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각성론.
#24. 각성론.
수많은 국가의 랭커들이 한국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이언슈트!
그 특별한 존재가 머무르고 있을 확률이 높은 까닭이었는데,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전부터 한국이란 나라의 주목도가 높기는 했다.
던전 승급!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그 특수한 현상으로 인해, 수많은 던전 전문가들이 꾸준히 한국을 찾으며 연구를 거듭하는 중인 것이다.
이래저래 랭커들은 한국에서 시선을 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그 때문일까?
알게 모르게 상당수의 랭커들이 인천 공항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김연희의 보고에 이선희가 물었다.
“명분은?”
“대외적으로는 던전 승급 현상의 추가 조사라 주장하고 있어. 뭐, 이면에서 넘어오는 놈들이야. 그냥 지들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거니까. 명분이고 뭐고 없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 만한 이들은 전부 아이언슈트로 인한 방한임을 알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괜히 시끄럽게 했다가, 잔챙이들까지 냄새를 맡고 몰려들까 봐. 던전 승급을 명분으로 넘어오는 거지.”
김연희의 보고에 이선희가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까닭이었는데, 이는 그녀의 포지션이 이전과는 달라진 탓이 컸다.
과거에는 그저 혜성을 대표하는 헌터였다면,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랭커’라는 위치에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한국을 방문하는 모든 랭커들의 견제는 그녀에게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이라 한다면, 최근 새롭게 벽을 넘은 랭커, 삼족오의 김수호가 그 부담감을 일부 덜어 준다는 점이었다.
김수호의 경우에는 따로 대격변을 비롯한 영웅급의 활약 같은 건 없었지만,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와 삼족오라는 거대 길드를 세운 역사 때문일까?
신예 랭커라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적잖은 인정을 받는 분위기였다.
두 번째 랭커였지만, 오히려 분위기는 그녀보다 윗줄에 놓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걸 가지고 자존심 상해 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김수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에 잠긴 그녀를 기다리던 것도 잠시, 중요한 사안이 있었던 터라, 결국 기다리지 못한 김연희가 입을 열었다.
“저기… 그리고 알아 둬야 할 게 있는데.”
이선희의 검지가 잠시 멈췄다. 말해 보라는 듯 김연희를 바라보자, 잠시 호흡을 고른 김연희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었다.
“전에 키홀 클랜에서 잡아들였던 놈들 있지.”
혜성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유럽의 문제아들을 떠올렸다. 키홀과의 그들과의 거래를 통해 중요도가 높은 몇몇은 풀려났지만, 그렇지 않는 놈들은 여전히 감옥에 수감 중이었다.
“그놈들이 이상한 소릴 하더라고.”
의아한 얼굴로 이선희가 바라보니, 이내 주변을 살피던 김연희가 한층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아이언슈트에 대한 이야기야.”
이선희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너무도 뜬금없는 방향에서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가 날아든 탓이었다.
‘감옥에 있는 놈들이 어떻게?’
의문 속에서 김연희가 내용을 풀었고, 이야기를 전부 들은 이선희가 깜짝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개코라고?”
“어. 그놈이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잠시 생각하는가 싶던 이선희가 물었다.
“이 사실을 아는 건?”
“다행히 우리 쪽 애들이 관리 중일 때 나온 이야기라서. 그룹 방면으로 넘어가진 않았을 거야. 입단속도 철저히 시켜 놨어.”
이선희가 재차 검지를 까딱이기 시작했다. 전과 달리 이번만큼은 김연희도 꾸준히 침묵을 지키며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개코에게 사람은 붙였어?”
생각 정리가 끝난 듯, 이선희가 질문을 던져 왔다.
“특수 정보부에 있는 우리 측 요원에게 적당히 동선 파악만 지시해 놨어.”
“동선 파악만?”
“어. 알아보니까 특수 재능 방면이라서 보통 민감한 놈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너무 노골적으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서.”
김연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이선희가 말했다.
