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물.
#2. 신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그 때문일까?
“각성을 하게 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달수는 이런저런 TV 프로그램에 출현하며, 정말로 현 상황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솔직히 예정에 없던 일인 데다가, 너무 갑작스럽기까지 해서,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럽고 불안하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적어도 제 한 몸을 지킬 수단이 생긴 거잖아요.”
부정적인 면보단 긍정적인 면을 더 살피고자 했다.
“늦깎이 중에서도 늦깎이라서, 주변에선 한계가 명확하다고들 하는데, 저도 굳이 헌터가 될 생각은 없어서 크게 신경 쓰진 않습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거든요.”
좋은 게 좋은 거라지 않던가.
‘그래. 어차피 피할 수 없으니까.’
일정의 상당 부분을 혜성에서 잡아 주며 관리하고 있지 않던가. 그가 원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한다면 존슨의 등장이 영향이 있던 것일까?
칙칙한 연구소가 아닌 바깥으로 나도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한철이야.]
존슨에게 들었던 게 사실이라면, 지금의 관심은 어차피 오래갈 게 아니라는 결론에, 오히려 상황이 편해졌다.
‘보너스도 나오고, 따로 출연료도 받고.’
플러스알파가 상당했다.
‘한철 장사면, 제대로 해 먹어야지.’
이참에 노후 자금이나 확실히 챙겨 먹기로 한 것이다.
“정말 아이언슈트의 체조가 효과가 있는 건가요?”
MC의 질문에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었다. 지겹도록 들었고 지겨울 만큼 답해 줬던 내용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예! 그분 덕분에 각성을 하게 된 거고, 이렇게 공중파 TV에도 나와 보네요. 하하! 요즘은 길거리 다니다 보면 사인 요청도 수시로 들어와요.”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청률이 나오는 탓인지, 혜성 측에 꾸준한 문의가 들어왔고, 개중 선별한 프로그램에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착용하고 있는 복장부터 비롯해서, 스토리텔링까지 전부 혜성과 연결해서 맞춰졌고, 광고까지 혜성 관련한 걸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이는 존슨의 조언이 박달수에게만 작용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박달수에게 했던 이야기는 전부 감시자들의 귀를 통해 그룹 상부로 넘어갔고, 당연히 그들도 ‘한철 장사’라는 내용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소에서도 마땅히 알아낸 게 없고, 당장 알아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이상, 차라리 그를 통해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걸 노리며, 바깥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박달수는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인물이 아니던가. 인지도 쌓기에 훌륭한 소재거리였다.
당연히 그 같은 의도를 읽은 다른 그룹 측에서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존슨까지 나서서 핸들링을 했음을 아는 터라, 과격한 움직임은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 역시 감시자를 붙여 놨었던 터라, 대략적인 상황은 알고 있었다.
짧게는 여름 길어도 가을!
그즈음이면 박달수와 같은 각성자들이 넘쳐 날 터, 그때 새롭게 판을 짜면 된다는 결론 아래, 예상 시나리오를 점검하며 일단은 침묵해 주기로 한 것이다.
―달수 아재 요즘 아주 살판나신 듯.
―헌터는 못 됐지만, 그 대신 TV 스타는 됐네.
―요즘 보면 돈독이 오른 것 같던데. 안 나오는 프로가 없어.
―죄다 혜성에서 시키는 거니까 하는 거지.
―아니야. 요즘은 달수 아재도 좋아서 TV 나오더라. 예전처럼 썩소도 안 짓고, 좋아 죽던데.
―좋은 게 좋은 거다!
―보니까 해외에서도 인터뷰 들어오더라.
―첫 타자라서 화제성 하나는 확실하네.
―아이언슈트 체조 때문인지 아닌지, 그것만 놓고 봐도 여전히 말들이 많아서, 한동안은 화제성이 떨어질 일은 없지.
존슨은 이 모든 상황을 체크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잘 해결됐네.’
그러면서 생각했다.
‘타이밍 좋게 던전 승급이 끼었단 말이지.’
