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령술사!
#3. 사령술사!
너무 놀랐고, 너무 기뻤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두려웠다!
임시안은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기적을 깨웠다.
“엔트라넷.”
그곳에 접속한 뒤, 자신을 몸서리치게 만든 능력을 확인했다.
[스킬 : 간장개장]
조금은 황당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한, 요상한 이름의 스킬명이었다.
엔트라넷의 주인이라 불리는 어떤 ‘신’적인 존재에게 무슨 악취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스킬들이 이런 식으로 우스꽝스러운 말장난이 섞여 있기에,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중요한 건 그 내용물이었다.
대다수의 각성자들이 그러하듯, 스킬은 상세 설명까진 나와 있지 않았다.
단지, 그 기본적인 정보가 자동으로 습득될 뿐이었는데, 더 많은 기능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알아 가야 할 부분이었다.
전장을 뛰고 경험을 쌓으며 등급을 올리면서, 그렇게 감춰진 능력들을 하나둘 깨우치는 것이다.
어쨌든 바로 그 기본 정보가 문제였다.
‘간을… 먹으라고?’
순대에서 나오는 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 정도면 그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꿀맛이라며 간만 따로 시켰으리라.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능력자의 간!
바로 그 부분이 그를 두렵게 만든 것이다.
“하아….”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식인을 하라니.’
어쩌다가 이런 미친 스킬이 그에게 떨어져 버린 걸까?
각성 알람을 듣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그 내용물을 확인하고 난 이후로는 꾸준히 고통의 시간이었다.
더욱 골 때리는 건, 간을 먹어야 한다는 것만 알 뿐이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점이었다.
‘정확히 어떤 계열이지?’
일단 각성의 영향으로 힘과 근력이 크게 증가한 건 느껴졌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그 이상의 정보는 알 수가 없었다.
각성은 초보다 보니 과연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이며, 어떤 종류와 연계되어 있는지까지, 전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이를 알기 위해선?
‘결국엔 간인가.’
미칠 노릇이었다.
당장의 정보만 놓고 본다면, 단순 강화계로 여겨졌지만, 간을 먹어야 한다는 특수 사항으로 인해서, 뭔가 특별한 이능이 숨겨져 있을 듯싶었다.
‘강화계? 이능계?’
특이 사항으로 인해 장르가 급격히 미스터리 스릴러가 돼 버렸다.
그 같은 두려움 때문일까?
‘…선생님!
마루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무려 7인의 랭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의 결과는 뜻밖이었다.
“데스나이트가 이겼다고?”
“미친 거 아니야?”
“네크로맨서!”
“마르코가 돌아온 것 같군.”
몇몇 WHA 1대 협회장을 기억하는 이들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실제로 전설의 주인공인 마르코는 부리던 해골 병사로 랭커들을 교육하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에는 랭커의 수가 몇 안 되었던 터라, 더욱 큰 임팩트를 남기며 많은 헌터들의 뇌리에 각인되고는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러고 보면 마르코도 데스나이트를 잘 썼지.”
“저건 인간형인가?”
“네크로맨서가 부렸던 건, 몬스터 아니었나?”
“맞아. 오크 전사였지.”
“언더페이커!”
마르코의 별명까지 튀어나왔다.
과거, 유명한 레슬러 중 장의사 포지션으로 유명하던 선수처럼, 마르코 역시 관 하나를 짊어지고 다녔는데, 그 때문에 언더‘페이커’라고 불린 것이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게 바로 오크 전사로, 거의 각성의 초기 무렵부터 함께했다고 알려진 병사였다.
평범한 전사였지만, 마르코와 함께 성장하면서 꾸준히 업그레이드가 됐고, 그게 종래에는 데스나이트라 불리는 영역까지 이른 것이다.
때론 다른 종류의 해골 괴수를 끌고 다니기도 했지만, 큰 전장에선 항시 오크 전사를 관에 짊어지고 나타났었다.
“마르코하고 차이가 있긴 하네.”
“하긴, 그는 몬스터만 부렸지.”
“아이언슈트의 데스나이트는 아무리 봐도 인간형이네.”
“그래서 더 섬뜩한데. 나만 그러냐?”
마르코의 전투 패턴은 아주 간단했다.
끌고 온 해골 괴수로 몬스터를 때려잡고, 그렇게 처리된 몬스터를 하나둘 일깨운다.
자연히 전투가 지속될수록 병사가 늘어나고, 어느 틈엔가 거대한 몬스터 웨이브는 역풍을 맞으며 뒤집혀 버리고는 했었다.
