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침식!
#12. 침식!
각종 포탈 커뮤니티 반응 등을 꾸준히 살폈다.
―으아… 피닉스 마렵다!
―강만기 개객끼!
―그래서 이선은 어케 되는 거냐?
―뭘 어째. 달라질 건 없어. 여전히 미국의 랭커 피닉스지.
―아아… 아깝다. 피닉스까지 있었으면, 3랭커인데.
슬슬 반응이 올라오고 있음을 알았다.
―강만기 검찰 조사 들어간다더라.
―태호에서 내버려 둘까?
―듣기론 강호구가 직접 손쓴다던데.
―강호구가 비리 청산한다면서, 직접 문서들 푼 거라더라.
―광호 길드로 해 먹은 게 엄청나더만.
―그래서 적호가 더 칭찬 먹는 거지.
―호구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거.
적당히 던져 놨던 의문들이 의혹을 키워 의심을 불러일으킬 때, 시기 적절히 광호의 문제점들을 기자들에게 풀었다.
따로 강만기를 언급한 적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던져 놨던 떡밥들이 알아서 버무려지며, 강만기를 훌륭한 제물로 끌어 올렸다.
―결국 태호도 같이 해 먹은 거 아닌가?
―그러면 이번에 조용히 있을 이유가 없잖아.
―듣기로는 강호구 길드장으로 앉힌 게 강용호 회장이라잖아. 젊고 어려서 안 된다는 반대파들 무시하고 강행했다던데, 그런 거 보면 이것도 강용호 회장이 용납한 거 아니겠냐.
―어… 그게 그렇게 되나?
꾸준히 태호 그룹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됐지만, 강호구를 띄우는 조치가 잘 먹혀든 것인지, 연쇄 작용처럼 태호 그룹의 이미지도 알아서 잘 포장되고 있었다.
물론, 그런 부분은 알 바 아니었다.
이선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부분들만 집중적으로 살피면서, 분위기가 상당히 올라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돌아와요 피닉스~!
―엉엉~! 우리가 미안하다.
―늦었어. 미국에서 놔줄 것 같냐?
―듣자 하니 강호구가 강만기 잡은 것도 피닉스하고 악연 정리하려고 그런 거라더라.
―역시, 젊어서 그런지 생각이 깨어 있어.
―관계가 개선되면, 피닉스도 쩜오로 칠 수 있나? 랭커 2.5명.
―헛소리는 자제하자.
물론,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하긴 했다.
―에라이! 결국 나라를 버린 놈인데, 뭘 그렇게 좋아서 핥고 빨고 지랄들이야?
―매국노 아님?
―미국노이긴 함!
―강만기가 개놈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피닉스가 나라 버린 건 팩트 아니냐?
―엿이나 드시라 그래라.
하나 이 정도면 충분히 양호하다고 여겼다. 이전에는 무조건 그를 물고 뜯는 내용들만 가득 넘쳐 나지 않았던가.
피닉스가 명성을 떨치면 떨칠수록 그 같은 이들이 늘어났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 정도면 충분히 긍정적이라 할 수 있었고, 이선은 슬슬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지갑을 열고 백지 포스트잇을 한 차례 바라본 뒤, 간만에 정장을 챙겨 입었다.
“우와~! 멋지다.”
“삼촌, 어디 나가세요?”
초롱이와 루미가 눈을 반짝이며 그를 향해 물어 왔다. 이에 이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러브레터 전달하러.”
저 한편에서 마루가 헛구역질을 했다.
* * *
제주도에서 한참 고생을 한 탓일까?
“으어…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 으아아아….”
마루는 간만에 푸욱 퍼져서 침대 생활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 같은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애들 좀 봐 줘.]
이선의 외출 때문이었는데,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깁스까지 풀고 나가다니.’
제법 나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완치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한데 과감히 깁스를 풀어 버린 것이다.
외출할 때 했던 대사를 통해, 누구를 만나러 간 건지 충분히 예상됐고, 그 때문에 내심 뒤를 밟아 보고 싶단 마음도 들었지만, 애써 그런 욕망을 억누르며 침대를 기어 나와야만 했다.
제주도 복귀 후, 사흘만의 탈피였다.
그중 이틀, 48시간을 내리 잠만 잤다는 걸 생각한다면, 실제 늘어진 시간은 하루 정도긴 했다.
그렇게 침대를 벗어난 뒤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각종 커뮤니티 반응을 살피는 거였다.
박달수를 비롯하여 아이언슈트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던전 승급 현상 등, 마루가 엮여 있는 사건 사고의 진행 상황에 대해 체크를 할 필요가 있었다.
―달수 아재 라디오도 나왔더라.
