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게임?
#12. 게임?
마루의 모친, 이미자 여사는 대격변에 관한 기사를 보다 현기증을 이는 걸 느껴야만 했다.
[한국의 영웅들]
이런 제목으로 올라온 기사였는데, 거기에 대문짝만하게 찍힌 마루의 사진이란, 혈압의 불균형을 가져오기 충분한 컷이었다.
바로 코앞에서 발생한 것도 아닌,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대격변이었다.
그런 위험한 현장에 아들이 있던 것이다. 애초에 헌터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도 좋지 않게 봤었던 터라, 그 심란한 마음을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지가 무슨 랭커도 아니고.”
B급 헌터가 됐다지만, 그 정도로는 대격변의 현장에선 명함도 못 내밀었다.
이번 대격변의 가장 큰 공백지가 어디던가. 바로 B급 헌터 라인이었다. 경력과 실력이 맞물리는 적정선이다 보니, 대격변과 같은 대사건에서 가장 많은 희생이 발생하는 라인이기도 했다.
집계되고 있는 만 단위의 희생자도 그 대부분이 B급 헌터였다.
마루 역시 그 ‘사망 라인’에 걸쳐 있는 헌터가 아니던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들의 각성 스킬이었다.
저 멀리 후방에서 손가락만 까딱일 수 있는 저격수라는 점 덕분에, 가까스로 심장이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그녀는 헌터들의 귀국 소식에 바쁘게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새삼 아들의 인기를 실감해 버렸다.
“건어택도 이번 비행편으로 오는 거 확실하지?”
아들의 이명이 수시로 언급되는 터라,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야 말았다.
“어! 이선희와 같이 귀국한다더라.”
“같은 길드 소속이라서 그런가?”
“아니. 그런데 혜성에선 얼음여제 한 명으로 퉁친 거 아니었나?”
“듣기로는 혜성이 아니라, 존슨 때문에 움직인 것 같던데.”
“하긴, 제로 원과 건어택은 의형제니.”
“이반나가 한국에서 사라진 시기에 건어택도 사라졌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 제로 원 사망설에 맞춰서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많더라.”
“그거 관련해서도 질문 목록에 박아 놔야지.”
“일단, 이선희가 1순위인 건 확실하고, 다음으로 건어택 인터뷰 확실히 따야 되는 거 알지?”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는 가운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노라면, 이선희 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게 바로 아들의 이름이었다.
존슨과의 연결 고리 때문일까?
이번에 대단한 활약을 했던 이선희와 비교해도 그리 부족하지 않을 만큼, 수많은 기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동네 지인들에게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한바탕해 주려고 왔던 길이지만, 결국 공항 바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괜히 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는데, 그러면서 따로 문자를 찍었다.
[주차장에서 아빠랑 기다릴게.]
나름 아들을 배려한 행동이었는데, 그 같은 인내심이 끝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엄마~! 아빠~!”
기자들을 적당히 상대하고 난 뒤, 태연히 다가오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찌나 환하게 웃는지 괜히 울컥하는 심정과 함께 손바닥이 움직였다.
짜악!
“에라, 이 화상아!”
그렇게 등짝 스매싱과 구레나룻 트위스트가 이어졌다.
“크흠! 반대쪽은 내가 맡지.”
부친도 합세하며 반대쪽 구레나룻을 비틀었다.
“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성이 주차장 가득 울려퍼졌다.
* * *
―애들 좀 부탁할게.
레베카는 그 같은 이유로 인해 ‘호위’라는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마루를 따라가지 못했다.
마루의 동거인이 대단한 실력자라 그녀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상태가 좋은 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그녀도 귀여워하는 탓에, 발목이 잡히기엔 충분했다.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없고, 그저 먼발치서 지켜본 정도였지만, 마루가 소중히 여기는 대상이다 보니, 항상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한국에 남았고, TV로 격변의 현장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아이언슈트!
