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말… 씨!
#18. 말… 씨!
사일론의 조언을 듣고 이리저리 알아본바, 놀라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사이비가 이렇게 많아?”
존슨은 혀를 내두르며 보고서들을 확인했다.
‘어떤 놈들이 마졸이냐?’
마족에게 세뇌된 인간들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추리고 추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아서 쉬이 확인하기가 어려웠는데, 다행스럽게도 사일론의 조언은 그 와중에도 몇몇 루트를 잡아 줬고, 존슨은 이를 좀 더 상세히 확인하고자, 최근 한국에 들어온 랭커 한 명을 찾았다.
약속한 카페, 묘한 아우라의 사내가 보였다. 존슨이 그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일찍 왔네.”
그의 등장에 아우라의 사내가 옅은 미소와 함께 반응했다.
“얼굴이 폈네. 연애가 좋긴 좋은가 봐?”
“당연하지. 여기 살도 올랐다.”
슬쩍 옆구리 살까지 보여 주니,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따로 정보 좀 수집 중인데, 이 방면에는 네가 전문가라서 도움 좀 얻을까 하고.”
“전문가?”
“키메라 쫓는 건, 발록 네가 최고잖아.”
사내, 발록이 얼굴을 굳혔고, 존슨은 쉴 틈 없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연구소에 관한 정보가 필요해.”
존슨은 사일론이 했던 이야기를 상기했다.
[비록 힘을 줄 수는 없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건 어렵지 않지.]
[간단히 예를 들자면, 키메라 같은 거?]
저 수많은 사이비 단체들 중, 이면과 닿아 있으며 연구소와도 연결 지을 수 있는 놈들을 골라낼 수 있다면?
썩은 부위를 골라내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잠시간 고민을 하는가 싶던 발록이 커피잔을 두드리며 물었다.
“공짜로?”
확실히 그가 지닌 연구소 관련 정보는 세계 최고급이라 할 수 있었고, 날로 먹기에는 무리가 있는 부분이었다.
“산드라를 위한 치료법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 말에 발록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섣불리 말할 만한 게 아니야.”
언뜻, 동공 가득 분노의 불꽃이 튀는 게 보였는데, 기이한 건 음성 한편에는 묘한 기대감이 스며 있다는 점이었다.
말을 한 대상이 인디안 존슨이란 부분이, 그로 하여금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한 거였다.
이에 존슨이 USB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여기에 답이 있다.”
그 말에 발록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USB에 손을 가져가는데, 존슨은 이를 막지 않은 채 순순히 물건을 건네줬다.
“산드라는 내게도 조카 같은 아이야. 그래서 이런 거래에 사용하고 싶진 않지만, 상황이 워낙 골 때려서 어쩔 수가 없네.”
발록과 존슨은 이래저래 안면이 있었는데, 개중 산드라와의 인연은 조금 남달랐다.
과거, 발록이 이면의 불법 연구소에서 산드라를 구해 내던 당시, 그 자리에 존슨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하면 인간사에 끼어들지 않는 존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걸리는 것까지 무시하진 않았는데, 당시 산드라의 연구소 역시 그렇게 걸린 장소였다.
상당한 규모의 연구소였고, 발록 혼자서 해결하기엔 무리가 있던 터라, 존슨도 한 팔 거든 것이다.
존슨은 전면에 나서진 않았기에, 이를 아는 건 발록과 산드라 딱 둘뿐이었다.
그 당시 쌓인 전우애가 기반이 되어, 발록과 존슨도 제법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한참 존슨을 노려보던 발록이 물었다.
“확실한 거겠지?”
“나 못 믿냐?”
그거면 충분했다. 발록은 USB를 소중히 품에 넣었고, 이내 존슨에게 번호가 적힌 명함 하나를 건넸다.
“거기 물어보면 상세한 파일을 건네줄 거다.”
짐작건대 발록 개인이 운용하는 정보 단체 번호이리라.
그런 곳의 번호를 너무 쉽게 건네주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마도 이는 1회성 연락처로서,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바로 폐기될 번호일 터였다.
존슨을 비롯한 다른 네임드들 역시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는 만큼, 크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번호를 외운 뒤 명함은 소각시켰다. 그 모습에 발록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갔다.
순간 불꽃이 피는 것 같았건만, 연기도 흔적도 없이 완벽하게 명함이 사라진 까닭이었다.
‘맙소사!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포스 컨트롤….’
“…벽을 넘었다는 소문이 있더니, 거짓이 아닌 모양이군.”
이에 존슨이 쓰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거 때문에 골치깨나 썩는 중이다.”
“옥토퍼스를 박살 냈다는 소린 들었어.”
이는 이면의 랭커 데카의 이명으로서, 문어발처럼 수많은 팔다리를 부리는 이능력으로 인해 붙은 명칭이었다.
