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계.
#5. 마계.
성녀 레아는 뿌듯한 얼굴로 영상을 바라봤다.
아이언슈트 그리고 트랩퍼!
그 둘이 활약하는 영상이었다.
물론, 실제 무언가를 하는 건 없었다. 아이언슈트는 가만히 서서 연주만 했고, 트랩퍼는 함정에 빠진 불청객들을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남다른 활약상은 독특한 환상결계 너머에서 펼쳐졌다는데, 그에 관한 영상은 마련되지 않았던 터라, 그저 당사자들을 통해서 전파된 정보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영상에서 그 둘이 특출 난 활약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언슈트와 트랩퍼! 그 둘은 한 사람이니까.’
레베카에게 들을 것도 없었다.
온전히 각성해 버린 성녀의 능력은 ‘진실’을 볼 수 있는 ‘신안’마저도 부여해 준 까닭이었다.
가면? 갑주? 체형?
그 모든 걸 꿰뚫고 숨겨진 본질을 살필 수 있었다.
그녀는 영상 속 마루가 그저 가만히 숨 쉬는 것만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았다.
한 개인이 두 개의 인격을 연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대 전체를 휘어잡고 상황을 의도한 대로 연출한 것까지,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몸으로 뛰고 들이받으며 피 튀기는 격전을 치러야만 활약이 아닌 것이다. 거대한 오페라 무대처럼 저 모든 상황을 지휘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쉼 없이 영상을 재생시키며, 마루를 살폈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시는구나.”
다가올 대환란을 생각하자니 그녀 역시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황청에는 다양한 의뢰가 들어왔고, 그녀는 이를 수행하며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는 도약의 발판이 따로 있었다.
퍼펙트 플레이!
실버 박사가 원했던 그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성녀가 된 뒤 그곳에서 다양한 신성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일종의 중립지대라 할 수 있는 영역으로서, 수많은 신성들이 문을 두드리는 공간이지 않던가.
그 많은 신전들을 오가며 다양한 신언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나날이 성스러운 의지가 쌓여 가고 또 단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로그인!”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 도장을 찍었다.
* * *
존슨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스킬 명칭이 뭐라고?”
“간장개장.”
“…골 때리는 이름이네.”
심각한 옛일을 떠올려야 하건만, 저도 모르게 실소가 나오려 했다는 게 짜증 났던지, 존슨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
과거, 그의 스승인 WHA 1대 회장 마르코와 한때는 삼촌이라 불리던 데스워치를 갈라놨던 사건.
‘글론….’
데스워치의 제자이자, 그가 형제처럼 지냈던 친우의 얼굴이 스쳐 갔다.
천사 같은 얼굴과 달리 악마의 심성을 지닌 탓에, 결국 스승인 마르코가 직접 그 생을 끊어야만 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데스워치와 갈라서게 되지 않았던가.
갑자기 그 얼굴을 떠올리는 이유?
‘…그놈은 심장을 파먹었다고 했지.’
스승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스킬 명칭이나 상세 조건 등은 알 수 없었지만, 글론과 관계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심장이 비어 버린 사체를 상당수 발견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승인 마르코가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타인의 스킬을 갈취하는 조건이 심장을 먹는 걸지도 모른다고 했었어.’
마루의 제자, 임시안의 새로운 스킬이 왠지 모르게 그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혹시…?’
어쩌면?
묘한 예감이 들었다.
“아직까진 기본 정보밖에 습득되질 않았다고?”
존슨의 물음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일단 성장을 해 봐야 나머지 정보도 풀릴 것 같긴 한데.”
아직까진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몇몇 특수한 스킬들은 제시된 조건을 충족해야만 성장도가 올라가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간… 은 일단 보류하고, 사냥터 좀 데리고 다녀야겠네. 보다 보면 알 수 있겠지. 특수 조건이 발동하는 케이스인지 아닌지.”
그의 말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혹시라도 특수 조건 발동이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고, 일단 시안이가 최근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좀 알아봐.”
최근, 몇몇 연구진 사이에서 각성의 조건에는 주변 상황이 계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가설이 돌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이에 대해서 알아보다 보면 혹시 또 다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임시안에 대해서는 그렇게 일단락하고, 새로운 화젯거리로 넘어갔다.
