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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지막 웨이브!

#8. 마지막 웨이브!

기다리던 히어로의 등장이었다.

―떴다!

―왔다!

―인디안 존슨!

―제로 원!

―우리의 영웅!

전 세계가 환호하기 시작했다.

―존슨이 죽었다고 씨불이던 놈들 어디 갔어?

―아이언슈트도 대단하긴 했지만, 역시 진짜는 존슨이지.

―제로 원이야말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최강의 헌터다!

―와… 등장만으로도 든든하다.

―날 가져요. 엉엉!

데일이 직접 나서며 존슨의 사망설을 잠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한 이야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건, 대격변이 시작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큰 사건이라면 결코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인디안 존슨이라는 세계적 히어로가 아니던가.

기본 웨이브야 그럴 수 있다 치지만, 변이 웨이브마저 기척이 없었으니, 그의 사망설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올 만도 했다.

―살아 있더라도 부상이 심각해서, 오늘내일한다던 놈 어디 갔냐고?

―어디 화장실에서 대가리 박고 잠수 중이겠지. 것보다 최종 웨이브 수준이 너무 높은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냐?

―어… 저건 좀 너무하네.

―존슨이 대단하긴 해도, 결국 랭커 한 명 추가된 것뿐이야.

―겨우 랭커 한 명이라니! 제로 원께서는 일당백이다.

―헛소리는 자제하고 냉정히 평가해야지.

―이거, 아무리 봐도 저지선 물려야 할 것 같은데.

―변이 웨이브에서 쳐 놨던 거 활용하면 될 듯.

―느낌이 싸하다.

―어라? 그런데 몬스터들 왜 저렇게 조용함?

―그러게. 갑자기 합죽이가 됐누?

―단체로 꿀 먹음?

TV 속, 기이한 전장의 풍경 때문일까?

시청자들도 일제히 숨을 죽이며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마족들의 반응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사일론!

저 마계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던 강자, 그와 박빙의 승부를 벌였던 게 바로 존슨이었다.

비록 분신이었다 할지라도, 마족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특수 개체가 아니던가.

마루를 비롯하여 이반나 등, 현장에 있던 랭커들이 사일론의 존재감에 압도당했듯, 반대로 존슨의 존재감에 마족들이 압도당한 것이다.

언뜻 마족들에게서 당황하는 기색도 비쳤는데, 짐작건대 존슨이 이리 멀쩡히 등장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듯싶었다.

실제로 사일론과의 격전 이후, 존슨은 내상을 입기도 했었다.

만약, 마루의 도움으로 연공법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나섰겠지만.’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포스를 보여 주진 못했을 것이다.

그저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보이지만, 은은한 파장을 흩뿌리며 이 넓은 전장 전역에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는 중이었다.

자신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 주는 행위였고, 그로 인해 마족들의 당혹감이 더욱 큰 것이기도 했다.

몬스터들 역시 이 같은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대로 얼음땡이 되어 버린 거였다.

존슨이 뿌리는 은은한 파장은 몬스터와 마족에게는 두려움을 줬지만, 아군, 헌터들에게는 안정감을 찾아 주고 있었다.

대개 그의 등장만으로도 사기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지금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존슨의 존재감도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대격변의 현장에 있는 헌터라면, 남다른 경험치로 견적 하나만큼은 확실히 내는 이들이다 보니, 랭커 한 명 추가되는 정도로는 상황 반전이 어려움을 아는 것이다.

존슨의 특별함이야 인정하는 바였지만, 결국 랭커 한 명의 전력으로 구분될 뿐이었다.

병력의 규모만 놓고 본다면, 앞선 웨이브들 중 가장 작은 규모지만, 그 퀄리티는 앞선 웨이브를 전부 합친 것 이상이었다.

‘고위종 아닌 놈들이 없잖아?’

‘미친! 레이드 클래스가 이렇게 많다고?’

‘이걸 어떻게 막아?’

‘아… 안 돼!’

수많은 헌터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더더욱 확실하게 존재감을 흩뿌리며, 헌터들의 숨통을 틔워 주고자 했다.

그게 또 제법 효과가 있었던지 헌터들의 좁아진 시야가 회복되고, 호흡이 한결 안정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초월적인 영역에 오른 덕분에 버프 계열 각성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운을 퍼트리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진정시키는 게 가능했는데, 이는 온기를 함께 심어서 그들 주변을 은은히 감싼 덕분이었다.