“그놈 정도야 이전에도 껌이었지.”
발록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의 말과 달리 데카는 이면에서도 손에 꼽히는 랭커로서, 그 강함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동급의 랭커들마저 고개를 숙이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나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지.’
미국의 세 번째 히어로라고 불리는 피닉스마저 자신하기 힘든 상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의 저 소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으니, 새삼스레 존슨의 이름값을 실감하는 부분이었다.
“뭘 쫄고 그래. 데카 그놈 그거 생각보다 별거 없어.”
“너한테나 그렇겠지.”
“흐흐… 정말이라니까. 이번에 알게 된 건데.”
그러면서 데카의 비밀, ‘파티’에 대해서 알려 줬다.
“옥토퍼스라더니, 그 팔다리 숫자만큼 버프를 받아들일 수 있더라고. 흐흐….”
남다른 강함의 비밀은 거기에 있던 것이다. 같은 종류의 버프마저 중첩시킬 수 있으니, 일반적인 랭커들보다 월등히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순수 능력치만 놓고 본다면 결코 발록에 비할 수 없을 터였다.
발록이 물었다.
“어케 이겼누?”
“선빵필승!”
간단명료했다.
* * *
반칼죽은 신나서 외쳤다.
―나를 따르라!
그 순간 거대한 죽음의 군세가 우르르 일어나며, 마치 메뚜기 떼처럼 필드 한편을 휩쓸었다.
만파식적의 효과라고 해야 할까?
―으하하하! 힘이 솟는다. 넘친다.
칼죽은 연신 환호했다.
과거, 백록담에서 살던 무렵처럼 만파식적을 척추에 박아 넣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니,
삐리리리….
이는 마루의 연주로 인한 효과였다.
애초에 척추에 박아 지지대로 삼는 게 아니라, 이처럼 불어서 연주하는 게 만파식적의 바른 용도라 할 수 있었다.
죽음의 군세에 데스 나이트 그리고 만파식적까지, 마력 소모가 어마어마했기에, 회복에만 중점을 둔 상태로 후방에서 연주만 반복할 뿐이었다.
[사신 변환 ― 주작]
따로 개별 전투는 자제했다.
백호를 찾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서, 만파식적의 연주 실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도 있기에, 작정하고 모든 전투는 칼죽이에게 넘긴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몇몇 ‘관찰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짤로 편집되었고, 또 다른 화제 몰이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데스의 피리 부는 사자님!
―리치킹의 신물!
―저 아이템이 최소 전설급이라던데.
―특이한 방식으로 해골 소환하네.
―연주 스킬도 기본인 듯.
―흑마법+음유시인?
―뭔가 오묘한 조합이네.
―흑우시인!
만파식적이 어느새 저승의 신물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마루에게는 ‘리치킹’이라는 새로운 이명까지 붙어 버린 것이다.
‘호로로부터 시작해서, 참….’
닉네임은 하나인데 별명은 여러 개였다.
마루 역시 자신과 관련된 소식들은 놓치지 않았고, 덕분에 어떤 오해가 펼쳐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는데, 그러려니 하면서 구경할 뿐이었다.
최대한 오지나 험지의 필드만 돌아다녔다.
앞서, 용아병 스킬을 숙달시킬 때와는 다른 이유로서, 유저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나름의 배려였다.
그렇게 메뚜기 떼처럼 필드를 쓸어버리고 난 뒤, 마력을 거둬들이는 순간이었다.
[레벨 업!]
알람과 함께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몬스터들의 시체를 다시 일으켜 세워 이를 병사로 부릴 경우, 놈들의 경험치는 정산되지 않는 터라, 이처럼 뒤늦게 관련 경험치와 함께 레벨 상승이 이뤄진 것이다.
마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버렸다.
‘휘유… 말도 안 되는 속도네. 이 구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수 있는 구간이 아닌데.’
데스 나이트 인형도 무너진 탓인지, 칼죽이가 검의 형태로 허공을 유영하다 마루의 허리에 안착했다.
―으어… 피곤하다. 한숨 자겠슴다.
“그래. 고생했다.”
마루가 그리 답하며 잠시 칼죽이를 내려다봤다. 이 기이한 검을 중심으로 편집된 촬영본도 꽤 있었고, 그걸로 떠드는 내용도 제법 됐다.
―리치킹의 유령검!
―매번 저기서 데스 나이트가 소환되는 것 같던데, 일종의 매개체 같은 건가?
―저것도 최소 영웅급 이상이겠지?
―전설급일지도….
―설마, 전설급 아이템을 2개나?
―데스 나이트 수준 더럽게 높은 걸로 봐선, 확실히 가능성 있다.
―장비끼리 상성까지 맞는 거네… 부럽다!
