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스피커.
#2. 스피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현실에서 만들어 낸 언데드의 능력치들은 앞서 PP의 베타 필드 속 언데드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기본 능력치의 차이였다.
최소 상위 몬스터들부터 시작해서 레이드 클래스까지 즐비했던 것, 그게 바로 환상 속 언데드 무리의 기본 스펙이었다.
하지만 현실에 대기시킨 언데드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B급의 이면 헌터들을 일으켜 세운 정도였다. A급도 끼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B급 헌터인 것이다.
몬스터로 구분하자면 어찌어찌 상위 등급까진 턱걸이로 맞추겠지만, 딱 거기가 한계점인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앞서 환상 속에 비해서는 규모도 조촐했다.
애초부터 딱 이곳 동네를 포위할 만한 숫자가 전부 아니던가. 그 광활한 가상 필드를 이리저리 널뛰던 부족들에 비한다면, 분명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개활지가 아닌 시야 곳곳에 방벽이 둘린, 도심지의 거리를 적절히 이용한 배치다 보니, 작은 규모로도 그럴싸한 구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었다.
게기에 몇 가지 꼼수도 발휘했는데, 칼죽이의 검집이 완성되지 않을 경우를 염두에 뒀던, 일종의 잔상 효과였다.
머릿수를 늘려서 보여 주는 효과가 있었다.
검집이 없더라도 칼죽이의 기본 성능은 발휘할 수 있던 터라, 언데드를 부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대신 데스 나이트 소환은 불가였고, 언데드 규모에서도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부분들은 마루가 각종 스킬과 재주들로 보충할 생각이었다.
만파식적도 그중 하나였다.
물론, 검집이 완성된 데다가, 칼죽이의 완벽 적응까지 끝난 상황인 만큼, 이 부분은 철저히 보조로서 사용될 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적당히 각을 잡고 연출을 하며 분위기를 조장 중인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으음….”
“…빌어먹을!”
“3차 웨이브라고?”
좀 전의 2차 웨이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꺼멓게 죽어 있는 인간들의 눈빛 때문일까?
몬스터와 인간형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묘하게 스산한 분위기 때문에?
모를 일이었다.
착착착착….
마치,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다가오는 모습도 묘한 압박감을 일으켰다.
거대한 해일이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밀려드는 것 같달까?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실상은 코앞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묵직하게 내디디며 다가오는 것일 뿐이었지만, 기계적인 동작의 반복은 확실한 무게감을 선사해 줬다.
게다가 좀 전까지 환상이라 여겼던 죽음의 군세가 현실에서까지 나타나니, 정신을 차리기도 어려웠다.
아직 환상 속을 헤매고 있는 중인가도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데드들은 일정 박자를 맞춰 가며, 착실히 땅을 찍으며 다가들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지쳐 있기도 한데다가 2차 웨이브에서 적잖게 질려 버린 탓도 컸음일까?
랭커들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씩 물러나고야 말았다.
그 모습에 마루가 가면 너머로 히쭉 웃었다.
이내 손을 들어서 언데드 군단의 진군을 막은 그가 랭커들을 향해 말했다.
“차린 건 많은데, 어째 먹지를 못하누?”
랭커들의 표정이 와락 구겨지는 걸 보며 마루가 물었다.
“죄다 소화 불량인 것 같아서, 영 대접할 맛이 안 나네.”
그러며 슬쩍 한 걸음 비켜서는 그의 모습에 랭커들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활로!
마루는 그들에게 빠져나갈 길을 열어 주고 있던 것이다. 작은 몸짓으로 도망가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는 랭커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이… 이 개자식이!”
“아이언슈트!”
성난 랭커들의 외침에 마루가 어깨를 으쓱였다.
‘옥토퍼스에서 끝났으면 참 깔끔했을 텐데.’
아쉽게도 그건 욕심이었던 듯싶었다.
“그럼, 이제부터 메인 디시 들어간다.”
마루가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한껏 압박하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물러나는 게 보였다.
나름 전력이 되는 만큼, 3차 웨이브로 얼마간의 힘을 더 빼놓을 생각이었지만,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관객들을 의식하며 계획을 바꿨다.
‘생각보다 구경꾼들이 많아.’
2차 웨이브에 비해 어설픈 수준이다 보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분위기 조장용으로 남겨 놓기로 한 것이다.
