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88화 (188/325)

#13. 리튜브.

#13. 리튜브.

이선은 아련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에 든 쪽지를 바라봤다.

‘이걸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거기에는 아무 내용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애초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쪽지 자체에 의미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가 서로 마음을 확인하던 날,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데이트 날, 그들이 마지막으로 쥐었던 쪽지였다.

음식집 혹은 여러 관광 명소 같은 곳에 하나쯤 마련된 것, 일종의 메모장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그것, 이 쪽지도 그런 종류였다.

[우리 관계를 확실히 하고, 그때 와서 적을게.]

헤성 그룹과 태호 그룹, 각자 집안 그리고 길드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던 무렵이었던 터라, 어설피 메시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좋은 공간 찾아서 백지 포스트잇을 남겨 두고 왔었다.

[미리 찜해 놓는 거야.]

하지만 이후 사건이 터지고, 강만기의 수작질에 의해서 결국 한국을 떠나야만 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쪽지는 백지 그대로 남겨졌고, 또 버려져야만 했다.

‘이거… 설마?’

접착력도 떨어진 데다가 종이의 해진 느낌으로 봤을 때, 그 무렵 당시의 쪽지를 간직하고 있던 것 같았다.

‘이걸 간직하고 있을 줄이야.’

놀랍기만 할 따름이었다.

‘내게 준 이유가 뭘까?’

떠오르는 바가 있긴 했다. 하지만 마냥 긍정적이란 생각으로 수차례 생각을 달리하며, 새로운 방향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론은 하나로 이어졌다.

‘…기회를 주는 건가?’

과거, 그가 하지 못했고 할 수 없었던 일, 쪽지를 채워 넣을 기회를 준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입술을 잘게 씹은 그가 조심히 그리고 소중히 전달받은 쪽지를 품에 넣었다.

* * *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실버… 박사?”

강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루를 바라봤다. 이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PP를 하는 건, 놀려는 게 아니라 실버 박사의 유지를 제대로 계승하기 위해서야.”

어찌나 놀랐던지 강하나는 한동안 벙찐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가출한 멘탈이 돌아오기까지, 마루는 얌전히 곁을 지키며 기다려 줬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밝힌 건, 그냥 그러고 싶단 생각에서였다.

여의주에 관한 부분까진 밝힐 수 없겠지만, 실버 박사에 관한 부분은 알려 주고 싶었다.

여의주는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로 정해 놓은 것이지만, 실버 박사의 유산은 이야기가 달랐다. 결국 언젠가 밝혀지게 될 내용이니만큼, 일찌감치 알리고자 한 것이다.

‘언젠가 알려질 거, 내가 직접 말하는 게 낫겠지.’

물론, 마루와의 연관성에 대한 부분이 세상에 전파될 확률은 낮겠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이 정도 비밀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일까?

“그래서 PP에서 3차 전직을 해야 된다는 거야?”

들려줬던 내용을 되새기며 묻는 그녀의 모습에 마루가 재차 고개를 끄덕여 줬다.

“실버 박사님이 PP에 남겨 놓은 유산을 확실히 체감하려면 어쩔 수 없어.”

“…3차 전직이 쉬운 게 아닐 텐데. 일은 어쩌려고.”

마루의 말을 의심할 법도 하건만, 그녀는 너무 쉽게 그의 이야기를 믿어 주고 있었다. 이에 오히려 마루가 의아해서 물었다.

“헛소리라는 생각은 안 해?”

“미친 소리 같지만, 널 믿으니까. 개소리도 한번 믿어 보려고.”

그녀는 오랜 시간 마루를 짝사랑하며 관찰해 왔다. 그 때문에 그의 눈빛 표정 태도나 몸짓 등에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이 유독 발달해 있었다.

그런 감각이 마루의 진심을 전달해 줬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생명의 불꽃]

앞서, 마루에게 전수받은 연공법을 꾸준히 시행해 온 결과, 그녀는 최근 작게나마 성과를 얻고 변화를 실감하는 중이기도 했다.