“해외 랭커들 측도 집중 커버할 것 없어. 그쪽도 그냥 적당히 동선 파악만 해 둬.”
이선희 본인이 랭커이기에 더욱 잘 아는 부분으로서, 랭커를 감시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붙이고 시선을 모으는 건, 불가능하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이 작게나마 저들을 압박하는 요소가 될 터, 감시가 목적이 아닌 견제 및 경고가 목적이라고 봐야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길드가 이만큼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니 자제를 부탁한다. 이런 식으로 경고 혹은 부탁을 하는 것이다.
랭커의 전력이 한 개 길드에 버금간다지만, 실제 대형 길드가 그들을 압박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면, 저들도 작게나마 자제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때문이었다.
“괜찮겠어?”
김연희의 물음에 이선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아니어도 신경 쓰는 사람들 많아. 적당히 보여주기식으로 모양새만 잡고, 동선 파악에만 집중해. 게다가 본사에서 따로 사람들 붙였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
“혹시라도 관련해서 말 나오면, 동선 꼬이는 거 방지하는 차원에서, 우리 측 요원을 뒤로 물렸다고 해 둬.”
“OK! 그리고?”
“우린 개코를 잡아야겠지.”
하나 섣부른 움직임은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괜히 그룹 차원의 관심도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룹 본사에선 이전에도 그렇지만, 지금은 더욱 집요하게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확실히 포위한 다음에, 빠르게 낚아야 돼. 알지? 괜히 질질 끌었다간 말썽만 나는 거.”
“맡겨 둬!”
김연희가 시원하게 대답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 빈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이선희가 발길을 돌려 창가로 향했다.
‘랭커… 아이언슈트… 개코….’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지는 가운데,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이선….’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정리되었지만, 기이할 만큼 가슴은 답답해질 뿐이었다. 무거운 한숨이 창문에 달라붙으며, 새하얀 흔적을 남기지만, 곧 아련하게 흩어져 버렸다.
* * *
행동 패턴이 읽혀 버렸고, 수많은 비주류 필드가 때아닌 사람들의 발길로 바글거렸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들은 없었다.
하지만 필드의 그늘 속, 보이지 않는 시야의 사각마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뜨거운 숨결이란, 저 너른 필드가 꽉 찬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숙련도 작업은 여기까진가.’
마루는 그리 생각하며 레벨 작업으로 방향을 튼 채, 쌍둥이들의 버스에 승차하며,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필드 사냥이 아닌 던전 사냥으로 방향도 틀었다.
기왕이면 마스터 등급 숙련도를 채운 뒤, 현실로 스킬을 끌어 올릴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컨트롤이 어려운 스킬이다 보니, 그렇게 열심히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숙련치의 반절가량을 넘긴 수준이었다.
‘그래도 피어는 제약이 덜해서 다행이네.’
직접적으로 눈에 드러나는 드래곤 브레스와 달리, 드래곤 피어의 경우에는 강한 임팩트가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주변 피해도 큰 게 아니다 보니, 던전에서도 맘껏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속사정을 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는 점 때문에, 드래곤 피어는 수시로 숙련도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쌍둥이들의 버스 운행 속도에 불이 붙으며, 그야말로 고속버스급의 질주를 할 수 있었다.
[드래곤 피어]
그가 스킬을 발동하면,
끼이잉….
끼잉….
무시무시한 덩치의 몬스터들이 마치 비 맞은 똥개처럼 눈치를 보며 어깨를 움츠리기 시작한다.
가드가 반쯤 내려온 모습에 쌍둥이들은 한결 편하게 공격을 내지르며 치명타를 때려 박았고, 사냥 속도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레벨 작업이 이뤄지니, 어느 시점부터 쌍둥이들은 믿지 못할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와… 이거, 어째 우리가 밀리는 것 같다.”
임지현의 말에 임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레벨은 분명 150레벨대가 맞는데, 오히려 우리보다 더 윗줄인 것 같다.”
“솔직히 이 정도면 버스가 아니라, 그냥 정식 파티 아니냐?”
