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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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해금!

#22. 해금!

최대한 인적이 드문 장소만 찾아다녔다.

나름대로 감각도 한껏 키우며 주변 탐색도 철저히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야에 띄었고, 생각지도 못한 촬영까지 당해 버렸다.

“쩝… PP는 PP인가.”

마루는 그리 중얼거리며, 새삼 현실보다 까다로운 게임 속 유저들을 떠올렸다.

그가 남다른 스탯으로 인해, 3차 전직자에 버금가는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다지만, PP의 세상에선 그 정도만으론 모든 상황에 확신하고 자신할 수 없었다.

현실에서 그의 특수함이 이곳에선 평범함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멀티 스킬?

PP에는 널리고 널린 게 멀티 스킬 보유자들이었다. 게임이고 시스템이라지만, 그래도 어쨌든 다중 스킬이 한가득인 것이다.

다양한 탐색 스킬로 주변을 살피고, 남다른 감각으로 서포터까지 한다지만, 그 못지않게 특수한 스킬을 지닌 존재들이 바글대는 동네였다.

그런 유저들 중 한 명에게 걸린 것이리라.

‘재수도 없지!’

마루는 입맛을 다시며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을 살폈다.

[특수 직업 용아병?]

이 같은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 속에는 유저로 보이는 사내가 화려하게 불을 뿜어내는 게 보였는데, 마루 본인의 모습이었다.

‘거리로 봐선, 탐색이 쉽지 않기도 했네.’

재차 입맛을 다신 뒤, 사람들의 반응을 찬찬히 살폈다.

―내 눈깔이 동탠가? 어째 브레스로 보인다?

―브레스 맞아 뵌다.

―제목 보면 모르냐? 딱 봐도 브레스잖아.

―용아병이라니. 왓 더, 대체 얼마나 특수한 직업인 거냐.

―전설? 신화?

―감도 안 오네.

―정말 용아병 맞음?

―대가리에 작게 뿔도 나 있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게다가 브레스까지 쏘잖아.

―저 위력 봐라. 저게 브레스가 아니면 뭐겠냐.

―지려 버렸다.

―필드를 한 방에 쓸어버리네.

―드레이크하고 맞붙여 놔도 볼만하겠는데.

―와… 용아병이라니. 레알 레전드네.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그런 이유로 영상을 최대한 확대해 가며 살피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몇 없었다.

오히려 의혹만 더 커질 뿐이었다.

―아이언슈트 가면은 뭐냐?

―요즘 유행이긴 하잖아.

―그런데 퀄리티 잘 뽑았다.

―싼티 나는 느낌이, 진짜 아이언슈트의 개성인데, 저걸 또 따라 했네.

이 부분에서 마루는 옅은 빡침의 징조를 느꼈지만, 애써 삼켜 낼 수 있었다.

‘싼티라니! 이게 얼마짜린데.’

공짜다. 직접 제작한 녀석으로서, 현실에서 사용하던 가면을 심심풀이 삼아서 만들어 본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잡캐’의 정석을 달리고 있다 보니, 제작 스킬도 일정치 이상 올려놨기에, 예전처럼 따로 가면을 구입할 필요 없이, 이제는 자체 제작이 가능했는데, 그 때문에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싼티 정도가 아니라 완전 싸구려 삘인데.

―개성이 좀 과한 듯.

―정성이 과했네.

―4달러에 산다!

―난 3달러.

―4달러!

―2달러.

―4달러!

―1달러.

―어째 점점 내려가누?

―4달러!

―근본 오지네.

슬슬 올라오는 깊은 빡침의 징조에, 마루는 급히 나머지를 스킵하며 다른 내용으로 넘어갔다.

―저 정도 특수직이면 대형 길드에서 움직이겠는데.

―전직 루트 알려고 개떼처럼 달려들 듯.

―최상위급 특수직이면 1인 한정 개방이라서, 루트 알아봤자 전직 불가잖아.

―루트 따라가면, 하위 직업군이라도 나오니까 그러지.

―용아병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면 뭘까?

―용하병?

―…하 …병 …C!

―드립력에 작두를 타고 간다.

―다신 키보드 잡지 마라.

마루는 눈살을 찌푸렸다.

‘쯧! 귀찮게 됐네.’

여러 길드의 시선을 피해 가며 숙련도 작업을 할 생각을 하니,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실제로도 여러 대형 길드들이 영상을 확인하며 행동을 개시 중이었다.