물론, 저들이야 2차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눈앞의 랭커 7인은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언급했듯이 진짜는 따로 있기도 했다.
다그닥… 다각… 다그닥….
문득 마루 곁으로 다가드는 그림자가 있었다.
‘저놈은?’
‘데스 나이트?’
‘환상이 아니었다고?’
랭커들은 등허리가 쭈뼛 서는 걸 느꼈다. 칼죽이가 본격적으로 기세를 피워 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사아아아아아….
칼죽이가 따로 소환했던 유령마에서 내린 뒤, 7인의 랭커들을 차례차례 훑었다.
‘휘유~! 분위기 한번 죽여주네.’
마루가 조용히 감탄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현재 그는 칼죽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에는 운이 좋았지.’
부상이나 상태 이상 같은 것 없이, 과거 존슨을 패퇴시켰던 수준으로 완벽히 회복한 칼죽이었다. 그런 만큼 그 실력은 감히 세계 톱클래스의 랭커들도 발아래로 둘 정도라 할 수 있었다.
‘흐흐… 이래서 계약을 잘해야 돼!’
마루는 절대적 갑의 입장에서 칼죽이를 향해 외쳤다.
“가랏! 패카츄 백만 벌크.”
그 순간 칼죽이의 덩치가 벌크업이라도 한 듯,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기를 한껏 끌어올리니 골격이 커지며 갑주 역시 몸집에 맞춰 변화한 것이다.
뼈대만 남아 있는 몸뚱이건만, 우람하단 말이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쾅쾅!
그 상태로 검이 아닌 양 주먹을 거세게 부딪쳐 대는데, 천둥성 같은 울림이 저들을 두드려 패 곤죽으로 만들겠다는 외침 같았다.
꿀꺽….
랭커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찰나, 죽음의 기사가 7인의 랭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루는?
열심히 응원했다.
* * *
멀찍이 관전 중이던 존슨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갔다.
‘저건….’
칼죽을 알아본 까닭이었다.
‘백록담의 주인이 왜?’
그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칠흑빛 어둠 너머 현무암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고, 그 존재가 상황에 여유를 더해 줬다.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데스 나이트는 마루의 연출인 듯싶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거참, 많이도 준비했네.’
슬쩍 장량 일행을 돌아보니, 꺼멓게 죽어 버린 안색에서 그들의 심경이 전해지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가 풍기는 기세가 그만큼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알 만한 이들은 안다.
강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저 데스 나이트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랭커들에게도 그런 대상인 것이다.
‘판이 재밌게 돌아가네.’
마루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구경만 할 모양인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 여겼다.
‘백록담의 지배자 실력이라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긴 하지.’
산타카타리나 대격변에서 이미 그 실력을 전 세계에 선보였던 만큼, 굳이 아이언슈트의 강함에 대해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
마루의 계획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 자리에선 실력이 아닌 ‘능력’을 보여 주는 게 맞지.’
그렇잖아도 한껏 몸값이 올라 있는 아이언슈트지만, 이번 사건을 계획대로 잘 마무리한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존재로 격상하게 될 터였다.
* * *
반칼죽이 완벽히 회복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만전이라 할 수는 없었다. 주변 환경이 백록담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사방 가득 죽음의 기운인 사기로 채워 놨던 백록담에서, 그 기운들을 끌어다가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삼던 것과 달리, 이곳에 깔린 사기의 농도는 그리 짙지 못했다.
물론, 백록담에 담겼던 게 정말로 무한한 에너지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자유희를 통해 재방출한 그 방대한 양은, 저 너머 베타 필드에서 몬스터 웨이브 수준의 언데드 군단을 만들었을 정도였으니, 한 개체가 사용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충분히 무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존슨이 밀렸던 것도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원을 감당치 못한 바가 컸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7인의 랭커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세이브된 기본 기운만으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이번 전장에서 마루가 해야 할 역할이었다.
만파식적!
마루가 신기를 입에 물었다.
이걸 불기 위해서 가면을 개조해서 입 부분을 오픈할 수 있게 만들기까지 했다. 이제 그 효과를 보여 줄 때였다.
[데스 나이트+언데드+피리]
현실에서 이 조합을 보이는 부분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PP와의 연관성을 알아챌 이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결국,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니까.’
실버 박사의 계획.
로그인 더 헌터!
그 비밀이 파헤쳐지는 건 시간문제일 터였다.
