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날파리.
#17. 날파리.
혜성 특수 1팀의 팀장 자리를 제안받았다.
매력적인 자리였기에 당연히 이를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아이언슈트!
마루는 자신의 가면이 지닌 상징성이 하루가 다르게 커질 것임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사실, 멀티 스킬 보유자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각성 체조의 개발자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그의 특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터였다.
수많은 위협이 그의 뒤를 쫓을 터,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이중생활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혜성 특수 1팀의 팀장!
그리고 팀 아이언슈트!
두 개의 팀을 돌리는 것이다.
‘스판맨들도 이중생활은 기본이니까.’
어릴 적 봤던 쫄쫄이 히어로물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상황을 합리화했다.
‘이 정도는 각오했으니까.’
실버 박사의 유지를 이어 가기로 결심할 때,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지 않던가.
오히려 잘됐다고도 생각했다.
B급 A형 정마루의 이명인 ‘건어택’의 유명세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플 지경이건만, 아이언슈트의 이름값까지 둘러 버린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딱 이 정도가 적당하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두 개의 팀을 운영할 생각이었고, 진수미는 아이언슈트 팀에서 활약하길 원하는 인재였다.
물론, 그와 마찬가지로 이중생활을 해도 상관없었다.
“팀 아이언슈트?”
가만히 듣고 있던 이선이 반응했다. 이에 마루가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별로야?”
“구려. 차라리 팀 마루라고 하지 그래?”
“…….”
제대로 와닿는 조언이었다.
“크흠! 팀명은 나중에 다시 제대로 지을 거야.”
그렇게 적당히 둘러대며 삐죽대는 마루의 모습에, 이선은 새삼 신기하단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1년인데….’
그 짧은 시간에 각성에서 랭커까지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멀티 스킬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성의 비밀까지 전파하는 신비로움까지,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실버 박사의 유산 때문일까?’
그것만으로 저러한 경지를 이루는 게 가능한 걸까?
왠지 그건 아닐 듯싶었다.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며 꾸준히 마루를 살피는데, 이는 최근 들어 생겨난 습관이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안 느껴지네.’
애초부터 이능계의 자연 조작 능력자다 보니 포스에 민감한 면이 있었지만, 팔을 다친 뒤 이런 부분에 더 집중하게 된 까닭일까?
포스 컨트롤과 감지에 관한 부분에서 한 단계 더 성장을 하게 됐다.
그 덕분인지 어지간한 헌터들도 그의 감각을 피해 갈 수 없었건만, 기이하게도 마루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랭커들도 체크할 수 있었는데, 요놈은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이지.’
브라질에서 막 복귀했을 땐 그래도 감지가 됐다는 점 때문인지, 더더욱 그를 살피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겨우 1년인데.’
어쩌면 그도 긴장해야 할 정도가 된 건 아닐까?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마루를 보던 시선을 돌려 거처 주변을 쭈욱 훑었다. 지대가 높다 보니 옥상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동네를 돌아보기에는 딱 좋았다.
‘슬슬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하네.’
마루의 대외적인 이명은 ‘건어택’이지만, 이면에서 불리는 이명은 따로 있었다.
트랩퍼!
앞서, 발록과 한판 붙던 날, 마루도 화려하게 한 방 보여 줬었는데, 당시 중심이 됐던 게 바로 각종 트랩을 이용한 몰이사냥이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다른 방식으로 이면에 전파한 것이다.
대외적으로 B급 A형으로 알려져 있지만, 트랩퍼로서의 마루는 A급을 충분히 상회했다.
이곳, 마루의 거처는 그의 영역으로서, 트랩퍼가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여기서만큼은 A급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평가되는 것, 그게 이면에 알려진 ‘트랩퍼 정마루’의 수준이었다.
그 때문일까?
‘트랩 때문에 안쪽으론 들어오진 못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슬금슬금 포위망을 잡고 있네.’
저들의 행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슬쩍 마루에게 물었다.
“빤하잖아.”
“뭐가?”
“아이언슈트.”
순간 이선의 눈가에 의문이 떠올랐다. 마루의 존재가 들킬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내가 들켰다는 게 아니라. 존슨 그 화상하고 얽혀 있잖아.
