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21화 (221/325)

#21. 원카드.

#21. 원카드.

마루는 검집 속에서 골골거리며 잠든 칼죽이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흐흐… 조커가 들어왔네.’

곧 발생할 격전에 대비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잘 준비한 상황이었다.

한데, 거기에 칼죽이의 검집이 완성되면서 뜻밖의 히든카드까지 생겨 버린 것이다.

게다가 형태도 마음에 들었다.

그의 취향을 너무나 잘 아는 듯, 크게 튀지 않는 선에서 검집을 치장해 준 것인데, 그 부분에서 강하나의 배려가 느껴져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완성도에 대해서 칼죽이에게 물어본 결과,

―이대로 새집에 녹아들면 될 것 같습니다.

완벽 그 자체라고 했다.

자체적인 복구를 통해 형성된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집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보니, 일종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는데, 반쯤 녹아 버린 신음성과 수시로 잠에 빠져드는 모습 등이 그 같은 적응 과정의 일부였다.

그 때문에 지금도 잠들어 있는 것이지 않던가.

‘기왕이면 적응 기간이 끝난 다음에 일이 터졌으면 싶은데.’

데카의 등장 이후로 돌아가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는 터라, 시일을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일단 검집이 완성된 만큼, 이 상태로도 충분히 조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나, 그래도 기왕이면 만전의 상태를 갖추는 게 베스트 아니겠는가.

‘흑백 조커냐. 컬러 조커냐.’

한 방은 원래 컬러였다.

* * *

데카는 당장 뛰어들 것처럼 행동하며 랭커 그룹을 자극했다. 그 때문에 숨어 있던 랭커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딱 거기까지만 분위기를 조장한 뒤, 슬그머니 한 걸음 물러났다.

‘쯧! 버프를 다 써 버렸으니.’

그는 놀랍게도 버프를 중첩만이 아니라 저장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존슨과의 격돌에서 이를 전부 소모해 버린 터라, 어쩔 수 없이 새로 저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사기적인 스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나름대로 제약이라 할 만한 게 있기는 했다.

기본 버프!

괴력과 속도 등, 가장 기본적인 버프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중첩 효과를 통해 사기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어쨌든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건, 나름의 단점이기는 했다.

‘적당히 불은 질러 놨으니까.’

기본 버프 충전이 끝날 즈음이면 활활 타오르고 있을 터, 그때 다시 앞으로 나서면 되는 거였다.

‘그나저나….’

문득, 존슨의 아이가 떠올랐다.

‘…몇 놈이 말을 안 듣는 것 같던데.’

데카의 눈가에 서늘한 한기가 스쳐 갔다.

* * *

“빌어먹을!”

사일론은 욕설이 절로 나오는 걸 느꼈다.

“이런 족 같은 게임!”

엔트라넷과 접촉하고, 이곳 세상의 육성 시스템까지 접속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며 계획대로 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뜻밖의 반전이 숨어 있었다.

“…게임 더럽게 어렵네.”

나름 다양한 세계에서 여러 육성 시스템에 도전했다 자부하건만, 이번 PP의 시스템은 그런 그마저도 몸서리를 치게 만들 정도였다.

VR 기기를 내던진 그가 짜증 섞인 얼굴로 연신 한숨을 내쉬며 창가로 향했다.

문을 열자 밀려드는 시원한 바람이 작게나마 기분을 환기시켜 줬다. 확실히 인간계가 이런 부분은 좋은 것 같았다.

‘인간계가 공기 하나는 좋다니까.’

대기의 농도를 두고 좋네 나쁘네 하며 떠들어 대지만, 그가 봤을 때 이곳의 공기는 정말로 맑고 상쾌했다.

마계의 숨 막히는 텁텁한 공기를 떠올리니,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뭐, 거기도 나름대로 짜릿한 맛은 있지.’

방심하면 대기 가득한 마기가 육신을 침범하고 침식하려 드는 탓에, 숨 쉬는 것마저도 긴장을 바짝 해야 하는 것이다.

침공을 잘 막아 낸 뒤, 반대로 마계를 공격하려던 이들 중 상당수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는 했다.

마치 물이 스미듯, 숨결을 타고 스리슬쩍 넘어온 마기가 폐부를 가득 채우는 것인데, 뒤늦게 이를 눈치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은 마기가 폐를 점령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계의 주민들도 매 순간 긴장해야 하건만, 외부인들은 어떻겠는가.

‘어림도 없지.’

그 같은 이유로 사일론은 이곳 대기가 참으로 맘에 들었다.

