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핫 플레이스.
#19. 핫 플레이스.
옥토퍼스!
이는 이면의 랭커인 데카 도라의 이명이었다.
문어처럼 손발이 여럿으로 늘어나며 활약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신체 변형 능력자라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손발이라 부르지만 그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따로 실존하는 것 역시 아니었다.
데카의 능력의 경우, 포스가 성장함에 따라 그 기운이 외부로 분출되는 특성을 지녔는데, 그게 마치 손발처럼 하나의 형태를 갖추며 주변에서 일렁이는 거였다.
굳이 옥토퍼스라 불리게 된 건, 그 숫자가 정확히 여덟 개인 까닭이었다.
하급 헌터 시절부터 하나하나 늘려 가던 게 랭커가 되면서 딱 8개가 된 것인데, 옥토퍼스라는 이명도 그때 붙은 거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그리 유명세가 있는 헌터는 아니었다. 스스로도 굳이 드러내 가며 활동하려 하지 않은 탓도 있었는데, 이는 그가 일찌감치 제 능력을 깨우친 까닭이었다.
버프 중첩!
늘어나는 손발의 숫자만큼 버프를 받아들일 수 있고, 같은 종류의 버프라도 얼마든 중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중첩력으로 폭발적인 괴력을 끌어내고, 말도 안 되는 속도를 발휘할 수 있으며, 때론 트롤에 버금가는 회복력을 자랑하기까지, 남다른 재주들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언뜻 ‘멀티 스킬’ 각성자로 오해받기 충분한 능력이다 보니, 그만큼 위험성 역시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면의 불법 연구소와 미친 과학자들이 눈독 들이기 딱 좋은 재능이었다.
그 때문에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섣불리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안전 구역은?
랭커였다.
최초로 그가 세상에 드러났던 순간이며, 뒤늦게 이명이 따라붙은 시점이었다.
랭커로 갓 데뷔하던 시점부터, 이미 그는 최상위급의 생태 파괴종으로 불리면서, 이면의 밑바닥을 크게 휩쓸어 버리고는 했다.
그는 말 그대로 ‘강자’였다.
이면을 살아간다고는 하나, 바깥세상에도 감히 그와 견줄 수 있는 존재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려 8중첩 버프였다.
그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인디안 존슨?
그 역시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지난 대격변의 영상을 보며 달라져 버렸는데, 자신이 불안감을 느꼈다는 부분에서 자존심이 상해 버린 탓일까?
그는 과감히 한국행을 택했고, 존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내가… 졌다고?”
병원에서 깨어난 데카는 멍한 얼굴로 한참을 천장만 쳐다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져?”
두 눈에 초점이 돌아오는가 싶더니, 이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동공 가득 분노의 불꽃을 피워 내기 시작했다.
“내가?”
버프를 중첩시키며 생명력을 극대화시킨 뒤, 넝마가 된 몸뚱이를 단시간에 회복시켰다.
그러더니 대뜸 마루의 거처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졌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황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인디안 존슨, 오늘부터 너는 내 적이다!’
그는 스스로가 매우 특별하다는 걸 알았다.
그 때문일까?
랭커에 오르기 전까지, 긴 시간 움츠렸던 시절에 대한 부작용이 컸다.
쌓여 버린 스트레스와 욕구 불만으로 인해 성격이 틀어져 버린 것이다. 그가 이면에서 데뷔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자신의 머리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사실, 사람들이 존슨을 최강이라고 떠드는 것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동안은 추격이 어려워서 승부를 못 봤던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패배를 경험했다.
그는 존슨을 ‘사냥’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이를 위한 미끼를 구하고자 움직였다.
B급 A형 정마루!
존슨의 형제 중 가장 만만한 미끼였다.
* * *
랭커들이 그룹을 이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또한 그렇게 모인 이들이 정예 요원을 추려서 집 주변에 포위망을 형성 중인 것 역시 알았다.
하지만 그들, 랭커 본인들이 직접 모습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
그 때문일까?
‘데카 도라!’
마루는 처음 등장한 랭커를 보며 깜짝 놀라야만 했다. 생각 이상의 거물이 나타난 까닭이었다.
옥토퍼스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이면의 랭커로서, 한편으로는 ‘형’이란 별명을 지닌 랭커이기도 했다.
