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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등짝!

#19. 등짝!

7대 길드의 회동!

당연하게도 중심 내용은 해외 거물들의 등장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남의 나라에 들어와서, 마치 제집처럼 휘젓고 다니는데, 맘 같아서는 확 뒤집고 싶은 걸 꾸욱 참는 중이야.”

“아니. 내가 딱 20년만 젊었어도. 아오~!”

“내 허리만 멀쩡했어도 당장 멱살을 잡아다가…….”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언뜻 헛웃음만 나오는 내용들이 가득했지만, 마냥 웃기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때, 저들은 저 같은 발언과 비슷한 행동들을 여럿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는 업계 초창기를 꿰뚫고 올라온 이들이 아니던가. 그 무력의 한국은 특히 더 거칠었던 걸로 유명한데, 그런 시기를 거치고 버텨내며 이겨 온 것이다.

뼈 있는 농담이었다.

물론, 개중 최고라고 한다면야, 아무런 뒷배도 없이 맨몸으로 시작해서, 맨땅에 헤딩하며 대 길드에 이름을 올린 사내, 김수호를 1순위로 꼽을 터였다.

그 때문일까?

“흰소리는 그쯤 하고, 슬슬 어떻게 할지 제대로 이야기를 해 봅시다.”

김수호가 입을 여는 순간, 회의장의 분위기가 돌변하며, 묵직한 공기가 장내를 휘감았다.

“생각하는 바가 있나?”

산신 길드의 수장이자 이곳에서 최고령자라 할 수 있는 백발의 노인, 장덕배가 히쭉 웃으며 물어왔다.

이에 김수호가 역으로 되물었다.

“영감님은 좋은 생각 없수?”

“70대 노인네 머리보단, 젊은 친구들 뇌가 더 팔팔하잖아.”

“에휴… 흰소리 좀 그만하자니까. 생각이랄 게 있나. 저놈들이 우릴 우습게 볼 수 없게 하면 되지.”

해외 길드와 네임드들이 한국을 저처럼 활보하는 이유가 뭘까?

“우습게 볼 이유가 있나?”

박미소가 그리 물어 왔다. 묘한 미소를 입에 그리고 있었는데, 몰라서 묻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이 수시로 강호구를 향하는 걸로 봐선, 젊은 수장에게 이런저런 가르침을 주려는 호의로 보였다.

하지만 저 같은 모습에 넘어가면 안 된다.

‘어우… 늙은 여우!’

김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마냥 호의로써 이런 배려를 하는 게 아니었다. 아는 이들은 다 알지만, 박미소는 ‘영계 사냥꾼’으로 유명했다.

젊은 청년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건데, 그녀가 비록 40대 중반의 여인이라지만, 일찍이 각성하며 그 혜택을 받아왔던 터라, 외모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미모도 상당하다 보니, 사냥감들이 알아서 덫에 걸려주는 경우도 상당했다.

어쨌든 그 같은 의미에서 봤을 때, 강호구는 딱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젊고 잘 생겼으며 능력까지 있었다.

‘뭐, 저쪽도 만만치 않아 보이긴 하지만.’

김호수는 강호구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20대라고는 하나 어쨌든 적호라는 대형 길드의 수장을 맡고 있었고, 지금 이 자리도 그가 움직여서 만들어낸 거였다.

‘뭐, 알아서들 잘하겠지.’

그리 생각하는 사이, 다른 방향에서 박미소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랭커의 부재 때문이지.”

창룡 길드의 수장 이영걸이었다. 그러며 박미소를 향해 묘한 미소를 보이는데, 이에 박미소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휙 하니 돌려버렸다.

알만한 이들은 다 알지만, 둘은 한때 사귀던 사이였다.

단지, 거기서 이영걸이 바람을 피우면서 깨져버린 것인데, 황당한 건 이영걸은 그때도 지금도 부인이 따로 있단 점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바람의 바람을 핀 것이다.

박미소와 마찬가지로 40대 중반의 나이지만, 어찌나 관리를 잘 받는지 청춘처럼 보였고, 게다가 생긴 것 역시 영화배우 턱을 돌릴 정도로 잘생긴 미남이었다.

영계 사냥꾼 박미소도 한 번쯤 혹할 만했다.

물론, 바람기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선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내로남불인가.’

박미소도 못지않은 바람둥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참,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네.’

