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49화 (249/325)

#23. 용안(龍眼)!

#23. 용안(龍眼)!

라미!

그녀의 등장은 마루의 일상에는 큰 변화였다.

사실, ‘피닉스 보육원’에 거의 떠넘기다시피 한 만큼, 실상은 이선의 일상에 영향을 끼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선은 그녀의 정체를 모르기에 마루와 같은 부담감을 지니고 있진 않았다.

뿐만 아니라 라미는 초롱이와 눈높이를 맞추려는 듯, 철저히 아이를 연기해 주고 있는 터라, 이선에게는 단순히 아이가 한 명 추가된 정도의 변화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이선의 고생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큰 변화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는 일상의 긴장감이 배가되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이선과는 달리 그녀의 정체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압박이 됐다.

어쨌든 그렇게 라미의 존재로 인해 이런저런 변화가 발생했는데, 사실 그 변화의 중심지에는 초롱이가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녀는 초롱이를 향해 들이친 파도이지 않던가.

“아이, 아니야.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마치 소꿉놀이라도 하듯 흙바닥에 둘러앉은 아이들이 바닥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노는 게 보였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그런 아기자기한 모습이지만, 마루는 괜스레 긴장감이 샘솟음을 느껴야만 했다.

그 중심에 있는 아이 때문이었다.

용군주 라미!

앞서 언급했듯이 존재 자체가 근심거리였다.

‘오늘은 또 뭐를 하는 거냐?’

그의 귀가 기울여지는 가운데, 라미가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상은 매번 초롱이로, 루미는 곁에서 기대 어린 얼굴로 열심히 눈을 반짝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돼.”

라미가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한 결과, 흙바닥에 이런저런 문양들이 새겨지고, 그 위로 무지갯빛 꽃이 한 송이 피어나는 게 보였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마루는 전율하고야 말았다.

언뜻 무지갯빛처럼 보이는 저 형형색색의 이파리들이 사실은 각기 다른 종류의 원소들을 품은, 신비의 흔적들이기 때문이었다.

‘허… 단번에 일곱 가지 원소를 부린다고?’

전율해야만 했다.

‘땅, 불, 바람, 물, 마흐음… 크흠! 나무, 금속, 번개… 꿀꺽!’

저토록 다양한 원소가 한자리에서 별다른 마찰 없이 함께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눈까지 즐거우니, 아이들의 환호는 절로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쁘다~!”

“와아아아!”

라미는 이런 식으로 초롱이에게 시연을 하며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는데, 저 환호성에서 알 수 있듯이, 공부가 아닌 놀이의 개념으로 가르치는 터라, 효율도 상당히 높았다.

라미가 비록 순혈의 드래곤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데다가 차원을 방랑하며 쌓은 지식 역시 상당한 만큼, 순혈의 드래곤 못지않은 방대한 공부가 저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이를 토대로 꾸준히 초롱이를 학습시키고 있는 것인데,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용안….’

뜻밖에도 마루가 그 혜택을 누려 버렸다.

그는 최근 일깨운 칭호 스킬을 떠올리며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레벨 작업이 빡세서, 한동안 새 스킬은 없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라미의 도움으로 초롱이가 성장을 거듭하니, 생각보다 빠르게 신규 스킬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건 실로 놀라운 스킬이었다.

‘기운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

PP에서 용안을 발동하고 얼마나 놀랐던가.

울컥….

그 당시를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마치 색맹이 색을 인지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흑백이던 세상에 형형색색 다채로운 컬러가 입혀지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신세계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충격이며 감동이었던 터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의 격랑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마도 적응하기까지 한동안은 이런 감정에 휘말릴 듯싶었다.

그 정도로 강렬했다.

게다가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 많은 스킬을 구현할 수 있게 됐어!’

용안을 뜬 채 마물들을 상대하며 알게 된 사실로서, 놈들의 몸속에서 기운이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읽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공격 루트까지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단순하게 대기 중의 기운만 읽는 게 아니라, 상대 내면의 흐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필살 스킬의 약점 검색과 비슷하면서 달라.’

