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박달수.
#25. 박달수.
그는 이야기했다.
[각성에 대한 욕심은 없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40대의 각성, 늦깎이 각성자 기록 갱신!]
이미 늦어도 너무 늦어 버린 나이 때문이었다.
그냥 40대도 아니고 무려 45세라는 중반의 연령대였다. 당연하게도 기대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와… 저 나이에 각성이라니. 기록 갱신 폭이 너무 큰 거 아니냐?
―10년이나 늘렸네.
―아니, 저게 정말로 아이언슈트 체조를 따라 한 덕분이라고?
―기사 못 봤냐?
각성자는 40대의 회사원으로서, 아들이 같이하자며 졸라 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아침저녁으로 함께 체조를 하게 됐다.
거기서 기사 내용은 이야기했다.
[이상하게 이걸 한 날은 몸이 좀 더 개운하더라고요. 몸이 가벼우니 업무 효율도 더 올라가는 것 같고, 그래서 회사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체조를 했죠.]
가정적인 아빠였기에, 처음에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스스로가 먼저 나서 가며 체조를 계속 이어 나갔다는 것이다.
[오히려 같이하자던 아들 녀석은 게으름을 피우더군요. 하핫!]
그러면서 또 이야기했다.
[아들 녀석이 제가 각성을 하니까. 요즘에는 또 열심히 체조에 집중하고 있네요. 하하하하!]
늦깎이 세계 기록을 갱신하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늦은 나이만큼 세상 경험이 풍부했고, 그 때문에 사내는 현실을 볼 줄 알았다.
[이 나이 먹고 헌터가 되겠다며 현장에 뛰어들 생각은 없습니다. 기본 교육만 받고, 다시 회사로 복귀해야죠.]
내일 모레가 50이라면서, 이제 와 다른 삶을 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도 이야기했다.
―하긴, 늦깎이 각성자가 성공하는 사례가 드물긴 하지.
―건어택은 성공했잖아.
―에이, 그건 상황이 다르지.
―건어택은 비각성자일 때도 애초에 헌터로 활동했잖아.
―듣기론 그 무렵에도 제법 날렸다더라.
―그게 총기류 각성하고 시너지가 맞아서, 지금처럼 이름을 날리는 거지.
―B급 각성까지 했다던데, 그건 재능도 꽤 뛰어나단 거겠지?
―그렇겠지. 늦깎이긴 해도, 아무래도 건어택은 특수 케이스로 분류해야지. 각성 1년 만에 B급이니까.
아주 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빠졌지만, 이내 제 궤도를 찾으며 본래의 화젯거리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저게 아이언슈트 덕분인 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자기 입으로 직접 이야기했잖아. 체조 덕분이라고.
―상황만 봐도 답이 나오네. 체조를 할 때마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업무 효율이 올라갔다잖냐.
―여기 기사 링크해 줄 테니까. 이거나 봐라.
거기에는 화제의 각성자가 했던 또 다른 인터뷰가 있었다.
[체조 덕분인 걸 어떻게 아냐고요? 각성을 하고 나니까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지금도 체조를 꾸준히 하는 중인데, 그걸 할 때마다 내부에서 포스가 들끓는 게 느껴져요.]
그러면서 아이언슈트의 체조 덕분이 확실하다며, 거듭 입에 담고 있었다.
―그냥 운이 좋아서 각성한 게 아니라?
―솔직히 이제 겨우 한 명 각성한 거잖아. 운이나 우연일지 누가 알아?
―케이스가 너무 적어서, 아직 확답하긴 좀 그렇지.
―그나저나 각성한 거 밝힐 생각이 없었다는데, 어찌 보면 재수가 없는 건가?
―하필, 사람들 많은 곳에서 각성을 해 버렸으니.
회사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옥상 쉼터에서 틈틈이 체조를 했는데, 그러던 중 각성의 순간을 맞이했고, 담배를 피러 올라왔던 이들이 전부 봐 버렸다.
마루는 일련의 기사들을 전부 읽어 나간 뒤, 뒷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가능한 거야?”
각성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실버 박사와 대화를 나눈 이유도 있지만, 당장 여동생 정다솜이 연공법의 혜택을 받기도 했다.
직접 본 게 있기에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너무 뜻밖의 상황인 까닭이었다.
‘이렇게 빨리 각성을 한다고?’
언젠가는 각성자가 나올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기간이 적어도 여름은 지나야 할 거라 생각하며, 당장은 관련해서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봤었다.
