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06화 (206/325)

#6. 나이트.

#6. 나이트.

아끼다 똥 된다는 격언을 상기하며, 마루는 스킬을 끌어 올렸다.

[성호][복음양식][삼고―고고]

언데드 계열에게 특히 남다른 효과를 발휘하는 신성계 스킬의 연계기로 인해, 상황은 빠르게 그에게로 넘어왔다.

퍼억! 뻑! 빠각….

공격이 이어지고 그에 따라 성력이 주변을 휘젓기 시작하니, 사방 가득 넘실대던 불길한 죽음의 기운이 이리저리 밀려나는 게 보였다.

마치 잔상처럼 남은 성력의 흔적들로 인해, 한번 퍼져 나간 죽음의 기운은 쉬이 뭉치지 못한 채, 그대로 대기 중에 흩어져 버렸다.

푸슥….

파사삭….

이를 매개체 삼아 끊임없이 재생하고 또 재구성되던 해골 괴수들이 더는 회복을 하지 못한 채, 그 뼛가루가 부서지고 바스러지며, 이리저리 무너져 내렸다.

언데드 계열이 골치 아픈 건, 고통을 모르는 죽음의 병사들이라는 점 때문이었는데, 성력을 앞세우는 순간만큼은 놈들도 괴로워하며 울부짖고는 했다.

따다다닥… 따닥….

따다닥… 따다닥….

요란하게 이빨을 부딪치는데, 해골 괴수 나름대로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이었다.

감정 없는 괴수들이라 알려져 있지만, 수준급 성력 앞에서는 뒷걸음질을 치며, 기존의 정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래도 기본 가락이 있어서 빡세긴 하네.’

아무래도 고위종 특유의 전력은 남아 있어서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건 변함없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회복력을 비롯하여 저돌적인 공격 성향까지, 언데드의 핵심 포인트들이 거세된 상황이다 보니, 판을 휘어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양 떼 속 늑대라고 해야 할까?

저 너머에 있을 한라산의 지배자인 데스 나이트를 의식하고 있는 만큼, 최대한 전력을 아껴가며 전투를 치러야 했고, 그 때문에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모든 해골 괴수들을 분쇄하며 백록담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 중심, 마치 구정물처럼 시꺼먼 물 위로 칠흑 같은 어둠을 피워 내는 죽음의 기사가 보였다.

‘데스 나이트!’

그 분위기에 놀라 흔들렸던 것도 잠시, 마루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놈을 살폈다. 그리고 일말의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영감님 말이 사실이었네.’

그를 의심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다 보니 한 줌 불안감을 남겨 놓은 것인데, 이게 웬일?

갑주 사이사이 부서진 흔적이나, 자잘한 실금까지, 데스 나이트는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멀쩡했더라면 저처럼 몸가짐이 흐트러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 걸음 놈에게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곳 마굴의 지배자. 한이다.

데스 나이트가 입을 열며 말을 걸어왔다.

―인간, 문지기의 후계자여. 이곳을 찾은 이유가 뭐지?

‘문지기?’

마루는 잠깐 고민하다, 이내 한이 자신을 현무암의 후계자로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받아 갈 물건이 있어서 왔다.”

―그게, 뭐지?

한의 물음에 마루가 현무암에게 들었던 ‘힌트’를 떠올렸다.

“이곳에 대나무로 만든 피리가 있다던데. 그걸 좀 사용하고 싶은데.”

뜻밖에도 대화가 통한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데스 나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건방지군.

돌변한 태도에 마루의 의아해서 바라봤다.

―감히, 내 힘의 원천을 탐하는 것이냐?

“…뭐?”

마루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현무암이 히죽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게 보였다.

‘아….’

당했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리는데, 돌연 백록담의 중심부에서 거대한 기세가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콰르르르르르….

“크읏!”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 마루가 눈살을 찌푸리며 기운을 일으켰다.

성력이 주변을 휘감으며 폭풍우를 걷어 냈다.

마루 역시 기운을 한껏 피워 내기 시작하니, 백록담 위로 새하얀 빛과 칠흑 같은 어둠이 대립하는 구도가 그려졌다.

* * *

성력이 발현된 순간 알았다.

―저거였나?

현무암이 당당히 이곳까지 발을 들일 수 있던 이유, 그 비장의 카드가 저 신성한 기운에 있음을 짐작했다.

데스나이트 한은 그의 군세가 쓸려 나가는 걸 보며, 뼈밖에 남지 않은 이빨을 딱딱딱 부딪쳤다.

좋지 않다고 여겼다.

