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85화 (185/325)

#10. B급.

#10. B급.

현존하는 랭커들 중, 마족과 1대 1의 정면 대결을 펼칠 수 있는 랭커가 몇이나 될까?

굳이 등급을 구분하자면, S+급으로 구분되는 이들 정도라야 가능할 터였다.

아드리안 데일!

그 역시 [+]가 붙을 만한 랭커들 중 한 명이었다.

분석안 스킬과 남다른 두뇌의 시너지로 인해, 일종의 급소 및 약점이라 할 만한 부분들을 찾아낸 뒤, 이를 집요하게 공략하는 게 그의 승리 공식이었다.

마족이라 할지라도 이를 피할 순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리는 마족의 얼굴 가득, 피눈물이 맺혀 있는 게 보였다.

집요하게 급소만 두드려 맞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어우, 잔인한 놈! 굳이 거길….”

존슨이 몸서리를 치며 한마디를 던졌다. 이에 데일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끝났으면 좀 도와줄 것이지, 뭘 구경만 하고 있어.”

“말은 잘한다. 끼어들면 또 끼어든다고 뭐라 할 거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존슨이 양팔을 활짝 들어 올렸다.

“내 꼬라지 안 보이냐? 나도 지금 요단강 건너다가 돌아온 길인데, 누굴 도와줘?”

확실히 그 말처럼 존슨의 몰골은 상당히 심각했다. 넝마가 되어 버린 옷가지야 그렇다 친다지만, 그 너머 전신 가득 피투성이에다가 깊은 상흔 사이사이 뼈마디가 드러난 부위도 적잖게 엿보였다.

“아주 피똥을 쌌네.”

“흐흐….”

그가 비록 몸 상태가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마족 서넛은 충분히 상대할 만한 수준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체에게 애를 먹은 건?

간단한 이유였다.

일반적인 마족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투 개시 전, 일찌감치 놈들의 전력 견적을 낸 뒤, 랭커 서넛은 상대할 법한 상위 개체들만 콕 집어서 마굴로 끌고 온 것이다.

만약 3대 1로 붙었더라면?

살점이 파헤쳐진 게 아니라 심장이 파헤쳐졌을지도 몰랐다.

“후우… 물약 좀 줄까?”

데일은 공간 확장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는 만큼, 그에겐 항상 상당량의 포션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럼 땡큐지.”

“나중에 계좌로 보내.”

“…공짜 아니냐?”

“계산은 철저히 하자.”

“스크루지 같은 놈.”

“그래서 필요 없다고?”

“헤헤! 잘 부탁합니다요.”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며 손바닥을 비비는 존슨의 모습에, 데일이 실소하며 포션을 내어 줬다.

당연하게도 최상급의 포션이었고, 뼈마디를 드러냈던 살점들이 빠르게 접합되는 게 보였다.

“크으… 효과 끝내주네.”

부상 정도에 따라서 일정 부분 고통이 뒤따르기도 하는데, 존슨의 경우에는 정말 심각한 중상이다 보니, 얼굴이 이리저리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데일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정수리도 주름이 잡히는구나.”

“쿨럭!”

정수리 저격에 뜻밖의 내상을 입어 버렸다.

“잔인한 놈!”

약점 공략을 너무 잘한다며 투덜대며, 존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데일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몸으로 어디 가게?”

“아직 한창이잖아.”

전장으로 복귀하겠다는 소리에 데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할 만큼 했어. 나머지는 눈치 싸움이나 하는 겁쟁이 놈들한테 맡겨 둬. 그놈들도 이름값은 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존슨의 성격상 제 몸 죽어 나가도 달려들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전장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걸 아는 만큼, 별 의미 없이 서 있더라도 일단 전장으로 향하는 게 그의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그럴까?”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는 것이 아닌가. 이에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니, 존슨이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 말려 줄까 봐 식겁했잖아.”

데일이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뭘 또 그렇게 보냐. 죽다 살아나니까 몸 좀 사리게 됐다.”

“…이반나 때문이군.”

“눈치 참, 더럽게 좋아.”

존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달링이 무리하면 죽인다는데,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냐.”

그렇잖아도 변이 웨이브가 끝난 뒤, 휴식 시간을 통해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온 참이었다.

한데, 최종 웨이브에서 이처럼 마족 셋을 끌어가며 무리를 했으니, 잔소리 폭풍이 예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더 위험을 감수한다?

“난 살고 싶다.”