다행이라 한다면, 이곳 필드 내부는 현재 촬영에 관한 부분이 커트되고 있단 점이었다.
이는 칼죽이의 재주로서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의 효과였다.
데드 존(Dead Zone)
백록담에서도 본 적 있던 그건, 일종의 영역 선포의 한 종류로서, 이 안에서 촬영을 하고자 한다면, 마치 몬스터 웨이브처럼 특수 장비를 이용하여 주파수를 맞춰야만 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런 준비가 됐을 리가 없었고, 마루의 이번 활약은 결국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게 전부일 터였다.
‘입소문만큼 부풀려지기 좋은 게 없지.’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삐이이이….
연주가 시작된 것이다.
현무암은 만파식적에 대해 이야기하길, 파랑을 잠재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파랑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어떤 연주를 하느냐에 따라, 만파식적은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지.]
그 이유로 마루는 더없이 음울하고 너무도 참담하며 극도로 서글픈 ‘한’을 담아, 만파식적 깊숙이 입김을 불어 넣었다.
삐이이이~이이이~!
한이 서린 연주는 데스 나이트가 품고 있는 거대한 한과 어울리며, 그 기운을 부풀리고 증폭시켰으며, 추가적으로 데드 존 전역에 영향을 미치며, 각 잡고 대기 중이던 언데드들의 기세까지 끌어올리는 효과로 이어졌다.
* * *
쿠르르릉….
폭풍과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며, 말 그대로 랭커들의 어마어마한 격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구경꾼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풍경이 잡혀 들었다.
데스 나이트의 말도 안 되는 강함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그 이상으로 충격적인 건, 거리의 풍경이었다.
무려 랭커 대전이었다.
주변 모든 사물이 부서지다 못해 가루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건만, 이게 웬일?
“어떻게 저게 멀쩡하지?”
“저 파괴력을 견뎌 낸다고?”
“말도 안 돼!”
“초시공이라도 한 거야?”
너무도 멀쩡한 거리의 풍경은 구경꾼들로 하여금 전율하게 만들었다.
이 기현상에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트랩퍼!”
“설마, 이것도 놈의 결계술인가?”
“맙소사!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랭커 대전인데?”
그들의 머릿속으로 마루에 대한 가치가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저 재주를 길드의 중요 시설에 펼친다면?’
‘복구 비용 절감은 기본이고, 대피소의 등급을 서너 단계, 아니지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잖아.’
‘아이언슈트만 대답한 게 아니었어.’
‘꿀꺽… 역시 존슨의 형제!’
물론, 이 말도 안 되는 방어력은 마루의 능력과는 무관했다.
만상결계!
현무암이 펼친 재주로서, 그가 백록담에서 거둬들인 ‘내단’의 힘은 이 정도는 가뿐하게 해낼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흘… 이 정도는 몸풀기 수준이지.”
물론, 수고스러움이 있기는 했다.
“말 한 마리 더 받아도 되겠어.”
그렇게 현무암이 입맛을 다시는 가운데, 수많은 구경꾼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며, 현장 소식들을 관련 세력들에게 공유 중이었다.
“그냥 엄청나다니까. 저거면 대격변도 버틸 수 있어.”
“트랩퍼만 잡을 수 있다면, 국가 위상도 높아질걸.”
“아니, 국빈급 대우를 해야지. 절대 위협하면 안 돼! 저 재주를 가지고 꼭꼭 숨어 버리면 어쩌려고.”
“최고 수준의 계약서를 준비해. 당장!”
이 부분에서 마루가 기대하던 스피커 효과가 발동했다.
비쳐지는 걸 한껏 부풀리며 뻥튀기시킨 것인데, 발언을 하는 이들의 네임드가 워낙 남달랐던 터라, 상대편에서도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물론, 마루가 기대한 건 이런 부분이 아니긴 했다. 애초에 이는 그가 아닌 현무암의 재주가 아니던가.
그가 기대하는 건, 바로 언데드와 관련한 사항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에 대해서는 이미 꾸준히 언급되며 여러 단체로 전파되는 중이었다.
“마르코가 나타났다.”
“아니, 1대 회장이 생환했단 소리가 아니고, 그의 재주가 다시 세상이 등장했다고.”
“아이언슈트가 사자를 부리고 있어.”
그들은 입을 모아서 외쳐 댔다.
“네크로맨서가 돌아왔다!”
스피커가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