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용용… 죽겠….
#8. 용용… 죽겠….
칠성제!
이는 한국의 토종 7대 길드라 불리는 삼족오, 혜성, 적호, 염라, 구미호, 산신, 창룡, 이렇게 일곱 길드가 모여서 이룬 연합체였다.
아직은 정식으로 발족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에 대해 알 만한 이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규모였다.
대외적으로도 7대 길드의 눈치를 보며 쉬쉬하고만 있을 뿐, 언제든 기삿거리를 올리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이들로 인해 입지가 좁아지는 이들이 있었다.
제우스, 바빌론, 그리폰!
일명 해외파로 불리는 3대 길드였는데, 이들도 그 나름대로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중이긴 했다.
올림포스!
그들이 모여서 준비 중인 연합체였는데, 아무래도 규모나 파워 면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해외의 여러 네임드들이 그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다방면에 걸쳐서 힘을 실어 주고는 있지만, 결국 외부 인력이라는 한계점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균형의 추가 칠성제 방향으로 기울어 갔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2인의 랭커가 전부 칠성제 측에 있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그 때문일까?
하부의 길드들 역시 눈치를 보며 은밀히 환승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안전하게 이겨 놓고 패를 까는 게 진리지.”
장태산의 이야기에 김수호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역전 드라마가 제맛인데.”
“현실에서 반전만큼 쓸모없는 게 없다.”
이어진 일침에 김수호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연신 투덜거렸다. 그 모습에 장태산의 미간이 구겨졌다.
“어휴~! 랭커라는 놈을 이젠 쥐어 팰 수도 없고. 저걸 어쩌냐.”
장태산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부 그룹 싹쓸이하고 나면, 칠성제 오픈할 땐 올림포스는 그냥 깃발도 못 올리고 다운될걸.”
“그래도 반전 드라마가….”
“지금 상황에서 반전이면 우리가 엿 먹는 구도밖에 없어.”
“…….”
결국 조용히 합죽이가 되는 김수호의 모습에 장태산이 재차 고개를 저어 보인 뒤, 새로운 화젯거리를 꺼내 들었다.
“혜성에는 연락해 봤어?”
“트랩퍼?”
“어.”
“일단 여제한테 연락하긴 했는데.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하던데.”
“그렇겠지. 네임드급 길드들도 여기저기서 쑤시고 있으니까. 후우… 그렇다고 해서 트랩퍼를 직접 찾아갈 수도 없고.”
“뭐, 여차하면 칠성제 동맹을 앞세워야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장태산이 재차 물었다.
“WHA 초인전에는 따로 연락 취했고?”
이는 장태산이 아닌 김수호만이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랭커들만의 소통 창구인 초인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 방면으로 일종의 항의 서한을 보내는 거였다.
국내에서 랭커들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WHA의 소속이 아닌 이면의 문제아들이기에 이들을 걸고넘어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와 있는 정식 랭커들이 상당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전부 사태를 방관하고 있었다는 부분은 충분히 걸고넘어질 만했다.
“당연하지. 그런데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랭커들도 열심히 신고 때리는 것 같던데.”
“트랩퍼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서 이것저것 다 찔러보는 거겠지. 늦으면 늦을수록 한통속이란 신호가 될 수 있으니까. 바쁘게 움직이는 걸 거야.”
김수호 역시 침묵하고 있었던 만큼, 그 부분에선 다를 바 없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는 이선희의 요청에 의해서 숨죽였던 것뿐이었다.
“제로 원이 나서서 해결할 거라서 대기 타라고 한 줄 알았더니, 대뜸 아이언슈트가 등장해서 해결해 버릴 줄이야.”
김수호는 혀를 내둘렀다.
“덕분에 몸값 하나는 확실히 띄웠잖아.”
“원래부터 금값이었어.”
그 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이언슈트에 대해 떠올렸다.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트랩퍼가 화젯거리가 됐다지만, 역시나 1순위는 아이언슈트였다.
* * *
마루에게 있어서 레벨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었다.
신물 회수!
바로 백호의 신물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런 이유로 일단 그는 혜성의 의뢰를 받아들인 조건으로 한 차례 더 휴가를 얻어 낸 뒤, 그가 알고 있는 최고의 명당을 찾았다.
‘폭풍을 쫓아다닌다고 했었지.’
현무암이 해 줬던 이야기를 상기한 것인데, 그와 동시에 과거 들었던 힌트도 떠올렸다.