‘긴장할 이유도 없고.’

잠자리가 편하다는 게 특히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바깥바람을 쐬며 게임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던 그가 슬쩍 건물 주변을 쭈욱 훑었다.

‘여전히 바글바글하네.’

묘한 시선들이 그를 쫓는 걸 느꼈다.

‘흠… 존슨을 쫓아온 것 같더니. 어째 내 주변에 더 모이는 느낌인데.’

이는 랭커 그룹에서 보낸 요원들로서, 데카의 존재만 아니었더라면 당장 뛰어 들어왔을 이들이었다.

근래 PP에서 꾸준히 스트레스를 받은 까닭일까?

‘아무나 한 놈만 걸려 봐라!’

부디 저들이 들어오기만 바라며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제발 좀 걸려라!’

상당히 간절한 부분이었다.

* * *

새로운 검집의 적응 기간이라고 해야 할까?

―하으으응….

반칼죽은 PP 내에서도 업데이트 과정이 이어졌다. 현실에서는 그 상태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는데, PP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이런 것도 현실과 가상의 차이라고 봐야 할까?

어쨌든 그런 이유로 마루는 한동안 레벨 작업은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

사실, 칼죽이를 멀쩡히 활용할 수 있었더라도 지금 타이밍에선 따로 할 일이 있었던 터라, 레벨 작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긴 했다.

불청객들을 위해 준비할 게 있던 것이다.

스킬!

레벨이 아닌 다양한 스킬들을 준비 중이었는데, 이는 곧 다가올 날파리들의 습격에 맞춰서, 훌륭한 히든카드가 되어 줄 터였다.

1~2레벨과 자잘한 스탯 좀 올리는 것보단, 좀 더 많은 스킬로 전신을 무장한 채, 돌릴 수 있는 카드의 숫자를 늘리는 게 낫다는 결론도 섞여 있었다.

그렇게 스킬들을 잔뜩 배우는데, 그 종류들이 실로 기이했다.

몽크와는 전혀 무관한 것들만 가득 익히고 있던 것이다.

마법, 궁술, 저격, 탐색, 탐지 등등, 근접 박투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몽크에 쓸 만한 건 거의 없었다.

“흠… 정령술의 기본도 익혀? 말어?”

심지어 그가 지금껏 쌓아 올린 육성 루트와도 거리가 먼 공부까지 손을 대고 있을 정도였다.

“휘유~! 이 많은 걸 전부 구현하려면 고생깨나 하겠네.”

간만에 스킬 노가다가 이어졌다.

* * *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 나서야 겨우 맺어진 인연이었다.

그 때문일까?

“하아….”

이선희는 적잖이 짜증 난 얼굴로 창밖을 내다봤다.

그도 그럴 게 어렵사리 연인이 됐건만, 최근 복잡하게 돌아가는 국내 상황이 자꾸 그들을 갈라놓고 있던 것이다.

랭커들의 묘한 움직임으로 인해, 이선은 거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였고, 거기에 더해 그녀 역시도 어지러운 국내 상황에 맞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혜성의 예비 1팀장인 마루 역시 의도치 않은 강제 휴가가 집행 중이라는 점 정도일까?

“후우우우….”

한숨 가득 짜증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랭커!

여러모로 피곤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그렇게 궁상을 떨고 있어.”

한편에서 차를 우리던 김연희가 한 소리를 했다.

“보고 싶으면 당장 달려가면 될 걸 가지고. 쯧!”

그녀는 기본적으로 이선을 싫어하는 터라, 제안을 하면서도 맘에 안 들었던지 혀를 차고 있었다.

“안 돼.”

하지만 이선희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왜?”

“마루가 오면 안 된대.”

“지가 뭔데 오라 마라야.”

최근 이선희의 풀 죽은 모습에 마찬가지로 짜증이 나 있던 탓인지, 김연희의 말투는 그리 곱지 못했다.

“다 계획이 있다더라.”

“흥!”

김연희는 콧방귀를 뀌는 것과 달리, 내심으로는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아이언슈트!

개코에게 들은 정보로 인해 마루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에 맞춰 생각하면 마루의 당당한 태도들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믿는 구석이 있는 거야.’

아마도 그게 아이언슈트라는 카드로서, 스스로를 믿는 것이리라. 잠시 상념에 빠져드는 찰나, 이선희가 이야기를 건네 왔다.

“칠성제(七星帝)는 어떻게 됐어?”

이는 토종 7대 길드 간의 연맹이었다.

