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웨이브~ 웨이브~!
#1. 웨이브~ 웨이브~!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일까?
마루는 제자들과의 만남을 한동안 자제하고 있었다.
“일단, 알려 준 거 복습하고 있어.”
정다솜과 임시안에게는 그렇게 조치를 취했고, 새롭게 받아들인 제자 임지안의 경우에는 따로 리튜브에 올라온 연공법을 추천해 준 뒤, 익히도록 지시해 놓은 상황이었다.
한차례 만나서 초감각으로 임지안의 기본 체질을 파악한 뒤 추천한 것이니만큼, 나름 맞춤형 전수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혀 안 만나는 건 아니었다.
PP를 통해서 틈틈이 약속을 잡은 뒤, 거기서 따로 가르침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PP는 게임 스탯 및 추가 능력치 등으로 인해, 현실과는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보니, 기본적인 자세 수정 정도가 전부였지만, 이제 막 시작한 임지안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이후로는 따로 제자들끼리 모여서 일종의 스터디를 했는데, 정다솜과 임시안이 선배이자 사형으로서, 임지안을 이끄는 역할을 해 줬다.
원래라면 그들 셋이 전부여야 하지만, 한 사람, 슬그머니 끼어드는 이가 있었다.
레오!
당연하게도 정다솜을 쫓아 들어온 거였고, 그 때문에 매번 임시안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기묘한 삼각관계를 구경하는 임지안의 경우엔?
‘히힛! 아침 드라마보다 재밌어.’
틈틈이 이 내용을 모친에게 이야기해 주면,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이며 모녀간에 수다 삼매경이 이어지고는 했다.
한편에선 부친이 귀를 쫑긋 세우며 팝콘을 튀기고 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가족의 애정 문제라 더 쫄깃한 것 같았다.
이와 반대로 정다솜은 여러모로 골치만 아플 뿐이었다. 레오의 등장 이후로 임시안마저 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하니, 여러모로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나 남자 친구 있다니까!’
실제로 이 같은 사실을 레오에게 전한 적도 있었다. 임시안도 듣길 바라며 일부러 목소리도 높였었다.
하지만 상대의 멘탈은 보통이 아니었다.
“OK! OK! Calm down. Calm down. 진정해!”
레오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아주 차분하게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나도 그래서 선을 지키고 있잖아. 프렌드! 일단 친구의 경계를 절대 넘어가지 않을 거야. 불쾌하면 한 걸음 더 멀어질 수 있어. 하지만 쫓아내진 말라고. 그랬다간 시름시름 앓다가 알콜 중독자가 돼 버릴지도 모르니까.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잖아?”
연적의 탄탄한 멘탈 덕분일까?
임시안도 그 뒤를 쫓다 보니 자연히 멘탈이 강화됐고, 정다솜의 외침을 모른 척하며, 슬그머니 옆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난 원래 아는 사실이었어.’
정다솜의 남자 친구가 지닌 바람기를 생각해 봤을 때, 그리 오래갈 거라 생각되진 않았다. 침착하게 그녀 곁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타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한때는 여자로 오인받을 정도로 미소년이었던 레오였다. 그런 그가 각성을 통해 남성미까지 얻어 버렸으니, 그 오묘한 매력이란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절세미남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니까.’
임시안도 어디 가서 빠지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연예인 뺨을 후리다 못해 조져 버리는 레오가 상대다 보니,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꾸준히 정신력의 소모가 발생하는 걸 느껴야만 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상대는 말도 안 되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부디 쫓아내지만 마. 마루 선생님 공부 나하고도 인연이 있다고.”
레오는 마루가 존슨과 형제라는 이유로 한때는 삼촌이라 부를까도 했지만, 정다솜이 동생이라는 걸 상기하며, 선생님으로 정정해서 부르게 됐다.
레오가 한국에 온 최초 이유가 마루에게 배움을 청하기 위한 거였던 만큼, 현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호칭이라 여겼다.
“굳이 표현하자면 내 공부가 친척뻘은 될걸. 그러니까 분명 스터디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거야. 같이하자. 나도 껴 주라.”
그러며 하는 이야기가 놀라웠다.
