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국룰?
#6. 국룰?
TV를 보던 아이들이 외쳤다.
“삼촌이다!”
“그러게.”
이에 이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는 사람이니?”
화면에는 아이언슈트가 화려한 액션을 펼치고 있었다.
만화를 보려고 튼 채널에서 대격변의 현장이 중계 중이었던 것인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래도 아이들 채널이라고, 일정 부분 모자이크 처리가 뒤따른다는 정도랄까?
TV를 꺼 버리려는 찰나, 아이들이 외친 한마디가 리모컨을 멈춘 것이다.
‘삼촌이라니.’
이선의 물음에 아이들이 답했다.
“마루 삼촌!”
“…뭐?”
거기서 그 이름이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어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와~! 마루 삼촌 멋지다. 누나 나도 저 갑옷 입고 싶어. 사 주라!”
“누나한테 돈이 어딨니.”
“우우… 그치만.”
“쉿!”
루미의 상점을 언급하는 거였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고자 아이의 입을 막아 버렸다.
간혹 저와 비슷한 흐름의 대화가 오갔던 터라, 이선은 루미가 알려지지 않은 ‘부잣집 아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 정도에서 넘어갔다.
어쨌든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꾸준히 아이언슈트를 향해 마루를 언급해 댔고, 이에 이선은 묘한 시선으로 TV 화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마루라고?’
대체 어딜 봐서 마루라는 결론이 나온 걸까?
체형도 달랐고 스킬도 전혀 다른 종류였다. 게다가 전투 방식도 전혀 상이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연신 마루를 언급해 댄 탓일까?
‘으음… 왠지, 비슷한 느낌도 드네.’
기이하게도 마루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 * *
남매는 아이언슈트의 등장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맞는 거 같지?”
“맞는 것 같아!”
이 갑작스러운 반응에, 부모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가 맞다는 거냐?”
“화면 가리지 말고 앉아라.”
모친과 부친의 반응에 남매가 다시 착석하며 입을 열었다.
“저희 선생님인 것 같아요.”
그 공통된 외침에 화면에 고정되었던 부모님들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남매에게로 향했다.
“…뭐?”
임지현과 임수현 쌍둥이 남매는 화면 속 아이언슈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저희에게 투술 가르쳐 주는 분 계시다고요.”
“그러고 보니….”
부모님들은 일제히 TV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언슈트 가면!’
들었던 그대로의 가면이었고, 마침 덩치도 딱 들은 그대로였다.
“정말… 저분이니?”
모친의 물음에 임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해요!”
너무 단호한 대답이었는데,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모친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돌아봤다.
‘설마, 그거냐?’
‘맞아요. 금사빠.’
‘아….’
모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가운데, 부친이 딸아이를 향해 외쳤다.
“아직 결혼은 일러!”
임지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임수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누가 부녀 아니랄까 봐. 김칫국부터 마시긴.”
부친이 버럭 성질을 냈다.
“내 딸이 뭐 어때서!”
옆에서 모친도 버럭 성을 냈다.
“벌써 지현이도 서른이야!”
“그게, 뭐?”
“보낼 수 있으면 후딱 보내야지.”
“안 돼! 평생 끼고 살 거야.”
“이 인간이!”
임수현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 내력이 김칫국이라니. 에휴~! 트럭째로 갖다 줘도 안 될 텐데.”
임지현의 엘보우가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다.
* * *
키홀 클랜의 클랜장 바이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언슈트!’
과거, 한국으로 파견 보낸 이들과 마찰이 있던 존재도 꼭 저와 같았다는 정보가 떠오른 것이다.
‘설마… 그놈인가?’
당시에는 갑옷 같은 건 입고 있지 않았지만, 일단 체형을 비롯해서 쓰고 있는 가면까지, 한차례 의심을 해 볼 만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한국과 엮인 일들로 인해 클랜의 입지가 상당 부분 흔들린 까닭이었다.
특히, 동생 제퍼드의 죽음이 가져온 파장이 컸다.
여전히 유럽의 이면에서 남다른 위치를 지니고 있지만, 랭커라는 특별한 존재의 부재는 여러모로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연합 체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자, 더더욱 정신없이 움직이는 중이었는데, 그러면서도 대사건이라 할 수 있는 대격변에 관한 시청을 놓치지 않았다.
요원도 따로 파견한 상태였다.
전투 및 지원의 목적이 아닌, 관찰과 탐색 등의 정보 수집을 목표로 한 것이다 보니, 아마 저 전장 어디서도 요원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을 터였다.
모두가 아이언슈트에 대한 정보로 허덕일 때, 유일하게 그 혼자만이 관련한 힌트를 뽑아낼 수 있었다.
“한국… 또 거기인가. 으득!”
입술을 짓씹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TV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당혹스러울 만큼 가슴을 뜨거워지게 만드는, 그런 원초적인 격돌이 저 너머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트윈헤드 오우거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크워?