‘아직 한 달도 안 지났는데?’
한 계절도 아니고, 한 달이었다. 그마저도 일부만 지났을 뿐이었다.
마루는 화제의 각성자의 사진을 띄웠다.
‘박달수. 45세. 혜성 자동차 영업부인가.’
어찌 보면 한솥밥 먹는 사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길드와 그룹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져 있는 터라, 서로 차려진 밥상이 달랐다.
놓치고 있을지도 모를 특이점 등을 살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관련한 정보들을 검색하는데, 그러다 문득 걸리는 걸 하나 발견했다.
‘흠… 여긴….’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던전 승급!
박달수는 그 첫 번째 기현상 주변에 거주하고 있던 것이다. 턱을 쓸면서 관련 부분을 체크했다.
뜻밖의 각성에 어떤 변수가 작용했는지, 이 모든 것들을 확실히 살펴 둘수록, 차후 그려 나갈 설계도의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것 때문에 더 시끄러워지겠네.’
각성자 등장으로 화제가 되는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또다시 한국에서 사건이 발생한 만큼, 각국 단체의 이목이 더욱 집요하게 한국을 살피게 될 터, 이래저래 상황이 복잡해지는 걸 우려한 거였다.
‘괜찮으려나.’
거기에는 화제의 각성자에 대한 걱정도 담겨 있었다.
여러 기사와 사진들이 올라오는 가운데, 그 주인공의 웃는 얼굴 한편으로 묘한 음영이 깔린 것처럼 보이는 건, 과연 혼자만의 착각일까?
* * *
각국 단체의 수장과 네임드급 헌터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기사를 살폈다.
“또 한국이라고?”
“대체, 그 나라에 뭐가 있기에….”
아이언슈트를 찾기 위해 수많은 요원들이 한국을 찾은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일부를 빼내서 화제의 각성자 주변을 조사시켰다.
“하필 혜성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길드의 본체와 엮여 있는 만큼, 섣불리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이미 혜성 본사 차원에서 적잖은 인원들이 움직이며, 화제의 각성자 주변을 가드하고 있기도 했다.
무리를 한다면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할 것이나, 한국 내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라도 적정선은 지킬 필요가 있었고, 그런 이유로 직접적인 접촉이 아닌, 간접 접촉으로 우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혜성 측에 연락을 해야겠군.”
“연구 자료 공유로 거래를 해 봐야 하나.”
“아이언슈트의 체조 분석 내용은 어떻게 됐지?”
“비교할 만한 실험체가 나왔으니, 일단 박달수란 각성자를 살펴봐야지.”
수많은 단체가 주목하는 가운데, 혜성 그룹에서도 신중히 움직이며 박달수의 가드를 세워 놓은 상황이었다.
혜성 길드의 정예들까지 움직일 정도였으니, 그 삼엄함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당연하게도 박달수는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을 빼기도 어려웠다.
일단 그가 직장인이라는 점이 문제였는데, 상부가 하필이면 혜성이라는 게 여러모로 골치였다.
거기에 더해 발을 빼서도 안 되기도 했다. 운이 좋아서 각성을 했다고는 하나, 그는 40대 중반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각성을 한 지금도 이런 일상에는 변함이 없을 터였다.
당연히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었다. 그런 만큼 혜성의 지시를 착실히 이행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볼 수 있었다.
‘운이 좋은 건가?’
돌아가는 상황만 봐선, 오히려 나쁜 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덕분에 월급은 올랐으니.’
씁쓸하게나마 웃을 수 있는 요소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혜성 ‘길드’ 차원에서 철저한 가드를 해 주고 있단 점이며, 덕분에 대외적으로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단 점이었다.
물론, 아주 똑같은 일상은 아니었다.
기자도 만났고 이런저런 촬영도 하며, 조금은 별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을 맛보고 있긴 했다.
뿐만 아니라 혜성 그룹의 연구소에서 이런저런 실험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이런 부분은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언급했다시피 겉으로는 여전히 평범한 회사원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이런 생활이 언제쯤이나 끝나려나.”
대외적인 이미지가 아닌, ‘진짜’ 일상이 돌아오는 건 언제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뜻밖의 방향에서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 잠깐 반짝이니까.”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그곳에는 실로 뜻밖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인디안 존슨?”
어찌나 놀랐던지 턱이 떨어질 뻔했다. 이에 존슨이 히쭉 웃으며 다가오더니, 그의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 어떻게… 여기에?”
