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신규 콘텐츠!
#15. 신규 콘텐츠!
어느새 계절은 여름이 깊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이르렀다.
그 때문일까?
“오늘은 PP다!”
많은 이들이 가상 현실 속으로 다이브했다.
더위를 잊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사실 캡슐형의 고급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실제로 더위를 피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가상 현실을 통해 뇌를 속이는 게 가능한 터라, 적어도 PP 내부에 있는 동안만큼은 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라 해야 할까?
뇌의 착각이 신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발휘하는 터라, 실제로 일반적인 상황에 비해 더위를 타는 속도나 비율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었다.
물론, 현실과 가상의 괴리감이 심각해질 경우, 그로 인해 자칫 신체에 위험 신호가 올 수도 있었는데, 한때는 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서, 연구 결과만 믿다가 뜻밖의 피해자들이 여럿 나오기도 했었다.
그 때문일까?
―연구소와 PP의 운영진 측이 짠 거 아니야?
―결과 조작한 것 같은데.
―소송 걸어야 할 듯,
―PP야, 이… 삐~ 하고 삐~ 하고 PP~ 한 놈들아!
한동안 떠들썩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한 사건 이후로 VR 기기에는 의무적으로 유저의 외부 상태를 알 수 있는 건강 체크 기능도 더해지며, 기깃값이 급상승하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어쨌든 그 같은 과정 끝에 안정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
덕분에 많은 유저들이 PP에 뛰어들며 PP 속 바캉스, P캉스를 즐기면서 PP의 인구 밀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아주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신대륙 마계!]
공지 이후 빠르게 정식 업데이트가 이뤄진 것이다.
―역시, PP 운영진이 게임 할 줄 안다니까.
―P캉스로 접속률 뻥튀기됐을 때, 이벤트 터트려서 발목을 묶어 버리는 거지.
―피서 왔다가 다시 PP의 노예가 되는 건가.
―바글바글하네.
마계가 오픈했단 소식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3차 전직자부터 이용할 수 있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건 결국 헛소리로 정리된 건가.
―역시 건널목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그 정도로 난도가 높다고는 하더라.
―기본적으로 2.5차는 찍어야 비빌 수 있다며.
―최소 150레벨인가. 워우….
―이번에 오픈한 건 마계 외곽지대 정도라던데, 거기가 그렇게 난도가 높으면, 진짜는 얼마나 하이 레벨이란 거야?
―거기가 3차 전직자 전용이란 말이 있음.
마계의 업데이트는 순차적으로 나눠서 오픈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에 오픈된 게 마계 외곽의 12개의 섬들 중 하나라던데.
―어. 그렇게 총 12개 섬을 돌고 나야지, 중앙 대륙으로 넘어갈 수 있다더라.
―12지 섬이라고 부르던데.
―별명 참….
―어쨌든 새로운 콘텐츠가 추가돼서 두근두근하다.
―빨리 들어가서 선점해야 함.
―랭커들도 거기 정보는 무지하니까.
―특수 아이템 획득 찬스다.
―난도가 높아서, 레벨 작업하는 데도 꽤 도움이 될 것 같다더라.
―역시 건널목 소문은 믿을 게 아니야.
―뭐 하고 있어. 당장 움직여야지.
그렇게 신대륙 마계, 그곳의 거대한 줄기 혹은 편린을 잡기 위해, 수많은 P캉스 유저들이 바다를 건넜다.
―여름에는 바다지!
―계곡은?
이후로는 의미 없는 다툼이 이어졌다.
―하… 이 찍먹 같은 놈 봤나?
―너야말로 부먹이냐?
―그냥 처먹!
―혹시, 날먹?
참으로 의미 없었다.
* * *
P캉스와 마계 업데이트가 한 파도로 밀려온 탓일까?
“휘유… 바글바글하네.”
마루는 과하게 상승한 인구 밀도에 혀를 내두르며 필드로 향했다.
맘 같아서는 새로운 콘텐츠라 할 수 있는 마계의 12지 섬으로 바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이를 위해서는 클리어해야 할 게 있었다.
입장권!
저 너머로 가는 부분부터 이미 새로운 콘텐츠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었다.
필드를 돌며 열심히 사냥을 하다 보면, ‘입장권 조각’이라 불리는 게 떨어지는데, 이를 모아서 완성을 해야 마계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휘유… 난리는 난리네.”
언데드를 부리려고 찾는 비인기 필드마저 사람들도 바글거렸다.
잠시 분위기를 살피던 그가 고민 끝에 가면을 골랐다.