―방송도 하는데, 그 정도야.
―해외 방송도 나옴.
―헌터는 안 된다고 했지만, 스타는 되겠네.
―올해 안으로 건물 하나 살 듯.
―부럽….
변함없이 승승장구 중인 박달수의 모습에 일단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이언슈트 체조로 각성한 사람 또 없누?
―일단 열심히 하고 있음.
―체조는 달밤에 해야지.
―문 크리스탈 파워~! 빛으로 얍!
체조에 대해서도 무난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었다.
―던전 승급에 랭커들 잔뜩 들어갔다며? 어찌 됨?
―전문가들도 까막눈인데, 랭커라고 별수 있나.
―듣기로는 랭커들끼리 한판 했다던데, 레알?
―쉬쉬하긴 하는데, 붙은 거 사실인 듯. 갑자기 선글라스 쓰고 다니는 랭커들 늘었잖아. 일단 의심해 봐야 함.
―왜 붙음?
―서로 사이 안 좋은 랭커들 많잖아. 특히 러시아하고 미국 측 랭커들 자존심 싸움은 유명하지.
대격변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랭커들이 들어온 상황이었다. 말썽이 안 나는 게 이상한 일이었는데, 하필 그 장소가 던전 승급의 현장이다 보니, 마루는 괜히 뜨끔한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랭커들의 숫자를 살피며, 어쩌면 이런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받긴 했지만, 그게 정말로 일어나 버린 것이다.
직접 예측했던 만큼 따끔한 느낌이 더 컸다.
짐작건대 저 같은 마찰이 도화선이 되어, 알게 모르게 랭커들 간의 알력 다툼을 키울 확률이 높았다.
‘너무 시끄러워지면 안 되는데.’
현 상황에 최고의 카드라 할 수 있는 존슨을 앞세우는 걸 염두에 두며, 관련 내용들을 좀 더 살폈다.
―러시아하고 미국? 워… 존슨하고 이반나는 기적이네.
―제로 원은 무국적자 아님?
―둘이 결혼 소식도 들리던데, 어디서 할까?
―건너 건너 듣기로는, 한국이란 말도 있더라.
―굳이? 헛소리가 너무 과한 거 아님?
―왜? 내가 보기엔 그럴 듯한데. 이반나야 제2의 고향이니까 한국도 괜찮잖아. 존슨은 누구 말처럼 무국적자니, 한국이어도 상관없을 테고. 오히려 한국이 가장 무난한 거 아닌가?
―인정!
그 와중에 반가운 소식도 제법 섞여 있었다.
‘식장 알아보러 다닌다더니. 이렇게 소문날 정도면, 얼추 가닥이 잡혔나 보네.’
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로 존슨에게 문자를 남겼다.
[청첩장 나오면 문자해.]
그즈음 아이들이 보던 TV 프로가 끝을 맺었다.
―다음 이 시간에 다시 만나요~!
“빠빠이~!”
“다시 만나요. 꼬~옥!”
초롱이와 루미가 그렇게 외치며 TV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이에 실소를 한 마루가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 주며 물었다.
“오늘은 뭘 하고 놀까?”
그의 물음에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마트! 마트! 마트!”
“카트! 카트! 카트!”
대형 마트는 어지간한 놀이공원 못지않을 정도로 흥미 요소가 다양한 장소였고, 그 덕분에 언제나 아이들의 픽에서 상위권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카트 탑승은 어지간한 놀이기구 못지않았다.
“좋아! 마트에 카트다.”
아이들의 간식 타임이 끝난 뒤, 마루는 적당히 추리닝을 챙겨 입고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간만에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 * *
마왕!
저 거대한 마계를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로서, 수많은 세계를 침공하고 정복해 온 그야말로 차원의 지배자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할까?”
사일론은 이야기했다.
“마왕 혼자서도 이런 세상쯤은 쓸어버릴 수 있을걸.”
짧게나마 이곳 인간계를 돌아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 그런데 이게 말이 돼. 나하고 비슷한 수준의 대공 놈들이 셋 더 있는데, 나까지 포함해서 마왕에게 덤벼들면, 그럭저럭 균형은 맞출 수 있으려나? 운 좋으면 무승부 정도일걸.”
실로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대공 4인분의 전력?
존슨은 지난 대격변에서 사일론의 분신과 격돌했던 걸 떠올렸다.
‘그것도 전력이 아니었을 텐데.’
새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마왕은 특별한 존재야.”
“특별?”
“그래. 마계의 하늘, 태생적으로 마신의 축복을 잔뜩 두르고 있는 존재거든.”
마계판 용사라고도 불렸다.
“그 강한 놈이 버프까지 잔뜩 두르고 있으니, 이거 완전 사기 아니냐?”