물론, 이는 한국 헌터들 전용 별명으로서, 그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유명세!
이면을 대표하는 랭커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식으로 불리게 된 것일 뿐이었다.
‘저 관심종자가 여긴 왜?’
여기저기 하도 끼어드는 통에, 이면의 랭커답지 않게 얼굴이 잘 알려져 있기도 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 번이라도 이면에 발을 담가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얼굴이 바로 데카 도라였다.
그만큼 유명한 인물인 것이다.
‘설마 옥토퍼스도 그룹에 참여한 건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과거, 최강자 투표를 할 때면 존슨과 함께 언급되던 존재가 아니던가. 여러모로 다가올 사태의 난도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그 때문에 의문이 컸다.
‘어째 눈치를 못 채네?’
자신의 스킬 ‘태양의 눈’이 발각되지 않는 게 의아했던 것이다.
신성 마법의 하나로서, 고위 관찰자의 스킬이다 보니 기본적인 수준이 높았고, 그 스스로도 제법 심혈을 기울여 발동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과거 존슨에 버금가는 최상위급 랭커라면 당연히 발각될 거라 여겼건만, 이게 웬일?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언제쯤 발각될지, 계속 관찰자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버렸다.
‘어째… 만만해 보이냐?’
존슨과도 비교되던 최상위급 랭커이건만, 기이하게도 ‘하수’를 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는 착각이 아니었다.
버프 중첩 없이, 데카 본인의 순수 능력치만 본다면 그는 그리 대단한 수준의 랭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무게감과 분위기 등이 형성되는 건, 버프 중첩을 통해 윗세계의 공기를 꾸준히 체험해 봤기 때문이었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위쪽 공기를 좇아 몸이 움직이기 마련이지만, 데카는 랭커가 된 이후 단번에 확고한 위치를 잡아 버렸던 터라, 상당 부분 수행에 나태해지며 성장 부분에서 자체적인 정체기에 돌입해 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유명세를 좇기 바쁘기도 했다.
눈높이는 하늘 위에 있지만, 몸뚱이는 바닥에 있는 그 기묘한 괴리감으로 인해,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며 존재감의 오류를 만들어 내는 거였다.
가만히 턱을 쓸던 마루의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쳐 갔다.
‘한번 붙어 봐?’
그것도 잠시, 고개를 휘휘 저으며 허튼 생각을 털어 냈다.
‘오만이고 자만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격언을 떠올렸다.
당장 그 자신만 하더라도 대외적인 껍데기와 알맹이의 격차가 크지 않던가.
묘한 찜찜함이 남았지만, 이면의 최강이라 표현되는 걸 상기한다면, 분명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굵직한 한 방이 있을 거라 여겼다.
느낌이야 어쨌건, 일단 네임드 중의 네임드가 등장한 상황인 만큼, 기존의 계획을 좀 더 탄탄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날을 기준으로, 하나둘 그룹의 랭커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이면의 랭커들답다고 해야 할까?
‘누가 누군지 통 모르겠네.’
까막눈이 된 기분이었다.
“으음….”
뒷머리를 벅벅 긁던 것도 잠시, 긴급 SOS를 신청했다. 다행스럽게도 그에게는 이 방면의 정보통이 있었다.
“교황청에서 파악하고 있는 이면의 랭커들이에요.”
“땡큐!”
레베카를 통해 귀중한 자료를 건네받은 것이다.
그저 귀동냥으로 듣는 정도가 아닌, 상세 사진과 예상 스킬 등이 잘 정리된 채 첨부되어 있었다.
이를 비교하며 불청객의 머리들을 살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역시는 역시라더니, 이면은 이면이네.’
교황청에서 구해 온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얼굴들이 있던 것이다.
이는 저 최고 수준의 정보 단체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로서, 새삼 이면 세상이 표현하는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보이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
그의 감각은 분명 상대가 랭커라고 외치건만, 레베카의 정보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실력자들이 보였다.
게다가 마루의 거처 주변을 맴도는 랭커들의 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기까지 했다.
‘한국에 많이 들어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면 랭커 전부가 이곳을 찾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몇이라고?”
관찰 결과를 들은 이선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이에 마루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지금까지 파악된 건 여섯. 그중 둘은 정보가 없고.”
“허….”
“마이 스윗 홈이 핫 플레이스가 돼 버렸네.”