“아이언슈트와 네크로맨서라….”
“멀티 스킬도 놀라운데, 저런 수준의 퀄리티라니.”
“그나저나 저 악기는 뭘까?”
“묘하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울림이었어.”
“오~ 우! 코리안 오리엔탈 사운드?”
만파식적의 특별한 사운드는 여러 구경꾼들의 가슴에도 확실한 흔적을 남기기에 충분한 힘이 있었다.
“버프 계열의 아티팩트가 아닐까 싶은데.”
“확실히 저 파이프를 불고 난 뒤부터 데스나이트의 움직임이 달라졌었지.”
“허… 재주도 많은데 장비까지 빵빵하다니.”
“아이언슈트, 대체 지금까지 뭘 하다가 나타난 거지?”
마루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는 가운데, 몇몇 랭커들의 눈가에 갈등의 빛이 스쳐 갔다.
‘지금쯤이면 지치지 않았을까?’
‘저런 재주를 장시간 부린다고?’
‘뒤에서 구경만 하는 건, 제약 때문일지도 몰라.’
‘흐음… 한번 노려볼 만할 것도 같은데.’
아이언슈트의 실력이 뛰어난 건 알고 있다. 지난 대격변에서 이미 증명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대단한 실력을 아껴 놓은 채, 뒤에서 연주만 하고 있다는 게 의아한 가운데, 슬그머니 의혹이 올라왔던 것이다.
저 대단한 해골 괴수를 부리기 위한 부작용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일까?
몇몇 구경꾼들이 슬금슬금 불청객 라인으로 발을 들이려는 기색을 비치고 있었다.
벽 너머의 남다른 감각으로 주변 전역을 훑어보고 있던 존슨은 그런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이라도 나서야 하나?’
마루가 여태껏 보여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과하다 못해 넘쳐 났다. 그 상황에서 다시금 새로운 불청객들이 무대에 뛰어든다?
감당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 역시 한 걸음 내디디려는 찰나였다.
―좀 더 지켜보게나.
어디선가 한 줄기 텔레파시가 날아들며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낯설지 않았다.
‘어르신?’
현무암이 보낸 거였다. 의아해서 그를 향해 시선을 보내니, 여전한 모습으로 변함없는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 있었다.
그게 효과가 있었다.
슬그머니 조급해지려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좀 더 믿음으로 지켜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잠시 후,
믿음은 보답받았다.
* * *
7인의 랭커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우리가 졌다고?’
‘겨우, 데스나이트 따위한테?’
‘…하…….’
이미 세 명은 정신을 잃었고, 나머지 넷 역시 기력이 다해서 바닥에 너부러진 상황이었다.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살아남았다.
아니, 살려졌다.
데스나이트는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 부분이 상대와의 격차를 더욱 실감하게 만들었다.
전투 초반, 솔직히 할 만하다 여겼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오래지 않아 그 이유가 말도 안 되는 ‘용량’의 차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대는 기이할 만큼 무한한 에너지를 자랑하고 있던 것이다.
이미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기력을 아껴 가며 전투를 진행했던 게 실착이었다.
차라리 한 방에 모든 걸 쏟아붓는단 생각으로, 단기 결전을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확률이 높았다.
괜히 시간을 끌었던 행동이, 그들의 기력은 소모시키고 상대의 전력은 유지시키는 기현상을 끌어내면서, 결국 패배의 굴레를 덧씌워 버린 것이다.
과거, 백록담에서 존슨이 패배했던 그 구도 그대로였다.
뒤늦게 몇몇 랭커가 마루의 피리 소리에 어떤 비밀이 있음을 눈치챘고, 다급히 이를 막으려 움직였지만, 칼죽이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동선 차단을 하는 것은 기본이며, 카운터까지 먹여 버린 것이다.
삐익… 삑삑삑삑….
그 와중에 날아드는 비웃음 같은 피리 소리란, 괜스레 열이 솟게 만들고는 했다.
당장 면상에 한 방 날려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데스나이트의 방벽을 넘기가 너무 어려웠다.
결국, 얼마 안 남은 기력으로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격들을 준비하고 격돌했다.
그 강대한 파괴력을 감당하지 못했음일까?
데스나이트가 부서져 내렸다.
‘이겼다!’
‘드디어 끝장냈다!’
‘빌어먹을 스톤 헤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루를 향해 눈길을 돌렸었다.
“이젠 네놈 차례다. 아이언슈트!”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마!”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으니, 데스나이트는 본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마검!
