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각성의 조건?
#14. 각성의 조건?
임시안이 놀라고 있던 그 순간, 존슨과 마루 역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둘 모두 초감각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인지 영역 너머의 것까지 엿보는 게 가능했고, 이를 통해서 임시안의 내부에서 묘한 파문이 이는 걸 느낀 것이다.
지금까진 없던 변화였고 그만큼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어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루가 물었다. 스킬에 관한 추가 정보가 습득됐는지 확인하고자 한 것인데, 임시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따로 떠오르는 건 없는데, 느낌이… 배 속이 좀 뜨거워지는 것 같아요. 혹시… 탈 난 건가요?”
“…그건 아니야. 다른 종류니까.”
마루와 존슨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고, 이에 임시안이 억울하다는 듯 배를 문질렀다.
“아니, 정말로 배탈이 나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확실히 먹어 치운 양을 생각해 봤을 때, 푸드 파이터라 할지라도 백기를 들고 병원에 입원할 수준이긴 했다.
이에 존슨이 빈 병을 흔들었다.
“그래서 파초선 줬잖아.”
포션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보니, 거짓 없이 정말로 비싼 소화제였다. 소화를 돕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혹시 모를 몬스터 고기로 인한 부작용을 방비하는 효과도 있었다.
“흰소리 그만하고. 특수 개체는 반응이 온단 말이지.”
마루가 교통정리를 하며 화제를 되돌려 놨고, 존슨이 이를 받았다.
“역시, ‘능력자’라는 게 키포인트였나.”
“특수 개체가 찾는 게 힘들어서 골치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모면한 것 같네.”
다행이라는 듯, 존슨이 임시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로 사람의 간을 먹어야 했나 싶었던 임시안도 내심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앞으로는 특수 개체를 집중적으로 조져 보자.”
그렇게 새로운 먹방이 시작됐다.
한데, 거기서 또 뜻밖의 반전이 발생해 버렸다.
“반응이… 없는데요?”
또 다른 취식을 하던 임시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야기했다. 마루와 존슨도 초감각으로 주시하고 있던 터라, 이미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뭐가 문제지?”
고민의 끝에 나온 결론이 있었다.
“처음 느낌이 왔던 건, 고블린 주술사였고, 좀 전에 먹은 건 오크 변신술사고.”
마루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다른 종류라서 그런 거 아닐까?”
“하나로 통일해야겠네.”
그러면서 같은 주술사 계열, 심지어 꼭 같은 ‘종’의 특수 개체로 한정하기로 결정을 내리며, 다시금 사냥을 시작했다.
그 결과,
“느낌이 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중간에 혹시 싶어서 같은 종이지만 다른 특수 개체, 혹은 능력치는 같지만 종족이 다른 특수 개체 등, 조금씩 변수를 줘 봤지만, 그때는 전혀 반응이 오지 않았다.
이를 통해서 엔트라넷 시스템이 허락해 주는 마지노선을 정리할 수 있었다.
특수 개체는 실로 희귀한 존재다 보니, 이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를 들면 오크들의 경우, 진화가 이뤄지면 기본적으로 전사와 주술사로 구분되는데, 대개 전사로 성장하지 주술사 개체로 성장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애초에 주술사로 성장할 개체는 진화 이전부터 특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특수 개체인 거였다.
“특수 개체 찾기도 쉽지 않은데, 같은 종족으로 골라서 먹여야 된단 말이지.”
번거로움이 급격히 뻥튀기된 탓인지, 임시안도 더는 불평을 하지 못한 채, 얌전이 꾸역꾸역 푸드 파이팅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변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우우우웅….
배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림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임시안의 전신으로 쭈욱 퍼져 나갔고, 이내 전체적인 포스의 농도가 상승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막혀 있던 둑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앞서, 존슨과 사냥을 하며 흡수됐던 경험치가 한 번에 정산되는 듯, 요지부동이던 포스의 총량이 단번에 화악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간 경험치가 어디로 사라졌나 싶었더니, 몸속 깊숙이 봉인되어 있던 듯싶었다.
이어진 승급 현상.
“우와아아앗!”
엔트라넷 상태창을 오픈한 임시안이 환호성을 내뱉었다.
[임시안]
[각성 등급 : C]
[컨디션 : 7]
[스킬 : 간장개장 ― 불쏘시개]
등급이 올라간 것만으로도 탄성이 나오건만, 거기에 새로운 스킬까지 추가된 것이다.
‘맙소사!’
존슨과 마루에게 슬쩍 언질을 받았지만, 그래도 설마설마하는 심정이었다.
‘정말로 멀티 스킬이라니!’
환호성이 터지기에 충분했다.
신규 스킬은 간장개장의 하위 그룹으로서 편입된 듯, 스킬창의 후미로 새롭게 나열되어 있었는데, 간장개장과 마찬가지로 관련한 기본 정보가 바로 습득되었다.
“명칭처럼 직접 불을 피우지는 못하네요,”
하지만 작은 불길이 있다면?
