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달링.
#10. 달링.
데카 도라!
이면에서 옥토퍼스라는 이명으로도 불리는 업계 최고 수준의 실력자.
세계 최강을 논할 때면 언제나 존슨과 비교되며, 수많은 이들의 입방아를 찧게 만들던 이면의 강자.
그 절대적 존재는 멍청하니 넋이 나간 얼굴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존슨 그리고 아이언슈트!
단시일에 두 번이나 패배를 경험했고, 그중 한 번은 비록 기습이라고는 하나, 단 한 방에 나가떨어져 버리는 치욕을 겪었다.
그 충격 때문일까?
이미 그 육신은 완벽히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퇴원을 미루며 병실에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언뜻, 넋 놓고 멍하니 있는 듯 보였지만, 그의 머릿속으로는 존슨과 아이언슈트의 전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언슈트의 경우에는 기습 한 방에 나가떨어진 탓에, 그나마 전투다운 공방을 치른 존슨과의 격전이 꽤나 상세히 재생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보름… 어느 순간 데카는 깨달았다.
“하… 나 더럽게 약골이었네.”
오랜 시간, 말도 안 되는 스킬과 재능에 가려져 있던 눈가리개가 풀려났고, 자신이 껍데기만 그럴싸한 이미테이션임을 알게 됐다.
랭커가 된 뒤, 나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해 왔음에도, 말도 안 되는 스킬과 재능에 의해, 그는 언제나 최강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후우우우….”
길게 한숨을 내쉰 그가, 오랜 침묵을 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존슨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환란에 감사해라.]
곧 거대한 해일이 몰려올 거란 뜻이었고, 그로 인해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는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강해져야 할 이유가 늘었군!’
그 길로 한국을 떠났다.
흥미로운 건, 그와 비슷하게 한국을 떠난 랭커들이 제법 있었다는 점인데, 하나같이 지난 네크로맨서 사건과 엮여 있던 이면의 문제아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이면에서부터 격랑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 * *
용군주!
그녀는 백두산 웨이브를 타고 이곳 세상으로 넘어왔다.
그렇지만 얼마든 다른 장소로 옮겨 갈 수 있었다. 더 넓고 더 화려한 장소도 얼마든지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산에 머물기로 했다.
이유가 뭘까?
‘여기에는 신성한 힘이 있어!’
그 때문에 놀랍도록 안락한 기운이 백두산 전역에 깔려 있던 것이다.
그녀의 뿌리와 닿아 있는 기운이기도 했다.
‘용족….’
드래곤이거나 혹은 그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일지 모르는 어떤 특별한 존재의 흔적이 백두산이란 장소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 때문에 백두산을 터전으로 잡았고, 이곳의 가장 신성한 장소인 천지에 그녀만의 ‘레어’를 만들었다.
그렇게 ‘용군주’가 탄생했다.
흔히들 드래고니안이라고도 표현되는 용혈의 계승자, 그게 그녀의 정체였기에, 다른 어떠한 장소보다 이곳 백두산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천지에 머물며 백두산을 돌아봤고, 그 결과 자신을 이곳에 머물게 한 것의 정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놀랍도록 신성한 기운의 결정체였는데, 역시나 용의 기운이 잔뜩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취하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읽은 까닭이었다.
‘지고한 존재가 남겨 놓은 안배!’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 기운의 속에서 ‘운명’을 깨달았다.
‘저 기운에 나의 반쪽이 담겨 있구나.’
언제고 안배가 깨어나는 날, 그녀는 자신의 인연을 찾게 될 것임을 알게 됐다. 그렇게 기다림 속에 세월이 흘렀다.
대략 1년 전쯤이었을까?
‘사라졌어?’
그녀를 안락하게 만들던 근원이 백두산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하필이면 그즈음이 일종의 ‘수면기’였던 터라,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를 뒤쫓을까도 싶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지켰다.
직감적으로 깨달은 까닭이었다.
안배가 제 주인을 찾아 떠난 것이다.
굳이 조급해하지 않았다.
용혈에 깃든 ‘용안’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보았고,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운명은 그녀에게 이곳에 머물기를 종용했다.
‘그게 오늘일 줄이야.’
용군주는 녹아드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달링~!
이에 마루는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사자전환을 사용해서 도망갈까도 싶었지만, 당장 분위기가 위협적이지 않았던 터라, 좀 더 버티면서 이 기이한 상황을 살피기로 결정을 내렸다.
