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용의 계곡.
#16. 용의 계곡.
버스 효과라고 해야 할까?
[레벨 : 150]
[힘 : 260+5(+50)] [지능 : 260(+50)]
[체력 : 258+2(+50)] [정신력 : 255+5(+50)]
[민첩 : 255+5(+50)]
[스탯 : 0]
130레벨 초입이었던 마루는 단시간에 150레벨을 찍으면서, 전직의 중간 지점에 이를 수 있었다.
순수 스탯만 놓고 본다면, 이미 일반적인 3차 전직자를 뛰어넘는 수치였던 터라, 쌍둥이들의 뒤에서 서포터 하는 수준이 아닌, 그들과 손발을 맞추기에도 충분했다.
현실 속에서 랭커가 되며 3차 전직자의 스탯을 채운 덕분인데, 중간에 장비도 새로 세팅하면서, 추가 스탯도 훌쩍 뛰어 버리니, 쌍둥이들이 잡고 있던 운전대를 강탈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2.5차 전직이라고도 불리는 지점으로서, 이 타이밍에는 특수 퀘스트가 진행되는데, 쌍둥이들의 지원 없이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퀘스트였다.
‘다른 놈들은 파티로 편하게 깨는데. 하….’
그에게 부여된 퀘스트는 2차 전직을 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에게 홀로 움직일 것을 강요했다.
[카투 계곡에 전설 속 드래곤의 흔적이 있다고 하는데, 한번 조사해 줄 수 있겠나?]
신관은 그리 말하며 퀘스트를 주는데, 헛웃음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카투 계곡은 유저들 사이에서는 용의 계곡이라 불리는 장소로서, 실제로 다양한 용족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와이번들이 종류별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 그 골치 아프다는 드레이크마저 둥지를 틀고 있을 정도였으며, 놀랍게도 실제 드래곤의 흔적도 남아있기도 했다.
‘미치겠네. 여길 어떻게 혼자 깨냐고.’
3차 전직자도 몸을 사리는 게 용의 계곡이었다. 그들도 파티도 들어오는 장소를 혼자 들여보내다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하아….”
주저함 끝에 결국 안으로 발을 들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캬아아아아악!
얼마 진입하지도 않았건만, 아찔한 피어와 함께 머리 위를 뒤덮는 그림자가 있었다.
‘와이번!’
다른 던전이나 필드에선 보스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가, 마치 문지기 같은 느낌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거의 ‘개 조심’ 수준으로 사납게 외치며 바쁘게 뛰쳐나오는데, 골 때리는 건 그림자의 두께였다.
‘몇 마리야?’
두툼하니 그의 주변을 휘감고 있는 그림자의 규모를 보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푸르른 창공이 꺼멓게 보일 정도였다.
‘초입부터 이 정도니.’
150레벨 구간의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3차 전직자들도 치를 떨 수밖에 없는 건, 전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마치, 그의 기를 죽이려는 듯, 수십 마리의 와이번이 하늘 위에서 빙빙 돌며 대지를 얼룩덜룩한 그림자로 채워 넣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루가 숨을 고르며 자세를 잡았다.
‘일단 선빵이지!’
[사신 변환 ― 청룡]
그의 양손이 바쁘게 허공을 휘저었다.
“어딜 깔아 보고 있어. 당장 내려와!”
파파파파파팡….
무수히 많은 장풍이 하늘 위 와이번들을 두드리는데, 워낙 빼곡하게 채우고 있던 탓인지, 대충 쏴 대도 맞고 떨어지고는 했다.
하지만 바라던 만큼 많은 숫자를 끌어내릴 수는 없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날렵한 와이번들의 비행 능력 때문이었다.
그의 공격에 분노한 와이번들이 입을 쩍 벌리는 게 보였다.
‘충격파!’
워낙 많은 와이번들이 쏟아 내는 충격파인 탓일까?
나름대로 피한다며 몸을 굴려 봤지만, 결국 머리 위로 충격파를 받아 내야만 했다.
[사신 변환 ― 현무]
그 상태로 쏟아지는 충격파를 받아 내는 한편, 방어보단 돌진을 선택하며 움직였다. 한 번 다리가 굳어 버릴 경우, 저 많은 와이번들의 집중 포격이 이어질 터였다.
그리되면 마루의 방어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었다.
[사신 변환 ― 주작 ― 현무]
그는 변환기를 연계하며 주작의 기운을 끌어 올린 뒤 현무로 넘어갔다.
[주작의 신물 : 서리불꽃]
이번 대격변 사태에서 존슨에게 건네받은 신물이었다.