“나도 멀티 스킬 각성자거든.”
한차례 스터디가 뒤집어지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각종 스킬을 시연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니, 정말로 도움이 될 것 같았고, 그런 이유로 결국 스터디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따로 마루의 제안도 있었다.
―한동안 같이 지내.
어수선한 분위기로 인해, 일종의 가드 역할을 맡긴 것이다.
산타카타리나에서 경험한 레오의 실력, 그리고 WHA의 2~3대에 걸친 인연 등, 레오는 여러모로 치트키라 할 수 있었기에, 제자들의 안전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정다솜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일까?
레오 역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같이 어울리게 되고, 그로 인해 임시안은 나날이 정신력이 깎여 나가는 걸 느껴야만 했는데, 정다솜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 이런 감정이나 심경 등을 최대한 숨기고 억누른 채, 태연을 가장하며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감정은 꾸준히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쌓이고 쌓여 갔다.
‘부럽다… 부러워…….’
특히, 다른 무엇보다도 특출 난 레오의 능력에 대한 자격지심이 심각했는데, 20대 초반의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멀티 스킬에 A급 헌터라는 점까지, 마치 세계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단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빌어먹을 주인공 같은 놈!’
못난 질투심 한 바가지에 불쾌한 동경 한 그릇, 그리고 한 푼의 자괴감까지.
이 모든 감정이 버무려지던 어느 날,
[Entranet에 접속하시겠습니까?]
각성 알람이 그의 고막을 두드렸다.
D―day날 아침에 발생한 일이었다.
* * *
위성을 비롯하여 각종 현대 과학의 산물을 최대한 활용해 가며, 다양한 방법으로 현장을 주시하던 관측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칠흑빛으로 물든 현장 영상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각기 개별적으로 현장에 파견 보낸 이들을 통해, 실시간 보고를 받는 방법으로 무대를 살피고자 했는데, 다행히 현장 요원들의 시야에는 상황이 파악됐던 터라, 상세한 중계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또 놀라웠다.
“데스 나이트?”
“언데드라고?”
“내분이 아니라?”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현장에는 각 단체에서 보낸 요원들만이 아니라, 조용히 숨어서 지켜보던 랭커들도 여럿 있었는데, 이번 사태에 발을 담그지 않았던 이면의 랭커 외에도, 바깥의 랭커들까지, 한국에 들어와 있는 랭커 대부분이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놀람을 감추지 못한 채, 현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곳에 얼굴을 비추지 않은 건, 존슨과 그를 찾아간 장량 일행 정도였는데, 그들 역시도 동네 가득 죽음의 향이 짙어질 즈음 모습을 드러냈다.
“휘유~! 분위기 한번 끝내주네.”
존슨이 그리 말하며 감탄사를 내뱉는 가운데, 장량을 비롯한 랭커 일행들은 하나같이 표정을 굳히며 서로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거, 뭔가….’
‘…꼬인 거 같지?’
단번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존슨이 말했다.
“내 말 듣고 와 보길 잘했지?”
장량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냥 구경만 할게. 말했잖아. 내 형제 중에서 제 앞가림 못 하는 놈 없다고. 그래서 난 도와줄 생각이 없어.]
그러면서 그가 제안했다.
[너희도 궁금할 것 같은데. 그냥 서로서로 편하게 관전만 하는 거야. 어때?]
결국 받아들여 버렸다.
존슨이 제 이름까지 걸어가며 약속을 한 게 결정적이었다.
‘막는다고 막아질 놈도 아니고.’
사실, 그게 가장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와서 보니, 과연 현장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눈에 봐도 꼬여 버린 상황이 아니던가.
장량을 비롯한 랭커들은 존슨 몰래 핸드폰을 들고 각자 연결된 단체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물론, 존슨이야 이런 기색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 척 넘어가며, 저 멀리 보이는 죽음의 군세들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이런 걸 숨겨 두고 있었을 줄이야.’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하여간 여우라니까.’
그는 단번에 마루의 의도를 읽어 낼 수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며, 또 너무나 그리웠던 풍경이기도 했던 터라, 다른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를 알아챈 것이다.
