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젤리.
#22. 젤리.
십이지섬이라 불리는 신대륙 마계의 외곽지대, 그곳으로 하나둘 유저들이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입장권 모으기 빡세네.”
“빌어먹을 대형 길드들 때문이지.”
“필드 독식 좀, 어떻게 안 되나?”
“하… 리치트킹이 깽판 좀 쳐 줬으면.”
어렵사리 발을 들인 유저들은 급히 십이지섬 탐방을 시작하는데, 오래지 않아 그들은 공지 내용에 공감하고야 말았다.
“휘유~! 적응 안 되네.”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십이지섬을 마련했다는 게 이런 이유였나.”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다르니까. 더 헷갈리네.”
“워… 그래서 더 재밌으면 이상한가?”
“신규 콘텐츠 최고!”
기본적으로 몬스터의 외형이나 습관 패턴 등은 비슷하건만, 그 강도나 퀄리티가 전혀 달라, 기존의 이미지를 강하게 기억하는 이들일수록, 이 새로운 타입의 마물들에게 당황하며 손해를 보는 부분이 컸다.
게다가 골 때리는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니, 무슨 숨만 쉬어도 대미지가 들어오누?”
“체력 낮으면 고생깨나 하겠네.”
“마계의 마기라는 게 그거 아니냐? 밖에 그 마수지대에 있는 그거.”
“맞아. 그런데 농도가 다른 듯. 거기는 희석판, 여기는 강화판.”
“골 때리는 동네잖우.”
“하아… 약 빨고 돌아야 되나?”
“항마력 좀 쌓아야겠네.”
“성직계가 여기선 귀족이네.”
“거긴 원래 귀족이었어.”
“몽크가 있는데?”
“아…….”
이곳 마계는 일상 자체의 난도가 높았다. 당장 숨쉬기부터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의식주 부분에서도 커다란 난관으로 다가왔다.
“마을이 없어?”
“젠장! 개척지 설정이라고?”
“식사는? 잠은? 컨디션은?”
“정령 상점은 너무 비싼데.”
갑작스레 풍찬노숙(風餐露宿) 신세가 되어 버린 유저들은 당혹감을 크게 드러냈다.
골치 아픈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워… 아이템 드롭 시스템이 사라졌다고?”
“미치겠네. 발골 스킬을 익히라니.”
“개 뜬금없는 테크는 뭔데?”
“장르가 갑자기 베어 스태포드가 돼 버리네.”
“마계에서 살아남기!”
여러 의미에서 난도가 확 뛰어 버린 상황으로 인해, 유저들은 마계의 초입부터 식은땀을 한 바가지씩 퍼내야만 했다.
그 때문일까?
“나만 당할 순 없지.”
조금은 심술궂은 담합이 이뤄져 버렸다.
마계 초입, 십이지섬의 정보를 최대한 통제하기로 한 것이다. 입장권을 모으는 건 상당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그런 이유로 여전히 많은 유저들이 필드를 뛰는 중이었다.
게다가 입장권이 구해진다 하더라도, 최소 입장 제한이 150레벨이었던 터라, 아무나 막 들어올 수도 없었다.
하나 입장권이 나오는 건 180레벨 이상의 필드부터였던 터라, 실질적으로는 180레벨이 입장 제한선이라 볼 수 있었다.
“시스템이 완전 개판이잖아!”
“이게 말이야 방귀야?”
“하… 어이가 없네!”
물론, 레벨 제한이 150인 만큼, 그 부근에서도 입장권이 나오기는 했다.
던전의 간부급!
네임드급 몬스터를 통해야만 한다는 특이 사항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혹은 특수 퀘스트를 통한 보상으로 나오는 정도?
상황이 그렇다 보니 공식 제한선은 150레벨이지만, 유저 사이의 인식 제한선은 180레벨로 구분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아직 십이지섬을 밟은 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정보 통제 및 담합을 이루는 것도 더욱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새 나가는 정보가 제법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잡음 속에 묻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TP길드와 BF길드 붙었다던데.”
“흑싸리하고 사쿠라가 투기장에서 만났다더라.”
“누가 이겼대?”
“사쿠라여?”
적당히 그럴싸한 사건들은 여전히 넘쳐 났기에, 이런 이야깃거리를 좀 더 부풀리며, 여러 스피커에 띄워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렇다 해서 마계의 소식이 죄다 비보로만 쌓여 있는 건 아니었다.
“왕국군만 들어서면 기본 의식주는 해결된다는데.”
