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05화 (205/325)

#5. 데스.

#5. 데스.

백록담까지의 여정은 보통 힘겨운 게 아니었다.

산길을 오르면 오를수록 몬스터들의 등급이 올라가는데, 이미 그 초입부터 고위종들이 즐비하고 있던 것이다.

“허억… 헉… 뒈지겠네!”

마루는 연신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마석 결계술!

존슨이 가르쳐 준 공부가 아니었더라면, 중간 지점에서 일찌감치 발길을 돌렸을 터였다.

등반하는 틈틈이 휴식 타임을 가졌고, 그 덕분에 꾸역꾸역 기어 올라와 백록담을 코앞에 두기까지 했다.

“젊은 놈이 허약해 빠졌어.”

마루의 곁에 엉덩이를 걸친 현무암이 한 소리를 하며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과거, 첫 만남은 분명 진중하고 무게감 넘치는 이미지였건만, 아무래도 그 모든 게 연기였던 모양인지, 이처럼 수시로 마루를 긁어 대며 히죽거리고는 했다.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도 없었다.

그 모습에 실소를 한 현무암이 슬쩍 고개를 들어 멀리 백록담 방향을 바라봤다.

시꺼먼 먹장구름이 하늘 가득 일렁이는 게 보였다.

‘확실히 눈치챘군.’

저 과감한 기세 발현을 통해, 그의 몸 상태를 한라산의 지배자에게 들켰음을 알았다.

과거, 바닷길 앞에 방파제를 세울 수 있던 건 신물의 힘을 빌린 덕분이기에, 이를 마루에게 건네준 지금, 현무암의 상태는 속 빈 강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신물의 잔재만이 남아 그 흔적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었는데, 이를 알아챈 것인지 꾸준히 눈길을 보내왔다.

물론, 나름 은밀하게 보내오는 시선이었지만, 현무암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 제주도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굳이 신물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만큼은 그의 감각이 최고조로 살아나기에, 저 은밀한 시선 역시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그 안에 담겨진 의도마저 읽어 냈으니, 현무암의 시선이 마루에게로 향했다.

놈에게 현무암은 늙은 사냥감일 뿐이었다. 짐작건대 팔팔한 새 사냥감, 어쩌면 새로운 후환이 될 수 있는 골칫거리, 마루를 관찰하기 위해 이곳을 주시하는 것이리라.

‘몸 상태가 확실히 정상은 아닌 모양이군.’

멀쩡했더라면 저처럼 살피는 게 아니라, 일찌감치 달려들며 이빨을 드러냈을 터였다.

만약, 마루가 감당키 어려운 상대라고 여겼다면?

‘진작 도망갔겠지.’

하지만 지금 저렇게 버티고 있는 건?

‘충분히 할 만하다는 뜻인가.’

현무암이 함께하고 있음에도 저런 태도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몸 상태는 별로인 것 같은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거냐?’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가 마루를 바라봤다.

벌러덩 드러누워 호흡을 고르던 마루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어느 정도 기력을 쌓은 듯, 이제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가며 본격적인 연공법으로 상태를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현무암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흘… 여기도 보이는 걸로 판단하면 안 될 게다.’

여러모로 다가올 격전이 기대됐다.

* * *

생각지도 못한 정보였다.

“정… 마루라고?

이선희의 물음에 김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개코가 말하길, 아이언슈트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이어진 건 건어택이래.”

“그렇다면…?”

“너무 앞서가진 말자. 건어택이 아이언슈트라는 건 아니니까. 개코는 건어택 주변에 아이언슈트가 있다고 했을 뿐이야. 존슨도 그렇고 피… 다른 랭커들도 이래저래 인맥이 상당하잖아. 그 목록에 아이언슈트도 끼어 있을 수 있는 거지.”

피닉스 이선을 언급하려다가 급히 말을 돌렸다. 이선희는 이를 눈치챘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개코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거듭 언급되는 마루의 이명은 이선희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녀가 잠시간의 고민 끝에 김연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만큼, 김연희는 이선희의 눈빛을 대번에 읽어 냈다.

“…설마, 건어택이 아이언슈트라고 생각하는 거야?”

