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누가 혼자래?
#25. 누가 혼자래?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전투였다.
수많은 랭커가 모였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이면의 존재들이기에 대외적인 화제성만 없었을 뿐, 수면 아래에선 다채로운 시선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 때문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아이언슈트?”
“갑자기?”
“제로 원의 형제라더니, 정마루와도 연관이 있었나?”
“젠장! 당장 현장 요원들을 움직여.”
위성을 비롯하여 여러 루트로 마루의 거처 주변을 훔쳐보던 각 단체의 실력자들이 다급히 메시지를 때려 댔다.
하지만 이어진 광경에 약속처럼 얼어 버렸다.
“사라… 졌어?”
“어디로 간 거야?”
“랭커들까지 전부 자취를 감췄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당장 파악해 봐!”
난리가 났다.
놀랄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라진 랭커들을 찾고자 철길 너머, 그 안쪽의 풍경에 집중하길 한참, 문득 관찰자들은 철길 바깥에서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게 뭐야?”
“설마, 내분인가?”
“쯧! 하여간 이면 놈들이란.”
“상황이 어느 땐데. 허어….”
혀를 차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였다.
“응? 화면이 왜 이래?”
“연결 문젠가?”
“고장이라도 났나?”
“빨리 안 고쳐?”
갑자기 화면이 검은빛으로 물들어 버린 것인데, 오래지 않아 그것이 화면 이상이 아닌, 현장의 변화에 따른 기현상임을 깨닫고는 경악성을 터트려야만 했다.
* * *
알파에서 베타 그리고 최종 오픈까지.
그 기나긴 수정 및 편집 과정에 의해서 버려진 필드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활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따로 세이브된 세상이기도 했다.
마치, 현실의 던전과 같은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
개별적으로 격리를 해 둔 세상으로서, 그곳은 잠시 폐쇄가 된 것일 뿐, 폐기가 됐다고 보긴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 때문일까?
필드는 그저 존재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내부적으로 생명의 박동과 숨결이 가득 요동치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
이를 증명하듯 각종 몬스터들이 날뛰며 달려드는데, 불청객들은 적잖이 당황하며 이를 맞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게,
“뭔 몬스터가 이렇게 많아?”
“빌어먹을! 그만 좀 몰려와라.”
“끝이 없네. 젠장!”
“으아아아~!”
폐쇄된 세계에서 오랜 시간 몬스터들의 생태계가 완성된 까닭이었다. 따로 분리된 필드인 만큼 그 규모는 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역사가 쌓인 것인지, 수준 높은 몬스터들이 넘쳐 났다.
게다가 그 무리가 어마어마했다.
그 같은 세상의 규모가 현실과 맞닿으며, 급격히 압축되는 돌발 상황까지 겹쳤다. 기존 필드보다 더 줄어든 공간만큼, 몬스터들의 밀집도가 높아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청객들은 끝없이 밀려드는 몬스터의 물결을 맞아야만 했다.
그야말로 몬스터 웨이브!
정말 차린 게 너무 많아서 배탈이 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마루는 흩어져 있던 불청객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각개 격파를 하는 중이었다.
초감각을 통해 랭커들을 쏙쏙 피해 가며, 그들의 부관 격이라 할 만한 불청객들만 솎아 내고 있었다.
결국, 저들은 한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을 터, 지금 행해지는 절묘한 가지치기는 그 최종전에 맞춘 환기 작업의 일환이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야. 거기까지 갈 일도 없겠지만… 만약의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
사자유희의 서포트 역시 큰 도움이 됐다.
[태양의 눈][바다의 향][대지의 성]
주변 일대를 살피는 관측 스킬의 중심에는 사자유희가 있던 것이다. 감각 공유를 통해 사자유희가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보내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실질적으로 마루가 사용 중인 관측 스킬이라고는, 기존에 그가 사용하던 눈치코치의 육감 스킬 정도뿐이었다.
본연의 초감각과 잘 버무려지니, 그것만으로도 주변 일대를 살피는 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더 넓은 범위는 사자유희의 관측으로 커버하고, 내부적으로 인근의 세세한 관측은 그의 감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사자유희의 서포트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타아아앙….
제대로 ‘총기 계열 정마루’를 연기하며, 쉼 없이 저격을 쏟아붓고 있던 것이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조치로서, 저 총성들이 아이언슈트와 정마루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터였다.