언데드와 상극이라 할 수 있는 기운의 등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아직 부상의 여파로 갑주 곳곳에 상흔들이 남아 있건만, 여기서 저 불쾌한 성력이 그의 갑주 위로 잔뜩 뿌려진다?

회복은 더욱 더뎌질 것이며, 그의 원대한 정복 전쟁은 또다시 미뤄질 터였다.

물론, 마루를 상대로 패배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한 번만 잘 참아 낸다면 상황이 한결 편해질 것임을 알았다.

빠르게 회복하고 그대로 짓이겨 버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한차례 말문을 열어 제안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감히, 내 힘의 원천을 탐해?’

분노가 들끓었다.

한이 이곳 마굴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무한한 성장과 도약을 가능케 했던 받침대를 노리고 찾아왔을 줄이야.

―죽인다!

그의 성난 외침에 마루가 당혹감 어린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잠깐, 한 번만 사용하고 돌려줄 테니까.”

이제는 그의 ‘척추’가 되어 버린 물건이었다. 그걸 사용한다?

―죽여 버린다!

그가 성난 외침과 함께 칼을 뽑아 들었다.

쿠르르릉….

발검과 함께 터져 나온 천둥성이 백록담을 휩쓸었다.

* * *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포스트잇!

이선은 그 쪽지를 손에 쥔 채 가만히 바라만 봤다. 그녀, 이선희가 마루를 통해 전해 준 메시지였다.

한참 이를 바라만 보는 그의 곁으로 하나의 인영이 다가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 물음에 고개를 들고, 흐린 미소를 그렸다.

강호구!

악연이라 할 수 있는 태호 그룹의 핏줄이자 적호 길드의 수장이 그곳에 서 있던 까닭이었다.

“잠깐, 옛 추억에 좀 빠져 있었지.”

이선은 그리 말하며 쪽지를 곱게 접어서 지갑에 넣었다.

발록 사태 당시, 강호구 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며 지난 악연을 끝내기를 원했었고, 그러면서 보여 준 여러 호의를 보며 결국 그 손을 잡았었다.

특히, 방계의 무리들을 삼족오와 연결시켜 줬던 부분에서, 적어도 강호구라는 한 개인에 한해서는, 태호 그룹과는 별개로 생각하기로 했었다.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맺은 인연이었다.

사실, 괜찮다 생각하면서도 굳이 찾을 생각은 없었지만, 좀 전 그를 추억에 잠기게 했던 쪽지, 백지 포스트잇이 그를 움직이며 지금 이 만남을 주선했다.

“어떻게 됐어?”

그의 물음에 강호구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아니. 숨 좀 돌립시다. 인사말도 없이 바로 본론을 쑤셔 버리네. 그리고 어떻게 혼자만 주문합니까?”

강호구가 이선 앞에 놓여 있는 커피를 가리키며 투덜거렸다.

태호 그룹과의 악연을 생각한다면 이런 태도가 말도 안 될 수도 있지만, 강호구 역시 사생아로서 태호에 맺힌 게 많은 입장인 데다가, 워낙 친화력이 대단했던 터라, 몇 번 얼굴을 마주치고 나자 어느새 이처럼 친근하게 달라붙고 있었다.

고개를 저어 보인 이선이 말했다.

“언제 올 줄 알고, 주문은 알아서 해.”

투덜대며 주문을 하고 온 강호구에게 이선이 재차 물었다.

“어떻게 됐어?”

“숨 돌릴 틈을 안 주시네.”

“흰소리 말고.”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됩니까. 그냥저냥 밀어붙였죠.”

이선은 역시 제법이라 생각하며 재차 물었다.

“방법은?”

“뭐, 광호 길드가 독박 쓰는 거죠.”

광호에서 간판만 바꿔 단 것이 적호였다. 그 기이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선은 바로 이해했다.

“강만기에게 전부 뒤집어씌우기로 한 모양이군.”

광호가 아닌 광호의 굵직한 잔재, 강만기가 언급되었다.

“그게 가장 편하니까요. 어차피 끈 떨어진 연 신세인데, 이참에 살점만 바르는 게 아니라, 뼈대까지 쪽 빨아 먹는 거죠.”

현재,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포인트는 간단했다.

“곧 있으면 피닉스가 억울한 피해자라는 보도가 사방에 쫙 깔릴 겁니다.”

이선의 복귀를 위한 각 잡기였다.

“그룹 회장님께서도 동의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혜성에서 랭커가 나왔고, 삼족오에서도 랭커가 등장한 상황이다 보니, 기존 체계가 흔들릴 걸 우려하고 계시더라구요. 덕분에 말발이 잘 먹혔죠.”