“현실처럼 여기도 아이언슈트로 난리네.”

“당장 요원들 보내서 정체 파악해 봐!”

“필드 한 방에 쓸어버리는 위력이야. 다운 버전이라도 특수직 루트 알아내면, 길드 전력 상승에 도움이 될 거야.”

“어떻게든 끌어들어야 하니까. 애들 싹 끌고 움직여!”

영상 속 임팩트가 너무 컸다. 그 때문인지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를 정도였는데, 그 순위권이 또 놀라웠다.

1. 용아병

2. 브레스

3. 드레이크

4. 아이언슈트

상위권에 줄 세우기를 하고 있던 것인데, 이를 본 마루는 뒷목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다.

‘피곤하게 됐네.’

막 영상이 풀린 상황이었다.

직접 나서서 초상권을 들어 가며 통제를 하려 해도 쉽지가 않았다.

과거, 호로로 영상이 떠돌던 무렵에도 그랬지만, 지금 이 장면은 모두 ‘게임’ 속의 액션 신일 뿐이었다.

PC 게임의 스샷 정도의 노출인 데다, 따로 아이디가 오픈된 것도 아니고, 가면까지 쓴 상황이다 보니, 제대로 된 통제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일단 주장을 하면 내릴 수야 있겠지만, 지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봤을 때, 이미 통제권은 그의 손을 떠나 버린 상황이었다.

현실이라면 모를까, 게임이고 가상이기에, 초상권을 앞세우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과거, 호로로 사건 당시에는 오히려 지분을 주장하며, 쏠쏠히 용돈을 받아먹었지만, 더 이상 주머니 사정이 어렵지 않은 터라, 따로 이득을 취하기도 어려웠다.

뒷머리를 박박 긁던 마루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상은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이럴 시간에 필드 한 번이라도 더 뛰어야겠네.”

굵직한 길드들이 움직이는 이상, 마루의 행동 패턴이 분석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의 이동 루트가 발각되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비주류 필드를 뛰며 숙련도 작업을 해 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PP에 접속하기 무섭게 칭호를 장착했다.

[칭호 : 용아병]

그 순간 뿔이 솟아나며 새로운 스킬 장착의 신호를 보내왔다.

이후 바쁘게 비주류 필드를 뛰었다.

[브레스] [브레스] [브레스]…….

쉼 없이 용의 숨결을 토해 내던 어느 순간이었다.

[신규 스킬이 해금됩니다!]

뜻밖의 알람이 그를 멈춰 세웠다.

“해… 금?”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 * *

존슨은 아주 오래전, 이반나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첫눈에 반했었지.’

그런 건 소설 속에나 있는 이야기라고 여기며 비웃던 시절이었다. 클럽을 돌며 적당히 즐기고 놀던 철없던 청춘이었다.

하지만 이반나를 만나는 순간,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온 세상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고 있어서, 이전까지의 청춘이 마치 흑백 드라마처럼 여겨졌다.

그날 이후, 그녀 외에는 어떤 여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존슨은 자신의 옛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이거, 참… 내가 딱 저랬지.’

자신의 조카나 다름없는 레오의 모습을 통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되새길 수 있었다.

반쯤 풀린 눈빛과 얼굴로 멍청하니 저 멀리 한 여인의 수련 장면을 눈에 담고 있는 게 보였다.

정다솜!

첫 만남에 레오의 심장을 사로잡아 버린 여인이었다. 묘한 일이었다.

‘다솜이도 예쁘긴 하지만… 우리 달링처럼 경국지색의 절세미인은 아닌데.’

이반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면, 온 갖가지 언어로 다채롭게 치장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역시 우리 달링이 최고야.’

이상한 결론을 내리며 혼자 흐뭇해하고 있을 때, 레오는 그 곁에서 멍청하니 정다솜의 수련에 한껏 취해 있었다.

그 스스로 생각해도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첫눈에 반하다니.’

존슨도 그러했지만, 그 역시 소설 속 환상처럼 여기며 웃어넘겼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니 할 말이 없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경험이란, 어떠한 문장이나 단어 같은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겪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녀의 어떤 점이 그를 이토록 끌리게 하는 걸까?

이미 콩깍지가 씌어 버려서, 숨결마저도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지만, 굳이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활력?’

첫인상에서 느껴졌던 기이할 정도로 환한 기운이 그를 끌어당겼고,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호수 속으로 던져 넣었다.