‘갑자기 변한 이유가 뭘까?’
그의 용아병 칭호에 도리어 전투적이던 그녀였건만, 돌연 태도를 바꿔 버린 까닭이 뭐란 말인가.
‘혹시?’
마루는 재차 기운을 일으켰다.
[사신변환 ― 청룡]
그 순간 용군주의 눈빛이 사르르 녹는 게 보였다.
―하악….
숨소리도 거칠어지는데, 입술을 핥는 장면에선 묘하게 위기감이 느껴졌다.
[바람피우다 걸리면 뒤진다!]
문득, 그 언젠가 강하나가 날렸던 경고가 환청처럼 귓전을 스쳐 가고, 등허리가 쭈뼛 서는 감각을 맛봐야만 했다.
다급히 거리를 벌린 그가 물었다.
“다… 달링이라니. 초면인 것 같은데 진도를 너무 과하게 빼시는 거 아닙니까?”
―원래 치고받으면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다가, 여보 자기가 되는 거야.
“아니, 무슨 논리가….”
번들거리는 용군주의 눈빛이 새삼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한 걸음 다가오는 만큼 마루는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며 빠르게 머릿속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청룡의 기운에 반응했다는 건….’
그 기운의 뿌리까지 생각이 닿았다.
[오염된 여의주]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때문인지, 남다른 스탯의 영향인지, 아니면 이 둘의 시너지 효과인지, 전에 없이 빠른 두뇌 회전이 그럴싸한 가설 하나를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의주를 얻은 장소가 이곳이었지.’
용군주는 무려 존슨이나 사일론과 비견될 만큼 특별한 존재가 아니던가.
진정한 초월종이란 의미였다.
그런 특별한 존재가 과연 여의주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을까?
‘드래고니안인데?’
용의 정수를 모른다?
‘말이 안 되네.’
결론이 나왔다.
‘방관했구나.’
그 안에 ‘달링’이란 호칭의 해답도 끼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청룡을 아시는지요?”
용군주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선 청룡이라 불리는구나.
‘아버님? 누구 아버님? 우리 아빠? 아닌데? 정길자 한자 쓰시는데. 누굴 말하는 거야?’
고속으로 돌아가는 두뇌 활동의 영향인지, 의문과 함께 답도 떠오르고 있었다.
여의주!
이번에도 답은 같았다.
용군주는 여의주를 통해서 모든 상황을 보고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물어야만 했다.
“…용군주께선….”
“라미아타 베오닉 드라이크 비오데가닉!”
“…예?”
“그게 내 이름이야. 달링은 애칭으로 라미아라고 불러도 돼!”
멍청하니 용군주, 라미아를 바라봤다.
“후훗… 멍청한 표정. 귀엽네!”
이에 마루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정신을 다잡는데, 그러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어? 말이….”
텔레파시가 아닌 언어로써 의사 전달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와중에 수습을 하지 못한 듯,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속마음에 라미아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이곳 세상의 언어는 전부 할 줄 알아. 달링이 저 아래쪽 한국이란 나라의 말투인 것도 알고. 아직 달링은 나약해서 내 ‘격’을 온전히 버티지 못하니까.”
마루를 생각해서 텔레파시에서 언어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텔레파시와 달리, 용군주쯤 되는 이들의 텔레파시는 꾸준히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실력이 별 볼 일 없다면 조금만 통제해 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의 수준이 높았던 터라 서로의 격차에 민감히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그렇게 엉덩이를 뺄 거야?”
한 걸음 다가서면 한 걸음 물러나는 마루의 모습에, 라미아의 양미간 사이로 슬며시 주름 한 가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르륵….
순간, 라미아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싶더니,
“잡았다! 후우….”
귓가에 스미는 숨결이 있었다.
오싹!
급히 몸을 빼내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단단한 팔뚝에 족쇄가 걸려 버린 상황이었다.
좀 전의 격전에서도 상당한 여유를 두고 있었던 걸까?
‘느끼지도 못했는데….’
마루는 라미아의 이 유령 같은 접근에 뒷목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한데 그 와중에도 수컷의 본능은 살아 있음일까?
팔뚝을 타고 넘어오는 풍만하고도 부드러운 감각에 슬쩍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젠장… 향기는 또 왜 이렇게 좋아.’
강하나의 외침이 환청처럼 스쳐 갔다.
[바람피우다 걸리면 뒤진다!]
재차 뒷목이 서늘해졌다.
