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개장.
#13. 개장.
아이언슈트의 각성 체조!
이는 민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비각성자들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운동법이었다.
존슨의 지원으로 신뢰도가 올라간 와중에, 회사원 박달수의 초대형 늦깎이 각성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각성 체조는 광명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언슈트를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각성 체조를 한 번쯤은 해 봤을 터였다.
물론, 당장 이렇다 할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 탓에, 이를 꾸준히 이어 나가는 이들의 수는 얼마 안 되긴 했다.
일반적인 헬스 같은 근력 운동과 달리, 각성 체조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없기에, 존슨과 박달수라는 인증 마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의문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마루는 이에 관해서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여겼다.
“올가을만 지나도 상황이 달라질걸.”
짐작하건대 올해가 가고 내년이 올 즈음이면, 전국, 전 세계에서 밤낮으로 각성 체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어쨌든 각성 체조는 수많은 민간의 비각성자들이 주목하는 화제의 운동법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각성 헌터들 역시 이에 관한 관심도가 늘어 가고 있었다.
물론, 각국의 전문 단체에서는 일찌감치 이 운동법에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를 거듭하고 있긴 했다.
더 많은 각성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연구는 꾸준히 이어져 왔던 만큼, 화제의 각성 체조 역시 그들의 관심사가 되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헌터들의 시야에선 살짝 벗어나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이미 각성을 한 이들에겐 의미가 없다 여긴 것이다. 각국 단체에서 주목한 건, 비각성자를 통해서 전력의 상승을 꾀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주목한 게 전부라는 것, 그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거기에는 이를 통해서 일종의 군대화가 가능해질 거란 기대치도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그 때문에 일반 각성 헌터들은 화제성에만 집중했지, 직접 운동법에 뛰어드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각성 체조에 관심을 갖는 각성자들이 생겼다.
“어쩌면 멀티 스킬의 비밀이 저기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관련한 이야기는 이전에도 여럿 나오기는 했지만,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멀티 스킬이 뉘 집 똥개 이름도 아니고.”
“그런 꿀팁을 누가 공유하냐?”
“각성 체조는 뭔데?”
“저것도 의심스러워.”
이래저래 말이 많았었다.
하지만 그러던 반응에 반전이 발생했으니, 그 계기는 지난 트랩퍼 사건과 닿아 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엔트라 게시판을 통해서는 관련 정보가 상당 부분 퍼져 나간 상황이 아니던가.
영상 자료야 가격이 워낙 비싸서 확인한 이가 드물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입소문으로 퍼진 소식이 더욱 뻥튀기되며, 풍문이 풍운을 몰고 온 것이다.
사건의 중심지는 트랩퍼의 레어지만, 시선은 아이언슈트에게 머물러 있었고, 포인트는 또 다른 멀티 스킬 네크로맨서였다.
각국 단체야 트랩퍼에 집중하지만, 일반 헌터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WHA 1대 회장 마르코 더글라스!
그는 모든 헌터들의 꿈이자 우상이며 절대적 영웅이었다.
심장에 박힌 동경이 수많은 각성자들로 하여금, 자존심을 굽히고 접고 버리며, 각성 체조를 따라 하게 만든 것이다.
‘혹시, 어쩌면….’
‘존슨의 형제니까.’
‘인류애적 차원에서 꿀팁을 개방한 걸지도 몰라.’
‘아이언슈트가 가디언즈라면… 충분히 가능해!’
앞서 언급한 바 있듯, 근력 운동과는 달리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가 없기에, 빠르게 의욕을 잃어버린 이들도 상당하지만, 혹시 모를 바람을 품은 채 꾸준히 실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멀티 스킬을 향한 헌터들의 몸부림이 시작된 가운데, 그 가능성을 지닌 한 사내의 처절한 발악도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첫 스타트는 일반 몬스터의 간이었다.
“먹자.”
마루가 잘 썰어서 회를 뜬 간을 내밀자, 임시안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나… 날로요?”
“구워 주랴?”
대답은 없었지만, 내심 바라는 눈치였다.
“육회 안 먹냐?”
“…먹습니다.”
“육회라고 생각해.”
“…….”
열심히 살 궁리를 하는 것인지,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린 임시안이 물었다.