그게 마루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었다. 마루에게 저 비슷한 모습이 있는 걸 알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랭커로서 등장할 줄이야.
하지만 이내 지켜보면서 마루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격변이 끝난 뒤, 그에게서 날아든 문자가 그녀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슬슬 준비하자.
무엇을 말하는 걸까?
‘리튜브!’
저 말도 안 되는 능력자가 세상을 향해 기적을 뿌리려고 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 스스로도 기적의 편린을 엿보고 또 맛본 만큼, 입술이 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계정의 안전성을 더 높여야 돼!’
이미 충분한 방화벽을 세웠지만, 그 정도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스타트를 끊기 전, 조금이라도 더 복잡하게 꼬아 놔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알고 있는 모든 요원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 * *
어쩌면 이번 대격변은 화려한 데뷔전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긴 세월 침묵해 왔던 만큼, 이제는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제법 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마음을 꾸욱 억눌렀다.
이에 스승이 물었다.
“괜찮냐?”
“속이 좀 쓰리긴 하네요.”
스승이 실소하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레오 리마리오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었을 텐데. 아깝게 됐구나.”
만약, 이번에 제대로 데뷔전을 치렀더라면, 부친이자 WHA의 3대 회장의 그림자를 이참에 확실히 지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의 행동에 많은 제약이 걸릴 확률이 높았다.
“아직은 좀 더, 비등록 헌터로 남아 있고 싶네요.”
대격변에서 활약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몸을 숨겨 가며 현장을 뛰었다.
스승, 데일이 물었다.
“등록이야 진작 했잖아?”
“등급 갱신은 안 했으니까요.”
레오의 말에 데일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냐?”
“다 아시면서.”
“기왕이면 직접 듣고 싶어서 그렇지.”
“그를 찾아가려고요.”
대답을 하던 중, 레오가 슬쩍 시선을 보내오는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읽은 듯, 데일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나도 같이 가고 싶기는 한데, 알다시피 날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들이 워낙 많아야지.”
그러며 데일이 말했다.
“한국, 괜찮은 나라야. 나도 예전에 존슨 따라서 몇 번 갔던 적 있는데, 먹을거리도 풍부하고 볼거리도 많더라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존슨도 그랬지만 데일 역시 한국에는 제법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기왕 가는 거, 간만의 휴식이니까 제대로 즐기다 와라.”
“놀러 가는 거 아닙니다.”
데일도 잘 아는 바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가볍게 이야기를 풀었다.
“괜히 어깨가 무거우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야. 적당히 힘 좀 빼고 움직여.”
그러면서 제자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잘 다녀와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레오는 스승의 배웅을 뒤로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 * *
귀국 후, 마루는 한동안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어설피 기자들을 피해 다녔다간 불필요한 파파라치만 늘기 때문일까?
적당히 약속을 잡아 준 뒤, 일정 부분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 것이다.
짧게나마 유명세로 시달리며 쌓인 노하우였다.
“그럼, 제로 원의 사망설은 정말이었다는 거네요?”
기자의 물음에 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알 만큼 아시는데, 굳이 거짓말해서 뭐 하겠습니까.”
존슨에게도 허락받은 내용이니만큼, 마루는 적당히 이야기를 풀어 줬다.
“뭐,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고, 대충 죽다 살아났다고 해 둘게요.”
“조금만 더 들을 순 없나요?”
“알다시피, 존슨이 그런 위험 지역에서 워낙 많은 활동을 하잖아요. 이번 대격변도 사실은 좀 더 일찍 터졌어야 했는데, 존슨 덕분에 시간을 끌고, 격변에 대한 대처도 빨리할 수 있던 거죠.”
“시간을 끄는 와중에 사망설이 돌았던 거군요.”
“뭐… 대충 그렇죠.”
기자는 좀 더 깊은 내용을 듣고 싶었지만, 적정선에서 커트를 하는 마루의 태도에, 결국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괜스레 좋은 분위기가 흐려질 수 있음에, 질문의 선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간 김에 대격변도 치르고 온 거죠.”
