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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배탈 나!

#24. 배탈 나!

데카를 비롯하여 여러 랭커들은 순간 거대한 에너지가 하늘을 감싸는 걸 느꼈다.

남다른 감각이 있어야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은밀했는데, 랭커들의 감각이면 충분히 캐치 가능한 수준이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그만큼 더 특별하고 거대하게 느껴지는 파동이었다.

함정 따위 별거냐며 기세등등하게 나섰던 데카였건만, 그 순간만큼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거북목이 되었을 만큼 깜짝 놀랐다.

‘존슨?’

최근의 격돌이 생각날 만큼, 강대한 기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별빛 찬란한 밤하늘 너머로 시선이 팔린 사이, 발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변화를 읽지 못했다.

하늘 가득 퍼져 가는 강대한 에너지의 파동에 넋을 잃은 채 쳐다보길 한참, 갑작스레 시야 한편에 그늘이 지며 변화가 찾아오는 걸 느꼈고, 이에 랭커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뒤늦게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이게, 뭐야?”

“갑자기 웬 나무가?”

“도심 풍경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니, 다들 어디 갔어?”

당혹스럽게도 주변 풍경이 잔뜩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함께하던 일행들이 죄다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던 것이다.

강대한 파동에 한껏 심취해 있던 터라, 주변 변화만이 아니라 함께하던 동료들의 기척들까지 놓쳐 버린 것이다.

운 좋게 둘씩 셋씩 짝지어진 이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홀로 떨어져서 연신 당혹감 어린 외침만 터트리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일까?

“트랩퍼… 이 미친!”

랭커를 비롯한 불청객들은 일제히 마루를 떠올렸다. 그의 재주에서 나름의 힌트를 얻은 까닭이었다.

“으음… 마석 결계술?”

“이거, 설마 환상인가?”

“맙소사! 이렇게 감쪽같은 수준이라니.”

“따로 환상계 스킬이라도 있는 건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퀄리티… 이런 재주면 헌터 등급 따위는 의미가 없잖아!”

하나같이 꼭 같은 반응들을 보여 주며 주변을 살피고 경계하기에 바빴다.

트랩 따위 무시하던 데카 역시도 긴장감을 잔뜩 끌어 올려야만 했다. 환상에 빠지기 전 하늘을 가득 채우던 거대한 파동 때문에 더더욱 입술이 바짝 타는 걸 느꼈다.

존슨을 떠올렸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실수했군!’

자칫, 이번 사건을 기준으로 다른 랭커들이 그를 표적 삼아 움직일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갔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파고들자던 저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어붙였던 만큼, 상황이 어긋나 버릴 경우 그 모든 원한은 그에게 쏠릴 가능성이 컸다.

일이 잘 풀리더라도 좋은 소리 듣기는 어려웠다.

‘쯧!’

입술을 짓씹은 그가 애써 상념을 털어 내며, 일단은 당장의 상황에 집중하고자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골 때리는 상황과 마주해야만 했다.

* * *

그건 말 그대로 우연한 발견이었다.

얻어걸렸다고 해야 할까?

만상결계!

이를 통해서 궁극의 환상인 ‘신세계’를 펼쳐 보이기를 요구하되, 그 중심에 마루의 심상이 깃들기를 원했다.

그 속에 마루는 PP의 이미지를 잔뜩 심어 넣고자 했다.

각성을 한 뒤 다양한 던전들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험지는, 아무래도 PP 내에 더 많았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퍼펙트 플레이(베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뜬금없는 알람과 함께 미지의 세계가 문을 열어 버린 것이다.

현무암 역시 깜짝 놀랐던 순간이었다.

그 이유가 뭘까?

“흘… 실버 박사가 알파라는 세계의 권한을 쥐고 있다고 했지?”

“예. 그게 상관이 있는 겁니까?”

“너는 박사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며.”

거기에는 알파의 권한 역시 일부 담겨 있을 터였다.

“알파 세상도 결국 엔트라넷의 일부 아니겠냐.”

엔트라넷과의 연결 고리가 한층 단단해지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 와중에 현무암의 만상결계가 궁극의 환상으로 마루의 심상을 끌어오려 접촉하니, 엔트라넷의 접속으로 이어지고, 이내 PP까지 연결되어 버린 것이리라.

마루가 PP를 연상한 게 뜻밖의 연쇄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온전한 세상을 불러내진 못했다.

알파 그리고 베타!

둘 다 현무암의 만상결계가 감당할 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장소에 소환된 건 무엇일까?

대개 게임에서 베타 테스트라는 건, 두 종류로 나뉘게 된다.

클로즈 베타와 오픈 베타!