“별거 없어. 그냥 잘 진행되고 있지.”

“어떻게?”

“전에 나왔던 이야기처럼, 언니와 삼발이 아저씨가 대표로 탐랑성과 파군성을 맡기로 했어.”

삼발이란 삼족오 길드의 수장 김수호를 부르는 별명으로서, 삼족오가 세 발 까마귀를 상징하는 탓에, 때때로 심술이 날 때면 그렇게 부르고는 했다.

“길드장들이 별자리를 나눠 갖는 게 맞지 않나?”

이선희의 의문에 김연희가 고개를 저었다.

“대놓고 우리한테 랭커가 있다고 홍보하는 자리잖아. 굳이 어중간한 실력자를 내세울 필요는 없다는 게 합의 내용이야.”

해외파 3대 길드를 비롯하여,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는 여러 단체 세력들에게 경고하는 의미도 될 것이기에, 일곱 자리를 전부 채우기보단, 대표적인 두 자리를 띄우는 게 낫다는 결론이었다.

임금 제(帝)자를 써서 칠성제라 지은 것이니만큼, 더더욱 랭커들만 앞세우는 게 맞다 여겼다.

“그나저나 삼발이 아저씨도 웃겨. 순서대로 거문성을 하는 게 아니라. 대뜸 파군성이라니.”

차후 등장할지 모를 랭커들을 위해서라도 순서대로 나열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건만, 김수호가 고개를 저으며 파군성을 외친 것이다.

이유도 포인트였다.

[멋있잖아!]

그게 끝이었다.

“삼족오란 길드명도, 그냥 멋있어서 붙인 거란 말이 있던데.”

왠지 그게 마냥 헛소문은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도 이는 진실이었고, 그 때문에 김수호는 부길드장 장태산에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며 한참 구박을 받아야만 했다.

김연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칠성제는 문제없이 진행 중이야.”

이에 고개를 끄덕인 이선희가 새로운 화제로 전환하며 물었다.

“존슨은 어떻게 할지, 들은 거 없어?”

이번 사태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가 될 만한 건, 아무래도 세계 최강으로 떠오르는 인디안 존슨이리라.

김연희가 이반나의 제자인 만큼, 건너 건너 들은 게 없을까 싶어 물은 것인데, 이어진 대답이 뜻밖이었다.

* * *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존슨의 물음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뒷짐이나 지고 있어.”

랭커의 습격이 예상되고 있건만, 그처럼 말하며 존슨에게 방관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원한다면야.’

존슨은 편하게 뒷짐을 지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편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장량이 있었단 말이지?”

“그룹 놈들하고 접촉하는 걸 봤어.”

“그렇단 말이지. 흠… 짐작 가는 게 있냐?”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침 존슨 역시도 예상되는 바가 있던 참이었다. 이를 확인하고 서로의 의견도 나눌 겸, 생각나는 바를 입에 담았다.

“아무래도 나한테 붙을 거 같지?”

“어. 바깥 놈들은 형한테 몰려갈 삘이야.”

그렇다고 해서 일반 랭커들이 존슨을 상대로 칼을 뽑아 든다는 건 아니었다.

무법자라 불리는 이면의 랭커도 아니고, 무작정 도전장을 내밀면서 칼부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해진 규칙을 따를 필요가 있는 만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터였다.

“하… 피곤하게 굴겠네.”

아마도 국가, 단체, 세력을 등에 업고서, 존슨과 대담이니 뭐니 하면서 이리저리 시간을 끌며 붙잡고 늘어지리라.

그사이에 이면의 랭커들은 마루를 치는 것이다.

저들에게 문제가 될 만한 건 랭커들도 방심할 수 없는 트랩과 그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을 피닉스 이선 정도일까?

잠시 생각하는가 싶던 존슨이 물었다.

“괜찮겠냐?”

이에 마루가 웃으며 검지를 바짝 세웠다.

“나 못 믿어?”

“…큭! 믿지.”

그러다가 재차 묻는다.

“검지는 뭐냐?”

“아? 코 파려고.”

신나게 후볐다.

* * *

존슨은 마루와의 지난 만남을 떠올리며 전방을 바라봤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단체로 찾아온 랭커들 때문이었다. 그 무리 속으로 장량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인가.’

D―day란 느낌이 왔다.

그가 저 멀리 마루의 거처가 있을 방향을 한 차례 바라보며 나직하니 중얼거렸다.

“믿는다!”

랭커들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던가?

“퉤퉤퉤! 갑자기 웬일들이냐?”

일단 침부터 뱉고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