을 거드는 게 보통이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최종전을 대비해서 적당히 힘을 분배하는 건 기본인데, 오늘 같은 경우에는 초기 웨이브부터 발을 담갔던 터라, 좀 더 몸을 사리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 때문일까?

―얼음여제가 뛴다!

―여왕님은 거침이 없으시구나.

―멜사님은 뭐다?

―사랑이다!

이선희의 활약이 또다시 부각되며 각 방송사의 카메라를 한데 모았고, 사람들의 이목 역시 그녀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타 랭커들도 쌈짓돈 꺼내듯 포스를 풀어 내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즈음 새로운 신 스틸러가 등장했다.

―어… 저거, 설마? 아이언슈트냐?

―덩치 봐라. 벌크 버스터 버전인데.

―갑자기 웬 코스프레?

―아니, 저러고 현장을 뛴다고?

―일단 복장에서 패기가 철철 넘치네.

―돌High의 카리스마에 지려 버렸다!

그리 좋은 반응이 이어지진 않았는데, 오래지 않아 이런 흐름은 급반전을 이루게 된다.

―워우… 오우거하고 힘겨루기 하는 거냐?

―어? 어라? 밀어붙인다. 미친!

―레알 벌크 버스터였네.

―저러다가 양손에서 레이저도 쏘겠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파아앙!

화면 속 아이언슈트가 양손을 흔드는 순간, 푸른빛 에너지체가 발사되며 하늘 위에서 그를 덮쳐들던 비행 몬스터를 저격하는 게 보였다.

―맙소사!

―Holy Shit!

―Oh my godness!

―Jesus Christ!

―Blimey!

줄줄이 감탄사가 이어졌다.

* * *

그림자 사슬의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추가 효과가 있었네.’

오우거를 힘으로 압도한다?

멀티 스킬과 랭커에 이른 괴력을 지녔다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간트의 거인족 스킬 같은 특수한 능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우거를 힘으로 압도해 버렸다.

이는 그림자 사슬이 도와준 것이다.

마루는 원래 괴력이 아니라, 적당한 힘겨루기 후 흐름을 비틀어서 제압할 예정이었건만, 그림자 사슬에서부터 올라온 괴력이 그의 등을 떠밀더니, 그대로 오우거의 손목을 힘으로 꺾어 버린 것이다.

당혹감에 무릎을 꿇던 오우거의 모습이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늘 그는 작정하고 튈 예정이었다.

위장까지 하고 나선 마당이니, 더더욱 맘껏 활개를 쳐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게다가 차후 계획하고 있는 걸 생각해 봤을 때, 오늘은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며 뽐낼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복장도 대충 갖춘 게 아니었다.

나름대로 이미지를 확실히 전달하며, 그림자 사슬에게 그럴싸한 모습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벌크 버스터!

존슨에겐 농담처럼 한 이야기였지만, 사실 진담도 절반가량 섞여 있었다.

‘기왕 보여 줄 거 제대로 해야겠지?’

[사신 변환 ― 청룡]

단순 염동력이 아니라, 조금 화려한 색채를 가미한 채, 양손을 어지러이 휘저었다.

퍼퍼퍼펑!

장풍이 빔이 되어 폭풍처럼 쏟아졌다.

* * *

데일은 저 멀리 활약 중인 아이언슈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상대의 정체를 알기 때문이었다.

‘정마루!’

전체적인 외형이나 분위기가 싹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라볼 수가 없었다.

멀티 스킬!

저토록 다양한 멀티 스킬 각성자가 또 있다?

‘하필, 이 장소에? 말도 안 되지!’

꾸준히 마루를 관찰하고 있었던 만큼, 아이언슈트의 활약과 동시에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마루가 사라지고 그가 나타났으며, 멀티 스킬까지 발현하는데, 어찌 그를 의심하지 않겠는가. 이를 토대로 관찰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스킬 : 분석안]

저 활약을 통해 실버 박사의 유산이 어느 정도인지, 한껏 만끽하는 중이었다.

‘대단해!’