둘 다 정식 서비스 이전의 테스트 모드라 할 수 있는데, 차이점이라면 클로즈 베타는 한정 인원을 뽑아서 하는 테스트며, 오픈 베타는 정식 서비스처럼 인원이나 별다른 제한 없이 테스트하는 것으로, 같은 베타 테스트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클로즈 베타에서 오픈 베타로 넘어갈 때, 이런저런 칼질이나 수정 사항이 권해지고는 했다. 그리고 정식 오픈으로 넘어갈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루는 한정된 공간을 돌아보고, 차후 현실로 돌아온 뒤 지난 PP의 역사를 살핀 뒤,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칼질당한 필드구나!”

버려진 세계!

정식으로 서비스를 실시하기 전, 최종적으로 칼질되며 제거된 PP의 자투리 세상, 과거의 잔재들이 만상결계를 타고 현실로 소환된 것이었다.

그 와중에 온전한 소환은 이뤄지기 어려웠던 듯, 만상결계의 환상력을 이용하며 현실과 접합되기 시작했다.

마치 종말 이후의 세계를 보듯, 건물 사이사이 이끼가 피고 나무가 자랐으며, 아스팔트 위로는 초록의 생명력이 잔뜩 펼쳐지더니, 어느새 거리는 울창한 밀림으로 변해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도심지가 아니었다. 현실과 가상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환상의 세상이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어지러울 터였다.

“당황스럽지?”

마루는 히쭉 웃으며 그의 탐지 스킬에 잡혀 드는 불청객들을 살폈다.

[태양의 눈] [바다의 향] [대지의 성]!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관측 스킬들이 연달아 중첩되며 사방을 훑고 있었다.

바깥에서 가지고 온 지도? 정보?

‘여기선 의미가 없지.’

PP의 버려진 세계가 소환되면서, 현실의 풍경을 일부 어그러트린 탓인데, 제거된 필드의 규모에 맞게 각 건축물들의 배치가 달라진 것이다.

다른 세상!

이곳은 ‘던전’이라 표현해도 될 만큼, 새로운 장소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필드 정보를 알고 있는 마루도 일부 헷갈릴 정도로, 저들이 지닌 현실의 지도는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더더욱 골치 아픈 건, 필드와 현실의 규모가 적절히 배합되며, 그 중간 규모로 재탄생됐다는 점이었다.

필드라는 것 자체가 워낙 큰 땅덩어리다 보니, 자그마한 동네와 버무려졌다 하더라도,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그런 장소에 각자 따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마루가 대규모 메시지 스킬을 터트렸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그건 마치 알람처럼 필드 전역에 크게 퍼져 나갔다.

불청객들을 위한 보따리를 풀 시간이었다.

* * *

밖에서 지켜보던 연구진을 비롯하여, 아직 남아 있던 불청객들은 멍하니 철길 너머를 바라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가… 갑자기 사라졌어?”

“쫓아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저 너머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몇몇 감각이 남다른 이들의 경우, 랭커들이나 느꼈을 법한 파동의 편린을 엿볼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결계다!”

“저 너머로 트랩퍼의 함정이 발동한 거야.”

“마석 결계술인가?”

“젠장! 당했어.”

저 너머로 뛰어들기보단, 일단 외부 인력들을 불러들이며, 경계선을 좁히며 포위망을 좀 더 단단히 굳히기로 했다.

각각의 불청객들 중, 그나마 리더 격이라 할 만한 이들이 무전을 전담하며 이리저리 명령을 내리며, 다급히 지휘권을 휘둘렀다.

그에 따라 외곽 포위망의 요원들이 하나둘 그들이 있는 경계 지역까지 달려오는데, 그 숫자를 확인하던 불청객들의 눈가에 의문이 어렸다.

“왜 이거밖에 없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다른 놈들은 어디로 갔어?”

“당장 무전 때려!”

포위망의 구성이 반토막 난 것이 아닌가.

이에 의아해서 세부 인원 점검을 하며 비어 버린 인원들을 파악하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다가드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포위망을 구성하던 나머지 요원들이었다.

“빠져 가지고는.”

“지금이 늑장 부릴 때야!”

“빨리빨리 안 튀어 와!”

“어쭈? 걷지?”

혹시나 뭔가 사달이라도 났나 싶어서 내심 긴장하고 있던 지휘권자들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푹! 푸욱… 푹….

다가오던 요원들이 돌연 다른 요원들에게 기습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커억!”

“이… 이 새끼가….”

“무슨 짓이야?”

“막아! 막아!”

너무도 갑작스러운 습격들로, 하나같이 치명상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몇몇은 그대로 즉사해버린 경우까지 있었는데, 이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에 입만 뻐끔거릴 때였다.