리치킹!
해골 가면을 뒤집어쓴 것이다.
유저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괜히 눈치 본다면서 신규 콘텐츠에 지각 도장을 찍고 싶진 않았다.
―음냐음냐… 일어나세요… 용사님….
아직 회복이 덜 된 반칼죽이 비몽사몽 어눌한 음성으로 언데드를 일으켰다.
그 순간 필드에 난리가 났다.
“으아아악! 언데드다.
“갑자기 뭐야, 이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좀비들이?”
“설마….”
누군가 특이점을 눈치챈 듯, 휘휘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외쳤다.
“리치킹이다!”
“우왓! 정말이네.”
“하데스의 신물도 있어.”
“흑우시인 등장!”
언데드에게 버프를 걸려고 사용하기 때문인지, 어느새 만파식적은 하데스의 신물이란 별명이 붙어 버렸다.
게다가 마루 본인도 리치킹 외에 요상한 별명들이 더 추가되어 있었는데, 그리 듣기 좋은 건 아니다 보니, 적당히 한 귀로 흘려줬다.
“언제 한 마리씩 잡고 있어.”
마루는 그리 말하며 언데드 군단을 이끌며 말 그대로 필드를 쓸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불만은 별로 없었다.
“워… 멋지다.”
“역시, 리치킹!”
말로만 듣던 유명 인사를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기 때문인지, 오히려 환호하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게다가 대형 길드처럼 따로 그들의 사냥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고, 멋대로 통제하려 들지도 않았다.
“우리 때문에 저 안쪽으로 들어간 건가.”
“매너에 지려 버렸다.”
“역시 다구리 앞에 장사 없구나.”
“언데드는 역시 몰매가 제맛이지.”
“그런데 오늘은 데스 나이트가 없네?”
“으아… 아깝다. 그 암울한 포스가 압권인데.”
각 개체의 위력은 약할지 모르겠으나, 다수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는 법, 언데드로 일으킨 좀비 떼는 우르르 몰려들어 사납게 들이받으며, 필드의 고위 몬스터들에게 징그러울 만큼 달라붙었다.
덕분에 빠른 속도로 입장권이 쌓였다.
물론, 사냥이 마냥 순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얼씨구?’
순간 마루의 눈가에 옅은 경련이 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뜬금없는 알람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까닭이었다.
―주사위를 돌리시겠습니까?
이는 아이템을 분배하는 방식 중 하나로, 일정 몬스터에 대한 사냥 지분이 비슷할 경우 자주 사용되는 랜덤 시스템이었다.
짐작하건대 필드의 여러 유저들 중 몇몇이 남몰래 그의 사냥감에 침을 바른 모양이었다.
그 은밀함으로 봤을 때, 틈틈이 깔짝거린 건 기본이고, 마지막 타격, 막타에는 반드시 손을 쓴 듯싶었다.
―주사위를 돌리시겠습니까?
‘어절씨구?’
불쾌한 알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 새끼들이….’
마루의 눈가에 서늘한 안광이 스쳐 갔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사냥터를 훑어 나갔고, 더 나아가 필드 전역을 살피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급제동에 의문을 느낀 듯, 구경꾼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들려왔다.
“뭐지? 왜 멈췄지?”
“마나 오링?”
“쿨타임인가?”
“것보다 왜 저렇게 살벌하게 노려보냐?”
“가면 쓰고 있는데 그게 보임?”
“나 궁수잖아. 이 정도는 기본이지. 삼안제일궁(三眼第一弓)이라고 불러 다오!”
“아항~! 눈깔이 세 개구나. 삼눈이.”
“싸우자!”
초감각은 게임 내에서도 구현이 됐던 터라, 이러한 내용들이 아주 상세히 귓가에 파고드는데, 그가 이처럼 감각을 한껏 키워서 찾으려는 건, 이들의 말장난이 아니었다.
필드의 형태를 살피고, 전체적인 지형지물 속에서 일종의 은신 포인트를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그곳을 좀 더 집중적으로 관찰하며 추가적인 재주를 발동했다.
사자유희!
어둠 속을 살피는 재주가 남다른 아티팩트가 그의 감각에 힘을 실어 줬다.
스읍….
하….
희미하게 파고드는 숨소리와 기척들이 잡혔다.
마루가 칼죽이를 뽑아 들었다.
“기상!”
그의 외침과 함께 기본 스킬만 발동한 뒤 졸고 있던 칼죽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후, 몇몇 유저들이 기대하던 죽음의 기사가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마루가 몇몇 포인트를 찍으며 말했다.