그렇게 물어도 아는 바가 없는 존슨으로서는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한참 불만을 토로하던 사일론이 문득 미소를 띠었다.
“그래서 더 기대된다 이거야.”
“…뭐가?”
“뭐긴 뭐야. 마왕하고 한판 붙는 거지.”
뜬금없는 소리에 존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니, 사일론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젠 이쪽에 붙은 처지잖아. 그럼, 나중에 마왕하고도 한판 붙을 거 아니야. 마계에선 붙고 싶어도 3대공 놈들이 지랄을 떨어 대서 판을 벌일 수가 없었거든. 흐흐… 거기가 족 같은 게, 대공까지는 강자존으로 비비고 올라갈 수 있는데, 마왕한테는 그게 안 돼.”
앞서도 언급했듯, ‘마계용사’가 바로 마왕이었다. 마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존재다 보니, 감히 이빨을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세계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사일론의 이야기에 존슨이 기이하다는 듯 물었다.
“4대공이 전부 붙어도 안 된다며?”
“그거야 그렇지만, 실제로 붙어 본 적은 없으니까.”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알아?”
“척 보면 딱 아니냐?”
게다가 마왕의 침략 전쟁을 지켜보며 그 전력을 몇 차례 견식해 본 경험이 있어, 그 격차를 제법 상세히 실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뒤에서 지켜볼 때마다 어찌나 몸이 근질근질하던지. 마왕의 뒤통수를 찍어 버리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흐흐흐흐….”
타고난 투사라고 해야 할까?
사일론은 그야말로 전투 종족이란 말이 어울리는 존재였다. 외형은 인간형에 가깝지만, 내면은 더없이 마족의 핏줄이었던 것이다.
이런 기색을 수시로 보였던 탓에, 마왕 역시 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나를 이번 원정에 밀어 넣었던 거지.”
마왕과 대공들이 합심해서 목소리를 높이니, 발을 뺄 수가 없었다.
“흐흐… 넘어오기 전에는 짜증 나서 미칠 뻔했는데, 네 덕분에 아주 즐거운 원정이 됐지.”
비록 패배하며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지만, 그래도 간만에 쓸 만한 대적자를 만났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원정이라고 여겼다.
가만히 듣고 있던 존슨이 물었다.
“마왕 혼자서 넘어와도 여길 쓸어버릴 수 있다고 했는데, 막을 방법은 없는 거냐?”
사일론이 고개를 저었다.
“못 막아. 마계 침공으로 넘어오는 건 필연이야. 이곳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데, 이미 침공이 시작됐어도 이상하지 않더라. 막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는 균형을 맞추고 있었고, 이레귤러는 쉬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
존슨의 질문에 사일론이 비어 버린 접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공짜로?”
이에 새 케이크를 주문해 줬다.
“차원 침공은 대개 루트가 비슷비슷해.”
큼지막한 딸기 케이크에 함박웃음을 지은 사일론이 기분 좋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작은 균열을 만들고, 그 개구멍으로 자잘한 몬스터들을 보내는 거지.”
대격변이라는 갑작스러운 세상의 변화 앞에 큰 피해를 입는 와중에 적응이 이뤄지고, 자연스레 사냥으로 이어진다.
“여기가 포인트야.”
사냥 그리고 해체, 거기서 발생하는 부산물!
“몬스터들을 잡으면 나오는 마석과 마정석이 침공의 핵심이야.”
그 안에 담긴 진한 에너지를 통해, 각 세상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그게 함정인 줄도 모르고. 흐흐….”
“함정?”
“간단히 이야기를 해 보자. 여기 세상에 담배라는 물건이 있던데, 그걸 피우면 어떻게 되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사일론이 알아서 답을 내어 줬다.
“뭘 고민해. 연기가 나오잖아.”
“그렇지.”
쓸데없이 생각만 많았다며 반성했다.
“그 희뿌연 연기가 공기를 오염시킨다면서?”
존슨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설마….”
“그래. 그거야. 마석을 사용하면 할수록, 이곳 세상도 오염되고 침식되는 거지. 마계화가 이뤄진다고 해야 하나? 마수지대? 마굴? 하여튼 그 비슷한 장소가 되는 거야.”
존슨은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석? 마계화?’
대격변 이후, 몬스터의 부산물을 통해 세계는 새로운 방식의 발전 과정을 거듭해 왔고,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마석이었다.
30년 남짓의 시간, 어느새 일상은 마석 물품과 함께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넘어간 것처럼, 세상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격변을 맞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침공을 막을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는 사일론의 말이 대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맙소사!’
말 그대로 돌이키기엔 늦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