[명당을 찾아보게.]
제주도가 신수 현무의 사체가 남긴 흔적이라며 건넨 이야기로, 어쩌면 백호의 신물을 지닌 ‘지킴이’ 역시 그런 명당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은 거였다.
24시간 내내 폭풍우만 쫓아다닐 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명당을 찾아 만파식적을 연주하기로 계획을 잡은 것이다. 두 가지 조건이 합쳐진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거기에 추가적으로 준비한 것도 있었다.
‘한 방에 끝내자.’
마루는 이런 추격전을 길게 할 생각이 없었다. 지킴이 측에서 알아서 찾아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나름의 준비를 갖춘 뒤,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명당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그 위치가 너무도 뜻밖의 장소였다.
백두산!
그의 삶을 180도 바꿔 줬던 기적의 터전이었다.
아시아권에서 손에 꼽히는 최악의 마수지대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마굴이었다.
명당이라 하지만 이런 장소에서 휴식을 취한다?
‘현무암 영감님 보면, 이 정도야….’
칼죽이가 모아 놨던 마기를 오히려 휘어잡던 현무암의 모습을 상기하니, 그냥 ‘명당’이란 부분에 집중하면 될 듯싶었다.
그렇게 백두산 깊숙이 들어온 뒤, 만파식적을 손에 쥐었다.
“후우… 우웁!”
그리고는 자신의 대표 기운들을 끌어 올렸다.
[사신변환 ― 청룡]
푸른빛 아우라를 두른 채 만파식적을 불었다.
삐이이이이….
숙달된 스킬 덕분에 시원하고 경쾌한 소리가 하늘 높이 퍼져 가며, 거대한 풍운을 몰고 오는 게 보였다.
[사신변환 ― 주작]
뒤이어 붉은빛 아우라가 섞여 들며 주변 가득 뜨거운 열기를 피워 내는데, 그 기세가 저 드높은 하늘 위로 오르며 밀려드는 격랑과 마주했다.
푸르고 붉은빛의 물결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사신변환 ― 현무]
그 결과 먹장구름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오래지 않아 거센 비바람이 쏟아지며, 백두산 일대를 천둥과 벼락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기현상에 그 무시무시한 백두산 마수지대의 마물들이 깜짝 놀란 듯, 몸을 움츠리며 각자의 동굴로 숨어드는 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고개를 드는 기척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백두산에서 목에 힘깨나 주는 놈들이었다.
하나같이 레이드 클래스급으로 분류되는 고위종들로서, 거대한 자연 현상 앞에서도 결코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개중 몇몇 감각이 남다른 놈들의 경우, 이 거대한 기현상의 중심지, 태풍의 눈이 어딘지 파헤치며, 조금씩 마루가 있는 방향으로 접근을 하기도 했다.
고위종이니만큼 하나같이 만만찮은 놈들이 없었지만, 경지에 이른 마루에게 있어선, 솔직히 심각한 골칫거리는 아니었다.
그 와중에 마루의 관심사라고 한다면?
저기 저 드높은 곳, 이곳 마수지대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장소.
백두산 천지!
오랜 시간 그곳을 점령 중인 지배자를 떠올렸다.
용군주!
이 거대한 백두산 마수지대를 장기간 집권하고 있는 절대자로서, 용군주란 이명이 붙은 이유도 놀라웠다.
드레이크!
인계 최강의 몬스터라 불리는 그 공포스러운 마물, 그것을 타고 하늘을 유영하는 모습이 촬영됐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 전면에 등장한 적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용에 관해 특히 더 환호하는 중국 측에서 강하게 푸시하며 밀어붙인 이명이기도 했다.
중국에선 드레이크를 모시는 사당도 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어쨌든 용군주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단지, 저 북극의 지배자인 얼음 마녀처럼 인간형의 마물이란 것 정도만 알 뿐이었다.
마루가 유달리 그 존재에 신경을 쓰는 건?
[칭호 : 용아병]
그가 지닌 특별한 칭호 때문이었는데, 아직까지 현실에선 제대로 된 용족을 만난 적이 없었던 만큼, 한 가닥 호기심이 샘솟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이미 칭호를 착용 중이기도 했는데, 이는 만파식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용아병 칭호와 용투기 스킬의 스탯 뻥튀기 효과는 놓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나, 기대와 달리 용군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크르르….
커헝….