현재 그들이 머무는 장소는 회사 옥상의 휴식터였다. 버벅거리며 묻는 그에게 존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워낙 유명 인사다 보니까. 알아서 열어 주던데.”
실제로도 존슨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왔다. 그의 얼굴이 명함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감히 그를 막아설 수 있겠는가.
그룹의 회장까지 쫓아오네 마네 하는 걸, 박달수만 만나고 간다며 단호히 이야기하는 걸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존슨은 딱딱히 굳은 박달수를 보며 말했다.
“얼어 있기는… 여기 따뜻한 거라도 먹어.”
그리 말한 존슨이 주머니에서 캔 커피를 하나 꺼내서 던졌다. 바짝 얼어 있던 탓인지, 박달수는 한참을 버둥거린 뒤에야 어렵사리 낚아챌 수 있었다.
치익….
캔을 딴 존슨이 한 모금 넘기며 입을 열었다.
“아이언슈트가 보내서 왔어.”
두 눈이 동그래지는 이야기였다.
리튜브에도 나왔고 브라더라고 외치던 장면도 있었던 터라, 둘이 형제라는 건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아이언슈트의 정체가 이름 없는 히어로, 가디언즈의 일원일 거란 이야기도 상당했다.
잠시 잡념에 빠졌던 그의 귓가로 존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원래라면 이렇게 빨리 각성할 리가 없어서, 아이언슈트 그놈도 당황하고 있더라.”
“…각성 시기도 알고 있는 겁니까?”
“예상만 하는 정도지. 정확한 건 아니야.”
박달수가 그 증거였다.
“어쨌든 너무 빨리 각성을 해 버려서, 그쪽이 고생 좀 하겠거니 싶었는지, 나한테 따로 부탁을 하더라고. 직접 나서면 좋겠지만, 그랬다간 상황이 좀 시끄러워질 수 있어서, 내가 나섰어.”
박달수는 소란의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조용히 침묵하며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그러며 한편으로는 새삼 그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얼굴 좀 비치고, 같이 사진도 한 방 찍어서 올리면, 귀찮게 구는 놈들이 꽤나 줄어들 거야. 흐… 내가 그 정도 파워는 있거든.”
세계 최강을 논하는 강자!
그 업적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최고라 할 수 있는 존재!
인디언 존슨!
그런 특별한 헌터가 어깨동무를 해 왔다.
“자, 김~치!”
이어지는 촬영.
찰칵!
사진을 확인한 존슨이 물었다.
“계정 좀 사용하자.”
그러더니 바로 박달수의 SNS에 올리는데, 반응이 실로 폭발적이었다.
―인디안 존슨이라고?
―아니, 이거 진짜냐?
―갑자기 제로 원이 튀어나온다고?
―워… 지려 버렸다.
―아니 것보다 내용은 또 뭔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박달수는 이번 각성 사건으로 인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건만, 거기에 존슨이 직접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다.
#아이언슈트#성공적#각성#서비스
이 한 장의 사진과 내용으로 인해, 아이언슈트의 체조에 존슨의 이름값까지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체조 시작한다.
―이제 와서? 뭐 이렇게 늦어?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
―아버님 댁에 체조 한 세트 놔 드려야겠네.
존슨은 실실거리며 반응을 살핀 뒤, 박달수를 향해 말했다.
“요즘 좀 피곤한 거 아는데, 그래도 조금만 더 참아. 한 계절 정도만 버티면 여기저기서 각성자들이 쏟아져 나올 테니까. 그러면 지금 이 관심도 금세 식어 버릴걸.”
“…정말입니까?”
“그래. 잠깐 반짝이는 거니까. 이참에 좀 즐겨 둬. TV도 나가고 방송 출연도 하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도 괜찮잖아?”
너무 가볍게 말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박달수는 조금쯤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사고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존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주변에 껄떡대는 놈들에 대해서는 따로 내가 주의를 줄 생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박달수가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맘고생이 꽤 심했던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이에 존슨이 쓰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즐겨! 이것도 한철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존슨은 옥상을 내려갔다.
그 뒤로 박달수가 재차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맘고생이 심하다라….”
그래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존슨에게 부탁을 했고, 박달수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나.”
마루는 한숨을 푹 내쉬며 돌발 상황에 맞는 변수를 뿌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하루 뒤,
[또다시 시작된 던전 승급!]
포털 사이트는 새로운 기삿거리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