“듣기로는 몬스터 고기 먹으면 탈 난다고 하던데요.”
“그거 헛소리야. 애들이 얼마나 맛있는데.”
마루는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존슨을 바라봤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탈이 나는 게 사실지만, 적당한 조치 및 조리법을 취한다면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리고 이마저도 민간에 해당하는 경우로, 각성자들은 신체 자체에 변화가 발생하면서, 일정 부분 면역력이 생기고는 했다.
“저기 상류층이니 뭐니 하는 놈들이 고위종 잡아다가 육회 파티 하는 영상 못 봤냐?”
물론, 그마저도 인간형이 아닌 동물형 몬스터라는 함정이 있었지만, 마루는 이 부분은 쏙 빼서 이야기했다.
게다가 맛에 관해서는 일부 특수 몬스터를 제외한다면?
‘삼겹살에 소고기가 최고지.’
마루는 이리저리 진실을 감추며 매섭게 눈짓했고, 결국 임시안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눈을 딱 감고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여기 소금장.”
존슨이 당근을 내밀었고, 마루가 채찍질을 이어 나갔다.
“괜히 아끼지 말고, 꼭꼭 씹어서 다 먹어.”
아껴 먹고 싶은 비주얼이었지만, 임시안은 그 말처럼 접시에 올라온 몬스터의 간을 전부 씹어 먹었다.
“어허… 그냥 삼키면 배탈 나.”
틈틈이 단숨에 꿀꺽을 시도했지만, 마루는 귀신처럼 알아채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각성자라 할지라도 초반부터 그냥 삼켰다간 탈 날 확률이 올라가기에, 이는 합당한 조치라 할 수 있었다.
“그래. 느낌이 좀 오냐?”
스승의 물음에 임시안이 꺼멓게 죽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에 존슨이 말했다.
“이놈이 아닌가벼.”
나폴레옹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이 산이 아닌가벼.]
마루는 새로운 몬스터를 잡아 왔고, 그렇게 각종 몬스터들의 생간을 종류별로 맛볼 수 있었다.
“이놈도 아닌가벼.”
“이놈도 아닌가?”
“이놈도….”
끝이 없었다.
“꺼어어억….”
입에서 단내가 아니라 몬스터의 피비린내가 잔뜩 풍겨 나오는 가운데, 임시안이 걸쭉한 트림과 함께 뒤로 넘어갔다.
“더… 더는 못 먹어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제자의 뱃가죽을 보며 마루가 이야기했다.
“쉴 시간이 어딨어. 바쁘니까 먹으면서 소화시켜.”
채찍질 뒤로 존슨의 당근이 이어졌다.
“여기 소화제. 부채표 보이지? 무려 파초선이야.”
당근의 잎사귀로 뚜드려 맞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꾸역꾸역 새로운 도전과제를 씹어 먹을 수 있었다.
“일반 몬스터가 아니라. 특수 몬스터 계열로 넘어가 보자.”
정말로 다양한 몬스터들의 간을 목구멍에 밀어 넣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이 상황이 고문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찾아왔다.
그즈음 해선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마저 들어 버렸다.
‘차라리 사람 간을 먹고, 한 큐에 가는 게….’
화들짝 놀라서 제 뺨을 두드려야 했다.
그 정도로 지독한 시간이었다.
몬스터의 독성에 탈이 나는 게 아니라, 배가 터질 것 같은 소화 불량으로 탈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난 걸지도 몰랐다.
“으으으으….”
신음성 섞인 제자의 모습에 마루도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괜히 시간 질질 끌었다가 몬스터 고기에 적응하는 걸 넘어, 이상한 습관까지 생기는 것보단, 단기간에 정신없이 몰아쳐서, 이 상황이 꿈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게 낫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는 그런 식의 미친 미식가들이 여럿 있었고, 이들을 기억하기에 더더욱 짧고 굵은 고통으로 끝내고자 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마루도 그런 계열의 한 부류였다.
과거, 몬스터 뒷간에 군침을 흘리던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안쓰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재차 채찍을 들어야만 했다.
“지금부터는 특수 개체다.”
대개 몬스터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고유의 스킬을 지니고 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트롤의 재생력 오우거의 괴력 오크의 번식력? 등등을 들 수 있는데, 이와 별개로 더 많고 다양한 스킬들을 지닌 경우, 이런 개체는 특수 개체로 분류할 수 있었다.
