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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열화판?

#19. 열화판?

임시안은 오랜만에 훈련장으로 복귀했다.

물론, 말과 다르게 그저 동네 뒷산을 활용하는 정도였지만, 나름대로 있어 보이기 위해 훈련장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발록과 이선의 결전이 있던 장소였고, 그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린 탓인지, 흉흉한 소문과 함께 인적이 끊겨 버린 만큼, 훈련장으로 사용하기에는 딱이었다.

지난 불청객 사건 때문에 한동안 이용하지 못했던 장소였기에, 이 장소에 대해 더더욱 반가운 마음이 컸다.

특히, 승급을 한 이후에도 새 스킬에 대한 적응 및, 상승한 신체에 대한 적응을 위해, 며칠 더 현장을 뛰어야만 했었다.

실로 기나긴 시간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찾은 훈련장이건만, 아직 아무도 나와 있진 않았다.

간만에 정다솜을 만난다는 생각 때문일까?

들뜬 나머지 너무 일찍 와 버린 것이다.

한가하니 남는 시간을 이용해 몸을 푸는 한편, 엔트라넷을 열어 새롭게 변화한 스킬창을 살피고 있노라니, 앞서 마굴에서 스승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혹시 특수 개체로 해결이 안 됐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셨어요?

존슨과 마루는 그에 대해 이처럼 이야기했다.

-일단, 언데드 계열을 좀 조져 봐야지.

-그래도 안 됐으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고.

시체를 뒤져 보겠다는 것인데, 사실 가능성이 낮은 부분이었고, 결국 거기서도 밀렸더라면 남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인간 헌터의 간!

섬뜩한 이야기였지만, 마냥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살인 같은 거 아니니까 이상한 오해하지 말고.

관련한 설명은 존슨에게 들을 수 있었다.

―WHA에는 따로 헌터 기증 시스템이라는 게 있는데, 기본 기능은 민간의 장기 기증하고 비슷해.

단지, 각성자들의 장기만을 기증한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보안 등급이 있는 이야기긴 한데, 이 정도는 알려 줘도 상관없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늘어놓은 이야기가 또 놀라웠다.

―그렇게 기증된 각성자의 장기는 기증의 기본 목적에 맞게 생명을 위해 넘어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러 연구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되지.

각성자의 신체는 일반인들과 다르게 변화를 거듭한다. 그 때문에 훌륭한 연구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신체를 해부하고 실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서, 여러 연구원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인 것이다.

허탈하리만치 쉬운 방법이라 입이 쩍 벌어졌는데, 이게 또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거기에서 기증을 받으려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내 이름값을 내밀어도 결국 어느 정도는 정보가 넘어가게 될 거야. 거기선 장기가 기증에 쓰일 경우엔, 특히 더 정보를 상세히 수집하면서 지켜보거든.

이는 각성자의 장기가 새로운 각성자를 낳을 수 있다는 가설이 기반이 되는 정보 수집이었다.

어쨌든 차후 이런 부분이 꼬리가 되어 덜미를 잡힐 수 있다면서, 특수한 스킬인 만큼 좀 험하게 돌아가더라도 안정적인 루트를 찾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승급으로 인해 새로운 정보가 개방되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최초 제약이라 할 수 있는 ‘능력자의 간’ 퀘스트의 경우, 인간 헌터의 간이었다면 여럿 습득할 필요도 없이, 단 하나만으로도 해결됐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턴 하나가 아니지만.’

등급이 올라갈수록 먹어야 하는 간의 숫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간이라면 그 수가 줄어들지만, 그래도 이번 실험을 통해 방법을 알아낸 만큼, 최대한 몬스터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도 인육은 좀….’

이 부분에서 스승의 걱정이 따르기는 했다.

―괜히 이상한 미식관 생겨 버리면 안 되니까.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분이 들면, 바로바로 상담해야 한다. 알았지?

실제로 현장에서 광기에 물든 미식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상세히 들려준 탓에, 임시안은 관련해서 더욱 큰 경계심을 품으며,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을 취할 결심을 새길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승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자신의 상황 및 차후의 일정 등을 정리하고 있노라니, 저 멀리 반가운 기척이 들려왔다.