실제로 몸 상태도 오늘내일하는 중이었다. 포션 덕분에 숨통이 좀 트인 것이지, 아니었더라면 일찌감치 드러누웠을 터였다.

“미친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데일을 보며 존슨이 손짓했다.

“너도 좀 쉬어.”

데일이 상대한 개체도 보통 마족이 아니었고, 그런 만큼 그 역시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존슨보단 멀쩡하지만 상당한 내상을 비롯해서 외적으로도 제법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쉴 생각이었다.”

그리 말하며 품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꺼내는데, 이를 본 존슨이 황당하단 얼굴로 물었다.

“놀러 왔냐?”

그도 그럴 게 각종 캠핑 물품이 한가득 쌓이고 있던 탓인데, 이에 데일이 어느새 꺼내 든 캔 맥주를 흔들며 되물었다.

“그래서 싫다고?”

“아니, 좋지!”

어느새 군침까지 흘리는 존슨을 보며, 데일이 말했다.

“할 땐 팍! 쉴 땐 푹! OK?”

“OK!”

그렇게 때아닌 캠핑이 시작됐다.

* * *

마르셀을 시작으로 하나둘 랭커들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사실 그보다는 마루가 보여 준 활약으로 인해,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기가 어려워진 면이 컸다.

자극 역시 제대로 받았던 터라, 간만에 초심을 떠올리는 랭커들도 제법 있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랭커들과 마족 간의 대결이 펼쳐지는데, 역시나 쉽지 않다고 해야 할까?

존슨이 상위 개체를 끌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마족을 상대하는 데 랭커 2명은 기본으로 달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홀로 상대한다?

불가능하다 생각하진 않지만, 무모하게 무리하다 괜한 치명상을 입고 싶은 이들은 없었기에, 이리저리 손발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먼저 움직였던 이들은 조금씩이나마 손해를 봐야만 했다.

그 때문일까?

새삼 마루의 특별함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지리네.

―아이언슈트는 저런 놈들은 혼자서 상대한 거잖아.

―존슨은 셋이나 끌고 감.

―제로 원이야 원래 특별하고.

―후광이 번쩍번쩍하는 게, 전보다 더 강해 보이더라.

―머리카락과 괴력을 바꾼 듯.

―잔인한 놈들….

―아니, 것보다 대체 저 루키는 누군데?

―루키라고 단정 짓지 말자. 저만한 실력자라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활약깨나 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이미 은퇴한 헌터일 수도 있겠네.

―누굴까?

그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루키라고 하기에는 활약이 너무 대단했던 것이다.

―아니, 마족 하나 때려잡지 않았나? 그런데 왜 아직도 팔팔한 건데?

―저 정도면 마족 하나 더 잡아도 되겠네.

―오우거 메치는 거 봐라. 어우! 파운딩 들어갔다.

―레알, 찰지게 패네.

―멀어서 사운드가 안 잡혀야 하는데, 왠지 귀에 들리는 것 같은 건. 나만 그러냐?

―나도 들린다.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거다!

―영혼을 울리는 감미로운 사운드!

―복면패왕!

―구타유단자!

―…미친놈들.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는 마루의 액션, 그건 사실 본인이 아닌 아티팩트에 의해 펼쳐지는 전투일 뿐이었다.

그림자 사슬은 마루가 해 왔던 전투 방식을 고스란히 복기하고 복사한 뒤, 완벽한 모작처럼 그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거의 매크로 수준이네.’

별달리 힘들일 것도 없었다. 지난 전투를 통해 그림자 사슬 내부에 잔뜩 세이브된 기운들을 통해, 일종의 자동 사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처리한 몬스터의 숨통을 끊는 순간, 새로운 기운이 보충된다는 점이었다.

‘자가발전까지 하는 아티팩트라니.’

물론, 사냥을 위해 사용된 기운에 비한다면야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소량이나마 자체적인 충전이 가능하다는 게 실로 놀라웠다.

그는 현재 아티팩트의 신비로운 효능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모든 감각을 그림자 사슬에 맞춰 놓은 상태였고, 그렇게 활짝 열린 초감각 덕분에 이런 부분들을 캐치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전투를 하는 중간중간 그도 모르는 기술들이 튀어나온다는 점이었다.

‘이건… 전 주인들의 재주인가?’

그 외에는 마땅한 답이 없었다. 틈틈이 잠깐씩 소개되는 정도였지만, 이를 통해서 조금은 색다른 관점에서 기술을 보고 느끼며 배울 수도 있었다.