그렇게 얼마나 더 질의응답의 시간이 이어졌을까. 슬슬 약속된 시간이 끝나 갈 즈음, 기자가 아껴 뒀던 질문을 꺼내 들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마루 헌터님이 생각하는 최강의 헌터는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인디안 존슨!”
조금쯤은 당황하며 주저하는 기색을 보일 줄 알았건만, 너무도 단호하게 답을 해 버리니, 오히려 질문을 던진 기자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굳이 이유 같은 거 없습니다. 그냥 인디안 존슨이 최강입니다. 제 말에 반박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관련한 문제로 말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랭커들은 다 알걸요. 그들도 인정할 겁니다. 인디안 존슨. 그가 최강입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라면, 마루 역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레귤러 앞에서 사일론과 맞붙던 모습을 본 이상, 최강자란 단어는 존슨 한 사람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뜻밖의 문답으로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자리가 정리될 즈음, 문득 기자가 그를 향해 명함을 내밀었다.
이미 한 차례 받았던 명함을 또 주는 이유가 뭘까?
마루가 의아해서 기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기자가 묘한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제 개인 번호예요.”
기자는 상당한 미모의 ‘여성’이었다.
“어… 음….”
마루가 당혹감을 드러내는데, 이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대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탓도 컸다.
그들은 카페의 한 공간을 빌려서 인터뷰 중이었는데, 창문 너머 바깥으로 있어선 안 될 얼굴을 발견한 까닭이었다.
강하나!
그녀가 조용히 엄지를 든 뒤,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 * *
인터뷰가 끝난 뒤, 바로 데이트라도 할까 싶어서 단야 대장간 근처에서 약속을 잡은 것인데, 설마 이런 식의 변수를 낳게 될 줄이야.
강하나의 서릿발 같은 음성이 마루의 고막을 두드렸다.
“내가 전에 말했지?”
“아니. 오해라니까.”
“바람피우다가 걸리면 뒤진다고.”
“좀 전에는 내가 아니라 상대편에서….”
화르륵 타오르는 그녀의 불길에 마루가 진정 억울하단 얼굴로 변명거릴 늘어놓지만, 강하나는 비릿한 미소를 날리며 핸드폰을 보여 줬다.
‘…어?’
거기에는 헤벌쭉한 얼굴로 여기자를 훔쳐보는 웬 변태남이 찍혀 있었다.
“날 닮은 이분은 뉘신지?”
“본인이시다!”
그녀의 가혹한 맴매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루는 새삼 이번 사태를 일으킨 문젯거리를 떠올렸다.
왜 자꾸 폭력적인 미드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걸까?
“표정!”
하필이면 그게 또 강하나에게 걸려 버렸다. 울상을 짓는 와중에 헤벌쭉 풀어지는 표정이란, 뭘 생각하고 있는지 한눈에 그려졌다.
“아악! 악! 아아악!”
강하나의 인디안 밥에 마루의 등허리가 휘었다.
* * *
가까스로 분위기가 정리된 뒤, 강하나가 물었다.
“갑자기 데이트라니. 뭐야?”
“아니, 사귀는 사이에 이상할 건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강하나는 그런 빤한 대답으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요 며칠 사이에 매일처럼 찾아오는데, 당연히 이상하지.”
이전에는 주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정도만 만났었던 만큼, 더더욱 지금의 페이스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마루가 잠시 주저하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한동안 바쁠 예정이라서, 미리 데이트하는 거라고 하면… 맞으려나?”
그 말에 강하나가 세모눈을 떴다.
“이유가 뭔지에 달렸지.”
이에 마루가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인데, 그 같은 기색을 읽었는지, 강하나가 재차 불꽃을 피워 올리며 말했다.
“구라 치면 뒤진다!”
앞서 등허리가 휘던 고통을 떠올린 듯, 마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게임 좀 하려고?”
빠악!
진실을 말했건만, 주먹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