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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드레이크!

#17. 드레이크!

삼족오 길드의 부길드장 장태산은 한껏 흥분된 얼굴로 계단을 뛰어올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아까워서 냅다 뜀박질을 시작한 것인데, A급 각성자의 남다른 신체 능력은 그를 단번에 목적지까지 이끌었다.

길드장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던지, 살짝 호흡이 흐트러져 있었는데,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헐떡이는 모습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왔냐?”

그를 반겨 주는 얼굴이 보였다.

삼족오 길드장 김수호!

장태산은 요란하게 펄떡거리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물었다.

“어… 어떻게 됐수?”

이에 김수호가 히쭉 웃으며 엄지를 척 세웠다.

“만세~!”

환호성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에 실소를 흘린 김수호가 말했다.

“폐관 들어간 사이에, 난리깨나 난 모양이네. 그래도 부길드장이란 놈이, 쯧! 면도는 좀 하고 다녀라.”

장태산의 핼쑥한 얼굴에서 대략적인 답이 나왔다. 이에 눈살을 찌푸린 장태산이 꺼끌대는 턱수염을 만지며 한마디 했다.

“다 형님 때문이지. 그리고 모양새 괜찮으면 기를 거야.”

“안 돼. 염소수염이라 이방 각이야.”

“싸우자는 거요?”

“큼….”

폐관에 들어갔던 김수호로 인해 길드장의 업무까지 죄다 떠맡아야 했다. 그 때문에 이래저래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사건도 연달아 터졌으니,

“사건이라면, 아이언슈트?”

“어째 다 아는 것 같네?”

“나연이한테 좀 들은 게 있어서. 오면서 인터넷 검색도 좀 하고.”

그의 딸 역시 헌터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고 해도, 그 정도로 네가 이렇게 똥 씹은 표정을 할 이유는 없어 뵈는데.”

의문을 내비치는 그의 모습에 장태산이 상위 길드만 아는 정보들을 풀었고, 이내 김수호의 눈가에도 옅은 그늘이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슈트가 한국인일 수 있단 말이지.”

“누군지 파악하려고 우리도 애들 좀 굴리고 있는데, 답이 안 나오네.”

“그렇겠지. 그런 실력자가 이제야 등장했다는 건, 숨어 다니는 데 일가견이 있단 뜻일 테니까.”

“하… 피곤하게 됐어.”

“그나저나, 적호 길드장이 자리를 주선했다고?”

“어. 가장 먼저 혜성과 접촉한 것 같더라.”

적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혜성에 맨 처음 인사말을 건넨 것이다.

다른 길드에 동의를 구한 뒤, 그들을 이끌고 손을 내밀었더라면, 혜성은 어쩔 수 없이 그 손을 잡아야 했을 것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고, 당연히 이후 어떠한 이야기가 오가건 좋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맨 처음 혜성에게 손을 내민다?

“적호 길드장. 어린놈이라고 우습게 봤는데, 보통 놈이 아니야.”

장태산의 말에 김수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적호가 먼저 한 수 접어줬으니, 혜성도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맘에 안 들더라도 겉으로는 어느 정도 호응하는 모양새를 보여 줘야 했다.

혜성과 적호 간의 만남이면 모를까. 이번에는 여러 길드가 한꺼번에 모임을 갖는 것이다. 자제하며 겸손의 미덕을 부릴 필요가 있었다.

“형님이 나갈 거지?”

“그래야지. 그런데… 조금만 더 고생해 주라.”

“…왜?”

“폐관하느라고 지쳐서, 조금만 쉬자.”

“나는?”

김수호가 도망치듯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야! 이 씨바… @#[email protected]%….”

장태산의 성난 외침이 터져 나왔다.

* * *

용족!

놈들은 기본적으로 종 자체가 달랐다.

몬스터라는 게 애초에 종이 다르긴 하지만, 용족은 거기서 또다시 한 차원, 어쩌면 서너 차원 이상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치 저 대격변의 마족들처럼, 기본적으로 강함을 타고나는 종족처럼 여겨졌다.

그 때문에 용의 계곡에 발을 담그려면, 어지간한 상위 유저라 할지라도 바짝 각오를 하고 들어와야만 했다.

‘나도 200레벨 찍고 난 뒤에나 파티로 들어왔었지.’

용의 계곡에선 실로 다양한 용족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이를 전부 만끽하려 했다간, 파티로 움직여도 몰살이었다.

마루는 지난 기억을 상기하며, 계곡까지 다다르는 최단 루트를 설정한 채, 매섭게 달리고 또 달렸다.