“아….”
이선과 마루는 존슨의 의형제로 알려져 있고, 그 존슨은 아이언슈트와 어깨동무를 했다.
의형제 카테고리가 자연스레 맞물리며, 이 주변으로도 시선이 쏠리는 거였다. 마루만 노리는 게 아니라 이선까지 함께 타깃으로 삼은 움직임인 것이다.
마루가 이선의 팔을 보며 물었다.
“좀 어때?”
“많이 괜찮아졌어.”
한 차례 절단됐다가 붙은 팔이었다. 게다가 발록과의 결전으로 추가적인 부상까지 입었다.
그런 이유로 완치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7~80% 정도의 성능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마저도 최대치로 잡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네가 알려 준 운동, 효과 좋더라.”
맞춤형 아이언슈트 체조로 인해, 생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고, 그 기능성도 놀라울 만큼 뛰어났다.
7~80% 정도가 아니라, 100% 완치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마루가 저런 질문을 했다는 부분에서, 곧 다가올 상황도 유추됐다. 실력만 보이는 것 이상인 게 아니라, 머리 회전 속도 역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존재, 그게 바로 정마루라는 ‘형제’였다.
“…눈빛이 묘하게 불쾌한데.”
마루가 세모눈을 떴고, 이에 뜨끔한 이선이 급히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들어올까?”
그의 물음에 마루가 의심의 눈초리를 남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로 날파리가 꼬였는데, 똥인지 된장인지 한 번은 찍어 봐야 성이 풀리겠지.”
“이거, 자존심이 꽤 상하네.”
미국의 3번째 히어로 피닉스의 이명을 생각해 봤을 때, 저들 불청객들의 움직임이 달가울 수는 없었다.
“저쪽에서도 랭커가 움직인다는 뜻이겠지.”
마루의 이야기에 이선은 자신의 오른팔을 크게 움직이며, 재차 상태를 확인했다. 최근 유달리 수난이었던 터라, 괜히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리라.
그 모습을 보던 마루가 이야기했다.
“너무 걱정하진 마. F―Killer 준비해 놨으니까.”
“S가 아니라?”
“…하! Si… 아재 진짜.”
잠시 그들 사이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이선이 예상했던 그대로라고 해야 할까?
“으음… 어디에 어떤 트랩이 깔려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선뜻 발을 들이기가 어렵네.”
“외곽만 도는데도 묘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게, 존슨의 마석 결계술이 깔려 있는 건가?”
“그거 더럽게 골 때리는 공부라던데.”
“자체적인 함정술까지 더했다더라.”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며?”
“대가리 잘 돌아가네.”
“괜히 ‘트랩퍼’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날파리라고 불린 여러 불청객들이 목표물의 주변을 크게 빙빙 돌면서, 이리저리 진입 루트를 탐색했다.
저 안쪽 깊숙이 직접 발을 들인 건 아니다 보니, 본격적인 ‘작업’을 펼쳤을 때 동선 변화가 크게 발생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지형을 완벽히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돌발 상황의 대처 능력을 올려 줄 터였다.
사람이 하나둘 모이다 보면 무리가 형성되기 마련이라 하던가?
이는 랭커들의 사회에서도 크게 다를 게 없었는데, 이곳 마루의 거처 주변을 살피는 건, 그렇게 그룹을 이룬 랭커들이 손잡고 꾸린 감시망이었다.
“아이언슈트가 정말 한국인이라면, 저들이 알고 있을지도 몰라.”
사실, 따로 리튜브에서 어깨동무까지 한 존슨에게 직접 묻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지도 모른다.
“…존슨을 직접 건드는 건, 솔직히 좀 쫄려!”
솔직한 심정이었다.
“피닉스가 낫지.”
따로 존슨에게 도전장을 준비 중인 이들도 있지만, 이는 랭커 중에서도 최상위급의 헌터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나머지는 이처럼 주변을 돌아서 살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존슨을 관찰하는 것도 허투루 하진 않았다.
“존슨, 요즘 꼬맹이 하나 달고 다니던데.”