그건 한 포인트를 짚어 주는 것이지만, 용안은 전체적인 흐름을 보여 주는 거였다.

여기서 핵심은 ‘흐름’이었다.

두루뭉술하니 미묘한 감각만으로 인지하던 스킬의 흐름이건만, 이를 선명하게 두 눈으로 읽고 체크하며 그려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눈으로 ‘본다’라는 행위가 주는 변화란, 여러모로 놀라웠다.

그로 인해 섣불리 구현할 수 없었던 연공법들을 구현해 낼 방법이 생겼다.

아이언슈트의 각성 체조!

PP처럼 그 역시 신규 콘텐츠가 생길 듯싶었다.

“와아아아~!”

문득, 들려온 환호성에 시선이 돌아갔다.

‘허….’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과연, 드래곤이란 건가.’

초롱이가 원소의 물결을 띄운 것이다. 라미처럼 일곱 빛깔은 아니었지만, 무려 4대 원소가 손끝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보통 드래곤이 아닌 ‘태초룡’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개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을 터, 라미의 등장 이후 아이의 성장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루미는?

요정답게 다채롭고 선명한 원소들의 향연에 마냥 좋아서 환호 중이었다.

* * *

약속의 계절이라고 해야 할까?

가을!

사계의 새 이야기를 꽃피우는 시기가 왔다.

물론, 여전히 날씨는 여름과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헌터들은 선명한 계절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위저드와 레메게톤!

한 해 전부터 일찌감치 저 멀리 유럽을 들썩이게 만들던 화젯거리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까닭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위저드 하나만 발표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업계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레메게톤의 이름까지 함께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공식 발표까지 이뤄졌다.

―10월인가.

―위저드 간판 올리면, WHA는 어떻게 되는 거냐?

―아무래도 무림맹 하나면 어떻게 통제가 됐을 텐데, 위저드까지 치고 나오면 WHA도 어깨가 많이 쪼그라들겠네.

―솔직히 오래 해 먹었지.

―얼추 20년 정도니까.

―마르코 회장하고 데일 2대가 잘했지. 3대부터는 영….

―왜 그러냐. 3대도 기본은 했잖아.

―겨우 현상 유지였지.

―4대는 완전 엉망임. 초심을 잃어버려서, 차라리 이런 식으로 쪼개지는 게 맞다고 본다.

―10월부터 삼국지 시작이냐?

데일은 여러 반응들을 보며 웃었다.

“원래라면 사흑련하고 레메게톤이 견제하면서 WHA의 1강 체제를 유지했겠지만, 상황이 골 때리게 됐어. 큭큭큭큭!”

키홀을 시작으로 슬슬 4대 회장 크라운의 영향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인데, 어설피 줄타기를 했던 게 문제였다.

“사흑련도 레메게톤도 그놈 손아귀에서 벗어날 준비가 착착이니.”

그 모습에 존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크라운 당하는 게 그리 재밌냐?”

“당연하지. 회장 됐다고 건방 떠는 게 얼마나 같잖았는데.”

저 냉정 침착한 데일에게 저토록 격렬한 언행을 끄집어내는 건 극히 한정되어 있었는데, 4대 회장 크라운 역시 그중 하나였다.

존슨은 그 둘의 관계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동족 혐오인가.’

그 미소에 불쾌감을 느낀 데일이 노려봤고, 이에 앗 뜨거라 하는 얼굴로 급히 시선을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레오는 만났고?”

4대 회장 크라운과 다른 의미로서 데일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존재, 그게 바로 제자였다.

제대로 먹힌 것인지, 데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근래 들어서 연애니 뭐니 해서 풀어졌을 줄 알았더니, 그래도 제법 단련을 했더라.”

순조로운 화제 전환에 존슨도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마루 제자들과 함께하고 있으니까. 이래저래 듣는 게 제법 되거든.”

일종의 도강이라고 해야 할까?

제자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름 깨닫는 바가 있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행보를 취하게 된 것이다.

마루의 가르침!

한 다리 건너는 형식이지만, 어쨌든 그 공부를 어깨너머로 훔쳐 배우는 중이었다.

‘목적지가 살짝 꼬이기는 했지만.’