실버 박사의 이름이 나왔을 때, 마냥 벙쪄 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교차했는데, 거기에는 연공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버 박사의 유산이라면. 그 특별한 체조도 납득이 돼.’

게다가 대장장이 기술을 연마하며, PP가 지닌 신비를 직접 실감한 경험도 상당했다.

그 모든 것들이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가려 준 것이다.

“그래서, 일은 어떻게 할 거냐고?”

“계약해 놓은 것도 있고, 맡아야 할 것도 있으니까. 빠질 순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으로 제한하려고. 3차 전직 전까지는 정말 빡세게 PP에만 집중할 생각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루는 남들과는 다른 스탯과 스킬 등으로 무장하고 있단 점이었다.

일반적인 유저였다면 올 한 해, 오로지 PP에만 올인하더라도 3차 전직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나, 마루는 충분히 가능성을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쁘면 당장 시작해야지.”

강하나의 이야기에 마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따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그거 정리하기 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그 시간 동안 미리 데이트를 하는 것이라며, 슬며시 팔을 내미는데, 이를 본 강하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요. 마님!”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루의 애교 섞인 표정과 눈빛 앞에 실소를 뱉고야 말았다.

“징그럽게 굴기는.”

그리 말하면서도 결국 마루의 팔에 팔짱을 끼우고 있었다. 이에 히쭉 웃어 보인 마루가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레이디?”

“비싸고 좋은 데.”

이에 마루의 시선이 슬쩍 저 멀리 높은 건물로 향하는데, 강하나가 세모눈을 뜨며 마루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으억!”

비명을 내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마루의 모습에 강하나가 한마디를 던졌다.

“하여간 까져 가지고는.”

마루가 바라봤던 건물,

HOTEL!

근방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장소긴 했다.

* * *

리튜브에 올릴 연공법을 정리하기 위함일까?

마루는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좀 더 스킬을 연구하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PP를 접속하더라도 레벨 작업이 아닌, 스킬 관련한 정보 조사를 위해, 도서관을 이용하는 정도에서 그칠 뿐이었다.

3차 전직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 오로지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혜성에서 맡은 역할이 있다 보니, 오직 게임에만 집중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리튜브와 관련해서는 미리 세팅을 할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많은 연구를 했는데, 레베카와 계정을 논하던 무렵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나름대로 꾸준히 고민을 해 왔던 터라, 나름대로 제법 진척이 있기도 했다.

무작정 연공법을 올린 뒤, 이를 익히라고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사실, 그게 마루 입장에서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허투루 일 처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실버 박사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그의 유지까지 이은 만큼, 어설피 하고 싶지 않았다. 박사의 숭고한 정신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마음이 컸다.

이를 위해서 많은 연구를 거듭했는데, 그 와중에 도서관을 자주 찾은 이유는 각 연공법의 역사를 알기 위함이었다.

연공법 자체적으로 관련 역사가 나열된 것도 있지만, 따로 조사를 해야 하는 것도 상당하기 때문인데, 이를 조사하는 건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어떤 사람이 만든 연공법인지 파악하기!]

그 부분을 통해 리튜브에 올릴 연공법에 어울리는 사람들의 목록을 따로 지정해 주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게 100% 맞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조금이라도 더 입맛에 맞는 선택권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 때문에 다양한 공부도 병행 중이었는데, 거기에는 각 사람의 체형이나 체질 등과 관련된 것들도 상당했다.

간단히 예를 든다면?

‘태양, 태음, 소양, 소음….’

사상 체질을 비롯하여, 혈액형별로 구분되는 체질법 등, 다각도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개중 하나만 던져 놔도 뇌리가 터질 것처럼 고심했을 것이건만, 남다른 지능 스탯의 영향인지, 별다른 막힘 없이 각 내용들이 뇌리에 박혀 들고 있단 점이었다.