‘이래서 내가 나서면 안 되는 거였나.’
자칫 그가 씬 스틸러가 될 수도 있음에, 더더욱 그는 이 무대에 올라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았다.
일찌감치 도착했던 몇몇 중, 눈치 빠른 이들이 있었음일까?
“마르코… 더글라스?”
“네크로맨서?”
옛 과거의 영웅을 입에 담는 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스승님….’
존슨 역시 시야 한편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WHA 1대 회장!
대영웅의 잔재가 저 너머로 넘실거렸다.
* * *
반칼죽은 마루의 동네 가득 망혼곡이 울려 퍼지는 걸 확인한 뒤, 철길 너머의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들어온 환상의 세상 속에서, 사자유희가 보내오는 루트를 쫓으며 무수히 많은 죽음의 그림자를 거둬들였다.
불청객들 덕분에 시체는 넘쳐 났기에, 어렵지 않게 몬스터 대군을 일으킬 수 있었다.
워어어어어….
으우어어….
이제 끝났다 싶었던 웨이브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금 들이치는 상황에, 이면의 불청객들은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뭉쳐!”
“진형을 짜!”
이 순간, 그들은 대격변에 버금가는 상황으로 판을 구성하며 거대한 망자의 해일을 향해 방파제를 세웠다.
실로 거대한 규모의 언데드 군단이었는데, 마루의 순수한 마력만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보조 배터리가 있었다.
사자유희!
앞서 백록담에서 거둬들인 그 거대한 죽음의 기운을 이 자리에서 한 방에 풀어낸 것이다.
당연하게도 사자유희가 그림자를 일렁이며 불만을 표출했었는데, 이를 달래는 특효약 역시 알고 있었다.
흑화한단!
현무의 신물을 품게 해 주니, 사자유희는 오히려 신나서 백록담의 기운을 토해 내는 것이 아닌가.
―원래 내 건데….
이 와중에 칼죽이만 억울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 낸 2차 웨이브였다. 언데드 계열이다 보니 번거로움도 배가됐다.
무려 7인의 랭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밀렸다.
방파제는 모래성처럼 오래지 않아 부스러졌고, 점차적으로 호흡은 어긋났으며, 손발은 꼬여 가기 시작했다.
제 멋에 사는 이면의 랭커들이었다.
누구 하나 자존심을 굽히는 이가 없었다. 보조를 하기보다 서로가 각자 주인공이고자 하며, 앞으로 나서며 창을 들기를 원했다.
방어 계열마저도 방패를 들기보단 몸통 박치기를 선호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개판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연계 능력이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실력자, 데카가 멀쩡했더라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진 않았을지도 모르나, 그는 일찌감치 아웃된 상태가 아니던가.
그 엉망인 호흡으로 상황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 앞서도 언급했듯, 무려 7인의 랭커였다.
밀리고 꼬이며 때론 뒷걸음질을 치는 꼴불견도 보였지만, 결국 웨이브를 막아 내며 모든 언데드를 짓이기고 박살 내기에 이르렀다.
“후우… 후… 어떠냐?”
“겨우 일곱이서, 막았다!”
“크하하하하하!”
“네놈 혼자서 우릴 감당할 차례다.”
“이 빌어먹을 놈!”
“죽여 버린다!”
반칼죽도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엔 오직 마루 한 명만 들어찰 뿐이었다.
광기 어린 그들의 눈빛에 마루가 실소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현무암에게 보내는 신호로서, 이에 기다렸다는 듯 만상결계가 해제되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베타 세계에 균열이 가고,
파차아앙….
이내 환상이 깨져 나갔다.
현실이 쏟아지는 가운데, 마루가 입을 열어 물었다.
“자꾸 누가 혼자래?”
앞서와 같은 대사가 펼쳐지고, 이내 현실 속 악몽이 그들을 맞이했다.
크으으으….
끄으으….
반칼죽이 뿌려 놨던 죽음의 씨앗이 잔뜩 꽃피운 것이다.
“내가 끝났다고 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야.”
마루가 그리 말하며 손짓을 했고, 현실에서 대기 중이던 3차 웨이브가 랭커들을 향해 밀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