각성을 비롯하여 며칠간 이어진 실전 그리고 승급까지, 한층 예리해진 감각이 일찌감치 반가운 발걸음 소리를 캐치해 냈다.

하지만 불청객이 있었다.

“어라? 아침 일찍부터 어딜 갔나 했더니. 여깄었어?”

활짝 꽃폈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그 얼굴은 뭐야?”

눈살을 찌푸리는 여동생, 임지안의 모습에 손을 휘휘 저으며 비키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과연 그 뒤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정다솜!

마굴에서 내내 그리던 모습이었다.

한 차례 흐려졌던 얼굴 위로 다시금 태양이 떠올렸다. 임지안이 세모눈을 뜨는가 싶더니, 휙 하니 시야를 가리며 혀를 날름 내밀었다.

부르르르….

주먹이 울었지만, 애써 참았다.

‘집에 가서 두고 보자!’

‘엄빠한테 이를 거야!’

남매의 불꽃 튀기는 신경전 속에, 훈련장의 아침이 밝았다.

* * *

PP에서 목에 힘깨나 준다 싶은 길드들은 하나같이 난리가 났다.

“익살자가?”

“바이시클이?”

“뭐를 해?”

“그랜… 뭐?”

최근 들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길드지만,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톱클래스 집단으로서, PP 이면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세력이 아니던가.

규모가 작다고는 하나, 연계된 단체가 여럿이고 소수의 정예인 만큼, 자체적인 전력도 무시할 수 없는 터라, 그야말로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집단이었다.

한데, 그 같은 거물이 무너진 것이다.

―익살자가 대체 뭔데?

―듣보잡 아님?

―뭘 모르는 소리 하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톱클래스 암살 길드임.

관련한 소식마저 퍼져 나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서 그동안 감춰져 왔던 익살자의 그림자가 밖으로 드러나 버렸다.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익살자 측에서 정보를 통제하려 들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일파만파 관련 이야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수많은 길드들은 확신을 가졌다.

“정말… 졌구나.”

“맙소사!”

“합성이 아니었어?”

물론, 괴상한 사진이 올라왔을 때 거의 확신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누군가의 농담이나 저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던 터라, 좀 더 상황을 지켜본 것이건만, 돌아가는 형국이 진실이라 증명하고 있었다.

―아니. 대길드 수준이라며?

―한 명한테 털리는데?

―농담?

―익살자가 이래 구겨질 길드가 아닌데.

―그랜절 박았으면 끝이지.

―구겨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 찢어졌네.

고레벨 유저 중에서도 모르는 이들이 상당할 정도다 보니, 익살자에 관한 이야기를 푸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커뮤니티가 떠들썩할 정도였다.

그간 숨죽였던 이들이 마치 지금이 기회라는 듯, 쌓아 놨던 이야기보따리를 푸는데, 그 내용 하나하나가 실로 놀라웠다.

―랭커 솔라리가 게임 접은 이유가 익살자 때문이라고?

―무한 PK 걸리면 접어야지.

―이렇게 올라오는 글도 업체 써서 커트하는데, 어째 이번엔 조용한 게, 아주 제대로 발린 모양이네.

―기회는 지금이다!

―윈도 솔저들이여 키보드 들어라!

암살 전문 길드인 만큼, 그들에게 당한 이들이 많았고, 덕분에 봉인이 풀린 지금, 커뮤니티는 말 그대로 축제였다.

이를 보는 여러 네임드급 길드들은 나직이 신음했다. 긴 시간 이면의 밤하늘을 물들이던, 칠흑빛 별이 지고 있음을 느낀 까닭이었다.

“리치트킹… 으음!”

“어디서 이런 놈이….”

최상위급의 랭커, 10위권 안쪽의 천외천이라 불리는 괴물들의 존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며 의문을 제기했다.

천외천 VS 익살자?

만약, 그들이라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했다.

부정적인 결과가 먼저 떠올랐지만, 이는 직업군의 특이성에 의한 부분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네크로맨서!