그 많은 자료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섞이고 또 구분되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거기서 정신력 스탯이 지원하며 정보의 혼선을 막아 줬다.

또한 체력 스탯은 이를 뒷받침하며, 쉼 없이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줬다.

그렇게 여러 스탯의 지원으로 빠르게 연구를 거듭하며 결과를 뽑아냈고, 나름대로 각 체질이나 체형 혈액형별로 어울릴 법한 기본적인 연공법의 구분을 나눴다.

단순하게 연공법을 올린 뒤, 배우고 익히는 거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연공법 간의 상성 작용을 이용해서, 마치 PP의 전직 시스템처럼, 현실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끌어내는 것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스킬도 진화를 하니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긴 하나, 마루처럼 멀티 스킬을 얻는 이들도 발생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스킬 진화를 통해, 한층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서 헌터 전력이 부쩍 상승한다면 어떻게 될까?

“로그인 더 헌터….”

실버 박사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는 말, 마루는 이를 입 안에 굴리며 지난 대격변의 현장을 떠올렸다.

무수히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시산혈해(屍山血海)!

그 참혹한 현장을 보고 난 뒤, 실버 박사의 유지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박사의 꿈이 실현된다면?

그 현장의 희생을 반절, 어쩌면 반의 반절까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선택받은 일부의 사람이 아닌, 전 국민,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격변의 순간을 대비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 어쩌면 더 큰 위협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받았다.

‘마계 대공 사일론!’

존슨을 통해 관련한 정보를 들었고, 뿐만 아니라 마족과 마계에 대한 기본 정보도 머릿속에 새겨 놨다.

그 위로 실버 박사의 정보가 뒤섞이니, 이번 대격변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해일과 폭풍 등이 몰아칠 거란 예감을 받았다.

[로그인 더 헌터!]

실버 박사의 입버릇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을까?

묘한 중압감이 마루의 어깨를 짓눌러 왔다.

* * *

지난 대격변의 영향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언슈트를 만들어 보았다!]

[현실판 벌크버스터가 되었습니다.]

[내가 진짜 아이언슈트?]

[제작부터 착용까지. 아이언슈트!]

수많은 리튜버들이 최고의 화젯거리였던 아이언슈트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그야말로 미디어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서 활활 타오르고 튀겨지는 중이었다.

여러 능력자가 탄생하고, 던전 물품이 쏟아지며, 관련한 아이템이 제작되는 시대였다.

헌터들의 장비 제작 능력을 발휘한다면, 영화 속 아이언슈트를 똑같이 흉내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실, 외형적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지난 대격변의 영웅, 아이언슈트보다 더 뛰어난 물건도 상당했다.

―와… 마석이 아니라, 마정석 때려 박아서 만든 물건이라고?

―정말 억 소리가 나네.

―레이저까지 쏘잖아.

―저 정도면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로 헌팅 장비네.

―댓글 보면, 구입 의사 밝히는 헌터들이 잔뜩 있던데.

―가격이… 레알 천상계네.

영화 속 아이언슈트를 완벽 재현하는 건 일도 아닌 시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오히려 대격변의 영웅 아이언슈트는 어설픈 면이 있을 정도였다.

당장, 얼굴을 가렸던 가면만 하더라도, 조잡한 장난감 수준이지 않던가. 갑주도 아이언슈트의 포인트만 살려 놨을 뿐, 오히려 일반적인 갑옷에 가까운 형태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차별점을 오히려 띄우면서, 어설피 따라 하는 형태로 이슈를 만드는 리튜버들도 상당했다.

그런 무수히 많은 아이언슈트들 영상 사이로, 새로운 영상 하나가 업데이트됐다.

신규 계정이었고 관련해서 워낙 많은 리튜버들이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던 터라, 그리 큰 관심을 받긴 어려웠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오우거와 팔씨름을 해 보았다.]

자극적인 제목 때문일까?

클릭… 클릭….

관심도는 빠르게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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