“백록담의 주인은 뭐야?”
이에 마루가 히쭉 웃으며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줬다.
“허… 그 무시무시한 놈이 이젠 네 사역마가 됐다고?”
“계약서 한 방에 서열 정리도 확실해졌지. 흐흐….”
“엔트라넷?”
“좋은 게 있더라고.”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존슨이 슬쩍 물었다.
“그럼, 제주도 마수지대는 어떻게 됐냐?”
“새 주인이 자리 잡았겠지.”
마굴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백록담 역시 새로운 지배자가 터를 잡았으리라.
현무암은 내단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는 듯, 백록담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순리대로 풀어 가야지.]
그 말만 남기며 손을 뗄 뿐이었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존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크로맨서 스킬, 그거 혹시….”
“칼죽이 재주야.”
그리 말하며 한 차례 엄지를 세운 마루가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1대 회장님 이름이 언급된 건 미안해.”
“됐어. 그 영감탱이도 이렇게 다시 화제가 돼서 좋을걸? 은근히 관심받는 거 좋아했거든. 협회도 그러려고 만든 걸지도 몰라.”
언뜻 무거워질 수 있는 화제였지만, 존슨이 우스갯소리로 받아 준 덕분인지, 단번에 공기가 가벼워질 수 있었다.
“차라리 잘됐어. 그 정도 스킬을 보여 줬으니까. 앞으로 겁 없이 설칠 놈들은 없을 거 아니야.”
마루 역시 그 같은 이유로 화제로 띄운 것이기도 했다.
“듣자 하니 제법 살려 준 것 같던데. 그것도 의도한 거지?”
그 물음에 마루가 칼죽이의 악인 구분법을 설명해 줬고, 이에 존슨이 박수를 쳤다.
“히야~! 이 집 설계 잘하네. 확실히 나쁘지 않네.”
세상이 생각하는 마르코 1대 회장의 약점 중 하나, 그건 바로 망자의 구분법이었다.
절대 인간은 언데드화 시키지 않는다는 점으로,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취하지도 않았던 터라, 그로 인해서 때때로 그를 우습게 여기던 이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데스워치의 존재로 인해 감히 이를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 때문에 마르코가 부리던 군세는 언제나 해골 ‘괴수’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마루는 문제아들의 모가지를 비틀고 그릇된 숨결을 불어 넣어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내 동료나 친우가 혹은 나 자신이 저 몰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흐흐… 상상만 해도 섬뜩하지.”
자신이 언데드가 되어 주변인에게 칼을 드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라 한다면, 악질들만 잡아다가 처분했다는 점이었다.
“마일리지 적립 기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한번 터지면 화력은 확실하겠네.”
이번 사건으로 1대 회장과 다르다는 걸 확실히 보여 줬다.
“마르코 영감보다 더 단호하지만, 적당한 자비심도 보여 줘서 선도 지켰으니까. 이래저래 견적 내기 어렵겠다. 큭큭큭!”
그렇게 웃어 보인 존슨이 새로운 화젯거리로 넘어갔다.
“너 바쁜 것 같아서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골 때리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심각한 거야?”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존슨이 이야기했다.
“사일론이 넘어왔어.”
순간 이해하지 못한 듯, 멍청하니 바라보던 마루가 이내 의미를 이해한 듯 동공을 크게 키웠다.
“마계 대공 사일론?”
“어. 그 녀석이 다시 넘어왔어.”
“그렇게 큰 사건을 이제 말하면 어떻게 해?”
산타카타리나에서 사일론의 강대한 존재감을 마주했던 만큼, 마루의 표정은 대번에 심각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존슨의 표정에서 의문을 느꼈다.
“…잘 해결됐나 보네?”
“눈치 하고는. 그래.”
그러면서 사일론에게 일어난 일을 전해 주는데, 마루는 재차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허… 그… 사일론이… 뭘 하고 있다고?”
어렵사리 묻는 질문에 존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PP. 요즘 아주 폐인이 따로 없다. 밥 먹는 시간도 아껴 가면서 게임만 하는데, 뒷바라지하느라 허리가 휜다.”
“…….”
마루는 멍청하니 입만 뻐끔거렸다.
* * *
상상도 못 한 상황이었다.
“하… 이런 건 예상에 없었는데.”