‘호오? 여기서 이런 식으로 꺾어서 친다고? 이걸 이렇게 기운을 써? 이건, 침투경인가? 전사경도 섞어서….’

스킬의 궤적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달랐다. 스킬이 보여 주는 리듬 속으로 다른 박자가 섞여 드는 감각이란, 그로 하여금 스킬의 결합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줬다.

그런 식으로 그림자 사슬을 관찰하는 한편, 감각을 열어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말도 안 되는 최종 웨이브의 퀄리티에 비해, 제법 괜찮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2~3차례 경계선을 물려야 할 거란 예상과 달리, 현상 유지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씩 밀어붙이는 모양새마저 보여 주고 있던 것이다.

여러 실력자들이 바쁘게 투입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마루의 존재로 인해 발생한 나비 효과였다.

멀티 스킬 각성자를 조사하기 위해, 여러 요원들이 발을 들인 것인데, 이면의 헌터와 달리 정식 등록이 된 헌터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고, 대격변이란 특수 상황에 맞춰서 현장을 뛸 수밖에 없었다.

이를 무시한다?

그 순간 범죄자 낙인이 찍히는 것이기에, 비등록 헌터가 아닌 이상 현장 투입은 필수였다.

나쁘지 않은 흐름을 확인한 탓일까?

‘슬슬 발 뺄 때가 된 것 같은데.’

마루는 빠져나갈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트윈헤드 오우거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 잡았고, 거기에 더해 마족까지 한 개체 담당하며, 1인분 이상의 활약을 한 상황이었다.

이쯤에서 발을 뺀다고 그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좀 더 버티며 전투를 치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랬다간 노골적으로 그를 노려보는 각국 요원들에게 발목이 잡힐 확률이 높았다.

남은 시간은 아이언슈트가 아닌, B급 헌터 정마루로서 활약해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림자 사슬의 도움을 받아 몬스터들을 때려잡는 한편, 그를 주시하는 눈빛의 농도가 흐려지길 기다리길 한참,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퍼어어엉….

마치 연막탄을 터트리듯, 그의 주변으로 희뿌연 안개가 크게 퍼져 나가는 가운데, 크게 발을 구르며 흙먼지까지 피워 올렸다.

그리고는 은신 스킬로 몸을 가린 채 전장의 그늘 속으로 뛰어들었다.

거기서 그림자 사슬이 재차 그를 도왔다.

아티팩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림자를 부리는 건 자기에게 맡기라는 듯, 사슬은 주변 그림자를 일부 조정하는가 싶더니, 그를 더욱 진한 음영 속으로 묻어 주었다.

그 와중에 어느새 [펌핑] 스킬이 해제됐고, 그림자 사슬 역시 갑주의 형태에서 평범한 복장으로 변화했다.

그렇게 바닥을 한참 구르고 나왔을 땐?

“젠장!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거야?”

“찾아! 당장 찾으라고.”

“빌어먹을, 안개 안 치우고 뭐 해.”

“하… 당했다!”

먼 길 달려왔던 수많은 요원들이 허탈한 모습으로 안개 속을 헤매지만, 이미 그즈음 마루는 전장의 외곽, 저격 라인에서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푸후우우우….”

그는 갑주와 가면에 숨어 있을 땐 드러나지 않던 초췌한 몰골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몸을 빼느라 각종 스킬을 뽑아내며 전력으로 질주하다 보니, 내상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다른 저격수들이 깜짝 놀라서는 한마디 하려 다가오다가, 이내 하얗게 질린 안색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그만큼 상태가 안 좋아 보였던 것이다.

이들 배려 덕분에 맘 놓고 한숨 돌린 마루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재차 이동했다.

그만의 저격 포인트를 잡기 위함이었는데, 제법 그럴싸한 자리는 이미 상당수가 선점하고 있던 터라, 좀 더 길게 이동을 거듭했고, 어느새 비각성자 라인까지 넘어와 있었다.

비각성자 사이에 남다른 유명세를 지닌 탓일까?

몇몇 헌터들이 대번에 그를 알아본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을 걸어오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 사이에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 마루는 저격을 준비했다.

“푸후우우우우….”

그리고 시작된 백발백중의 신들린 저격 쇼!

“미쳤다!”

“와… 저게 가능해?”

“B급 A형 정마루.”

“멋지다!”

주변 헌터들의 감탄사를 적당히 즐기며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길 한참, 어느새 대격변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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