박달수에게 쏠릴 눈길들이 새로운 화젯거리로 인해 분산되었다. 그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다른 방면의 기사들을 살폈다.
[던전 승급의 미스터리!]
[새로운 불가사의로 등극하나?]
[왜 하필 한국에서만?]
[한국을 찾는 세계의 별들!]
개중 한 기사를 눈에 담고 입으로 굴렸다.
‘그러게… 왜 하필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걸까?”
이번 사태와 연관 지어서 생각하니, 자꾸만 마루를 향한 의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의형제에 대한 호기심이 새삼 폭발하는 순간이었는데, 그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 건, 의형제와 함께하는 아이들의 존재였다.
‘둘 다… 보통 아이가 아니야.’
벽을 넘고, 진정한 의미로서 초월자의 영역에 도달했다. 그리고 하루하루 그 신세계의 풍경을 눈에 담고 가슴에 새기며 온몸으로 이해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의 특별함도 눈치챌 수 있었다.
‘특히… 남자아이!’
초롱이라 불리던 아이의 존재감은 그를 전율케 하기에 충분했다.
아주 작고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잠들어 있었다.
‘그 격….’
황당하게도 가장 최근, 그와 비슷한 수준의 격을 내비치던 강자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마계 대공 사일론!
당장은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아이의 내면에 깃든 잠재력은 충분히 거기까지 성장할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이마저도 단편적으로 엿본 것이라,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내 납득해 버리고야 말았다.
‘마루… 그 녀석도 다르지 않았지.’
놀랍게도 마루의 내면에도 ‘미지의 격’이 깃들어 있던 것이다. 게다가 이는 초롱이란 아이보다 더 살피기가 어려웠다.
자주 오래 꾸준히 접촉하다 보니 그 흔적을 읽을 수 있었고, 이를 쫓아서 집요하게 살핀 끝에 가까스로 격의 편린을 엿본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건 이후에 발생한 일이었다.
크르르르….
알 수 없는 미지의 격이 그의 시선을 튕겨 냈던 것이다. 그러면서 역으로 그를 살피는 눈길을 느꼈다.
그건 실로 오싹할 정도로 아찔한 감각이었다. 벽을 넘은 그에게 이런 기분을 맛보게 할 줄이야.
‘사일론부터 시작해서, 하… 어깨에 뽕이 들어갈 틈도 없네.’
덕분에 마루의 말도 안 되는 성장에 비밀도 일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잠재력이 숨어 있었으니.’
아찔함은 이내 짜릿함으로 바뀌었다.
사일론을 통해서 이미 실감한 바 있던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벽 너머의 벽!
그가 오른 세상은 산의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상에 오른다고 해서 도약을 멈출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건, 마음가짐의 차이는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자극 제대로 되네!’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리며 눈을 빛낼 때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곁에서 날아든 음성이 그를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이반나가 곁에 앉으며 물어 왔다.
“당연히 달링 생각이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서, 이렇게 계속 생각하는 거 아니겠어.”
존슨의 너스레에 이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가 슬쩍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많이 자랐네.”
벽을 넘으면서 대머리가 되어 버렸었건만,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이젠 더벅머리 수준이 된 상태였다.
“너무 빨리 자라는데….”
이반나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자, 존슨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달링 생각만 해도 1센티씩 자라더라.”
“무슨 생각인데?”
“에~ 잉, 알면서!”
“…징그럽게 굴기는.”
그러면서 가슴을 두드리는데, 영 싫은 얼굴은 아니었다.
사실, 존슨은 자신의 머리에 대해 적잖은 절망감을 지니고 있었다.
대격변이 끝난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쉬이 머리카락이 나오려 하지 않았던 탓인데, 그렇잖아도 탈모 기운이 있어서 긴장하고 있었건만, 갑자기 중간 과정 없이 엔딩이 나 버린 건가 싶어, 한참을 절망해야만 했다.
그럴 때 등장한 ‘약손’이 있었다.
‘아니지. 신의 손이지!’