“유저가 선발대 역할로 개척하는 시스템이네.”
“활약 정도에 따라서 작위도 준다더라.”
“영지도 받을 수 있다며?”
“마계 영지는 좀….”
“배부른 소리 하네. 그거라도 어디냐.”
대기 가득한 마기 때문에 꺼려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신전을 잔뜩 지어!”
“마기 정도는 믿음으로 해결해!”
“작위에다 영지까지 준다잖아.”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워낙 상품이 큰 까닭일까?
이 같은 흐름은 길드만이 아니라 여러 최상위권 네임드 랭커들 마저 잠시간 성장에서 벗어나 한눈을 팔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전히 질주를 멈추지 않는 이들도 상당하지만, 마계라는 지역 자체의 난도가 워낙 높아, 그럴 수 있는 이들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루의 장관장은 그 소수에 포함되는 캐릭터였다.
[칭호 : 용아병]
뿐만 아니라 아예 활개를 쳐도 될 만큼 특별했다.
[브레스] [피어] [용투기]
바깥에선 이런저런 시선을 신경 쓰느라 쉬이 꺼내 들 수 없는 필살기들을 한껏 펼쳐 보일 수 있던 것이다.
‘밖이면 지금쯤 요원들이 붙었을 텐데.’
최근 화제가 되는 건 리치트킹이지만, 여전히 특수 직업 용아병에 대한 관심도는 높았다.
리치트킹의 경우 익살자를 통해 압도적 무위를 보여 줬던 터라, 길드 방면에선 더더욱 용아병에 대한 가치가 고득점을 맺고 있기도 했다.
아예 건들 수 없는 벽으로 분류된 리치트킹과 달리, 용아병은 아직 좀 더 찔러 볼 가능성이 높다 여긴 것이리라.
하지만 이곳은 입장권이라는 특수 퀘스트로 인해, 각 길드에서도 상위 간부진들만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난다면 모를까. 아직은 쾌적하네.’
당장은 일반 요원들이 돌입할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간부진도 각자의 성장 및 적응에 집중해야 할 때였고, 그나마도 최근 들어서는 영지 확보를 위한 토지 조사에 정신없었다.
몇 안 되는 길드원끼리 뭉쳐서 땅따먹기를 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풍수지리 스킬도 있었지.’
관련 직업군들을 떠올리니 연달아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결 편안한 헌팅 환경이 마련된 상황에서, 그는 200레벨을 목표로 쉼 없이 뛰고 또 뛰는 중이었다.
현재까지 오픈되어 있는 레벨군은 3차 전직 후 추가 5레벨로 205레벨까지였지만, 남다른 스탯을 지닌 그에게 있어선 전직 혜택이 중요하기에, 당장은 딱 200레벨까지가 목표였다.
‘환경부터 빡세서 그런가. 확실히 바깥보다 레벨 작업이 좀 더 수월하긴 하네.’
숨만 쉬어도 HP가 빠져나가는 장소이지 않던가.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그만큼 수준이 높았다.
어렵사리 입장권을 모아서 진입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현실에 벌여 놓은 것도 많긴 하지만, 200레벨까진 PP에 집중하자.’
물론, 이후로도 틈틈이 십이지섬 공략에 참여할 생각이긴 했다. 신규 콘텐츠 혜택도 어느 정도는 누려 줘야 했다.
현시점 만렙이라 불리는 205레벨 최상위급 랭커들이 마계 필드를 열심히 뛰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신규 콘텐츠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이벤트 및 특수 장비, 그리고 시크릿 보상으로 떨어지는 추가 스탯 때문이지 않던가.
아직까진 레벨 제한이 풀린 건 아니지만, 이런 요소들이 더해진다면 최소 5~10레벨 이상의 격차는 벌릴 수 있는 것이다.
신규 콘텐츠란 그래서 특별했다.
한발 먼저 선점을 하느냐에 따라서 도약의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길이 나뉘는 건, 역시나 ‘영지’ 그리고 ‘작위’의 파괴력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개인의 성장이냐, 세력의 확장이냐.
그 선택의 갈래 앞에서 대부분이 후자에 발을 들인 것이다.
“스탯? 레벨? 결국 우르르 몰려가면 끝이야.”
“영지에 작위까지 얻으면, 게임 끝이지.”
“왕국 규모의 지원까지 받을 기회다.”
“잘하면 본토에서도 한자리 얻을 수 있다더라.”
“진짜 권력자가 되는 거야!”