아침 방영이면 꼭 챙겨 볼 법한 퀄리티에, 김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이영걸의 대답에 대한 반발이 튀어나오는데, 이는 혜성 길드의 수장 구준영이었다.

“랭커의 부재라니요. 저희에게는 이선희 랭커님이 있습니다.”

“뭐, 있기는 하죠.”

이영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저은 장덕배가 괜한 소란을 말리고자 앞으로 나섰다.

“저 친구 말은, 이선희 랭커가 아직 인지도가 낮다는 뜻일 게야.”

“이번 대격변 못 보셨습니까? 이선희 랭커님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세계가 다 봤습니다.”

“그래도 부족해. 자네도 잘 알잖나. 지금은 격변 초기와는 달라. 수많은 랭커들이 있다고. 시간을 들여서 착실히 이미지를 쌓아야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 잠깐 반짝인 정도로는 안 돼.”

기존 랭커들을 압살할 만한 임팩트를 보여준다면 또 몰랐다.

“아이언슈트가 정말 우리 측 랭커면 좋을 텐데.”

이선희 역시 상당한 활약을 했지만, 마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지난 대격변에서 존슨보다 높은 순위로 놓인 게 바로 아이언슈트였다.

존슨 역시 짧고 굵게 활약을 했지만, 너무 짧았던 터라 메인이 되긴 어려웠다.

“이선희 랭커가 활약해 준 덕분에, 우리나라의 전력도 한 계단 상승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 세계에 비치는 이미지는 부족해.”

그러니 저 해외의 불청객들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이에 김수호가 물었다.

“만약, 저희에게 랭커가 한 명 더 있다면 어떻습니까?”

“아이언슈트? 아직 정체가 불분명한 걸로 아는데. 게다가 한국 측 헌터인지 아닌지도 밝혀지지 않았잖나.”

“아니. 그 사람 말고요.”

“…또 다른 랭커가 있나?”

순간 적호 길드의 강호구가 눈을 빛냈다.

“피닉스를 말하는 겁니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이선이 한국에서 생활 중인 걸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김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그 친구는 이제 미국인이야. 아예 발을 들이지 않았으면 모를까. 한번 발을 담근 이상, 피닉스가 미국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어. 잘못 건드리면 전쟁 날 수도 있으니까 생각도 하지 마.”

7대 길드 수장들의 얼굴에 공통적으로 씁쓸한 미소가 스쳐 갔다. 김수호가 재차 물었다.

“랭커가 둘이라면, 저들의 움직임도 좀 얌전해지겠습니까?”

이에 산신 길드의 장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일본 그놈들을 봐. 인지도 거지 같은 랭커 둘 가지고도 목소리는 더럽게 높잖아. 일단 머릿수는 하나라도 더 있고 봐야 돼.”

고개를 끄덕인 김수호가 말했다.

“있습니다.”

“뭐가?”

“머릿수!”

“…랭커?”

문득, 뭔가를 눈치챈 듯, 김수호를 보는 장덕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너 설마… 폐관에 들어갔다더니.”

김수호가 히쭉 웃으면서 말했다.

“두 번째 랭커, 여기 있습니다!”

그러며 엄지로 호쾌하게 제 가슴을 두드리니, 회의장 가득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 * *

몸 상태를 완전히 회복시키진 못했지만, 전투는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때가 됐다.

고룡은 그리 말하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고, 마루는 일말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전투를 준비했다.

전투 시작 전, 마루가 물었다.

“만약에 제가 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퀘스트가 취소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직접 건네는 게 아니라서, 보상 수준이 낮아지겠지.

‘쯧!’

입맛을 다신 마루가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이겨야겠네.’

그가 표정이 돌변하는 순간, 고룡이 크게 숨결을 들이키는데, 그즈음 마루도 모르는 사이 눈빛이 변화를 일으켰다.

앞서 강림의 역순을 밟듯, 뒤로 물러나 있던 드레이크의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고룡은 조언자의 역할로 물러난 것이다.

물론, 마루로서는 알 수 없는 은밀한 변화일 뿐이었다. 그는 앞서와 비슷하게 청룡의 기운을 이끌어, 1차적인 원거리 저격에 들어갔다.

파파파팡….

이번에도 실드에 막히는데, 앞전과는 약간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크륵!

실드는 깨지지 않았지만, 그 진동이 내부로 전해졌던 듯, 드레이크의 숨결이 일부 흐트러진 것이다.

