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추격자.
#23. 추격자.
경험치가 나눠진다?
빠른 성장을 원하는 현 상황과는 맞지 않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상기하니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제대로 정이 들어 버렸네.’
마루는 아이를 떠올렸다.
―삼촌~!
환청처럼 귓가에 울려 퍼지는 초롱이의 음성과 함께, 이젠 정말로 아이를 조카처럼 여기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요 근래 들어서 초롱이를 비롯해서 루미까지, 따로 전장에 소환했던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이런 마음이 작용했던 것이라 여겼다.
분명 경험치가 나눠지는 건 아까웠지만, 그보다는 아이가 더는 전장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게 됐단 부분의 안도감이 더 컸다.
‘드래곤의 스킬을 얻은 거로 충분하잖아.’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이후로 그는 숙련도 작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따로 칭호를 착용한 채 돌아다니며, 굳이 경험치를 초롱이와 공유하며 나눴다.
‘그냥, 내가 좀 더 고생하자!’
3차 전직을 위해 바쁘게 뛰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조금 손해를 본다고 해서 그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는 건 아니라고 여겼다.
게다가 초롱이의 성장이 곧 칭호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만큼, 손해라고만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이의 성장으로 새로운 스킬이 해금될 터, 드래곤 브레스와 드래곤 피어에서 알 수 있듯, 드래곤의 능력은 경험치를 투자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또 어떤 스킬이 전해지려나.’
여러모로 기대감이 컸다.
[칭호 : 용아병]
그는 그렇게 ‘뿔’난 모습으로 쉼 없이 전장을 뛰고 또 뛰었다.
* * *
당혹스럽다고 해야 할까?
‘왜 저러지?’
정다솜은 난감한 얼굴로 저 한편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순간 활짝 웃으며 손을 휘휘 젓는 사내가 보였다.
레오 리마리오!
놀라운 정체를 지닌 사내였는데, 무려 WHA 3대 협회장의 장남이었다.
존슨에게 듣기로는 2대 협회장의 수제자라고도 했다.
WHA의 2대 그리고 3대에 얽혀 있는, 그야말로 금수저 중의 금수저, 아니 다이아수저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사내가 꾸준히 그를 향해 시선을 보내오는데, 간간이 보여 주는 반응을 통해 저 같은 행동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첫날 이후부터 이어진 반응이다 보니, 첫눈에 넘어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는데, 당혹스러운 건 그로 인해 발생한 여파였다.
‘애가… 설마?’
그녀는 자신과 함께 수련을 하고 있는 사내, 마루의 또 다른 제자 임시안을 바라봤다.
레오의 등장 이후 태도가 급변한 것이다.
꾸준히 레오와 눈싸움을 벌이는 등, 이런저런 신경전을 보여 주는데, 그 모습에도 설마 하는 마음이 들어 버렸다.
그간 임시안이 보여 줬던 모습이란, 한 살 차이의 착실한 동생 이미지였다.
하지만 레오의 등장 이후 그런 위치가 급격히 변화되기 시작했는데, 동생의 포지션에서 빠르게 남자가 되어 버리려 하고 있던 것이다.
정다솜이 연애를 많이 해 본 것은 아니지만, 노골적인 레오의 태도와 이에 반응하는 임시안의 모습을 통해, 그 둘의 감정을 모르기가 더 어려웠다.
두 남자가 자신이 좋다며 저리 행동하는데, 싫어할 여인이 누가 있겠냐만, 그래도 당혹스러운 마음이 더 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니, 나 남자 친구 있다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 * *
아차 싶었다.
‘하… 실수했네.’
임시안은 그리 생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해야만 했다.
그간 잘 유지하고 있던 ‘남동생’ 포지션을 스스로 내던져 버린 것인데, 이는 레오라는 뜻밖의 라이벌 등장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조급증이 일며 발생한 실착이었다.
정다솜!
사실, 처음에는 스승 마루의 여동생이라는 위치 때문에, 같은 제자 라인이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일단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기도 했지만, 기이한 매력으로 인해 저절로 시선이 빼앗기는 이유도 컸다.