이를 포스가 허락하는 한도에서, 최대한 증폭시킬 수 있었다.
“성냥이라도 하나 챙겨 다녀.”
존슨의 이야기에 임시안이 의문을 제기했다.
“라이터가 아니라요?”
“폼생폼사야.”
“아….”
마루는 한심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는 한 귀로 듣고 흘려. 나중에 포스 마찰로 불꽃 튀기는 법 가르쳐 줄 테니까.”
PP를 통해 다양한 스킬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그만큼 많은 포스의 운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굳이 스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 잔재주를 부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감사합니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오지게 박는 제자의 모습에, 마루는 아주 살짝 양심이 뜨끔해지는 걸 느꼈다.
스킬의 비밀을 파헤치는 게 제자를 위해서 한 행동이긴 하지만, 동시에 일부 ‘실험 정신’ 역시 포함됐던 까닭이었다.
그의 호의가 마냥 순수하다고 볼 수 없던 것이다.
아이언슈트의 각성 체조를 통해 각성자가 탄생할 것임은 알고 있었다. 실버 박사가 직접 다른 차원에서 공수해 온 연공법이지 않던가.
마루가 몸으로 굴려 가며 현실에 맞게 구현한 만큼, 완성도 역시 보장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성의 규칙성에 대해서는 확신하기가 어려웠고, 그런 이유로 임시안과 같은 일종의 ‘특수 개체’에 관해서는 상세히 살필 필요가 있었다.
존슨의 의형제로서 존재 자체가 이레귤러였던 사내, 글론에 관해 들은 게 있기에 더더욱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 여겼다.
‘이상한 부작용이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
차후 이 문제를 두고 실버 박사와도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기도 했다.
그 같은 이유로 간만에 양심통을 느낀 마루가 슬쩍 제자의 시선을 피하며 상황 정리에 들어갔다.
“신규 스킬은 대충 알겠고, 기존 스킬은 어때?”
스킬에 걸려 있던 제한, ‘능력자의 간을 먹다’ 퀘스트를 클리어한 덕분일까?
“새로운 정보가 떠올랐어요.”
임시안은 눈을 빛내며 관련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헌터에게 스킬이란 일종의 생명줄과 같은 것이니만큼, 원래는 이리 쉽게 공유해선 안 됐다.
하지만 그의 경우에는 워낙 특수한 상황이다 보니, 오히려 이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게다가 마루와 존슨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만큼, 새롭게 알게 된 걸 가감 없이 그대로 읊조렸다.
“호….”
마루와 존슨이 탄성을 내지르며 의견을 교환했다.
“이거, 그림자 사슬하고 비슷한 것 같지?”
“차이가 있긴 한데, 대충 맥락은 그러네. 아… 그리고 그림자 사슬이 아니라, 원 명칭은 사자유희야.”
“OK! 접수 완료.”
무엇이 사자유희와 비슷한가 하니, 바로 임시안의 스킬 습득 과정이었다.
“능력자의 간을 먹으면, 상대의 스킬을 획득할 수 있단 말이지.”
“퍼센티지로 쌓인다는 게 문제네.”
마루의 사자유희 역시, 품고 있는 사신의 낫을 통해서 죽음으로 스킬을 습득하지 않던가. 얼마만큼의 죽음을 수확했느냐에 따라서, 스킬의 완성도가 올라가는 점까지, 상당 부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너는 한시적이고, 저 녀석은 영구적이라는 게 결정적이긴 하네.”
사자유희는 사용 횟수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습득한 스킬이 흩어져 버리지만, 임시안은 일단 획득하고 나면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대략적인 정리를 마친 둘은 시선을 교환하는가 싶더니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설이 맞는 것 같네.”
스킬 습득의 조건이 하나 더 개방되는 순간이었다.
* * *
레메게톤의 회합은 이를 주시하고 있던 이들에 의해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물론, 이면과 엮인 사건이라서 특수 정보로 분류되는 탓에, 대외적으로는 알려진 바가 없긴 했다.
어쨌든 그렇게 전해진 소식들이 실로 놀라웠다.
“바이퍼를 레메게톤의 머리로 올린다고?”
“제퍼드가 떠나고 하락세인 줄 알았더니.”
“키홀에 아직 그만한 힘이 남아있었나?”
“썩어도 준치라는 건가.”
여러 단체들이 놀라움을 표하는 가운데, WHA 2대 협회장이었던 아드리안 데일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버블의 표정이 볼만하겠는데.”
이는 WHA의 현 협회장인 크라운의 별명으로서, 크라운의 스킬이 비눗방울을 연상시키기에 붙은 별명이었다.
결계 스킬의 일종으로서, 본인의 등급은 A급일 뿐이지만 트랩 발동과 비슷하게, 한정된 조건 안에서만큼은 랭커들과도 비견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반상랭커, 한정초인 등의 별명도 있었다.