설마하니 진화한 자신과 정면 대결을 붙으려 하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실로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진화 이전에도 이미 힘에 있어서는 종을 초월할 만큼 특별했었다. 그런 특별함이 기적처럼 진화로 이어졌다고 믿었다.
두 개의 머리 두 개의 두뇌, 사고 등등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 줬다.
일반적인 개체와 달리 특별한 ‘능력’까지 얻었기에, 자신은 종을 아득히 초월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작은 인간은 건방지게 그를 앞에 두고서 정면으로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으득!
분노가 들끓었다.
두 개의 머리와 새로운 능력은 좀 더 이성적이며 효과적으로 싸우기를 요구했지만, 타오를 것 같은 분노는 원초적 본능을 앞세우며, 스스로를 짐승이 되라 강요하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
트윈헤드 오우거가 저돌적으로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저 무겁기만 한 게 아니었다. 빠르고 날렵했다 거기에 유연하기까지 하니, 수시로 주먹의 방향이 비틀어지는 등, 절묘한 기예까지 섞여 들었다.
‘크읏!’
마루는 이를 악물며 이를 맞받아쳤다.
언뜻 정면 대결처럼 보이지만, 그와는 좀 달랐다. 존슨이 남다른 탱킹 능력을 지니게 된 게 무엇이던가.
정면인 듯 정면이 아닌, 그런 절묘한 흘리기를 몸에 익히고 있기 때문이지 않던가.
일반적인 흘리기와는 달랐다.
힘을 받아들이고 육신의 모든 근육 그리고 포스까지 동원해 가며 내부적으로 비틀어 흘려보내는 것이다.
사일론과의 격돌을 통해, 그 움직임이 궁극의 경지에 다다르면 어찌 되는지 엿볼 수 있었다.
랭커가 되며 깨우친 초감각은 이를 흉내 낼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감각계 스킬은 흉내를 거들며 완성도를 높여 줬다.
초반, 뒷걸음질을 치던 그가 조금씩 밀려나는 거리가 줄고 속도가 줄더니, 어느 틈엔가 제 자리에 서서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트윈헤드 오우거와 정면 대결이라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저게 가능하다고?”
“애초에 멀티 스킬부터 말도 안 되잖아.”
“벌크버스터가 아니라, 그냥 벌크 같은데?”
“와~! 어릴 때 봤던 영화 떠오르네. 녹색 괴물에 벌크버스터의 격돌이라니. 갑자기 동심이 차오른다. 썅….”
상황에 맞지 않게 몇몇 헌터들이 아련한 눈동자로 마루의 전장을 바라봤다.
그들 격돌은 이 거대한 전장에서도 남다른 파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헌터들만이 아니라 몬스터들 역시 잠시간 숨고르기를 하듯, 한 걸음씩 물러나며 주시하는 개체가 늘어갔다.
전장의 한 개 구역에 뜻밖의 일대일 단기 결전 구도가 형성되고 있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랭커들이 눈을 빛냈다.
“저건… 설마, 존슨의 가드?”
“제로 원의 탱킹을 생각나게 만드는군.”
“거의 복사기 수준인데?”
“흐음… 아이언슈트와 제로 원이라.”
몇몇 존슨과의 연결 고리를 의심하는 가운데, 전장에 변화가 발생했다.
크와아아아악!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린 듯, 트윈헤드 오우거가 원초적 본능 위로 이성의 갓을 씌운 것이다.
퍼어엉!
포효 속에 날아든 충격파가 마루를 튕겨 냈다. 분명 손해를 본 상황이었지만, 지켜보던 헌터들의 사기는 역으로 올라갔다.
“우와아앗! 능력을 썼다. 먼저 능력을 썼어!”
“비겁한 놈!”
“아이언슈트가 힘겨루기에서 이겼다.”
“트윈헤드 오우거가 백기를 들었어.”
비록 손해는 봤지만, 그에 앞서 우위를 잡았다는 결론이 헌터들의 사기를 끓어오르게 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몬스터들, 특히 오우거 무리들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드러나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들이 자존심마저 굽히며 따른 우두머리가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여 준 까닭이었다.
애초에 정면 대결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서로 직구 승부를 하던 와중에 먼저 변화구를 섞어 넣었으니, 충분히 실망감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마루가 먼저 변칙적인 승부를 건 상황이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다.
튕겨 나갔던 마루는 흙먼지를 피워 내며 바닥을 뒹구는데, 트윈헤드 오우거는 연격을 쏟아부으러 이를 뒤따랐다.
그 순간 흙먼지를 꿰뚫고 날아드는 화살이 하나 있었다.
퍼억!
막았다. 아니, 맞았다.
가드를 뚫고 들어오는 화살, 뒤늦게 그것이 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당한 크기의 창이었는데, 오우거의 거대한 크기와 교차되며 화살처럼 보인 것이다.