활력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묘하게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밝은 분위기가 그녀에게서 넘쳐 났고, 그 때문에 자꾸 주변을 맴돌게 만들고는 했다.
그 때문일까?
거리를 두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남동생을 연기하면서 그녀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 가고 있었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찬찬히 시간과 공을 들여 가며 그의 존재를 그녀에게 알리고자 했다. 눈치챘을 땐 어느새 깊고 진하게 스며들어, 심장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것, 그걸 목표로 그녀의 곁을 지켰다.
한데, 그게 뒤틀려 버린 것이다.
‘후우… 레오 리마리오.’
정다솜이 자신의 마음을 눈치챘음을 알았고, 이미 물리기에는 늦었다는 결론 아래, 차라리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마음을 표시할 생각은 없었다. 정다솜의 표정에서 섣불리 접근했다간 판이 깨질 수 있단 느낌을 받은 탓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나는 아직 남자 친구가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그 바람둥이 자식!’
남동생 포지션을 유지하다 보니, 간혹 정다솜의 고민도 들어 줄 수 있었는데, 거기서 그녀의 맘고생도 알게 됐다.
‘맘 같아선 당장 달려가서 멱살을 잡고 싶지만.’
그가 나설 상황이 아니라 여기면서, 애써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어쩌면 괜한 참견으로 관계가 개선될까 하는 우려에 더해, 못난 연인의 행동에 실망하며, 어쩌면 조금쯤 상처받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임시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쓰게 웃어 버렸다.
‘하… 찌질한 놈!’
뒷머리를 벅벅 긁은 그가 저 멀리 레오를 노려봤다. 찌질하건 뭐건 나름대로 계획을 갖고 움직였건만, 그 모든 걸 뭉개 버린 존재였다.
바라보는 눈빛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듯, 레오도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춰 왔고, 이내 두 사내의 눈길이 어지러이 교차되기 시작했다.
* * *
아이언슈트의 리튜브가 등장하고, 이를 통한 분석이 시행되기 이전, 일찌감치 한국이란 나라에 주목한 이가 있었다.
키홀 클랜의 클랜장 바이퍼!
과거에 그의 클랜원들이 아이언슈트와 엮였던 일을 기억한 덕분이었는데, 그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며, 아이언슈트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
정보부의 제이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을 찾는 헌터들이 늘고 있는 상황인데, 저희도 요원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바이퍼가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지금 보낸 인력으로 해결하라고 해.”
요 근래 클랜장의 움직임을 알고 있던 터라, 제이미는 그가 아이언슈트에 집중할 생각이 없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레메게톤에 집중한다.”
유럽 이면의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 바이퍼에게는 그게 더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에 제이미는 생각했다.
‘제퍼드 님의 죽음 때문인가.’
랭커를 잃어버린 탓에, 키홀 클랜은 그 위치가 제법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클랜 자체적인 힘이 상당하다고는 하나, 랭커의 존재 유무를 커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연합체에 힘을 실어서 다른 방면에서 힘의 공백을 채우려는 듯싶었다.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전 세계가 아이언슈트라는 최초의 멀티 스킬 각성자로 인해, 한국이란 나라에 주목하며 그곳으로 온 신경과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오히려 시야의 사각에서 레메게톤에 집중하며, 클랜의 지분을 높이고자 계획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언슈트에 대해서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최소한의 인력을 움직여서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내기를 원하고 있던 것이다.
바이퍼가 물었다.
“그 개코라는 놈은 어떻게 됐어?”
“아무래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혜성 길드의 감옥에 수감된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말해 봐.”
이에 제이미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정보부의 조사와 예측 범위를 조합해서 입을 열었다.
“그 재능이 워낙 특수한 케이스다 보니, 혜성 길드 측에서도 따로 눈독을 들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로 빼돌린 거다?”
“예. 혜성의 특수계 요원으로 활동 중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개코라는 추격자야말로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낼 수 있는 핵심이었다.
과거, 제퍼드가 한국에서 활동하던 당시, 아이언슈트를 조사하던 일선에 있던 게 바로 개코라는 추격자였다.