저 드높은 만년설 속에서 오랜 시간 잠들었던 탓인지, 특수한 명칭을 지니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뜨거운 열기 한편으로 차가운 한기를 흩뿌리며,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신물을 새로 추가하면서, 사신 변환에도 새로운 업데이트가 이뤄졌는데, 빠른 레벨업과 성장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사신 변환의 연계기까지 늘어난 것이다.
회복력 상승효과가 있어서 전투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이 스킬의 연계기가 이뤄질 경우, 색다른 효과가 추가되고는 했다.
[공중 부양]
바로 허공을 뛰어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몸을 띄운 뒤 현무를 앞세우며 와이번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신 변환 ― 청룡]
근거리에서 때려 박는 장풍은 놈들의 날렵한 몸놀림으로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흔들리게 만든 뒤, 바짝 달라붙어서 힘으로 찍어 누르길 반복했다.
퍼억! 퍼! 뻐어어억!
놈들의 품 안으로 파고드니, 일순간 당황하며 충격파를 자제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이내 자신들의 피해가 커지는 걸 보며, 다급히 충격파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상황 판단이 남다른 녀석들이다 보니, 동족이라 해도 빠르게 버리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캬아아아아악!
캬아아악!
그렇게 하늘 위, 요란한 비명이 울려 퍼지길 한참.
“후욱… 훅… 후우우욱….”
수십 마리의 와이번은 전부 추락하며, 저 차가운 대지 위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산화하기 시작했다.
한둘도 아니고 무려 수십의 와이번이었다. 거의 100마리에 가까웠던 만큼, 마루의 남다른 스탯과 스킬로도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부상도 꽤 입었지만, 이 부분은 금세 해결됐다.
[사신 변환 ― 주작]
연공법 이상으로 빠른 회복력을 자랑하는 스킬이 있기 때문인데, 대신 부상도에 따른 MP 소모가 크다는 게 단점이었다.
이를 사용하고 있노라면 절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림자 사슬과 연계해서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장난 아니겠네.’
몬스터들의 재생력을 갈취한 뒤, 주작의 회복력과 중첩시킨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전투도 가능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패가 늘어나는 건 여러모로 흥겨운 일이었다. 이를 상상하며 잠시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상황은 그를 편히 두지 않았다.
크워어어어어….
캬아아악!
상념에 빠질 틈도 없이 터져 나오는 포효와 함께, 무수히 많은 용족의 몬스터들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용의 계곡은 굳이 분류하자면 필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던전으로 분류하고는 하는데, 이는 내부로 들어오면 사람 그림자를 보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었다.
마루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마치 문지기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온 와이번부터 시작해서,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여러 용족들의 물결이란, 어지간한 유저들도 학을 떼며 돌아가게 만들고는 했다.
어찌나 지독한지, 누군가는 몬스터 웨이브에 비교할 정도였는데, 저 거센 물결 때문에 파티 사냥을 하더라도 드랍템을 챙길 여유도 없을 정도였다.
상대가 용족이다 보니 쓸 만한 아이템이 제법 드랍되긴 하지만, 손에 쥘 여유를 주지 않으니, 유저들도 학을 떼며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주장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 말대로 희생을 감수한다면, 가끔 대박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마루는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자세를 갖춰 잡았다.
‘리저드레이븐!’
도마뱀을 닮은 몬스터, 리저드맨의 상위 개체로서 좀 더 용형에 가까운 얼굴을 한 인간형 몬스터들이었다.
머리에 뿔도 달도 있었는데, 저 뿔의 숫자를 통해 놈들의 지위나 계급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뿔이 없으면 일반병, 하나가 전사, 둘은 대전사와 주술사, 셋부터는 족장급이며, 넷이 대족장이고, 다섯이 로드라고 불리는 놈들이었다.
‘와… 시작부터 3뿔?’
게다가 주변을 에워싸는 놈들도 죄다 뿔 하나씩은 달고 있었다. 일반병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러니 용의 계곡이 족 같다는 거지.’
초입부터 이렇게 하드하게 달리는데 누가 찾아오겠는가.
“하… 느낌이 싸한데.”
왠지 퀘스트를 한 방에 깰 수 없을 것 같단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 *
현재 세계적으로 핫한 나라를 살펴보라고 한다면, 두 개로 압축할 수 있었다.
브라질과 한국!
먼저 브라질의 경우, 최근 대격변으로 인해 산타카타리나가 공략 대상이 되며, 수많은 헌터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격변이 지나고 나면 사건 발생지는 거대한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참에 산타카타리나 내부를 정리하려는 의도로, 브라질 정부 차원에서 많은 헌터들을 불러들이는 중이기도 했다.