사일론은 PP에 접속하던 날, 헛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몰골을 돌아봐야 했었다.
이유인즉,
“소마 시절로 돌아갔다고?”
이는 마족들의 유년기를 칭하는 용어로서, 마계에서 도망치며 마기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종의 압축 형태로 육신을 소형화한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말 그대로 어린 유년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으로, 그 차이가 무엇인가 하니.
“힘이 싹 사라지다니….”
쪼렙부터 다시 시작이란 의미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는 만렙이나 다름없는 상태였건만, 마치 PP의 계승 시스템처럼, 모든 스탯이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금껏 여러 차원의 육성 시스템을 경험해 봤지만, 이런 식으로 능력치를 제한했던 세계는 단언컨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골 때리는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러면 나가린데.”
주변 풍경을 보라.
PP의 공략집 어디에도 나온 적 없는 풍경이 그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핏빛 하늘과 보랏빛 대지, 시야를 가득 어지럽히는 잿빛 안개까지, 마치 던전 속 세상을 연상시키는 이 섬뜩한 환경은 무엇인가.
PP의 여러 공략 루트를 열심히 뇌리에 박아 놨건만, 하나도 쓸모가 없게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략하지 못할 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마계라니.”
이 지긋지긋한 풍경은 평생을 살아오며 마주했던 것이지 않던가.
아직 정식 업데이트는 되지 않았다고 알려진 PP의 신대륙, 그곳이 대뜸 그의 앞에 나타나 버린 것이다.
게다가 시스템은 그에게 명확한 목표까지 제시해 줬다.
[마계 대공 사일론을 공략하라!]
이 가상의 세계에는 또 다른 ‘사일론’이 존재하는 듯싶었다.
‘내가… 나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떤 목적으로 이런 퀘스트를 부여한 것인지, 대충 느낌은 왔다.
‘나를 공략하고 나면, 본신의 능력이 회복되는 건가?’
내심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날 얼마나 제대로 구현했으려나.’
일말의 기대감도 뒤따랐다.
하나 이후의 일정은 그런 두근거림과는 전혀 달랐다.
“으아아아아악~!”
나약한 소마 시절도 되돌아간 그에게 있어, 마계의 가혹한 환경이란?
“이런, 족 같은 PP… 이… 삐삐~ #@삐~ #[email protected]#”
나날이 욕지거리가 늘어 가고 있었다.
개중, 특히 입에 착 붙는 단어를 꼽으라면?
“씨~ 바아아알~!”
입에 짝짝 붙었다.
* * *
PP의 알파 테스트 버전!
실버 박사는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존재로서, 알게 모르게 PP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많았는데, 차원 관측 스킬을 통해서 새로운 몬스터를 업데이트하는 부분 등, 그는 세계를 떠난 뒤에도 나름의 활약을 하고 있었다.
그 덕분일까?
역으로 PP의 변화에 대해서도 빠르게 체크를 할 수 있었는데, 최근 그를 놀랍게 만드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마계!
타 차원을 관찰하며 어찌어찌 뼈대를 잡고, 어설피 살을 붙여 놨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아서 정식 오픈을 하지 못했던 ‘신대륙’이었다.
그의 관측 스킬에 인공 지능이 이런저런 살을 붙이며 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
최근 그 신대륙에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자체적인 업데이트라고 해야 할까?
어설피 이어 놨던 뼈대가 제대로 맞물리고, 살가죽도 모양새를 잡는 등, 엉성함이 넘쳤던 신대륙에 제대로 된 균형과 법칙 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가 놀라웠다.
“마계 대공 사일론이라니.”
박사가 접했던 몇 안 되는 정보 중, 가장 퀄리티 높았던 마계의 캐릭터가 대뜸 PP에 유저로서 등장해 버린 것이다.
PP는 그 유저의 기억을 토대로 불완전했던 마계 대륙의 완성도를 급속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신대륙 업데이트도 머지않았네.”
관련 정보를 이런 식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그는 관측에서 한숨 여유를 돌릴 수 있을 터였다.
할 일도 한정할 수 있었다.
“PP는 게임이니까.”
그리고 그는 제작자였다.
“퀘스트를 만들어 볼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마계 대륙에 맞춰, 그 역시 바쁘게 커다란 물줄기를 그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