홀로 한 개의 군단을 부리는 게 가능한 리치트킹의 재주이기에, 소수 정예라지만 한 개의 거대 길드를 홀로 상대하는 게 가능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순수하게 맨투맨으로 붙는다면?

천외천 VS 리치트킹?

황당하게도 이번 역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저 하늘 너머로 새로운 별이 뜬 것이다.

* * *

각종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만든 주인공.

리치트킹!

마루는 현재 세상과는 단절된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십이지섬이라 불리는 신규 콘텐츠.

마계!

그 첫 번째 관문에 발을 들인 것이다.

언데드 군단을 통해 일찌감치 입장권을 완성한 덕분에 일찌감치 신규 콘텐츠에 탑승을 할 수 있었다.

신대륙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열둘의 섬을 통해서, 유저들은 마계라는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된다는 게 공지에 나와 있는 설정이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해야 할까?

“하….”

마루는 방금 전 처리한 오크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내심 마계라는 이름표에 마족과의 조우를 기대했지만, 그를 반긴 건 바깥 대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차이점이 존재했다.

뿔 그리고 힘!

기존 상식을 넘어서는 괴력이 있었다.

흔히들 PP의 몬스터들을 향해 압축 해제 버전이란 말들을 하고는 한다.

이는 현실로 넘어오는 몬스터들이 차원방벽에 갇히는 까닭인데, 그건 가호이며 동시에 봉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본신 능력에서 일부 제약을 받아야 했고, 그런 이유로 날것 그대로의 몬스터를 상대하고 싶다면 PP로 가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한데, 지금 이곳 마계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노라니, 바깥 대륙의 몬스터들 역시 일종의 열화판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더 강하고 매서웠다.

기본적인 스탯 자체가 다른 기분이었다.

마계라는 세상에 대한 이해?

확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뭐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이곳의 분위기를 놓고 본다면, 바깥 대륙에 있는 몬스터가 본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열화판이라고?’

그래서 의아해하는데, 뜻밖의 방향에서 그 해답이 나왔다.

“사육장에서 사육되는 놈들이니까.”

용군주 라미가 답을 줬다.

혹시 하는 마음에 칼죽이에게 물으니, 라미라면 알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랑하는 무녀라는 이명이 있을 정도로 여러 차원에 대한 경험치나 지식이 상당한 탓인지, 바로 답이 나왔다.

“사육이라는 게 무슨 소리야?”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니, 그녀가 눈깔사탕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말했다.

“움움! 마계에서 침공한 세상이 어떻게 쓰일 것 같아?”

“아… 설마?”

다양한 차원에 발을 걸치고 있고, 개중 몇몇은 성공적으로 점령한 차원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마계에 귀속된 차원들은 일종의 사육장으로서, 새로운 차원 침공을 위한 병력 증강 시설로 쓰인다는 것이다.

“기존 세상의 주민들은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거지.”

소름 끼치는 이야기였다.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는 와중에도 라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열화판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원래라면 마계에서 살아야 할 놈들을 다른 세상에 가져다가 키우고 있는 거니까. 그곳 환경에 맞춰서 변형되는 건 당연하지.”

물론, 마냥 사육장의 병력만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가끔씩 본진에서도 마물을 끼워서 보내는데, 이곳 세상을 살펴보니, 그런 경우는 대개 마수지대로 ‘점령’당해 버리는 것 같더라.”

최근이야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 초창기에 대응이 부족할 무렵에는 본진의 마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에 마루가 물었다.

“처음부터 마계의 마물을 대량으로 풀면 되는 거 아닌가?”

라미가 한심하다는 듯 마루를 바라봤다.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야.”

순차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며 이야기했다.

“물고기가 육지에서 숨 쉬는 게 가능하냐? 안 되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극단적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육장을 풀어서 이곳을 오염시킬 필요가 있는 거지.”

언제고 들었던 내용이 튀어나왔다.

‘마석이나 마정석만 문제가 아니라?’

몬스터 그 자체도 오염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애초에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그 모든 것들이, 이곳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봐야 할 듯싶었다.

마계!

새삼 무겁게 또 무섭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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