“…농담할 때냐?”
마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또 다른 문젯거리도 이야기해 줬다.
“장량도 왔다고?”
이선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이면의 랭커가 아닌, 중국을 대표하는 영웅 중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날파리 그룹에 발을 담근 건지, 아니면 그냥 구경만 온 건지는 모르겠는데, 점심 때 보니까 얼쩡거리고 있더라.”
“허….”
상황의 심각성에 표정이 굳어지는 가운데, 기이할 만큼 태연한 마루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쌈짓돈이라도 꿍쳐 뒀냐?”
“뜬금없이 뭔 소리야?”
“너 지금 너무 여유 있어.”
마루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말했잖아. F―Killer!”
“뻐킹 킬러?”
“하….”
마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상처받은 이선이 어깨를 늘어트렸다.
* * *
발록이 물었다.
“데카 그놈을 살려 준 이유가 뭐야?”
존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굳이 죽일 이유가 없으니까.”
“귀찮게 굴 텐데.”
이에 존슨이 뒷머리를 긁었다.
‘안 죽인 이유라….’
솔직한 심정으로 죽일 수 없었다고 봐야 옳았다.
“…머릿수 하나가 아쉬워서.”
“무슨 소리야?”
“옥토퍼스 그놈이 과대 포장이 됐긴 하지만, 그래도 실력이 영 못 쓸 정도는 아니더라.”
발록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랭커에게 저런 표현을 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게 존슨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납득이 돼 버렸다.
‘괴물 같은 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와중에도 존슨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성질 더러운 놈인 건 나도 잘 알지. 하지만 그래도 마냥 썩어 빠진 놈은 아니야.”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도 있었다.
“대격변이나 몬스터 웨이브 같은 거, 꼬박꼬박 참석하잖아.”
이전 산타카타리나 대격변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사건 사고에는 항시 발을 걸치고는 했다.
“듣기론 이번 대격변도 개인 사정만 아니었으면 한 발 걸쳤을 것 같던데.”
발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놈이 그런 장소에 나서는 건,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야.”
“알아.”
“…안다고?”
“제 놈 콧대 세우려고 나서는 거잖아.”
순전히 뽐내기 위한 참전이었지만, 그게 어딘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놈들보단 낫지.”
괜히 뜨끔해지는 순간이었다. 발록의 경우에도 굳이 자신과 상관없으면 발을 담그지 않기 때문이다.
그 표정을 읽은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너야 쓰레기통 치우느라 바쁘니까. 괜히 찔릴 거 없어.”
“…크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하는 발록의 모습에 재차 실소한 존슨이 이야기를 이었다.
“어쨌든 그놈 뽐내기로 활약한 게 있으니까. 목숨값으로 퉁 쳤다.”
문득 발록은 의문이 솟았다.
“…혹시, 대환란이라도 오는 거냐?”
이는 대격변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좀 더 상위의 개념으로 칭해지는 단어였다.
대혼돈과 대환란의 시대!
초기 대격변의 시기를 그리 불렀기 때문이라.
인지 영역 바깥에서 오는 뜻밖의 현상으로 인해,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가장 작은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피해를 낳았던 것, 그게 바로 최초의 대격변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를 일컫는 용어로도 쓰였다.
“머릿수 이야기를 하는 게, 어째 전력을 아끼려는 것 같아서, 느낌이 쎄~ 한데.”
그 이야기에 존슨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맙소사!”
발록의 표정이 바짝 굳어졌다.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인데?”
긴장 어린 음성으로 연달아 묻는데, 이에 존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아직 거기까진 몰라. 하지만 최초 대격변처럼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란 건 확실해.”
“으음….”
존슨이 하는 말이다 보니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나직한 신음성을 내뱉던 것도 잠시, 그래도 일단 경고는 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데카 그놈, 내가 좀 아는데 보통 꼬인 놈이 아니라서, 졌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거야.”
그러며 또 이야기했다.
“어쩌면 네 형제를 건드릴지도 몰라.”
이에 존슨이 웃으며 받았다.
“재밌겠네.”
“……?”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는 걸 구경하는 것도 재밌겠어.”
알 수 없는 이야기와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에, 발록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똥 맛 된장이냐, 된장 맛 똥이냐. 큭큭큭큭….”
그러거나 말거나 존슨은 마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