‘삼촌이 왜 그렇게 바보처럼 굴었는지 알겠네.’

이반나와 함께할 때의 존슨이란, 영웅이 아닌 푼수처럼 보였었다.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모습이었건만, 지금은 그 이유를 너무도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정다솜의 모습에 심취해 있을 때, 문득 따끔한 눈초리가 느껴졌다.

‘첫 번째 제자라는 녀석.’

임시안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같은 눈초리가 처음은 아니었다. 요 며칠 지속적으로 느낀 바 있었고, 그로 인해서 서로 알 수 있었다.

연적(戀敵)!

두 사내의 시선이 어지러이 교차했다.

* * *

마루는 생각했다.

‘어떻게 된 거지?’

지금 이 순간, 초롱이는 열심히 수족관을 구경 중일 터,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바깥세상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만끽하며, 아이는 유년기의 추억을 형형색색 다채로운 오색 빛깔로 물들이는 중이었다.

결국, 아이가 따로 성장을 위한 경험치 작업은 한 적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해서 성장이 정체됐다는 건 아니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초롱이는 꾸준한 성장을 하고 있긴 했다.

단지, PP에서 경험치 작업을 하는 것에 비한다면야, 소소한 수준이라고 봐야 할 뿐이었다.

마루는 의아한 와중에도 일단 스킬창을 열어 목록을 살폈다.

[해금 목록 ― 브레스, 드래곤 피어]

역시나 최초 예상했던 것처럼, 가장 대표적인 스킬을 중심으로 오픈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마냥 기뻐하기만 하진 않았다.

‘어떻게 해금이 된 거지?’

그 부분에 대한 의문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것이다. 하지만 길게 생각을 이어 나갈 순 없었다.

‘길드 놈들이 언제 쫓아올지 모르니까.’

여유는 조금이라도 더 숙련도를 쌓은 뒤에 부려도 될 일이었다.

그렇게 재차 필드를 돌기 시작했다.

[드래곤 피어] [브레스]

그 와중에 레퍼토리가 하나 늘어났으니, 먼저 피어를 뿜어내며 필드를 장악한 뒤, 용종의 기세에 머리를 조아리는 몬스터들의 정수리에 뜨거운 불길을 쏟아 주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사냥을 이어 나갔을까?

문득,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이 있던 것인데, 벽을 넘는다거나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초롱이의 성장과 해금!]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거였구나!”

마루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다. 칭호 효과로 인해 용아병의 흔적이 곳곳에서 비치고 있었다.

바로 이 모습이 답이었다.

‘초롱이와 연결되어 있었던 거야.’

그가 칭호를 착용하는 순간, 초롱이의 능력을, 드래곤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용아병이 되며 스킬을 얻는 순간, 반대로 그의 성장 경험치를 초롱이와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정신없이 필드를 돌던 중 떠올린 의문 때문이었다.

―레벨업이 좀 느린 것 같은데.

숙련도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벨 작업을 등한시한 건 아니었다. 숙련도를 올리다 보면 알아서 딸려 오는 부분이라 신경을 덜 썼던 거였다.

쌍둥이들이 함께하는 버스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용아병 칭호 덕분에 충분히 자체 운행이 가능할 정도는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벨 상승이 느리다?

의심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 * *

이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족관을 즐기는 중이었다.

“우와~!”

“멋지다!”

각종 해양 생물들이 물속에서 이리저리 유영하는 모습이란,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한껏 유혹하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수많은 물고기 떼를 따라, 초롱이와 루미 두 아이의 시선이 그리고 몸짓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들썩이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는 가운데, 준비해 온 카메라로 열심히 아이들의 추억을 저장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미묘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자랐나?’

왠지 초롱이가 아침에 나올 때보다 좀 더 커진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 바라볼 때였다.

“삼촌~! 삼촌~! 저기 아이스크림.”

초롱이가 군것질거리를 발견하고는 호다닥 뛰어오는 게 보였다.

“삼촌 부담스럽게, 자꾸 그러면 안 된댔잖아.”

그 뒤로 루미가 말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째서인지 등은 떠밀고 있었다. 이에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좀 전의 고민은 빠르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긴, 애들은 잠깐 사이에도 쑥쑥 자란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 버린 것이다.

“삼촌~! 아이스크림. 이잉~!”

어느새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발을 동동 구르는 초롱이.

“애가 참….”

그 뒤로 말로만 말리는 루미.

귀여움이 제곱이었고, 결국 이선은 백기를 들며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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