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South Korea?
#15. South Korea?
혹시? 어쩌면? 하는 생각이 있긴 했다.
“그런데 정말로 이렇게 대놓고 풀어 버릴 줄이야.”
데일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아이언슈트의 영상을 바라봤다.
세계는 지금 이 영상으로 인해서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이게 진짜냐 가짜냐를 놓고 말들이 많기도 했고, 갑자기 이런 걸 알려 주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한가득이었다.
―이걸 배우면 정말로 각성할 수 있는 거야?
―아무리 봐도 평범한 체조인데.
―평범하다고 볼 순 없지.
―자세마다 호흡 조절하는 것까지 따라 해야 하니까.
―동작만 놓고 보면 단순한데, 호흡을 섞으니 좀 복잡하긴 하네.
―호흡도 매번 달라. 어디서는 길게 또 어디선 짧게, 4번 쉴 때도 있고 3번 쉴 때도 있고, 어우 머리 아파. 이걸 다 외워야 한다고?
―그래도 각성만 할 수 있으면, 전부 외운다.
―수능 공부보단 쉬운 듯.
―한다!
―체질이나 혈액형별로도 구분해 놨다던데.
―이거 보면서 배울 거 선택하라더라.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베스트겠지?
―이것저것 들쑤시지 말고, 하나 찍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라고 했으니까. 괜히 다른 것까지 죄다 배우려다가 허탕 치지 말자.
―그래서 이거 배우면 각성할 수 있는 거 맞냐?
―몰라! 존슨 믿고 간다!
―제로 원의 형제니까. 나도 한번 믿어 본다.
의심을 하는 이들도 상당했지만, 그 이상으로 믿어 보자는 분위기가 가득한 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걸어 보기 위함이리라.
격변 이후의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꿈꾸며 바라는 것, 그게 바로 각성이며 능력이었다.
헌터를 하건 안 하건, 일단 각성이라는 걸 하고 싶은 게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돌발 게이트를 비롯하여 갑작스러운 몬스터 출현 앞에, 별 힘도 써 보지 못한 채 도망하고 또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힘을 지니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이다.
그게 각성이며 능력이었다.
존슨이 등장하며 아이언슈트의 진위 여부는 가려진 상황, 거기에 더해 무려 랭커가 올린 각성의 길이었다.
특히, 그 어떤 헌터들보다 특별한 헌터였다.
멀티 스킬!
어쩌면? 나도? 각성을 넘어 다중 스킬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과 기대감이 하루가 다르게 부푸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굳이 내가 지원 사격을 할 필요도 없겠군.’
아이언슈트 화제는 이미 한껏 들끓는 중이었다. 굳이 그가 보태지 않더라도 충분한 화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좋은 흐름이야.”
데일은 그리 말하며 마루가 올린 영상들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돌려 봤다.
그러며 반성했다.
‘후… 괜히 비교되는군.’
생각해 보면 그 역시 레오를 통해 특별한 비전을 획득하지 않았던가.
물론, 레오와 같은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에게 어울리는 비전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 역시 비각성자를 각성자로 만들어 주는 공부가 아니던가.
그와 달리 레오는 육체파 천재이긴 했지만, 각성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각성하고 멀티 스킬까지 획득했으니, 분명 비각성자를 위한 특별한 공부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는 이걸 ‘거래’의 대상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유라면 많았다.
첫째, 언급했듯이 레오와 같은 재능을 지니지 않았다면, 쉬이 익힐 수 없다는 점.
‘길드에게 재목들을 내놓으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마루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니, 그냥 대놓고 풀어 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면 세계 곳곳에 숨겨진 재목들이 알아서 보고 깨우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버렸다.
‘쉽지 않지.’
여기서 두 번째 이유가 나온다.
아드리안 데일!
그가 WHA의 2대 협회장이라는 점이 행동에 제약을 거는 것이다. 24시간, 365일 그를 주시하고 있는 수많은 눈길에 의해, 행동 자체에 많은 제약이 걸려 있었다.
레오를 마치 면벽하듯 가둬 놓고 가르친 이유도 저 많은 시선 때문이 아니던가.
그를 견제하는 건 실로 많았다.
WHA는 그로 인해서 지금의 규모를 이뤘다고 봐야 하는 만큼, 그에 어울리는 규모의 악연들이 세계에 즐비한 것이다.