입술을 짓씹으며 정신을 다잡는 사이, 라미아의 표정에 묘한 변화가 발생하는 게 보였다.
“흐음….”
그녀가 팔짱을 낀 상태로 마루를 살피더니, 이내 아리송한 얼굴이 돼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아닌가.
“달링… 달링?”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오래지 않아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지는 게 보였고, 새로운 위기감이 밀려드는 걸 느꼈다.
라미아는 묘한 눈으로 한참 마루를 바라보더니, 대뜸 그 얼굴을 양손으로 꽈악 붙잡았다.
“이게, 무슨….”
당혹감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더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 버렸다.
빠악!
말 그대로 입술 박치기가 이뤄진 것이다.
‘아악!’
이빨이 나갈 것 같은 충격 속에, 저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지는데, 그 사이로 파고드는 뜨거운 불길이 있었다.
라미아의 혓바닥이 뱀처럼 그의 입 안을 타고 들어와 목구멍 깊이 헤집어 드는 것이 아닌가.
‘컥… 커억… 꺼억….’
숨이 넘어갈 뻔했다.
그야말로 눈 돌아갈 만큼 아름다운 미녀와의 뜨겁다 못해 불타오르는 키스였지만, 이는 환상적이기보단 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만 가득할 뿐이었다.
몸을 빼내고 싶어도 라미아의 강건한 아귀힘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목구멍을 헤집었을까?
문득, 마루는 제 배 속에 숨죽이고 있던 ‘오염된 여의주’가 일렁이는 걸 느꼈다. 라미아의 불길에 어떤 작용을 한 것으로 보였는데, 배 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여의주의 기세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올 즈음이었다.
쑤욱….
라미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혓바닥을 빼냈다. 그리고는 복잡한 얼굴로 마루를 바라봤다.
“하아… 짝퉁이었어?”
그러더니 대뜸 무례한 언사를 내뱉는 것이 아닌가.
자연히 울컥하는 마음이 샘솟았지만, 그녀의 아귀힘에 생생히 전달되고 있는 터라, 화는 삼키고 숨은 골라야 했다.
‘재수 없으면 사과처럼 쪼개질라.’
자신의 뇌수가 터지는 걸 상상하며 최대한 얌전히 착한 얼굴을 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다.
“첫 키스였는데.”
마루는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다. 맘에 안 든다는 듯 그를 한참 바라보던 그녀가 물었다.
“달링은 어딨어?”
“…예?”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주인, 빵꾸똥꾸야!”
“…예?”
마루는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다.
* * *
초롱이는 매우 신난다는 얼굴로 방방 뛰었다.
“햐~! 여기 너무 좋아.”
옆에서 루미도 거들었다.
“삼촌, 최고!”
이선은 괜스레 목에 힘이 들어가며 어깨가 솟는 걸 느꼈다.
7월을 목전에 둔 시기, 계절은 어느새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슬슬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면 한창 화제가 되는 장소가 있었다.
워터파크!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거대한 물놀이를 하러 온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여름이다 보니, 이곳도 당연히 첫 경험이었다.
동네 수영장 정도는 가 봤지만, 이런 대규모 시설은 처음이다 보니, 아이들의 눈은 그야말로 밤하늘 별빛처럼 화려한 반짝임으로 가득했다.
수영장과 놀이공원이 함께하는 동산이라니, 말 그대로 꿈과 환상의 낙원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에겐 이곳이 에덴인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맛있는 군것질거리도 잔뜩 넘쳐 났다.
물론, 마냥 행복한 건 아니었다.
“우으… 타고 시픈데….”
“히잉….”
마치 사과나무를 바라보듯, 울상이 된 아이들의 눈빛이 여러 놀이기구를 돌아보는데, 안타깝게도 키 제한에 걸려서 탈 수 있는 기구가 한정되어 있었다.
루미는 어찌어찌 가능했지만, 초롱이를 생각해서인지 함께 다음을 기약하는데, 대인의 면모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오오….’
이선은 작게 감탄하며, 그 보상으로 맛있는 먹을거리를 잔뜩 사 주기로 했다.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워터파크 내에서 먹는 아이스크림만 한 별미가 또 없었다.
“저요~!”
“저요~!”
언제 침울했냐는 듯, 활짝 웃으며 안겨 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아이들은 그 피부가 꺼멓게 탈 때까지 신나게 뛰어놀며, 기분 좋은 물놀이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