다가닥… 다각… 다가닥….

웬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저 한편의 골목길에서 어둠을 휘감으며 다가오는 스산한 그림자가 있었다.

이곳에 자리한 이들은 하나같이 경력치가 남다른 이들이었고, 그 때문에 그림자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데스 나이트?’

최소 A급 최상위에서 랭커급까지, 레이드 클래스급으로 분류되는 언데드계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어찌 저 무시무시한 죽음의 기사가 이곳에 등장한단 말인가?

‘빌어먹을! 죽음의 기사라니.’

‘등급이 어떻게 되는 놈이지?’

‘앞의 게이트 경보가 진짜였던 건가?’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랭커가 한 명도 없는데.’

‘족 됐네!’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돌발 상황에 남다른 경력의 지휘권자들도 당황하고 있을 즈음, 갑작스레 나타난 데스 나이트 반칼죽이 명을 내렸다.

―악인들이여 일어나라. 죄악의 깊이를 심판하라. 망혼곡을 불러라! 울부짖어라!

그 순간 몇몇 숨이 멎었던 이들이 눈을 번쩍 뜨는가 싶더니, 걱정스레 이를 살피던 다른 요원들에게 달려들며, 할퀴고 물어뜯었다.

2차 습격으로서, 이 역시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고, 그만큼 많은 피해를 발생시켰다.

―아귀들이여 그 비루한 몸뚱이로 눈을 즐겁게 하라. 참혹한 절규로 귀를 즐겁게 하라. 영혼을 충족케 하라. 탄식의 레퀴엠을 연주하라! 크하하하하하!

오랜만에 고삐가 풀린 탓인지, 칼죽은 그간 숨겨 뒀던 광기를 신나게 토해 내고 있었다.

칼죽의 커다란 웃음이 천지사방을 가득 메웠고, 그 순간 거대한 어둠이 마루의 거처 주변, 광활한 영역에 걸쳐 칠흑빛 죽음의 그림자를 덧씌우기 시작했다.

제주도 마굴의 주인이 기지개를 켰다.

쿠르르르르르….

한 줌 비쳐 들던 별빛, 어스름히 흩뿌리던 달빛, 그 모든 빛무리가 자취를 감추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숨을 죽였다.

* * *

결계 바깥으로 죽음의 권세가 펼쳐지며, 수많은 요원들에게 망혼곡을 강요하고 있다면, 이곳 만상결계의 안쪽은 다른 방식으로 불청객들을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크워어어어어….

“미친! 저게 왜 여기서 나와.”

“오우거라고?”

“왜?”

“게이트 경보는 가짜였을 텐데?”

불청객들은 각자 의견을 교환하고 싶었지만, 이리저리 떨어져 있던 터라, 서로가 개별적으로 상황을 보고 살피며 판단해야만 했다.

몇몇 함께 나눠서 떨어진 이들이 있긴 했다.

“빌어먹을 와이번까지?”

“일단, 잡아!”

“환상이 너무 리얼한 거 아닌가?”

“으아아아!”

생각지 못한 헌팅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른 방향으로 해법을 찾아보려는 몸부림도 있었다.

“젠장! 무전기도 안 돼?”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지형까지 전부 바뀐 것 같은데.”

“골치 아프게 됐네.”

하지만 문제지 자체가 백지가 된 상황이었다.

결국, 파티로 나뉜 이들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나뿐이었다.

“일단 저 방향이 중심지 아닌가?”

“저쪽으로 가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가자!”

PP의 세상이 섞여 들며 전체적인 지형 등이 바뀌었다지만, 몇몇 남아 있는 건축물과 거리의 풍경들로 인해, 최종 목적지의 방향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각을 잡고 이동을 시작할 때였다.

쿠웅….

저 높은 하늘 위에서 갑작스레 떨어져 내린 한 줄기 유성이 그들 발걸음을 붙잡았다.

“이건 또 뭐야?”

화들짝 놀라며 이를 경계하는 가운데, 흙먼지가 걷히고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독특한 가면과 남다른 체형,

“아이언슈트!”

그들 불청객들의 최종 목표물이 등장한 것이다. 불청객들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는 가운데, 아이언슈트, 마루가 입을 열었다.

“별풍선을 하도 쏴 대서, 이렇게 팬미팅을 준비했는데. 어때?”

가면 너머, 마루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차린 게 많지만, 적게 드셔.”

일찌감치 그와 만난 이상, 즐기는 건 무리였다.

“배탈 나!”

그 말과 함께 마루가 달려들었고, 화들짝 놀란 불청객들이 가드를 바짝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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