이번 트랩퍼 사건 이후, 알게 모르게 마루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존재이기도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스킬을 통해서 결계를 친다면, 마루는 ‘계산’으로 결계를 펼친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마루의 특별함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속상할 일투성이인 것이다.
데일은 그가 유럽의 연합체들에 대해 적잖은 손을 썼다는 걸 알고 있었다. WHA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위한 조치로서, 중국 무림맹의 대항 세력인 사흑련 역시 그렇게 탄생한 단체가 아니던가.
유럽도 독자 노선을 위해 위저드라는 연합체를 구성하는데, 이를 막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은밀한 지원으로 유럽 이면에서 레메게톤을 키운 것이다.
그 선봉에 있는 게 키홀의 바이퍼였는데, 사실 유럽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단체는 그들이 아니었다.
‘바로 그 점이 매력적이었겠지.’
만년 2~3등을 1등으로 만들어 주는 거였다. 손잡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부리는 데도 여러 이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일?
‘상대해 보니 보통이 아니거든. 흐흐….’
바이퍼는 밑바닥부터 올라오며 온갖 수라장을 다 거친 인물이었고, 자칫 역으로 이용만 당할 수 있단 생각과 함께, 크라운은 입김의 방향을 조금씩 선회하고 있었다.
마침, 제퍼드의 사망으로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타이밍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퍼는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세계 이목이 한국에 집중된 틈을 타서 작업을 잘했네.”
게다가 PP라는 만국 공통의 오락거리에서도 특별한 소식이 들려오며, 빈틈은 더욱 커진 상황이었다.
PP가 무슨 상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나 일반인보다 오히려 헌터들이 더 민감하게 체크하는 게 바로 PP의 소식이었다.
모의 훈련을 비롯하여 그들이 쉬이 접할 수 없는 여러 몬스터 정보까지, 업계의 주요 정보가 잔뜩 담겨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바이퍼는 결정적인 카드까지 있었다.
“조커 준비를 제대로 했네. 큭큭… 랭커라니.”
제퍼드의 빈자리를 수장이자 형인 바이퍼가 직접 채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크라운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금 키홀과의 관계 개선에 힘써야 할 터였다.
데일은 크라운의 표정을 상상하며 한참 폭소했다.
“가을이면 유럽도 난리가 나겠네.”
지금 상황은 후발 주자인 레메게톤이 한발 앞서 나가는 중이었다.
먼저 준비했던 위저드 측에서 오히려 추월당해 버린 것인데, 거기에는 크라운의 뒷공작이 여러모로 힘을 썼다고 봐야 했다.
위저드도 바삐 무대를 정리하려 들 터, 늦어도 가을 중에는 개봉과 함께 무대 인사가 시작될 터였다.
“그렇게 차린 밥상을 통째로 넘겨 주게 됐으니… 큭큭큭큭!”
평소 냉정 침착에 포커페이스가 일상인 그답지 않게, 오랜만에 유쾌한 웃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크라운과 데일!
그들 두 사람의 관계가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 * *
“각성 당시의 상황이 스킬에 미치는 영향….”
마루는 어느 연구원의 가설을 살피며 최근에 발생했던 제자의 각성 사건을 떠올렸다.
“…이게 헛소리가 아니었단 말이지.”
무려 멀티 스킬이었다.
그만큼 특별한 능력이 아무렇게나 주어질 리가 없었다.
임시안이 지닌 집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다.
―바로 옆에 멀티 스킬을 각성한 헌터가 둘이나 있었으니까.
‘주변 환경!’
존슨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임시안의 상황과 그가 느끼던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등을 상기했다.
“나중에 박사와 토론할 거리가 많네.”
슬쩍 골이 당기는 느낌이었다.
상황이야 어찌 됐건, 각성 체조는 그로 인해 세상에 퍼졌고, 앞으로 등장할 각성자들은 결국 그의 문하라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모두를 책임질 생각은 없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최소한의 안정 장치는 구비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위해서 더더욱 ‘변수’를 파악해 두고자 했다.
‘딱, 기본 체계만 잡자. 딱….’
마침 가까운 곳, 제자에게서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살필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 여겼다.
“OK! 부업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결계 작업도 일단락됐고.”
아직 마무리를 한 건 아니었지만, 기본 뼈대는 잡아 놓은 만큼, 좀 더 여유를 두고 작업해도 괜찮았다.
여러모로 구경꾼들에게 있어 보이고자,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완성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번 작업을 하는 와중에, 결계술의 지식이 한층 상승한 만큼, 이를 소화시킬 시간도 필요했다. 한 단계 성장을 거듭한 뒤, 살을 바르고 모양새를 잡을 생각이었다.
‘기왕 하는 거 확실하게 보여 줘야지.’
그즈음 마루는 VR 기기를 머리에 쓴 뒤, 최근 PP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젯거리로 생각을 전환했다.
[신대륙 마계 오픈!]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규 콘텐츠의 등장이었다.
‘간만에 두근두근하네.’
그 역시 PP의 유저이기 때문일까?
“로그인!”
가슴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