그리 말하는 임지현의 눈가에 옅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이대로라면 곧 버스 운행도 종점에 다다를 게 분명했다.
사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그들이 버스를 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마루가 머리에 뿔을 달고 나타난 순간부터 그러했는데, 160레벨 구간만 넘어가도 상황이 역전될 거란 예감을 강하게 받았다.
과연, 도움이 안 되는데, 그와 함께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슬슬 혼자서 뛰어도 괜찮겠네.”
마루가 그리 말하며 쌍둥이의 버스에서 하차 소식을 알려 왔다.
아직 160레벨 구간도 넘은 게 아니었건만, 마루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강해지며, 그들 남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파티 사냥이 좀 더 효율적이니까. 160레벨 구간까지는 함께하시죠.”
“저희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쌍둥이들은 그리 말하며 함께할 의사를 밝혀 왔지만, 마루는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너희도 3차 전직을 해야지. 곧 전직 구간도 막바지라고 들었는데, 거기는 업적이나 공헌도를 잘 쌓아 놔야 하잖아. 버스를 도는 건 경험치 구간에 도움이 되니까 같이 뛰었지만, 이미 넘어선 것 같은데 뭐 하러 같이 뛰어.”
그 말에 쌍둥이들은 아차 싶었다.
‘설마, 그동안 우리 전직 구간을 확인했던 게.’
마루는 꾸준히 그들의 상태 및 상황 등을 체크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조치였던 듯싶었다.
“하… 하지만….”
무어라 더 말을 하려는 그들에게 마루가 손을 저으며 이야기했다.
“됐어. 뭘 걱정하는지 아는데, 이미 너희는 나한테 제대로 엮인 상황이야. 단물 쓴물 다 뽑아낼 때까지 놔줄 생각 없으니까. 괜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3차 전직에나 집중해.”
그 말에 쌍둥이들의 얼굴에 언뜻 화색이 돌았다. 이대로 끝인가 싶었건만, 마루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앞으로도 길게 인연이 이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루가 그들 표정 변화에 실소하며 말했다.
“그리고 혜성 길드의 마루라는 친구나 열심히 잘 보조하고. 전에도 말했지만, 그 친구 곁에 꼬옥 붙어 있다 보면, 결국 나와도 연결될 거야.”
“옙!”
“맡겨만 주십시오!”
마치 군인처럼 경례까지 하는 모습에 재차 웃음이 나와 버렸다.
“그리고 너희가 제대로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에, 하루빨리 3차 전직을 하라고 떠미는 거다.”
이에 쌍둥이들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3차 전직이라고 해 봤자, 결국 게임 속에서의 성장이지 않던가.
PP의 비밀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저 같은 반응이 당연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가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이유가 있다 여겼다.
임수현이 무언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이내 한 가지를 꺼내 물었다.
“혹시, 신앙도를 높이라고 한 것도 관련이 있는 겁니까?”
마루는 실버 박사의 조언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저 둘은 그의 지시를 잘 따라 줬고, 3차 전직의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을 잘 충족시킨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건 전직뿐이었다.
‘깜짝 선물로 남겨 두고 싶으니까.’
약간의 장난기를 앞세우며, 마루는 더 이상의 깊은 이야기를 늘어놓지는 않았다.
“전직하기 전까지는 찾아올 생각 말고.”
그리 말하며 쌍둥이들을 밀어냈고, 이에 남매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춰 보인 뒤, 그렇게 전직을 위한 여정에 올랐다.
마루는 남매를 떠나보낸 뒤,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다시 솔플인가.”
심심하게 됐다며 투덜거리며 홀로 던전을 향해 뛰어들었다.
고독한 레벨 작업이 이어지는데, 간만에 혼자서 뛰는 탓일까?
‘으음… 오늘은 이쯤 할까?’
일찌감치 퇴근 도장을 찍으며 로그아웃을 외쳤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을 때, 뜻밖의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언슈트의 각성론, 성공하다?]
마루의 연공법이 성과를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