헌터들은 이를 통해서 정신을 차리며, 애써 각오를 다지는 모습들을 보여 줬다.

존슨은 그 같은 분위기 변화에 내심 안도하며 기운을 거둬들인 뒤, 여덟의 마족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분신은 다섯인데 실체는 여덟이란 말이지.’

약 반절 혹은 3분의 1가량의 오차가 있다는 것인데, 최초 사태이니만큼 이런 사소한 자료들까지 전부 체크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차후에 이 정보가 새로운 현상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움찔하며 반응하는 여덟 마족의 모습이 보였다. 기세를 거둬들였지만 존슨의 존재감에 압도당한 건 여전한 듯,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반응이 뜨거웠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그가 지날 때면 헌터들이 길을 열어 주는데,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전장의 최전선을 걷고 있었다.

그 든든한 뒷모습 때문일까?

헌터들은 심장이 쿵쾅대며 가슴이 뜨겁게 달궈지는 걸 느꼈다.

문득, 존슨이 걸음을 멈추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동공을 확장시키는 랭커들을 바라봤다.

그들을 향해 나직하니 중얼거렸다.

“셋은 내가 맡지.”

속삭이듯 뱉어 낸 음성이지만, 그를 주시하고 있던 탓인지 천둥처럼 랭커들의 고막을 두드렸다.

애초에 마족 다섯을 염두에 둔 채 모인 전력이 아니던가. 문젯거리만 해결해 준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할 거라 믿으며, 그가 멈췄던 걸음을 내디뎠다.

스륵….

그 순간, 마치 잔상처럼 존슨의 신형이 흩어졌다.

“헉!”

“어디로….”

헌터들이 기겁하며 그가 있던 자리를 살피는 찰나, 저 멀리 마족들의 진영에서 폭발성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마족 셋이 거칠게 튕겨져 나가며, 저 깊은 마굴 속으로 넘어가는 게 보였다. 그 위로 유성처럼 떨어지는 존슨의 모습도 확인됐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크워어어어어!

커허어엉!

몬스터들이 포효하며, 본격적인 최종 결전의 서막을 알렸다.

* * *

무려 마족을 셋이나 데리고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관련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야~! 3대 1인가?

―아… 마굴로 넘어가 버렸네.

―기왕이면 전장에서 보여 주지.

―저긴 카메라가 쫓아갈 수가 없잖아.

―주변에 피해 갈 것까지 고려해서 내린 선택이야. 저렇게 하는 게 맞다.

―아니, 혼자서 마족 셋을 감당한다고?

―누차 말하잖냐. 제로 원이 세계 최강이다!

―그나저나, 어째 다른 랭커들은 통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내 착각이냐?

―견적 내느라 바쁘겠지. 저 위치쯤 되면 주의해야 할 게 많으니까.

―쯧! 이런 것 때문에 존슨이 더 인정받는 거지.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전장 최전선에 뜻밖의 바람이 부는 게 보였다.

* * *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마족들을 단독으로 상대할 만한 랭커는 몇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마굴의 심처에서 이반나를 비롯한 랭커들이 과감히 1대 1을 시도할 수 있던 건, 그들이 분신이며 본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이지, 만약 그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1대 1의 대결이 아닌 단체전으로 끌고 갔을 확률이 높았다.

이반나와 프링쿨스의 경우에는 상위 랭커다 보니, 마족과의 개인전이 가능했지만, 토비는 아직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마족 다섯 개체는 이곳에 있는 랭커들의 수를 더해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몇몇 특수 개체는 랭커 서넛이 달라붙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터라, 긴장감이 바짝 오르는 건 당연했다.

그 때문일까?

몬스터들이 움직이고 헌터들이 대응하며, 전장의 열기가 한껏 들끓고 있었지만, 랭커들은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마족 측에서 먼저 행동하길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치열한 눈치 싸움으로 인한 여파인지, 마족들은 뒤편을 수시로 살피면서도, 차마 존슨을 쫓아 움직이지 못했다.

이 와중에 전장을 헤치며 마족들을 자극하는 이가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포효와 함께 사방으로 푸른빛 광채를 쏟아 내는 존재.

아이언슈트!

그가 전장의 최선을 달리며 몬스터들을 휩쓰는 한편, 끊임없이 마족들을 향해 파장을 쏘아 보냈다.