“어디서 애 하나 낳아 왔나?”
“이반나한테 죽어나는 거 아니야?”
“흐음… 그래서 요즘 그 둘이 데이트를 안 하는 건가?”
“예식장 알아본다면서 바쁘더니, 이거 완전히 파투 나는 각?”
“세기의 결혼식이 됐을 텐데.”
사일론의 위험성으로 인해, 존슨이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거였지만, 외부에서 봤을 땐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자연히 이쯤하면 호기심의 대상이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그 꼬맹이는 뭐지?”
“존슨이 딱 달라붙어 있는 게, 보통 관계는 아닌 것 같던데.”
“흠… 제로 원의 약점이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아.”
사실, 이전까지는 이반나가 유일한 약점으로 거론되긴 했는데, 약점치고는 너무 강해서 오히려 강점으로 분류될 정도였다.
그 때문일까?
“꼬맹이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봐.”
“이거, 잘만 하면 그 망나니한테 목줄을 채울 수 있겠네.”
“제로 원의 목줄이라.”
“츄릅….”
랭커들을 비롯한 각국의 요원들이 극도로 흥분하며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때문일까?
마루 주변의 날파리 농도가 잠시 낮아졌다.
* * *
퍼펙트 플레이!
그건 이곳 세상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육성’ 시스템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흔한 건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걸 알고 있기에, 낯설진 않았다.
저 어딘가에선 탑이라는 형태로, 또 어딘가에선 던전이란 형식으로, 때로는 꿈이라는 의외의 방식으로, 마계의 침공을 대비하며 세계의 구원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유희거리로 판을 짜다니. 머릴 잘 썼네.”
사일론은 그리 말하며 VR 기기를 바라봤다.
그는 다른 마계의 존재이니만큼, 접속 가능성에 관해서는 반반으로 가정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세계의 대적자인 ‘마족’이라는 이유로 인해, 이런 시스템들은 그를 거부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거기서 한 가지 변수가 발생한다.
반인반마!
그는 온전한 마계의 존재가 아니기에, 시스템적인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접속의 성공 여부는 반반이었다.
그가 지닌 마족의 피를 우선할 경우, 시스템은 그를 거부한다. 하지만 인간의 피를 인정할 경우에는 시스템은 그의 입장을 허락하고는 했다.
과거에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마계 대공!
그 정점에 이르는 길에, 나름의 편법도 활용했던 것이다. 모친이 가르쳐 준 전사의 공부가 분명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오직 그것만으로 정점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여러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육성 시스템에 한 발씩 걸칠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마족들은 꿈꿀 수 없는 편법을 꾀할 수 있었다.
‘문어발식 침공의 폐해지. 흐흐….’
그게 사일론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이내 마계의 육성 시스템을 떠올려 버렸다.
약육강식!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이걸 잘 우려먹으면, 회복 시기를 앞당길 수 있겠어.’
VR 기기를 바라본 사일론이 입술을 핥았다.
반인반마의 피를 좀 더 긍정적으로 내비치기 위해, 나름의 조치도 취한 상태였다.
엔트라넷 계약서!
그 시스템에 먼저 한 팔을 묶어 놓음으로써, 그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어떤 평가가 내려졌는지 확인을 해 볼까.’
혹시라도 시스템의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차원 단위로 거부하면 골치 아픈데.’
마족이나 인간의 구분이 아닌, 다른 세계라는 관점에서 거부 의사를 밝힌다면, 여러모로 피곤해질 확률이 높았다.
‘계약서 작성이 된 걸로 봐선,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안심은 금물이었다.
만약, 시스템이 그를 거부한다면?
‘그 정도로 포기할 순 없지.’
나름대로 다양한 육성 시스템에 접속하며 노하우가 쌓여 있는 만큼, 어떻게든 보안 방벽을 뚫고 PP 시스템에 접속하고야 말 터였다.
‘그래도 기왕이면 한 방에 뚫는 게 최고지.’
기대감 어린 얼굴로 VR 기기를 썼다.
두근두근….
“접속 퍼펙트 플레이!”
그리고 이어지는 알람,
[퍼펙트 플레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로그인!”
마법의 주문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