PP는 결코 평범한 게임이 아니었다.
마루가 아는 것처럼 실버 박사나 이런 특수 사항을 제외하더라도, 게임이 지닌 가치 자체가 남달랐던 것이다.
또 다른 현실로서 많은 이들이 PP 안에서 꿈을 꾸고 이루는 시대였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힘과 권력을 얻는다는 건, 현실에서도 어느 정도는 통용되는바, 길드는 더더욱 영지 확보를 위한 루트에 집중했고, 덕분에 마루는 한층 쾌적한 필드 사냥을 즐길 수 있었다.
그 영향일까?
간만에 반가운 알람이 떴다.
[스킬 ‘용안(龍眼)’을 획득합니다.]
용아병 칭호가 열일을 한 것이다.
“오오오오~!”
마루가 환호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딱 봐도 심상찮은 이름이니만큼 절로 심장이 뛰었다. 애초에 용아병 칭호의 스킬 중 평범한 건 하나도 없지 않던가.
그를 기쁘게 하는 건 스킬만이 아니었다.
[레벨 : 190]
[힘 : 305+5(+100)] [지능 : 310(+100)]
[체력 : 303+2(+100)] [정신력 : 305+5(+100)]
[민첩 : 300+5(+100)]
[스탯 : 0]
190레벨을 찍었을 뿐만 아니라,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 신규 콘텐츠 특전을 통해, 5레벨대의 상승 스탯까지 얻어 낸 것이다.
‘1,540스탯!’
단순 스탯만 놓고 본다면 거의 270레벨에 달하는 스탯을 지니게 됐다.
거기에 차후 3차 전직을 한 뒤, 최상위의 영웅급 장비들로 도배를 하게 된다면 어찌 될까?
랭킹 1위?
그렇게 멀지 않은 이야기였다.
“흐흐흐흐흐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쩌다가 보니 여기까지 와 버렸네.’
입꼬리를 귓가에 붙이던 것도 잠시, 새롭게 획득한 스킬을 발동시켰다.
[용안]
그 순간 마루의 동공 위로 세로로 한 줄기 광채가 새겨지는가 싶더니, 그의 시야에 비치는 세상의 풍경이 크게 변화를 일으켰다.
‘오… 오오오오….’
마루의 두 눈이 크게 확장되는 가운데, 신세계가 시야를 가득 채워 나갔다.
* * *
더 이상 백두산을 군림하던 존재는 없다.
용군주!
님을 찾아 떠나 버린 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백두산의 심처, 천지 주변의 분위기는 기존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주인은 떠났다지만, 그 집사들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고블린 전사와 오크 마법사!
용군주의 가디언인 그 둘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천지 주변의 군기를 잡고 있는 만큼, 이곳은 변함없이 라미의 레어라 할 수 있었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대기 가득 녹아 있기 때문일까?
어지간한 고위 몬스터라 할지라도 선뜻 그곳에 발을 들이려 하지 못했다.
백두산에는 다양한 봉우리가 존재하고, 곳곳에 나름대로 자신만의 영역을 형성한 몬스터가 상당했건만, 그런 우두머리 격의 몬스터들도 감히 천지 방향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용군주의 영향력이 아니더라고, 고블린과 오크가 보여 주는 괴력도 상당했던 터라, 섣불리 넘볼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한데, 그 섬뜩한 백두산 마굴의 심처로, 슬그머니 발길을 하는 미지의 생명체가 있었다.
그건 아주 작고도 작은 형체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밤하늘을 휘감은 듯 시꺼먼 칠흑빛 어둠으로 위장을 한 터라, 쉬이 눈에 띄질 않았다.
방문객은 산중 수풀의 어두운 그늘 빛 사이사이를 넘나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심처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그 미지의 방문객의 목적지는 백두산 심처가 아니었다. 그곳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마치, 일진광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듯, 용군주의 레어인 천지 주변에선 보기 드문 격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였다.
방문객은 그곳을 이리저리 맴돌았다.
그러길 한참, 저 높은 하늘 위로 시선을 들어 올리며 구름을 살피는가 싶더니, 다시금 숲의 그늘 사이로 뛰어들며 심처로부터 멀어졌다.
잠시 후,
“크륵?”
“끼엑?”
용군주의 집사들이 그곳을 찾았다.
레어 관리자로서 미지의 존재를 감지해 낸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도착했을 땐 방문자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 두 가디언이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자그마한 발자국 하나뿐이었다.
왠지, 젤리가 생각나는 그런 발자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