게다가 세 번째 이유,
‘이건 좀 쪽팔리네.’
데일은 마루의 영상을 보며 슬쩍 얼굴을 붉혔다.
“다 내려놨다 싶었는데… 쯧!”
그냥 욕심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그가 한결 순수해진 눈으로 마루의 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자신의 연구 일지와 비교 분석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레오 그 녀석은 잘 지내려나?”
한국으로 떠난 제자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 * *
“브라보~! 원더풀! 서프라이즈, 마더….”
환호하며 난리 치다 욕지거리를 쏟아 내는 등, 그야말로 미쳐 날뛴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한 가지만 해라.”
이에 존슨이 타박을 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변함없었다.
“What the f…!”
레오의 모습에 존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순한 맛으로 먹으라니까. 쯧!”
괜히 삼촌 따라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그의 음식을 똑같이 주문하더니만, 결국 저 난리였다.
평범한 국밥일 뿐이지만, 외국인 입맛에는 보통 매운 게 아니었다.
‘첫 입맛은 환상적이지.’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매운 기운이 올라오면?
“으으으으….”
눈앞의 레오처럼 절규하며 신음하게 되는 것이다.
“에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존슨이 레오의 컵에 물을 계속해서 리필해 줬다. 결국에는 물통째로 입에다가 들이붓는데, 그 와중에도 기어이 국밥을 다 먹는 모습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입에는 좀 맞냐?”
“후우… 후… 후아! 다음에는 순한 거로 시켜야겠네요. 흐아아!”
다음을 언급하는 거로 봐선, 확실히 입에 맞았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오자마자 바로 마루를 찾아갈 줄 알았더니. 뭘 하고 돌아다닌 거야?”
그 물음에 레오가 스승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적당히 좀 즐기고 움직이려고요.”
그런 이유로 존슨을 찾아, 이런저런 맛집을 부탁한 것이었다. 존슨 역시 일찌감치 한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이반나 역시 한국에 넘어온 탓이었다.
던전 승급에 대한 관찰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던 터라, 이반나는 다시금 한국으로 넘어와야만 했다. 러시아에서 한국을 전담하라 한다면, 아무래도 그녀가 제격이기 때문이었다.
존슨이 레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연구다 뭐다 해서, 몇 년 동안 골방에 박혀 있었으니, 이참에 좀 쉬는 것도 나쁘진 않지.”
레오의 폐관 수련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만큼,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의 휴식기에 긍정적 반응을 내비쳤다.
“게다가 굳이 찾아가지 않더라도, 리튜브에 볼 만한 게 잔뜩 올라와 있더라구요. 한동안은 그거 적당히 따라 하고 연구하면서 휴식 좀 즐기려구요.”
게다가 대뜸 찾아가기도 민망한 감이 있어서, 적당히 시간을 들여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었는데, 존슨을 통해 넘어가는 것도 한 방편이라 여기며, 이처럼 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기도 했다.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던 존슨이 슬쩍 물었다.
“그래서 어디 어디 돌아봤냐?”
“관광 팸플릿에 나온 대로 쭉 돌아보는 중이죠.”
존슨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요 범생이 같은 놈.”
그러더니 대뜸 레오의 어깨에 팔을 걸더니 시계를 가리켰다.
“지금 몇 시냐?”
“7시 넘어가네요.”
“팸플릿에는 안 나온 관광지를 알려 주마.”
“관광지요?”
“레드 존!”
“…예?”
택시에 탄 존슨이 말했다.
“레드 유니버시티!”
* * *
쌍둥이들의 편안하면서도 쾌속한 버스 운행 덕분일까?
마루는 빠른 속도로 레벨이 오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 작정하고 레벨 작업만 할 생각이라 밝힌 만큼, 쌍둥이들도 적극 협조 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마루와의 호흡이었다.
‘아니. 우리하고 합이 맞는다고?’
‘그게 가능한 거야?’
1,000스탯을 훌쩍 넘긴 그들과 손발이 맞는다는 점에서, 마루의 캐릭터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보통 몽크가 아니었어.’
‘특수 직업이겠지?’
적어도 남다른 아이템이나 칭호 같은 게 적용되어 있을 거라 확신하는 가운데, 쌍둥이들은 틈틈이 궁금한 점 등을 물었다.