절로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긴 세월 연구했던 게 허무할 정도로 마루가 보여 주는 다중 스킬의 완성도는 높았다.

생각해 보면 그의 연구는 여전히 미완이지 않던가.

제자 레오가 비록 멀티 스킬을 이뤄내긴 했지만, 사실 이는 큰 틀에서 보면 하나의 흐름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행기공!’

PP에서 제법 유명한 무투계 연공 스킬 중 하나로서, 이를 토대로 연구를 거듭하며 멀티 스킬을 만들어 낸 것인데, 각기 다른 5개의 스킬인 듯 보이지만, 사실 큰 틀에서 봤을 땐 하나였던 것이다.

비슷하게 ‘엘레멘탈 다이얼’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마법 계열의 스킬이다 보니, 신체파인 레오와는 상성이 나빴고, 그 때문에 그저 참조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연구를 거듭해서 오행기공을 쪼갠 다섯 종류의 스킬이 레오가 익힌 멀티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마루가 보여 주는 건 일정한 흐름이나 틀이라는 게 없었다.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총기 계열의 스킬에, 저 황당할 정도의 탱커 능력과 괴력 그리고 거리를 넘나드는 염동력 등, 상성 상극의 여부와 무관하게, 두서없는 스킬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오며 주변을 휩쓸고 있었다.

‘멋지군!’

하얀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후방에서 촬영 중인 여러 방송국의 카메라들을 살폈다.

상당수가 마루의 활약에 취해 있는 게 보였다.

‘지금쯤이면 세계도 알았으려나.’

어떤 반응일지, 내심 기대가 됐다.

* * *

점차적으로 여러 방송사들의 카메라가 아이언슈트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활약이 그만큼 임팩트가 컸던 것인데, 일단 뜬금없는 복장으로 관심을 끌었고, 저돌적인 액션으로 집중도를 확 높여 주기까지 하니, 카메라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작정하고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복장이 아이언슈트의 포인트를 전부 담아내고 있었는데,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왼쪽의 행커치프 부분, 심장 부위의 삼각형 광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혹시, 저기서도 빔 나올까?

―하늘도 날 수 있는 거 아니야?

―레알 현실판 아이언슈트네.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짜였어!

묘한 기대감이 더해 가는 가운데, 기존의 분위기와는 다른 의미로서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파아아앙!

행커치프가 빛을 발했다.

―쐈다!

―쌌다!

―정말로 저기서도 빔을 쏘네.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놀라운 장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달려들던 놈들 휘청거리는 건 뭐냐?

―희뿌옇게 화면 이상인가?

―나도 그래. 아무래도 주변에 뭐가 뿌려져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저거… 독가스 같은 건가?

―눈깔만 살짝 풀린 거로 봐선, 수면 가스나 마비 계열인 것 같은데.

―뭐가 됐건, 지렸다!

대격변이라는 심각한 상황이고, 그만큼 현장 분위기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눈이 즐거워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눈요기를 하고 있었을까?

세계 각국의 수많은 시청자들이 공통적으로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왠지, 스킬이 여러 개가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렇지? 착각 아니지?

―나도!

―나도!

―야, 냐도!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누군가 가려운 부분을 확 긁어 버렸다.

―멀티 스킬?

그 순간, 정말로 거짓말처럼 찾아드는 정적,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 후에 사이트마다 댓글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저거, 보니까 탱커에 저격에 근딜에, 다 되는 것 같은데.

―단순 더블도 아니라. 세 종류 이상의 멀티 스킬인 듯.

누군가 부정적 의문을 제기했다.

―아티팩트 효과인 것 같은데?

―에라이, 이 무식한 놈아. 아티팩트도 상성이라는 게 있어서, 조합을 잘못하면 발동하기도 어려워. 게다가 저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이는 아티팩트가 몇이나 되겠냐?

―그런 최상위급 아티팩트로 조합식을 짠다고? 무식아 제발 티 내지 말고 얌전히 짜져 있자. 형이 다 창피하다.

역대 최악이라 불리는 대격변의 현장에서, 세계 최초의 멀티 스킬 각성자의 등장한 것이다.

세상이 들썩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