태호 그룹의 강용호 회장은 아들인 강만기를 희생시켜서 이선과의 관계를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여론이 뒤집어질 경우, 태호 그룹은 적잖은 포화를 맞게 되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게 강용호 회장의 판단이었다.

사실, 이는 강호구가 꾸준히 이선과의 접촉을 보여 주며, 관계 개선의 여지를 비친 덕분에 가능해진 이야기였다.

지금도 저 멀리서 그들을 감시하는 눈길들이 제법 있었는데, 강용호 회장이 붙인 사람들이었다.

강호구는 감시자들에게, 좀 더 정확히는 강용호 회장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이처럼 개방된 카페에서 이선과 만남을 가진 것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던 이선은 잠시 강만기를 떠올렸다.

부친에게 버림받고 이제는 부관참시 수준의 설계까지 당할 터, 지독한 악연이었던 터라 연민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드디어 긴 악연에 제대로 마침표를 찍는다는 생각이 앞섰다.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주문한 커피를 받아 온 강호구가 따로 주문한 치즈 케이크를 먹기 시작하는데, 이선이 묘한 시선으로 이를 바라봤다.

“한 입만 극혐!”

강호구의 한마디에,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 * *

꽈르르릉!

발검과 함께 천둥성이 터지고, 뇌기가 쏟아져 나왔다.

‘젠장!’

마루는 양팔을 교차시키며 이를 막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강대한 기세로 인해 쭈욱 밀려나야만 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저 말도 안 되는 뇌기에 막혀, 연신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평범한 검이라고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특별한 아티팩트였던 듯싶었다. 발검이라 하면 날카로운 검기를 연상시켜야 하건만, 한의 발검은 묵직한 둔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안에 전류가 가득 담겨 있기까지 하니, 안팎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각… 삭… 사아아악….

튕겨 난 마루의 신형 위로, 날카로운 예기가 덮쳐들었다. 이번에는 정상적인 검기였는데, 시꺼멓게 물든 검기 가득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마루는 막기보단 피하는 데 집중하며 몸을 흔들었다.

파파파팍!

몇몇 검기가 스쳐 간 부위가 쩌억 갈라지는 게 보였다. 그림자 사슬의 방어력을 너무도 쉽게 꿰뚫고 있었다.

다행히 상처는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그림자 사슬이 그의 육신을 보호해 낸 것인데, 그 와중에 그림자 사슬에 대미지가 축적되고 있는 터라, 이 같은 가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림자 사슬이 한계에 다다르면, 그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젠장! 거리를 잡을 수가 없으니.’

마루에게 선뜻 거리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검기를 쏟아 내는데, 밀려나고 물러나길 한참, 백록담의 경계까지 쫓겨났을 때, 날아들던 검기가 멈추는 게 보였다.

‘또냐?’

마루가 짜증 어린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니, 한이 검을 회수하며 착검하는 게 보였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봤을 때, 지금 숨을 골라야 했다.

“후웁… 후… 후우우우….”

그러며 한을 노려보는데, 마치 그를 유혹하기라도 하듯 발검 자세를 취한 채, 해골의 안광 부위로 시퍼런 귀화를 번뜩이고 있었다.

경험한 게 있는 탓인지, 마루는 선뜻 달려들지 못했는데,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는 앞선 격돌을 토대로 분석이 이뤄지는 중이었다.

‘뇌전은 연달아 쏟아 낼 수 있는 건 아니야.’

그 강대한 뇌기를 쉴 새 없이 뿜어 댔다면, 일찌감치 마루는 통구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충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짐작하건대 저 칼집에 비밀이 숨어 있다 여겼다.

뇌기가 잔뜩 채워지는 동안은 검기로 그를 공격하고, 채워지면 착검 후 발검과 뇌기 방출까지, 짧은 격돌에서 확인한 반복 패턴이었다.

잠시 해법을 위해 머리를 굴릴 때였다.

―아끼다 똥 된다.

현무암의 텔레파시가 날아들었다.

짜증 섞인 얼굴로 슬쩍 뒤를 돌아보니 현무암이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얄밉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마루는 그의 조언이 해법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껍데기부터 강화를 해야겠네.’

마루는 숨을 고르며 카드를 뒤집었다.

“후우우우우….”

발검을 준비하고 있던 한의 귀화가 크게 흔들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까닭이었다.

백록담에 긴장감의 고조되는 순간,

[칭호 : 용아병]

마루의 머리 위로 뿔이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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