칼죽이는 새로운 꼭두각시를 일으켜 세웠고, 그렇게 멀쩡해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순간, 7인의 랭커는 패배를 직감했다.
“허…….”
물론, 보기와는 달리 한 차례 부서졌던 인형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상당량의 에너지 소모를 필요로 하는 거였고, 그만큼 기력이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정신적 충격이 컸던 랭커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오래지 않아 지금과 같은 몰골로 바닥에 너부러지게 된 것이다.
쿵! 쿵! 쿵! 쿵!
승전의 나팔을 울리듯, 칼죽이가 묵직한 걸음으로 마루 앞으로 다가왔다.
쿠우웅웅!
그리고는 마치 기사가 군주에게 예를 표하듯, 힘차게 한쪽 무릎을 찍으며 마루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휘유~! 분위기 한번 끝내주네.’
마루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구경꾼들의 시선을 의식하듯, 최대한 멋진 모습을 보여 주려 노력하며, 그럴싸한 연출을 이어 나갔다.
‘계속!’
마루의 신호에 칼죽이는 그 상태로 자신의 본체, 마검을 양손으로 조심스레 들어 마루에게 내밀었고, 이를 받아 든 마루가 마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이 순간이 바로 마루가 준비한 하이라이트였다.
[칭호 : 용아병]
[스킬 ― 심상구현]
칼죽이와 연결되면서 새로 구현된 스킬 중 하나로서, 마치 일종의 조합식처럼 탄생한 느낌이었다.
반드시 용아병 칭호를 발동해야 하며, 거기에 추가적으로 칼죽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상시 활용은 어렵기는 했다.
어쨌든 이 특수한 스킬은 그가 지닌 가능성을 칼죽이를 통해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인데, 이 두 연계기가 만들어 내는 효과란 실로 놀라웠다.
우우우우우웅….
돌연, 칼죽이의 검신에서 강대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워어어어어….
우으으으….
그 순간 수많은 언데드들이 그를 향해 우글대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치 탑을 쌓듯이 서로의 몸을 던지며 포개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언데드의 몸뚱이가 이리저리 얽히고설키며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점차적으로 덩치를 부풀려 나가는 그 모습에, 조심스레 마루의 뒤를 노리며 접근하던 새로운 불청객들이 침음하며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인육으로 이뤄진 거대한 탑의 형상이란, 실로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고, 이는 어지간한 경험을 지닌 네임드들의 정신을 잠시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 거대한 탑 위로 데스나이트가 뛰어올랐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탑의 최상층에서부터 최하층까지, 그 심장부 깊숙이 침잠해 가는 순간, 거대한 어둠이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폭발적으로 솟구쳐 나오며 소용돌이쳤다.
휘오오오오오….
하늘 가득 일렁이던 먹장구름이 그 강대한 회전력에 빨려 들듯, 그대로 흡수되며 사라져 갔다.
그리고 이내 인육의 탑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저도 모르게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강대한 파동이, 박동이, 저 기괴한 현장의 중심에서부터 뻗어 나오고 있던 까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크워어어어어~!
강렬한 피어와 함께 거대한 동체가 기지개를 피는 게 보였다.
“으음….”
“맙소사!”
침음과 경악성이 공존하는 가운데,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족.
본 드레이크!
포효하는 놈의 머리 위로 거구의 사내가 올라섰다.
‘…아이언슈트….’
그가 들고 있던 검을 본 드레이크의 이마 위 깊숙이 꽂아 넣는 게 보였다.
크워어어어어~!
재차 터져 나오는 포효 앞에서 관전자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사실, 경악성에 빠진 건 현장의 무리들만이 아니었다.
먹장구름 해제와 함께 수많은 관측 시스템이 부활한 탓에, 각국의 인사들은 다시금 현장 상황을 살필 수 있었는데, 하필 그 첫 장면이 본 드레이크의 등장이었으니, 그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화면 너머로 본 드레이크가 날갯짓을 펄럭이고, 이내 그 거대한 동체가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후웅… 훙… 후우우웅….
거센 돌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뼈대만 남은 몸뚱이로 어떻게 저게 가능한가도 싶었지만, 그런 상식적인 의문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쿠르르르르르르릉….
본 드레이크가 뿜어낸 죽음의 숨결이 저 드높은 하늘 위에서 창공을 가르며, 밤하늘을 더욱 깊은 죽음의 별빛으로 물들인 까닭이었다.
전율적인 광경 앞에서, 사고가 멈춰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