그의 전투만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몬스터와 전투 중인 불청객들에게도 저격을 아끼지 않았고, 그로 인해 아이언슈트와는 별개로 마루의 존재감은 꾸준히 각인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는 저들 불청객들로 하여금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일종의 나침반이 되어 저들의 방향키를 잡아 주기까지 했다.
약속이나 한 듯, 한 방향을 바라보며 움직인다?
‘뒤통수치기 딱 좋은 구도네.’
마루는 가면 너머로 히쭉 웃으며 불청객들의 뒤를 밟아 나갔다.
“등짝 좀 보자!”
“아이언슈트?”
적당히 농담도 던져 가며,
“비누 떨어졌다!”
“이… 이놈이?”
불청객들을 털어 버렸다.
저들 역시 상당한 실력자인 만큼, 나름 저항이라는 걸 했고 격전의 파장 역시 그럴싸하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눈치채는 랭커들은 없었다.
마석 결계술!
가상의 현실이 소환되었지만, 여전히 현실에 펼쳐 놨던 트랩들은 발동 중이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마루가 신경 써서 펼친 건, 각 구역의 경계로서, 동네를 여러 갈래로 구분 지어 놓은 뒤, 전투 시 발생하는 파장을 차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때문일까?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겠지?”
랭커들은 미로에 빠진 기분으로 이동을 거듭했고,
“후우… 다들 무사하려나?”
각자의 전장을 살피면서 걱정을 늘려 갔다.
어쩌면 그 때문에 사자유희의 저격이 더욱 눈에 띄는 것일지도 몰랐다.
점차적으로 랭커들의 거리가 좁혀지는 가운데, 문득 그들의 감각권을 파고드는 파동이 하나 있었다.
이건?
드디어 다른 전장의 흐름이 감지된 것이다.
* * *
불청객들의 뒤를 밟아 나가길 한참, 드디어 가지치기가 끝나고 굵직한 기둥에 톱질을 할 때가 다가왔다.
랭커!
마루는 상황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짧고 굵게!’
스타트와 동시에 피날레를 장식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압도적일 필요가 있었고, 거기에 어울리는 상대는 한 명뿐이었다.
옥토퍼스!
데카의 동선은 사자유희를 통해 이미 체크하고 있던 터라, 빠르게 뒤를 잡을 수 있었다.
앞서 그의 관측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은밀한 접근을 인지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잘 알았다.
[그놈, 그거 물 근육이야.]
존슨에게 들은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버프로 연명하는 놈이랬지.’
무려 8중첩이 가능한 부분에서 보통 재주가 아니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본연의 능력에 한해서는 최상위 랭커라 할 수 없었던 터라, 관측 스킬에 대한 감지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사자유희에게 데카를 좀 더 집중적으로 살피라고 이야기를 해 뒀었다.
숨겨진 진실이야 어찌 되었건 옥토퍼스는 이면을 대표하는 랭커가 확실한 만큼, 그를 잡는다는 건 단번에 흐름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단 의미이기도 했다.
마석 결계를 통해, 각 구역을 구분시켜 놨다고는 하나, 거기서 발생하는 파동의 규모가 너무 거세질 경우, 구역의 구분이 무관해질 터였다.
랭커급의 전투라면?
대번에 그 행적이 발각될 터였다.
그 같은 이유로 저들이 합류하게 되더라도 쉬이 견적을 낼 수 없는 압도적인 이미지가 중요했다.
마루는 사자유희를 통해 전달받은 정보를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 하나는 확실히 신경 쓰는 모양이네.’
맨몸으로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아넘기며,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확인했다는 소리에, 방어력에 집중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말인즉,
‘크게 한 방 때려도 괜찮겠네.’
마루는 근래 들어 자신이 가장 중점적으로 체크했던 걸 확인했다.
[컨디션 : 8]
최소 7점대를 유지하려 노력했고, 될 수 있다면 8점대까지 끌어올리고자 힘을 썼다.
그 결과 최상의 컨디션이 마련되어 있었다.
‘9점대는… 역시 꿈의 점수인가.’
앞서, 벽을 넘었을 때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나 발현되는 점수라 여겼다. 그게 아니더라도 간혹 발현된다고는 하는데, 정말 드문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8점도 충분히 차고 넘치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후우우웅….
기묘한 바람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가운데,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것일까?
화들짝 놀란 데카가 다급히 돌아봤다.
[스킬 ― 개벽권]
존슨에게 들은 게 있기 때문일까?