이 같은 집요한 도발이 먹힌 것일까?

마족들이 알 수 없는 음성으로 쑥덕거리는가 싶더니, 한 개체가 훌쩍 뛰어들며 마루의 정면으로 내려섰다.

그 시점에서 주변 몬스터들과 헌터들은 다급히 거리를 벌리며, 그들에게 격전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줬다.

마루는 마족과 대치하던 중, 슬쩍 후방의 랭커들을 돌아보는가 싶더니, 번쩍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올라오는 가운뎃손가락.

“저… 저 자식이!”

“건방진 놈!”

“으득….”

“…한 놈을 맡겠다는 뜻인가.”

저들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루는 태연하게 가운뎃손가락을 까딱이기만 할 뿐이었다.

‘맘에 안 들어.’

랭커들이 몸을 사리는 모습이 그를 짜증 나게 만들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대격변을 막아 내고 있건만, 이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랭커들은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는 게 그를 자극했다.

저들 역시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마루는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 같은 불쾌감을 감출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저돌적으로 전장을 달리며, 저들에게 보란 듯이 마족을 도발한 것일지도 몰랐다.

겨우겨우 컨디션을 일상치인 6점대로 끌어 올렸지만, 솔직히 마족 분신도 아닌 본체와 정면 대결을 하는 건 그로서도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몸을 사릴 생각이 없었다.

가운뎃손가락을 내린 마루가 손가락 네 개를 세우며 재차 랭커들을 흘겼다. 그 눈빛이 묻고 있었다.

[이제 넷 남았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랭커들이 재차 발끈하는 가운데, 마루의 이 같은 태도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긴 것일까?

크아아악!

마족이 두 눈을 붉게 물들이는가 싶더니, 성난 외침과 함께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초감각으로 주변 상황을 전부 통제권에 두고 있던 터라, 마루는 매끄럽게 대처할 수 있었다.

파팍! 파앙….

카운터를 맞고 물러나는 마족의 눈빛 가득 이채가 스쳐 갔다. 무시하는 듯 보이던 태도가 일종의 낚시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덕분에 들끓던 열기를 단숨에 내리누르며, 한층 신중해진 모습으로 마루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즈음부터 마루도 더는 랭커들에게 시선을 분산하지 않은 채, 오직 전방의 마족만을 시야 가득 채워 넣고 있었다.

신예 랭커와 마족의 격돌이었다.

카메라가 재차 그를 집중 조명하고, 그렇게 아이언슈트의 새로운 액션이 전파 준비를 마쳤다.

* * *

존슨은 마굴 깊숙이 전장을 만들었다.

무려 3대 1의 격전이다 보니, 주변에 피해가 클 것임을 염려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존슨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쳤다. 그의 괴력에 이끌려 온 마족들의 표정에 여유가 깃든 걸 발견한 까닭이었다.

좀 전의 짧은 접전을 통해, 자신의 몸 상태에 관한 정보가 저들에게 넘어간 듯 보였다.

만약, 그가 멀쩡했다면 겨우 셋이 아닌, 여덟 개체 전부를 끌고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태가 메롱 해 보여서 자신감이 좀 붙냐?”

그리 물으며 존슨이 자세를 잡았다. 앞서 저들을 압도하기 위해 기세를 피웠던 것과 달리, 지금은 쓸데없이 소모되는 기운이 없게, 철저히 안으로 갈무리하고 있었다.

그 같은 모습마저 마족들에겐 약한 모습으로 비쳐졌던 것일까?

킥킥킥킥킥킥!

크흐흐흐흐!

히히힉!

마족들이 요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바로 그즈음 변수가 발생했다.

“좀 도와줄까?”

수풀 한편이 들썩이는가 싶더니, 뜻밖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헤이, 브라더!”

존슨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드리안 데일!

그가 등장한 것이다.

사실, 이는 애초부터 약조된 움직임으로서, 데일은 일찌감치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때문에 마족들이 데일의 기척을 인지하지 못한 거였다.

어지간하면 정면에 나설 생각이 없던 데일이다 보니, 이런 무대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갑작스런 변수로 인해 마족들의 동공이 흔들리는 가운데, 데일이 웃으며 말했다.

“난 한 놈만 패!”

이에 존슨이 실소하며 답했다.

“그거면 충분하지.”

3대 2의 격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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