마루가 아닌 정다솜에게 잘 보이려고 이런저런 시연을 하다 보니 스터디의 멤버가 되어 버린 것인데, 최근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임시안의 복귀로 인해 표정이 썩어 버린 걸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그나저나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존슨의 물음에 데일이 주변을 쭈욱 돌아보며 말했다.

“트랩퍼의 솜씨 좀 보려고 왔지.”

현재 그들은 마루의 동네 주변을 돌며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아이언슈트부터 시작해서 트랩퍼까지, 마루라는 존재는 여러모로 흥미 요소가 넘쳐 났던 터라, 결국 가까이서 관찰하고자 이처럼 방한을 한 것이다.

“겸사겸사 레오 그 녀석도 보고, 좋다고 쫓아다니는 아가씨도 구경하고.”

느긋한 말투와 달리 눈빛은 날카롭게 빛을 발하며 동네 곳곳을 훑는데, 마루가 설치해 놨을 여러 함정 및 결계들을 살피고 있는 거였다.

“…네 동거인도 구경하고.”

그를 이곳까지 끌어들인 결정적 요인이기도 했다.

마계 대공 사일론!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나, 그 때문에 더더욱 호기심을 유발하는 존재였다.

엔트라넷으로 인해 제대로 목줄까지 쥐어진 상황이니만큼, 걱정 없이 접근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끌어내 볼 생각이었다.

어느새 동네 한 바퀴를 돌았음일까?

출발지로 돌아온 데일이 존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트랩퍼 솜씨가 대단하긴 하네.”

짧게 돌아본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발견을 여럿 할 수 있었다.

세상은 잘 모르고 있지만, 사실 존슨을 대표하는 ‘마석 결계술’은 데일이 그 기초를 세운 공부이기도 했다.

그만큼 보는 눈도 남달랐고, 덕분에 동네 곳곳에 숨겨진 트랩퍼의 재주를 살필 수도 있었다.

“만날 사람도 많고, 확인해야 할 것도 많지만, 그 전에… 일단은 한잔?”

“좋지!”

그렇게 형제는 간만에 밤이 새도록 들이부었다.

* * *

십이지섬이라 불리는 마계의 초입.

그곳이 비록 ‘섬’이라 표현된다지만 자그마한 무인도 수준으로 착각하면 안 됐다.

한 개 국가에 버금갈 만큼 거대한 규모로,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의 3~4배 정도는 될 터였다.

공지되기론 그나마도 십이지섬 중에서는 작은 수준이라 하니, 마계 본 대륙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만으로도 유저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는 했다.

어쨌든 그토록 넓은 공간에 한 줌 되지도 않는 소수의 인원들만이 들어와서 활동 중이었다.

규모만큼 필드 역시 다양했기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선 유저들끼리 마주칠 일도 드물 수밖에 없었다.

땅따먹기로 불리는 길드 간의 영토 전쟁과 별개로, 개별 성장에 집중하며 필드를 뛰는 랭커들의 경우, 의도적으로 동선이 겹치는 걸 차단하고 있기도 했다.

신규 콘텐츠인 만큼 먹잇감이 넘쳐 나는데, 괜히 한정된 공간에서 다투며 쓸데없는 소모전을 피하고자 한 것이다.

그 때문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누구지?’

마루는 자신의 뒤를 쫓는 그림자를 읽었다. 의도적으로 그의 동선에 끼어들며 뒤를 밟고 있던 것이다.

특히 놀라운 건, 그의 ‘초감각’마저 피할 정도로 놀라운 은신 능력을 보여 준단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할 수 있던 건?

용안!

새로이 획득한 스킬의 효과였다.

아우라를 읽고 세계 흐름을 파악하는 두 눈이 은밀한 그림자를 잡아낸 것이다.

그 놀라운 은신 실력에 감탄하며, 정체를 확인하고자 사자유희를 트랩처럼 설치하며 움직이는데, 이후 그림자 너머 어둠을 가르며 살핀 얼굴이 놀라웠다.

‘투신?’

무려 천외천이라 불리는 존재!

PP를 대표하는 10대 초인들 중 한 명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