이는 마루의 넘치는 기력 덕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숨결을 완전히 잡은 건 아니다 보니, 결국 브레스가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콰!

마루는 현무의 기운을 앞세우며 이를 막고, 앞전처럼 사신변환의 연계기를 이어나갔다.

[사신변환 - 현무 - 주작 - 청룡]

그러며 재차 장풍을 쏟아내는데, 앞서 튀어나왔던 의문의 스킬이 재차 발동됐다.

[화룡출수]

짧은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 육신에 감각을 열어놨던 덕분일까?

마루는 이 기이한 현상의 메커니즘을 알 수 있었다.

‘브래스 때문이구나!’

주작에서 청룡으로 넘어가는 변환 효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보다는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으며, 강대한 ‘용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낸 게 결정적이었다.

그게 청룡의 기운을 자극하며,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만든 것이다.

‘설마… 다른 기운도?’

느낌이 다른 변환기 속에도 비밀 스킬이 한 둘쯤 숨어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마루는 차후에 시간을 들여서라도 이 부분은 파헤칠 필요성을 느꼈다.

그의 손끝을 타고 나간 시린 불꽃의 화룡은 앞전처럼 브레스를 삼키고 역류하더니, 그대로 드레이크의 안면을 두드렸다.

콰아아앙!

설마 숨결의 끝자락도 아닌, 한참 이어지는 와중에 브레스를 타고 올라올 줄 몰랐던 듯, 폭발을 벗어나는 드레이크의 거대한 두 눈 위로 당혹감 머물러 있었다.

크워어어어어~!

그건 이내 분노가 되어 피어로 연결됐다.

‘으음….’

다양한 몬스터들의 피어를 겪어봤지만, 역시나 드레이크의 피어는 격이 달랐다. 경직에 빠지는 건 피했지만, 일종의 슬로우 효과가 전신을 휘감았다.

급히 성직계의 스킬들을 빠르게 연계시켰다.

[성호] [복음 양식] [삼고]

마족을 상대할 때처럼 빛 속성의 도움을 얻기 위한 조치가 아닌, 자체적인 버프 조달을 위한 발동이었다. 이를 통해서 피어의 영향력도 털어내는 한편, 매섭게 허공을 박차 오르며 드레이크를 향해 질주했다.

파파파파파팡…….

허공을 벽처럼 박차며 접근을 시도하자, 드레이크가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며 마루를 튕겨냈다.

‘마법인가.’

전설 속 드래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드레이크 역시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용족이었다.

‘폭풍… 바람 계열인가.’

드레이크는 원소 마법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드레이크와 관련해선,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다는 식의 농담이 돌기도 했다.

이후 드레이크의 본격적인 마법 공세가 시작됐다.

폭풍이 몰아치다가 칼바람이 쏟아지는가 하면, 때때로 들이치는 바람을 타고 몸집을 불린 브레스의 불길이 덮쳐들기도 했다.

마법의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어렵사리 접근을 하며 드레이크의 거대한 등판 위로 올라타는데, 기다렸다는 듯 솟구치는 비늘이 그를 향해 날을 세웠다.

꺾으면 부러질 것처럼 단단한 비늘이건만,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러운 웨이브와 함께 이리저리 방향을 전환하면서 그를 공격해 들어왔다.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애초에 손해 볼 것은 각오하고 올라탄 것이 아니던가. 드레이크도 어찌 보면 마법사의 한 부류로 볼 수 있었고, 그런 만큼 차라리 달라붙어서 승부를 보는 게 나았다.

푸북… 푹… 푸부부북!

몸뚱이를 쑤시고 들어오는 비늘에 치명상이 터졌지만, 이를 악물며 버텨냈다.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해.’

파티사냥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홀로 상대하는 것이다 보니, 무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마력과 체력 그리고 맷집 등, 여러모로 특출난 스펙과 스탯을 지닌 게 바로 드레이크였다.

단기 결전이 답이라는 결론 아래, 무리수를 두기로 한 것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개싸움이나 다름없었다.

“등짝… 등짝 좀 보자!”

그렇게 외치며 본격적인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다양한 스킬들이 발동되지만, 그 모든 건 오로지 보조적인 역할만 할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앞세우는 건?

현실에서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경험치였다.

군 시절부터 무려 15년, 그 긴 시간 발골 작업을 해 온 달인의 손재주가 몽크의 강건한 육신을 통해, 저 너른 몬스터의 등판 위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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