선천적인 재능 이상의 것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타고나기를 멀티 스킬을 타고나는 종들이 있는데, 그런 개체는 일단 제외 대상이었다. 개중 특수 개체를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최하급의 약체 중에서 특출 난 개체를 골라다가 회를 뜨는데,
“어?”
임시안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드디어 반응이 온 것이다.
* * *
아이언슈트와 트랩퍼 그리고 승급 현상까지.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었다.
많은 랭커와 세력 그리고 요원들이 아시아 변방의 작은 나라에 모여들며, 그야말로 세계의 시선이 한 점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하게도 시야의 사각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같은 부분을 이용해 가며 각자의 욕심을 채우는 이들도 존재했다.
키홀의 수장 바이퍼 역시 그런 무리에 끼어 있었는데, 유럽 이면의 연합체인 레메게톤이 그가 꿈꾸는 탐욕의 결정체였다.
동생이자 클랜을 대표하던 강자, 제퍼드가 사망하고 난 뒤, 유럽 이면에서 키홀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홀은 키홀이었다.
랭커의 존재감이 크다고는 하나, 오랜 시간 그가 가꾸고 키워 온 키홀의 덩치는 머리 하나가 비어도 굳건한, 마치 트윈 헤드 오우거 같은 단단함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비어 버린 머리의 공백이 두드러질 것이나, 이를 제대로 인지하기 전에 최대한 몰아붙이며, 레메게톤 내에서의 입지를 굳히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오늘 유럽 이면을 대표하는 네임드급 클랜의 대표자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에서, 그는 준비하고 있던 굵직한 한방을 터트리며, 그간 쌓아 올린 탑의 꼭대기에 관을 씌울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제 체계도 잡혔고 하니, 슬슬 머리를 뽑아야 하지 않겠나.”
프레이 클랜의 수장 도파가 그리 말하며 운을 띄우니, 각 클랜의 대표들이 눈을 빛내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우리 아스타 클랜은 인페르노 클랜의 수장을 추천하오.”
“바코 클랜은 헤라 클랜을….”
“로직은 바몬을….”
“안드라스는….”
하나같이 추천장을 띄우며 깃발을 드는데, 그 모습에 바이퍼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짜고 치는 개수작… 큭!’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네임드급으로 분류되는 클랜들이었지만, 개중에도 나름의 격차가 존재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차이를 두고 상하 관계를 조정한 뒤, 각자가 손잡고 있는 상위 클랜을 밀어주는 거였다.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 건, 아무래도 스스로 깃발을 꽂기보다는 준비된 깃발을 뽑아내는 게 모양새가 좋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떠미는 바람을 이용하려는 그때,
“나는 나를 추천하지.”
바이퍼가 홀로 역풍을 탔다.
“지금 이 자리가 만들어지기까지. 레메게톤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우리 키홀이 보여 준 희생을 모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중국의 사흑련과 입을 맞춘 건, 모두가 아는 부분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썽만 부리는 벌거숭이 놈들을 휘어잡은 것도 그렇고, 키홀의 희생은 모두가 알 것 아냐?”
이에 모두가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홀로 튀는 행동을 하는 그가 곱게 보일 리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는 건, 키홀의 이름값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었다.
“허어… 바이퍼 클랜장께서 레메게톤에 큰 역할을 하신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대표를 뽑는 건….”
비슷한 규모의 클랜장들이 나서며 그를 통제하려 들었지만, 바이퍼는 몰아치듯 연달아 패를 뽑아 들었다.
“내 동생, 제퍼드의 부재 때문에 우리 키홀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이 바닥에서 모가지 꼿꼿이 세우려면, 랭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잘 알지.”
묘한 분위기를 느낀 듯, 자리에 모인 네임드들이 잠시 말문을 닫은 채 귀를 기울였다. 뭔가 엄청난 게 터져 나오리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랭커? 그까짓 거 내가 하지.”
자리한 이들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턱을 쩍 벌렸다.
“으음….”
“그게… 무슨?”
“…당신 설마?”
바이퍼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저 어딘가에 그런 격언이 있더군.”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귀가 기울여졌다.
“형만 한 아우 없다.”
그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