그 대신 마루를 찾아온 마물들이 있었으니, 슬금슬금 접근해 오던 여러 고위종들이 기어이 태풍의 눈에 접어든 것이다.
마루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그도 그럴 게 하나같이 보통 기세가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백두산 마수지대 역사가 세계에서도 손에 꼽힌다더니.’
개중에서도 특히 마루를 놀라게 하는 게 있었다.
나름의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격차라는 게 존재하는데, 당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게 칼죽이의 데스나이트였다.
그 격차에 따라서 A~S급까지 천차만별이지 않던가.
바로 그 부분을 저격하는 것 같은 몬스터가 백두산 터줏대감을 자처하고 있었다.
‘워… 고블린이라고?’
설마하니 백두산의 심처에 저처럼 평범한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업계의 최약체가 만마전의 천장에 발을 딛고 있는 격이었다. 그 반대편으로 보이는 오크 전사도 상당히 놀라웠지만, 고블린이 보여 준 임팩트가 너무 컸다.
오크 전사는 한눈에 봐도 꽤나 단단해 보였지만, 고블린은 일반적인 고블린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 더더욱 큰 반전으로 다가왔다.
더욱 흥미로운 건 주변 분위기였다.
‘허… 대형종들이 눈치를 본다고?’
저 특수한 개체들 외에 일반적인 고위종도 상당수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런 놈들이 죄다 고블린과 오크 전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황당한 건, 마루 역시도 긴장감이 올라오고 있단 점이었다.
‘별다른 기세는 느껴지지 않는데.’
그게 뜻하는 바는?
‘제대로 고수네.’
랭커급이라는 의미였다.
무려 마루의 초감각을 회피할 만큼 기세를 갈무리할 줄 안다는 것이니만큼,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다른 일반 고위종들의 경우에도 보통 기세가 아니었다. 알려진 등급보다 최소 반수 이상을 높게 쳐줘야 할 정도로 남달랐다.
‘산타카타리나보다 규모는 작아 뵈는데, 퀄리티는 두어 단계는 더 높네.’
놈들이 등장하던 순간부터 이미 만파식적은 품에 넣고, 칼죽이에 손을 올린 채 전투를 대비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놈들은 쉬이 덤벼들려 하지 않았다.
몇몇 격렬한 들숨과 날숨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놈들이 보였지만, 그마저도 고블린과 오크 전사의 눈빛이 닿을 때면, 얌전히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간혹 이마저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거기서 또 한 차례 반전이 드러났다.
“크웍!”
오크가 알 수 없는 외침과 함께 손을 흔드니, 허공에서 솟아난 불길이 반항하는 놈들을 불태워 버리는 것이 아닌가.
“전사가 아니라 마법사였어?”
너무 놀라서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렸다. 게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우웅!
작달막한 고블린이 강하게 진각을 밟자, 주변 일대가 크게 들썩이며 지진이 발생하는데, 딱 봐도 전사 계열임을 느낄 수 있었다.
쉼 없는 반전에 멍하니 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과 오크의 대처 앞에, 나머지 고위종들이 결국 숨을 죽이는 모습들을 보여 줬다.
한데, 그 기현상을 보고 있노라니, 묘한 예감이 들었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느낌이….’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크롸롸롸롸롸….
돌연, 저 멀리서 커다란 포효가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강대한 피어가 백두산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느낌이 왔다.
‘용군주!’
백두산의 지배자가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루의 시선이 파동을 쫓아 움직이고, 저 드높은 창공 위에서 먹장구름을 가르며 날아드는 그림자가 하나 보였다.
그 언젠가 촬영된 바 있던 거대한 동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레이크!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인간형의 마물.
‘…용군주!’
그 정체를 확인하며 깜짝 놀랐다.
‘여성체였어?’
놀랍도록 아름다운 미녀가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묘한 예감이 드는 걸 느꼈다.
어쩌면 칭호가 가져다준 감각일지도 몰랐다.
‘…용족?’
마루는 저 인간형 마물의 정체를 왠지 알 것도 같았다.
‘드래고니안!’
게임 속, PP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종족 중 하나로서, 사일론과 비슷한 부류라고 볼 수 있었다.
드래곤과 다른 종 사이에서 태어난 용인족!
그게 바로 드래고니안이었다.
꿀꺽….
마루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칭호 : 용아병]
그 효과?
진짜배기 혈통 앞에선 의미가 없었다.
‘아… 족 됐다!’
등허리가 쭈뼛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