“그런데 영상, 그거 익히면 정말로 각성자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임지현의 과감한 스트레이트에 임수현이 당혹감을 드러냈지만, 마루는 개의치 않고 답해 줬다.
“각성자에게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각성자라면 언젠가 스킬을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왜?”
너희는 각성자니 신경 쓸 이유 없지 않느냐는 의미로 되묻는데, 이에 임지현이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부모님께서 익히시면 어떨까 해서요.”
헌터가 되건 안 되건, 일단 각성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 하나쯤은 지니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때문에 이처럼 관련한 의문들을 내비치는 거였다.
“부작용 같은 건 없는 건가요?”
마루 역시 가족을 위해 활력의 춤을 준비했었던 만큼,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묻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런 이유로 질문을 회피하지 않았다.
“가장 안전한 것들만 골라 놓은 거야. 걱정할 거 없어.”
상위 연공법으로 넘어가면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마저도 염두에 두면서 마치 전직 시스템처럼, 연공법별로 연계되게 시나리오를 짜는 중이었다.
“비각성자를 위해서 준비한 거지만, 그래도 익혀 두면 괜찮을 거다.”
그러면서 두 남매에게 맞는 연공법을 추천해 주는데, 이에 쌍둥이들이 의문을 내비쳤다.
“각성자한테 효과가 있나요?”
“진화나 이런 부분에 관련해선 확답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기력 떨어졌을 때 활력 보충에 도움이 되긴 할 거야.”
그러면서 또 이야기했다.
“따로 너희를 위해서 준비 중인 것도 있는데, 기왕이면 내가 말해 준 걸 익혀 두면 도움이 될 거다.”
쌍둥이들의 스킬과 어울리는 연공법을 찾는 중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심법’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건 찾기가 어려웠다.
그 때문에 자체적으로 심법을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모험이 될 수 있다 보니, 섣불리 손대려 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레오의 등장으로 인해 생각을 달리하는 계기를 얻어 버렸다.
랭커가 되면서 초감각을 획득하게 된 것도 도움이 됐다.
‘가능할지도 몰라.’
물론, 연구가 실패한다면 적당한 거로 둘러서 가르쳐 줄 생각이긴 했다. 이미 그걸 위해서 준비해 놓은 것도 있었다.
“아… 맞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나에 관해서는 주변에 말하면 안 된다. 알지?”
그 말에 쌍둥이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데, 마루가 이를 캐치하며 물었다.
“누구한테 말했는데?”
“저기… 그… 부모님께… 죄송합니다.”
임수현이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고, 임지현도 다급히 허리를 접었다.
이에 마루가 재차 물었다.
“부모님만?”
“예. 그래도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예전에 스킬 구현 초창기에 말씀드렸던 적이 있어서.”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을 한 뒤, 마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식 끝! 다시 시작해야지.”
“옙!”
“맡겨 주십시오!”
쌍둥이들이 힘차게 대답하여 일어났다.
버스 운행 시간이었다.
* * *
각국 단체의 요원들은 아이언슈트가 올린 영상을 다각도로 조사하고 있었다.
따로 IP 추적도 이어지고 있지만, 알파9, 자비드의 가드를 뚫을 수가 없었던 터라, 일단은 올라온 영상들에 더 집중하자는 의견으로 모인 것이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알아냈다.
“이거, 체질 구분법이… 사상 의학과 관련 있는 것 같은데요.”
“그게 뭐지?”
“한국이란 나라의 체질 구분법인데.”
관련한 자료들을 주르륵 언급되고, 이내 요원들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갔다.
“한국?”
“South Korea?”
그러다가 떠올렸다.
“던전 승급도 한국이었지.”
“가장 최근 몬스터 웨이브도 한국이고.”
그냥 의심을 하려다가 보니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렇게 모아 놓고 보니 또 의문이 커지는 것 같았다.
“존슨이 또 한국에 들어갔단 소식이 있었지?”
“그건 이반나 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이언슈트와 영상을 찍었잖아. 거기가 어딘지는 밝혀졌어?”
“아무래도 마굴 내부는 다 비슷비슷해서, 아직 명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보부는 이 작은 힌트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일제히 한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일단, 한국으로!”
다시금 인천공항의 항공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