“지난 정보는 그 녀석이 죄다 가지고 있으니까. 반드시 찾아내서 끌어들이도록 해.”
파견 나간 요원들의 숫자를 떠올리자니 한숨만 나오는 소리였지만, 아이언슈트를 직접 찾는 건 아니다 보니, 그래도 마냥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여겼다.
개코에 대한 정보는 오직 그들만 지니고 있는 만큼 경쟁자도 없을 터, 괜히 눈치 싸움을 할 이유도 없으리라.
제이미는 그렇게 최대한 긍정적인 사고로 애써 상황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혹시 모르니까 혜성 측 움직임도 주시하고, 개코라는 놈의 정보가 그쪽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렇게 한국 방면에 대략적인 지시를 내린 뒤, 다시금 레메게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바이퍼가 클랜의 미래를 걸며 전력으로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일까?
전과 달리 더욱 많은 시간을 들여 가며 세세한 지시가 이뤄졌다.
* * *
혜성 길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 길드였다.
양지를 살아가는 단체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세상 이면에 한 발 걸쳐 놓은 채,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는 했는데, 혜성 길드의 특수 정보부 역시 그런 이면에 걸쳐 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개코는 바로 그곳 소속이었다.
아직 범죄 경력이 지워지지 않은 탓에, 여전히 이면을 살아가고 있긴 하나, 예전과 비교한다면 천지 차이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월급을 시작으로 수당과 각종 보험까지, 그야말로 모든 부분에서 삶의 수준이 올라갔다.
범죄자가 무슨 보험이냐 싶겠지만, 활동용 가짜 신분증을 오픈해서 일부분 양지에 걸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차후 활약상에 따라 범죄 경력이 사라질 경우, 이 모든 조건들이 고스란히 넘어올 수 있는 조치도 취해질 터였다.
괜히 대형 길드가 아니라며, 매 순간 감탄을 거듭하는 나날이었다.
게다가 특수 재능으로 인해서 부서 자체적인 대우도 나쁘지 않아, 이래저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봐야 할까?
‘이젠, 함부로 까불지 말고, 혜성에서 얌전히 얇고 길게 잘 버티자!’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그런 그의 결심을 흔드는 사건이 발생해 버렸다.
아이언슈트!
지난 산타카타리나 대격변의 히어로가 문제였다.
‘설마….’
한때 자신이 추격했던 인물이라는 느낌이 왔다. 제대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꾸준히 그 뒤를 밟아 왔던 탓일까?
추격자의 본능이 살아나며 답을 주는 것 같았다.
‘아는 척하면 안 돼!’
상황을 파악하는 순간 견적이 나왔다.
얇고 길게!
그 각오를 유지하기 위해, 결코 아는 척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다행이라 한다면 저 먼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일이다 보니, 그의 특수 능력을 앞세울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혜성 자체적으로도 관련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그는 애써 입에 지퍼를 채운 채, 모르쇠로 일관하며 열심히 몸을 사렸다.
그렇게 한껏 움츠렸다.
불길한 예감을 받은 까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키홀 이 새끼들….’
이면을 돌며 그를 찾아다니는 옛 인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걸리면 죽는다!’
그런 각오로 더욱 깊이, 열심히 몸을 숨겼다.
* * *
쌍둥이들은 기이한 눈빛으로 마루를 바라봤다. 좀 더 정확히는 그의 머리 위를 살피는 중이었는데, 그곳에 남매의 시선을 잡아 끄는 묘한 굴곡이 있던 것이다.
‘저거, 설마….’
‘아무래도 맞는 것 같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인 ‘용아병’의 주인공이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듯싶었다.
아이언슈트 가면에서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건만, 이렇게 눈앞에서 영상의 포인트를 확인하니, 그대로 확신으로 굳어져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굳이 그 부분에 대해 묻진 않았다. 함께한 기간이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루의 성향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 이유로 애써 호기심을 삼키며 버스의 운전대를 잡을 뿐이었다.
치열한 레벨업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