“살아남아라!”
그리 외치며 필살기를 내질렀다.
쿠르르르르릉….
* * *
현무암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만상결계 속, PP의 풍경을 바라봤다.
‘흘… 대단하군. 이걸 인간이 설계했다니.’
그것도 거의 한 개인에 의해 완성된 거란 부분이 놀라웠다.
‘실버 박사! 신성한 가호 덕분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정말 놀라울 정도군.’
만상결계에 소환된 건 겨우 PP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지금껏 세계 여행을 하며 바빴던 터라 생각지 못했던 부분, PP의 세상도 한번 돌아보며 유희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인간체에 가깝다고는 하나 그의 본질은 정령이었고, 바라기만 한다면 엔트라넷을 통해, 저 너머의 세상인 PP에 접속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 과정에서 몇몇 번거로운 절차가 존재하는 터라, PP로의 여정을 크게 생각지 않았던 것인데, 이런 식으로 간접 체험을 하고 나자, 관련한 호기심이 한껏 증폭되는 걸 느껴야만 했다.
“그나저나… 슬슬 메인이벤트인가?”
현무암의 두 눈은 각기 현실과 환상을 나눠서 보고 있었는데, 마치 약속이나 한 거처럼 양쪽 모두 화려한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 * *
불청객들, 이면의 랭커들은 온몸을 쭈뼛 서게 만드는 아찔한 파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를 쫓아 움직였고,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아이언슈트?’
‘옥토퍼스?’
두 랭커가 파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배치도가 기이했던 것이다.
‘…옥토퍼스는 누워 있고, 아이언슈트는 내려다봐?’
‘설마, 기절한 건가?’
‘옥토퍼스가?’
‘말도 안 돼!’
상세한 내력은 알 수 없었지만, 당장 비쳐지는 광경에서 파악되는 건, 둘이 승부를 봤고 아이언슈트가 승리를 했다는 점이었다. 옥토퍼스 주변 가득 흩뿌려진 핏물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전율적인 광경이었다.
그 때문에 랭커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대로 멈춰 서더니 바짝 굳어서는 마루와 데카의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루는 그들의 접근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초감각을 비롯하여 사자유희의 관측 시스템까지 갖춘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후우우우….’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게 새삼 다행이라 여겼다.
무려 3점의 컨디션을 쏟아부은 개벽권이었다. 존슨에게 들은 게 있었던 터라, 상당수 컨디션을 쏟아부은 것이다.
한순간 8점이던 컨디션이 5점대로 떨어진 만큼, 가면이 아니었더라면 창백해진 안색이 발각됐을 터였다.
경상 수준으로 분류되는 컨디션이기에, 잠시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안색은 제 색을 되찾았다.
과한 투자라 생각하지 않았다.
‘2점은 부족하고 3점은 과하고.’
초감각은 딱 그 중간이 적정점이라고 알려 왔지만, 그건 불가능하기에 3점대로 내지르되, 살짝 비껴치는 재주를 발휘했다.
과연, 정확하게 견적을 냈던 것일까?
‘옥토퍼스는 잡았고.’
이를 통해서 기선 제압은 확실히 한 듯싶었다.
‘그럼, 슬슬….’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 차례였다.
“뭘 그렇게 구경만 하고 있어?”
호흡을 고르고 페이스를 찾은 마루가 어느새 모여든 랭커들을 향해 외쳤다.
“쫄았냐?”
그 말에 랭커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이곳에 모인 랭커는 무려 일곱!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라 할 수 있건만, 그런 이들을 향해 도발을 한다?
“미친놈!”
“제정신이 아니군.”
“네놈 혼자서 우리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거냐?”
“건방진 놈!”
“죽여 버린다!”
상대가 반드시 생포해야 하는 아이언슈트라는 것도 잊어버린 듯, 랭커들은 일제히 포악한 광기를 드러내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다각… 다그닥… 다각….
기이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마루의 뒤로 죽음의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 나이트?’
‘저런 놈도 있었나?’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을….’
갑작스러운 고위 몬스터의 등장에 랭커들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마루가 입을 열었다.
“누가 혼자래?”
사방에서 거대한 어둠이 밀려들었다.
크워어어어어….
커어어어….
그건 대량의 언데드들로, 순식간에 불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루가 히쭉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겨우 일곱이서, 막을 수 있겠어?”
죽음의 물결이 랭커들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