그건 바로 마루의 [모발도발] 스킬이었는데, 놀랍게도 일주일간 꾸준히 스킬 마사지를 받으니, 메마른 대지에 새 생명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감동이며 감격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이전에 있었던 M 자 탈모마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그간 할 수 없었던 헤어스타일도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게 꾸미진 않았지만, 어쨌든 솟아난 머리만큼 자신감이 부쩍 상승하긴 했다.
‘탈모? 훗! 털모!’
존슨은 마치 TV 광고의 한 장면처럼, 고개를 흔들면서 머리를 털었다. 요즘 들어 부쩍 머리에 대한 자신감이 과해졌는데, 그 모습이 거슬렸던 것일까?
이반나가 머리채를 잡아챘다.
“지랄 말고, 영화나 보러 가자.”
“…옙!”
탈모를 벗어났지만, 그 기억은 선명히 남아 있던 터라, 머리를 잡히면 힘을 잃는 부작용은 여전했다.
* * *
던전 승급 현상을 통해 박달수에 대한 관심을 비롯하여 아이언슈트에 대한 추격까지, 일정 부분 떨치고 늦춰 놓은 덕분일까?
마루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PP의 레벨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용아병 칭호 역시 착용한 상태로 필드를 돌았다.
착용 시 발동 제한이 있는 칭호의 경우, 대부분 쿨타임이라 할 만한 시간제한도 추가되기 마련인데, 용아병 칭호는 놀랍게도 그런 제한이 없던 터라, 풀타임으로 돌리는 중이었다.
물론, 경험치 공유를 비롯하여 마력 소모의 증가 등, 어찌 보면 시간제한보다 더 껄끄러운 제한이 걸려 있긴 하지만, 초롱이의 성장과 이를 통해 발생하는 칭호의 시너지 효과 등을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감수할 만한 제한 요소라 여겼다.
게다가 마력 소모만큼 신체적인 능력치도 증가하는 효과가 있어서, 오히려 이 상태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 판단했다.
좀 과한 마력 소모로 인해 강제 쿨타임이 적용되긴 하지만, 그 시간도 적절히 잘 이용하니 문제없었다.
“로그아웃!”
그렇게 밖으로 나온 뒤, 캐릭터 회복 기간에 휴식을 취하는 한편, 돌아가는 상황을 상세히 살피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었으니, 이를 통해서 박달수를 비롯해 던전 승급 현상을 확인하고, 추격자들의 상황도 꾸준히 체크하고는 했다.
직접적인 골칫거리는 일단락된 상황인 만큼, 최근에는 다른 부분의 관심사를 이 시간 동안 풀이하고 있었는데, 이는 바로 ‘신물’에 관한 부분이었다.
청룡, 현무, 주작!
이렇게 3종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남은 건… 백호!’
하지만 그 하나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도통 답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앞의 3개는 운이 좋았다.
존슨을 통해 현무와 주작의 신물에 인연이 닿은 것이지 않던가.
‘실질적으로 내가 찾았다고 할 만한 건 하나도 없네.’
민망한 일이었다.
각국의 신화나 기현상 및 던전 조사서 등, 여러 현상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힌트를 얻고자 노력해 봤지만, 통 답이 나오질 않았다.
“으음… 모르겠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존슨에게 물었으나, 그 역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미 삼신기는 전부 흡수했다.
물론, 여전히 신물은 남아 있었고, 기운 역시 넘쳐 났지만 이는 초롱이의 몫이었다.
루미도 곁에서 한입만을 시전 중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초롱이의 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매일 꾸준히 신물과 접촉시키는 만큼, 경험치적인 부분 외에도 성장이 이어지고 있을 터였다.
‘3차 전직 전에 신물도 전부 모았으면 싶은데.’
그 같은 이유로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간만에 외출을 준비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자.’
이전에도 혜성 길드에서의 일정으로 인해, 틈틈이 외출을 하긴 했지만, 기껏해야 주 1회 정도일 뿐이었다.
불필요한 일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승급 현상 역시도 혜성과는 무관한 던전 지대를 골랐을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이번 외출은 실로 특별하다 할 수 있었다.
목적지는?
“제주도 한 장이요.”
한라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