워낙에 넓은 필드고 또 골치 아픈 몬스터가 그득한 장소다 보니,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지만, 3차 전직자에 버금가는 스탯 덕분일까?

그래도 일정 속도를 꾸준히 유지할 수는 있었다.

여러 용족들이 그의 길목을 막았는데, 개중 까다로웠던 놈을 골라 보라 한다면, 아무래도 바실리스크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

놈과의 전투가 새삼 떠올랐다.

바실리스크!

기본적인 덩치도 크고 그만큼 괴력도 남다른 데다가, 숨결 사이사이 독무가 끼어 있어서 거리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시선을 맞출 경우에는 석화가 되는 능력까지, 여러모로 골치 아픈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만 놓고서 바실리스크를 까다롭다고 하는 건 아니었다.

쿠웅… 쿵… 쿠웅….

이놈들은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마치 지진을 일으키듯 꼬리로 강하게 땅을 내리치는데, 그 자체적으로도 일종의 경직 효과가 있는 터라, 땅을 두드리는 박자에 맞춰서 수시로 점프를 해 주는 게 소소한 팁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땅을 두드리다 보면?

드드드드드드….

저 깊은 땅속에서 뜻밖의 불청객이 찾아든다.

토룡뇽!

지룡 계열의 용종으로서, 바실리스크 보다 반 수 정도 윗줄에 있는 녀석이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숙면을 취하는 게 토룡뇽의 일상인데, 바실리스크는 억지로 지진을 일으키며 놈들을 깨우는 것이다.

부름에 응한 토룡뇽이 분노한 모습으로 달려들고, 그 타이밍에 맞춰서 바실리스크는 도주를 개시한다.

그리되면?

크워어어어어~!

마치, ‘네가 내 잠을 깨웠냐?’라고 묻는 듯, 성난 포효와 함께 토룡뇽이 마루를 향해 안광 레이저를 쏘아 보내고, 그렇게 쉴 틈 없이 다음 전투를 시작해야만 했다.

땅속을 유영하는 두더지 같은 몬스터다 보니, 바실리스크 못지않게 까다로운 놈이었고, 덕분에 이래저래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놈들이 수두룩한 게 바로 용의 계곡이었다.

당연히 한 번에 계곡 심처까지 다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

계곡이 눈앞에 보였다.

‘정말 여기까지 와 버렸네.’

마루 본인이 더 당혹스러운 결과였다.

―크르르르르….

물론, 더 이상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와이번 수십 마리가 허공을 휘젓는 듯, 하늘 가득 음영을 드리우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저 거대한 동체를 보라.

그 거체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드레이크!’

당장 게임 내에서도 그리고 현실에서도, 거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녀석으로서, 게임에서도 파티 플레이로 사냥을 해야 하는 놈이며, 현실에서도 랭커 단독으로 잡을 수 없는 대괴수였다.

저걸 단독으로 사냥할 만한 랭커?

‘형님 정도만 가능했지.’

인디안 존슨, 그만이 드레이크를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였다.

물론, 또 다른 벽을 넘어, 진정한 의미로서 초월자가 된 지금이야 당연히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쪽박 차겠네.’

퀘스트를 깨는 게 쉽지 않을 듯싶었다.

“푸후우우….”

숨을 고르며 상태를 점검했다. 평소 전력의 반절도 안 되는 만큼, 드레이크는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저놈 이겨도 끝이 아니지.’

드레이크를 쓰러트린다 해도 드래곤의 흔적이 깨어나 그를 공격할 터, 새삼 퀘스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거 깰 수 있는 거야?’

2.5차 전직부터 이런데, 3차 전직은 어떠할까?

기존 전직과는 다른 특수 전직이다 보니, 이래저래 변수가 넘쳐 났다.

‘후우….’

상상만 해도 가슴이 턱턱 막히는 와중에, 드레이크가 크게 숨결을 들이켜는 게 보였다.

[사신 변환 ― 청룡 ― 주작 ― 현무]

일단 허공에 장풍을 쏴 갈기며 견제를 하는 한편, 주작의 기운으로 공중 부양 효과를 끌어내고, 현무를 앞세우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파파파팡!

‘미친!’

그가 쏘아 낸 장풍이 보이지 않는 막에 의해서 가로막히는 게 보였다. 상당한 마나를 투자했건만, 별다른 손해도 입히지 못한 것이다. 방해 작업이 실패한 것이다.

그 때문일까?

스으으으으으으읍….

놈의 들숨을 막지 못한 결과, 날숨이 뱉어졌다.

‘젠장!’