굳어 버린 김연희의 표정에 이선희가 재차 물었다.

“너도 의심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개코에게 아이언슈트의 흔적이 마루의 주변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김연희는 저도 모르게 마루와 아이언슈트를 연결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꾸준히 의혹이 제기되며 그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남다른 ‘눈’을 지닌 그녀에게 꾸준한 미스터리를 제공해 온 사내가 바로 마루가 아니던가. 의문에서 의혹으로 그리고 의심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걸리는 게 있었다.

‘개코….’

놀랍게도 그 역시 마루를 의심하고 있던 것이다.

[제가 비록 등급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짬밥이 있습니다. 혜성에 들어온 뒤에도 틈틈이 아이언슈트에 대해 고민했는데… 어쩌면 건어택, 정마루가 아이언슈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녀의 눈과 비슷하게, 개코 역시 특별한 후각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고, 그 때문에 더더욱 마루에 대한 의심이 커진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각성 1년’이라는 부분에서, 연신 부정하며 외면했던 것이다. 개코는 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더했다.

[정말로 각성 1년 차일까요?]

사실, 이 부분은 그녀 역시 몇 차례 떠올렸던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확신하지 못했던 건, 마루의 주기적인 각성 측정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백두산 파견을 다녀온 뒤에 남겼던 측정 기록이 결정적이었다.

이미 품고 있던 의문임에도 불구하고, 개코의 입을 통해서 던져진 의문은 새바람처럼 그녀의 머리를 두드리며, 다방면에 걸쳐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그 측정 결과가 조작된 거라면? 다중 스킬 각성자라면 그 정도 재주도 가능하지 않을까? 혹시… 어쩌면… 만약에…….’

머리가 어지러워진 탓인지, 입술을 잘근 깨물던 김연희가 개코의 이야기와 자신이 생각하는바 등을 입에 담으며 슬쩍 물었다.

“언니 생각은 어때?”

이선희의 표정이 한층 심각해졌다. 특수한 재능을 지닌 김연희와 개코 두 사람이 마루를 의심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녀가 느낀 것까지 더한다면?

“난… 여전히 그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랭커가 되었건만 여전히 마루에게서는 어떠한 특별함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 부분에 마루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줬다.

초인의 감각을 피하는 B급 각성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실, 이는 마루를 휘감고 있는 성녀의 가호 덕분이지만, 이를 모르는 만큼 의심의 깊이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의심 중첩 속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백록담을 앞에 두고, 마루는 현무암에게 물었다.

“저 안에 있는 놈에 대해서 정보 좀 없습니까?”

이에 현무암은 어깨만 으쓱였다. 대답해 줄 마음이 없다는 뜻이었는데, 알아서 돌발 상황에 맞춰 대응하라는 의미였다.

한숨을 푹 내쉰 마루는 존슨을 떠올렸다. 다행히 그에게 들어 놓은 정보가 있던 것인데, 이를 토대로 PP의 정보를 상기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다.

‘데스 나이트!’

존슨과 마주쳤던 한라산의 지배자, 그건 바로 죽음의 기사였다.

‘후… 이놈들은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최약체라 할 만한 놈들은 고위종의 경계에 겨우 발만 걸치고 있지만, 최상급의 데스 나이트는 고위종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으로서, 이 경우에는 드레이크와 마찬가지로 마족들의 영향력 바깥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PP의 도감을 상기해 본다면, 기본적으로 생전의 실력에 맞춰 수준이 결정되지만, 꾸준한 전투와 죽음의 사기를 통해 성장하기도 했다.

‘형님을 쫓아냈을 정도니, 최상급이겠지.’

용의 계곡에서 드레이크를 상대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이내 마석 결계를 풀고 백록담으로 향했다.

스스스스스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결계 주변의 대지가 검게 물들며 어두운 안개가 밀려들었다.

‘시작인가.’

마루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일인군단!

최상급 데스 나이트를 칭하는 이명 중 하나로서, 그 이유는 지금 마루의 주변을 돌아보면 확인할 수 있었다.

그극… 그그극….

뚜둑… 뚝… 뚜드득….