“죽여!”
칼죽이는 성난 모습으로 달려갔다. 감히 자신의 단잠을 깨운 존재들을 향한 분노였다.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던 유저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헉! 갑자기 PK를 한다고?”
“그러면 그렇지. 흑마법사가 어디 가겠냐?”
“뭔가, 이상한데?”
“어… 잠깐만….”
“PK가 아닌 것도 같고….”
몇몇 시야가 밝은 유저들이 특이한 걸 발견했는데, 이는 마루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에로 가면?
마루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소수 정예의 집단이 있었다. 과연, 저 한편에서 화제가 도는 게 들렸다.
“익살자다!”
“그게 뭔데?”
“억! 저놈들이 왜?”
“잠깐만 저 피에로들이 나왔다는 건, PK가 아니라, 통수였어?”
“그래서 익살자가 뭐냐니까?”
우스꽝스러운 피에로 가면을 쓰고 유저를 사냥하는 PP 이면의 암살자 집단으로서, 게임의 초창기부터 존재해 온 역사 깊은 길드, 그게 바로 익살자였다.
[전원 특수직의 암살자 집단!]
PP의 이면에서만 활동하다 보니, 모르는 이들도 상당했지만,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어지간한 대형 길드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고는 했다.
소수의 정예로서 그만한 평가를 받는다는 건, 그만큼 개개인의 퀄리티가 높다는 의미인 것이다.
‘은신 솜씨가 상당해서 보통 놈들은 아닐 줄 알았지만, 설마 저놈들이라니.’
마루는 눈살을 찌푸리며 익살자들을 바라봤다.
그 역시 쉬이 찾아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숨을 수 있는 장소가 한정적이었고, 게다가 사자유희의 지원까지 있었던 탓에 발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단 찾아내고 나면?
“워… 익살자를 저럽게 쉽게?”
“데스 나이트 미쳤네.”
“저 정도면 상위 랭커도 안 될 것 같은데?”
“아니, 대체 리치킹 정체가 뭐야?”
마루는 과거에 잠깐 마주친 적 있던 익살자의 신입을 떠올렸다. 그 무렵 익살자의 신입과 마찰이 있었고, 그의 손으로 멱을 따 주지 않았던가.
‘으음… 그때하곤 상황이 다른데.’
당시에는 신입의 가입 테스트 중이었던 터라, 따로 익살자 길드의 보복 행위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떨까?
정식 길드원을 건드린 것이다.
‘이 정도 필드를 뛸 수준이면….’
등급도 상당할 터, 익살자들이 움직이기에 충분하리라.
‘쯧! 귀찮게 됐네.’
마루는 급히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걸까?
사사사삭….
사삭….
곳곳에서 은밀한 기척들이 스며드는 걸 느꼈다.
‘젠장! 설마설마했더니만.’
마루는 칼죽이의 검에 썰린 익살자들의 수를 헤아렸다.
‘열 놈이 넘었지.’
대개 저들 익살자는 소수 정예의 집단답게, 개별적으로 움직이거나, 소수의 팀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숫자는 기껏해야 3~4명이고, 많아도 8인을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열 명이 넘어가는 숫자가 칼죽이의 검에 썰린 것이다.
말인즉,
‘작업장!’
이 거대한 필드를 그들의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티가 나지 않았던 건, 그들의 특성을 살려, 보이지 않게 은밀한 수확을 거두고 있었으리라.
유저를 사냥하거나, 마루에게 했던 것처럼 남의 사냥감을 훔쳐 가는 등, PP의 이면을 살아가는 집단답게, 굳이 드러나는 활약을 하진 않았을 터였다.
오싹오싹….
섬뜩한 기세가 곳곳에서 날아들고, 팔뚝을 타고 오르는 닭살이 선명한 모양새를 잡았다.
과거, 호로로 가면을 쓰고 탈곡기 길드의 작업장을 털었던 경험이 있긴 하나, 익살자와 탈곡기는 수준이 달랐다.
‘골치 아프게 됐네.’
적잖은 긴장감 속에, 마루는 만파식적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태도에서 이상을 감지한 걸까?
‘아무래도 이거….’
‘…한판 벌어지겠는데.’
‘맙소사! 리치킹과 익살자라니.’
‘꿀꺽… 대박이다!’
관전자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필드 가득 숨 막히는 침묵이 깔리는 걸 느꼈다.
서늘한 전운이 필드를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