그렇게 쏟아지는 브레스!

콰콰콰콰콰콰콰콰!

드래곤을 상징한다는 그 악몽의 숨결이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물론, 굳이 비교하자면 흉내 내기 정도라 하겠지만, 그래도 브레스라고 불릴 만큼의 파괴력은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빠르게 몸을 피해 보지만, 드레이크의 작은 고갯짓 하나로 그의 동선을 정확히 꿰뚫으며 쫓아왔고, 기어이 가드를 세우게 만들었다.

‘크윽!’

드레이크를 상대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이전 캐릭터는 200레벨까지 찍었던 경험이 있고, 파티 플레이를 통해 몇 차례 용의 계곡을 비롯하여, 드레이크 사냥도 들어간 바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그가 맡았던 역할, 그건 지금처럼 드레이크의 폭격을 정면으로 커버하는 ‘탱커’였다.

덕분에 문제없이 가드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파티 사냥이 아닌 만큼, 탱커로서는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공격을… 해야 하는데. 크읍!’

그는 손해를 감수할 작정으로 각을 재고 기회를 노렸다.

‘하나, 둘… 일곱… 스물….’

탱커다 보니 브레스를 꽤 맞아 봤고, 덕분에 저 호흡의 끝자락에 대한 대략적인 견적도 낼 수 있었다.

‘지금! 한 방 제대로 먹여 주마.’

마나를 잔뜩 끌어다가 손끝에 담았다.

[사신 변환 ― 주작 ― 청룡]

방어를 놓고 공격으로 전환한 뒤, 청룡의 기운을 앞세우며 쭈욱 손을 내밀 때였다.

화르르륵!

주작의 기운이 불쑥 솟아오르며 청룡의 기운을 휘감는 것이 아닌가.

띠링!

그리고 귓가를 스쳐 가는 작은 알림.

[화룡출수(火龍出水)]

이게 뭔가 싶던 순간, 기력이 쭈욱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그의 손끝을 타고 시퍼런 불길을 휘감은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뻗어 나갔다.

그건 마치 전설 속 용의 탄생처럼, 약해지는 숨결에 따라 줄어드는 브레스를 거슬러 오르더니, 이내 드레이크에게 이르렀다.

콰콰콰쾅….

뒤이어 저 높은 하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워우….”

마루도 깜짝 놀랄 만큼 강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크르르르….

저 하늘 너머 드레이크가 제법 손해를 본 듯한 모습으로 날개를 펄럭이는 게 보였다.

입 주변을 비롯하여 얼굴 전체적으로 검댕이 잔뜩 묻어 있었는데, 그 너머로 흘러내리는 건 분명 핏물로 여겨졌다.

‘아… 용혈… 저 아까운 걸!’

박박 긁어서 상점에 팔면 비싼 값을 받아 낼 수 있는 게 바로 드레이크의 핏물이었다.

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의 귀한 연구 재료이기 때문이다.

전설 속 드래곤에 가장 가까운 생물이다 보니, 이를 통해서 신화의 편린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상당했다.

그가 이런 잡생각을 하는 이유라면, 조금 전 공격이 멋대로 마나를 바닥까지 긁어 가 버린 탓이었다.

땅바닥에서 이뤄지는 근접전이라면 모를까. 공중 유닛을 상대로 탱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게임 오버네.’

다음을 준비하며 다가올 막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

드레이크의 거체가 점차적으로 가까워 오는 것이 아닌가.

‘추락?’

잠깐이지만 그런 헛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드레이크가 하강하고 있던 것이다.

상황이 급변한 만큼, 그도 놓았던 마음을 다잡으며 자세를 갖추는데, 뭐라 말해야 할까?

‘묘… 하네.’

왠지 상대방에게서 전투 의사가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신성한 용의 사신이여.

머릿속으로 울리는 기이한 음성이 있었다.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다가 이내 드레이크와 시선이 맞닿았다.

“…설마, 이 텔레파시… 네가…?”

당혹감에 말문이 뚝뚝 끊기는 가운데, 재차 텔레파시가 날아들었다.

―그렇다. 수호자여.

“허억!”

화들짝 놀란 마루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쳐 버렸다.

수호자!

그건 그의 직업이지 않던가. 그로 인해 드레이크가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뒤이어 따라오는 의문 한 가지,

“신성한 용의 사신이라는 건 뭐야?”

드레이크가 답했다.

―네가 모시고 계시는 분.

“내가?”

드레이크의 근엄한 모습으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초롱이님.

묘하게 웃긴 건, 어째서일까?

18. 드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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