끼릭끼긱… 끽….

호러 영화를 생각나게 만드는 풍경이 주변 가득 펼쳐지고 있었다.

다양한 해골들이 땅거죽을 파헤치며 튀어나온 것이다.

최상급의 데스 나이트의 경우, 자체의 강함으로 인해 일인군단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따로 개별 군세를 부리기도 하는 터라 ‘군단’이라 불리는 것이기도 했다.

“비주얼 최악이네.”

저 많은 해골들은 이곳 마굴에서 죽어 나간 몬스터들로서, 최근 반란을 일으킨 놈들도 다수 섞여 있는 듯, 살점을 덕지덕지 붙인 놈들도 상당했다.

숫자를 헤아리면 PP에서 마주했던 데스 나이트의 군세보단 부족했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이쪽이 더 윗줄이라 여겨졌다.

‘하긴, 반란군으로 만든 군단이면….’

저놈들 하나하나가 진짜배기로 이뤄졌을 터였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혹시 하는 기대감에 마루가 현무암을 돌아보는데, 어느새 사라진 것인지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다급히 주위를 빙빙 둘러보니, 저 멀리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손을 휘휘 흔드는 것이 아닌가.

한 손에는 곰방대, 다른 한 손에는 막걸리까지, 작정하고 관람 모드였다.

‘끄응….’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현무암의 태도로 봤을 때, 이번에도 그 혼자 해결하라는 의미이리라.

마루는 양 주먹을 크게 부딪치며 외쳤다.

콰앙! 쾅!

“오냐! 와라, 이 개뼉다구 같은 놈들아!”

딱딱딱딱딱딱….

딱딱딱….

따닥….

그 뜻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해골들이 일제히 이빨을 부딪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루는 이 상황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성호] 스킬을 비롯한 신성 스킬들로 무장을 하는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마루는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성력을 감춘 것이다.

이는 지금만이 아니라, 이곳까지 올라오는 내내 신성 계열은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아예 제주도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 신성 계열은 단 한 차례도 꺼내든 일이 없었다. 이는 현무암을 기다리던 일주일의 고된 전투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데스 나이트의 존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터라, 비장의 카드를 남겨 놓은 것인데, 마루에게 준비된 조커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원카드도 아니고, 패는 많을수록 좋지!’

이 순간만큼은 성녀의 가호마저 삼킨 상태였다.

랭커가 된 이후 그를 휘감고 있는 성녀의 가호를 형광등처럼, 껐다 켜며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지금은 잠시 정전 모드라 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나무 위에서 이런 마루의 모습을 지켜보던 현무암은 히쭉 웃으며 중얼거렸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보이는 게….”

그러며 홀로 막걸리를 기울이는 찰나, 마루와 해골 군단의 격돌이 시작됐다.

쿠우우웅!

마치, 레이드를 당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수많은 해골 괴수들이 마루를 중심으로 진을 짜며 어지러이 공격을 해 들어왔다.

본질이 몬스터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수준이 높은 연계였는데, 이는 저들의 지배자인 데스 나이트의 능력이었다.

생존의 지휘력이 이 같은 합격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리라.

‘젠장! 전투력도 최상인데, 지휘력도 최상이라고?’

가장 골치 아픈 케이스였다.

‘아끼다 똥 되지!’

마루는 패 하나를 까야 할 순간임을 깨달았다.

* * *

한라산의 지배자!

데스 나이트 ‘한’은 멀리 자신의 군세와 부딪치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제법이지만, 아직 부족하군.

좀 더 성장해서 왔더라면 골치가 아팠을지도 모르나, 당장은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겼다.

부상당한 본인의 상태를 계산하고 견적을 낸 결과가 그러했다.

그 때문일까?

한의 시선이 저 뒤편의 현무암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저 어설픈 놈을 데리고 여기까지 밀고 들어온다고? 노망이라도 났나?

고개를 저었다.

현무암을 잘 알기에 그럴 리는 없다 여겼고, 바로 이 같은 부분 때문에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자신이 뭔가 놓치는 게 있나 싶은 불안감에, 군단을 움직여 가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관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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