물론, 그 넓은 영역과 짙게 깔려 있는 마기 등을 살펴봤을 때, 산타카타리나 마수지대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마굴의 규모를 절반가량으로 압축시키는 건 가능할 터였다.
누군가는 마수지대가 돈이 된다고도 하지만, 국가에서 통제할 수 없는 규모라면, 오히려 독만 될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브라질은 이번 기회에 산타카타리나를 완벽히 수중에 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네임드급 헌터와 길드를 끌어들이다 보니, 이래저래 자금 소모가 심했지만, 성공만 한다면 마굴에서 나오는 수많은 부산물들이 상황을 해결해 줄 터였다.
앞서 대격변의 현장에서 얻어 낸 부산물이 상당하긴 했지만, 그 대부분이 희생 헌터의 가족에게 돌아갔고, 남은 것도 여러 헌터 및 길드에 의해 조각조각 찢어져 분배됐을 뿐이었다.
대격변을 무사히 막아 냈다!
그 같은 기삿거리만이 브라질에게 허락된 전부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 기회를 통해 산타카타리나를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는 브라질, 그리고 이전부터 한참 달궈지고 있던 나라, 한국!
던전 승급이란 기현상으로 인해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곳에 헌터가 찾아드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내 여러 길드 및 단체에서는 긴장감을 바짝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갤럭시안, 자이로, 바이트, 라이데인….”
“죄다 월드 클래스급 길드잖아?”
“그 많은 단체에서 요원들을 보냈다고?”
“이유가 뭔데?”
각국의 최상위급 길드, 한국으로 치자면 혜성과 견주거나 그 윗줄이라 알려진 여러 단체에서, 각기 네임드급의 요원들이 한국으로 들여보낸 것이다.
당연히 혜성을 비롯한 한국의 터줏대감들이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급히 관련해서 정보를 뽑아내는데, 그 이유가 황당했다.
“아이언슈트?”
“놈이 한국인이란 정보가 있습니다.”
“그걸 왜 이제야 알아내?”
“아무래도 해외 쪽에 연결된 단체에서 숨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놈들이? 왜?”
“아이언슈트가 워낙 뜨거운 감자다 보니… 분위기가 잡힐 때까지 일부러 감춘 모양입니다.”
지금처럼 여러 단체가 우르르 몰려들며 남의 집 안방에 멋대로 발자국을 남길 때까지, 최대한 정보를 싸매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들 분위기로 봐선, 해외 단체끼리는 나름대로 입을 맞춘 게 있단 결론까지 나왔다.
“으음….”
각 길드의 길드장들은 일제히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 와중에 먼저 칼을 뽑아 든 이가 있었다.
“개새끼도 자기 집 앞에서는 반절은 먹고 들어가는데, 우릴 상대로 이따위 짓을 한다고?”
새 간판을 걸며, 새롭게 기반을 다져 가고 있는 대형 길드.
적호!
그곳의 수장 강호구가 비서를 향해 말했다.
“혜성부터 시작해서, 옆 동네 윗대가리들한테 연락해. 한번 만나자고.”
그 음성 가득 한기가 맺혀 있었다.
* * *
단번에 끝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두 자릿수 도전까지 각오했었는데.’
마루는 스스로도 놀랍다는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용의 계곡!
그 심장부까지 다다른 것인데, 여기까지 이르는 도전 횟수였다.
‘단번에 올 줄이야.’
스스로가 생각 이상으로 강해졌다는 걸 실감하는 한편, 사신 변환 연계기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놀람도 컸다.
주작의 기운은 부상이 심각할 땐 마나 소모도 심각하지만, 부상도가 낮을 때는 오히려 마나 회복력을 높여 주는 효과가 있던 것이다.
이는 그 역시 몰랐던 사실로서, 전투를 치르면서 알게 된 부분이었다.
‘거의 무한 동력이네.’
덕분에 쉼 없이 달려올 수 있었고, 계곡의 주인이 머무는 장소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의 방문을 알아챈 것일까?
―크르르르르르….
계곡 속에서 나직한 울음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거대한 동체가 물길을 가르며 솟구쳐 올랐다.
족히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동체에 절로 압도당해 버렸다.
‘드레이크!’
현실과 게임 속, 양측에서 거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몬스터였다.
3차 전직 유저들도 일단 보이면 줄행랑을 치는 녀석이었는데, 그런 놈이 150레벨대 필드의 보스몹으로 있는 것이다.
“족 같네!”
이러니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