전설 등급 아이템을 2개 이상 지닌 유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는 그야말로 극히 소수로서, 그들은 하나같이 랭킹 100위권 안에만 존재했다.
첫 전설급 아이템과 달리, 두 번째는 계승을 하기도 애매하다 보니, 혹여 아이템이 떨어지더라도 손에 맞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전설급 마도서를 들고 마법사가 됐건만, 뜬금없이 전설의 검이 나와 버린다?
마검사로 키우고 싶어도, 스탯 분배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육성 루트에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전설급 아이템을 2개 이상 지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커허어엉….
칼죽이의 코골이 소리와 그에 따른 울림이 그의 상념을 방해했다. 쓰게 웃으며 허리춤을 두드리니, 이내 소리가 줄어들며 얌전해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칼죽이를 진정시킨 뒤, 상태창을 열어 스탯을 분배했다.
[레벨 : 180]
[힘 : 290+5(+100)] [지능 : 290(+100)]
[체력 : 288+2(+100)] [정신력 : 285+5(+100)]
[민첩 : 285+5(+100)]
[스탯 : 0]
150레벨을 건널 무렵부터는 그야말로 마의 영역이라고 불릴 만큼, 레벨 하나를 올리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건만, 죽음의 군세를 움직이며 홀로 필드를 쓸어 가며 사냥을 한 덕분일까?
폭렙이라 할 만큼 레벨을 끌어올리더니 기어이 180레벨의 벽을 넘어 버렸다.
‘1,455스탯인가.’
순수 스탯만 놓고 봐도, 250레벨을 훌쩍 넘기는 스탯이었다. 어지간한 고위급 장비를 착용해야 뽑아낼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게다가 장비 역시 특별했다.
[내 사랑 찐따 ― 7세트]
이상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장비는 따로 강하나에게 부탁해서 제작한 거였다.
무려 최고급으로 분류되는 ‘7세트’의 유물 템으로 세팅을 마쳤는데, 특수 아이템을 잔뜩 사용한 덕분인지, 영웅 등급 아이템과도 충분히 비빌 만큼 뛰어난 물건이 나온 상황이었다.
‘추가 스탯 100도 달달하지만, 따로 붙어 있는 스킬들은 완전 꿀이지.’
특별히 부탁해서 마력 회복용 스킬을 비롯하여, 체력과 마력 전환 스킬 등으로 둘둘 둘러놨다.
칼죽이가 날뛸 수 있는 여건을 완벽히 마련해 놓은 것이다.
‘나중에 영웅급으로 넘어가면, 마력이 부족할 일은 없겠네.’
영웅 등급 아이템은 3차 전직 구간인 200레벨이 돼야 착용할 수 있는데, 실질적으로 일반적인 유저가 얻을 수 있는 최고위 등급의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 윗줄인 신화와 전설 등급 아이템들은 아주 특수한 상황에 랜덤하게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현재 착용 중인 유물 세트 템은 180레벨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위급 장비라 할 수 있는데, 놀라운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자유희!
밖에서 그러했듯 PP에서도 2차 방벽 역할을 하는데, 따로 스탯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내는 터라, 기존 아이템의 등급 자체가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180레벨임에도 불구하고 영웅급, 그것도 최상위급의 세트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차후 영웅급 그리고 전설급 장비를 착용하더라도, 이런 상승효과는 달라질 게 없을 터였다.
‘괜히 전설 등급 장비가 아니지.’
지옥왕의 무구다운 능력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있었다.
[칭호 : 용아병]
마루의 이마 위로 뿔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용투기(龍鬪氣)]
뒤이어 그의 피부 위로도 얇게 그림자가 덧씌워지는데, 언뜻 드래곤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초롱이의 능력이 하나 더 개방된 거였다.
그저 드래곤의 기본적인 외피가 덧씌워진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전체적인 능력치가 훌쩍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마치 용아병 칭호가 중첩된 것 같다고나 할까?
‘그만큼 마력 소모가 크긴 하지만.’
순간적인 폭발력을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어차피 3차 전직하면 해결될 부분이지.’
문득, 현실의 상황이 떠올랐다.
거처를 중심으로 나날이 쌓여 가는 포위망의 모습으로, 여러 랭커들이 그룹을 이룬 탓인지, 그 규모나 수준이 허투루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선에게 이야기했듯이 그 나름대로 준비한 게 있었는데, 레벨과 스탯 스펙까지 이처럼 날로 빵빵해지니, 일말의 불안감마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느낌으론 최상위급 랭커도 거뜬할 것 같은데.”
물론, 말이 그렇다는 소리였다.
“……?”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던가?
“…형이 왜 여기서 나와?”
거처 주변을 살피던 중, 의외의 인물을 발견하고는 입을 떡 벌려 버렸다.
데카 도라!
이면의 최상위급 랭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