바닥을 뒹굴면서도 주변을 살피고 있던 마루가 주변 가득한 무기 중 하나를 그대로 잡고 던진 것인데, 짧은 순간 관통계 스킬에 회전력을 잔뜩 먹여 보낸 덕분에, 트위헤드 오우거의 가드마저 뚫어 버렸다.
크아아아아악!
고통에 찬 외침 속에서 트윈헤드 오우거가 재차 충격파를 쏘아 냈다.
눈이 아닌 감각에 의존한 회피를 해야 하는 탓에 번거로움이 뒤따라야 하건만, 마루는 마치 두 눈으로 보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모든 충격파를 피하고 흘려보냈다.
초감각이 발동하며 궤적을 그려 준 것이다.
그 와중에 바닥을 쓸며 방패 하나를 든 뒤, 뒤따르는 후폭풍마저 완벽히 커버해 냈다.
퍼퍼펑….
그리 대단한 아이템은 아니었던지, 후폭풍을 버티지 못한 채 조각나 부서지는데, 마루가 손가락을 튕기며 이 중 몇 개를 쏘아 보냈다.
투투투퉁….
이를 굵직한 팔로 쳐 낸 오우거가 팔에 꽂혔던 창을 뽑아서 내던졌다.
퍼억!
마루가 날랜 몸놀림으로 이를 피하니, 그가 서 있던 땅바닥 깊이, 창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꽂혀 들었다.
그렇게 피하고 또 피하는 한편, 조금씩 전진을 거듭하는데, 그 저돌적인 모습에 트윈헤드 오우거의 동공에 언뜻 당혹감이 스쳐 갔다.
종을 초월하며 얻어 낸 아주 특별한 이능이 제 역할을 못 한 것도 그렇고, 저 자그마한 인간종이 그를 상대로 또다시 정면으로 달려드는 모습까지, 묘한 압박감이 전신을 휘감아 오기 시작한 것이다.
크륵! 큭… 크워어어어어!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분노의 포효로 불안감을 털어 낸 트윈헤드 오우거가 숨겨 둔 또 다른 능력마저 끄집어냈다.
보통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자제할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아낄 때가 아니었다.
크아아악!
놈의 포효와 함께 강렬한 투기가 사방으로 발산되며 강대한 폭풍을 일으켰다. 그건 마치 바리케이드처럼 주변의 접근을 차단했고, 그 때문에 마루의 돌격 역시 제지될 수밖에 없었다.
폭풍의 중심, 트윈헤드 오우거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우득… 뚜득… 두두둑!
그렇잖아도 이미 5미터 남짓의 거구였건만, 거기서 또다시 1미터 남짓 커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저 마족들처럼 이마 위로 뿔까지 솟아 있었다.
두 개의 머리 두 개의 뿔, 그리고 두 배의 능력까지, 여러모로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뭣?”
“능력이 하나가 아니라고?”
“맙소사!”
“특수 개체인 것도 놀라운데, 허….”
지켜보던 랭커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트윈헤드 오우거가 이능을 부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부분이건만, 그런 이능이 하나 더 있던 것이다.
고위종의 레이드 클래스쯤 되면 스킬이 여럿 있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오우거만은 이야기가 달랐다.
놈들은 그 육신에 이미 강화계의 다양한 재능이 여럿 깃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한데 거기에 이능계의 능력이 추가되는 것이다.
트윈헤드 오우거로 진화하면서 이미 ‘버프’라는 기본 이능이 더해지고, 거기에 별도 이능이 추가되면 특수 개체로 분류되며, 이때부턴 랭커들이 전담하게 된다.
한데, 거기서 또 한 차례 이능이 추가된 것이다.
랭커들도 바짝 긴장해야 될 상대로 변이한다는 의미로서, 오우거의 새로운 능력은 강화계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닐까 싶었다.
뚜둑… 뚝… 뚜두두둑….
핏줄이 서고 힘줄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근육이 팽창하며 골격이 변화하고, 이내 그 큰 덩치가 더욱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주변 가득한 몰아치는 폭풍은 이를 위한 가드인 듯싶었다.
생각보다 변화에 시간이 걸리는 터라, 미리 바리케이드를 세운 것이다.
그렇게 안전지대 속에서 5미터 남짓이던 덩치가 순식간에 6미터까지 커지는 가운데, 유심히 이를 지켜보던 마루가 농담 하나를 떠올리며 실소했다.
‘변신 중에는 안 건드는 게 국룰?’
그러더니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국물도 없는 소리!”
최근 획득한 스킬이자 그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일격을 준비했다. 트윈헤드 오우거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폭풍을 노려보며 호흡을 골랐다.
“푸후우우우….”
기세가 일변하고, 관전 중이던 수많은 헌터 그리고 몬스터들이 알 수 없는 한기와 함께, 일제히 오금이 풀리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번쩍!
섬광이 지나갔다.
[스킬 ― 개벽권]
쿠르르르르릉….
거대한 전장 위로 광활한 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