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괴물?
#1. 괴물?
마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황이야 어찌 됐건 은인이라 할 수 있는 드라이크를 씹는 소리였다. 이를 곱게 넘길 순 없는 일이었다.
화르르륵….
그의 기운이 마치 불길처럼 선명히 피어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들끓는 기운에 가슴이 들썩이는 와중에도 바로 뛰어들진 않았다.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지막 정비 시간을 가졌다.
“호오!”
투신이 흥미롭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콰아아앙!
그 와중에도 달려드는 언데드를 쳐 내며 박살 내는 건 잊지 않았다. 마루는 새삼 생각했다.
‘괴물이군.’
마룡 드라이크를 언급한 시점에서, 상대가 일반적인 게이머가 아님은 알 수 있었다. 그 정확한 정체까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당장 드러난 것들을 상기할 필요성이 있었다.
‘존슨 형님과 동급!’
이마저도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다. 어쩌면 사일론 같은 존재이거나, 용군주 라미에 버금갈지도 몰랐다.
게임 속 유저를 상대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했다. 바깥의 현실 속 존재, 어쩌면 고위 마족을 눈앞에 뒀다는 생각으로 결전을 해야 할 터였다.
지켜보며 분석할 게 아니라, 부딪치며 몸으로 깨우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데드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투신의 시선은 꾸준히 마루를 쫓고 있었는데, 그러다 한 번씩 시야가 돌아갈 때가 있었다.
콰아아앙!
데스 나이트, 칼죽이의 공격이 들어오는 타이밍으로, 바로 그 시점에 맞춰 마루도 움직였다.
스륵….
암살자 못지않게 은밀한 발걸음으로 언데드 군단 사이로 스며들었다.
사자유희가 그를 도우며 흔적을 지워 줬다.
화르르륵….
분신이 완벽하게 그를 연기하며 기운을 피워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멀리 칼죽이와 투신의 치열한 격전이 보였다. PP 내에서 만큼은 완벽한 전력을 보여 주는 칼죽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리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 격차를 메우고자 언데드를 방패나 미끼로 던지는 걸 서슴지 않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런 식으로 한 호흡 여유를 벌기 위하여 언데드를 내던졌다.
투신은 익숙한 손짓으로 이를 쳐 내는데, 그 순간이었다.
파앙!
놀랍도록 유연한 몸짓으로 그 손길을 받아 내며 타고 오르는 그림자가 있었다.
‘시작은 역시 기습이지.’
어느새 간격을 줄인 마루가 언데드로 위장하며 칼죽이의 손짓에 맞춰 움직인 것이다.
[용안] [용투기] [필살―약점검색]
[사신 변환 – 청룡]
원거리 타격기였지만 근거리에서 사용 못 할 이유는 없었다. 장풍 및 염력 계열의 장점을 활용하며, 초근거리 격공장을 코앞에서 먹여 주는 것이다.
‘괴물은 괴물이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필살 스킬의 약점검색이 제대로 된 흔적을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이는 것도 아주 흐리게 비칠 뿐이었다.
콰아아앙!
그래도 용안의 효과인지, 그 흐린 자국을 제대로 잡아내며 필살 스킬에 제대로 찔러 넣을 수 있었고, 거대한 폭발성과 함께 짜릿한 손맛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됐다!’
튕겨 나가는 투신의 그림자를 쫓아 그대로 몸을 던졌다. 칼죽이 역시 호흡을 맞추며 연계에 들어갔다.
칼죽이와의 연계는 수차례 연습해 본 바 있기 때문에, 아주 매끄럽게 공방을 나누며 투신을 압박할 수 있었다.
투신은 자세가 뒤집힌 와중에도 반격을 꾀했지만, 칼죽이의 발 빠른 대처로 이를 받아 내며 도리어 카운터만 내어 줄 뿐이었다.
실력은 칼죽이가 윗줄이지만, 각종 스킬 중첩에 의해서 굵직한 한 방은 마루가 더 우위에 있었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이 순간만큼은 메인을 미끼로 써먹는 거였다.
언데드이기에 할 수 있는 방어법으로서, 칼죽이는 막는다기보단 ‘맞는’ 느낌으로 투신의 일격을 받아 냈고, 덕분에 투신의 가슴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었다.
‘크게 한 방 더!’
마루는 양손 가득 힘을 모아서 내질렀다.
[필살]
앞서보다 한층 선명해진 약점검색의 흔적이 보였다. 개중 가장 큰 임팩트를 향해 권격이 뻗어 나갔다.
‘명―존―쎄!’
콰아아앙!
또다시 제대로 한 방이 들어갔고, 폭발성과 함께 크게 튕겨 나가는 투신의 모습이 보였다.
‘퍼펙트!’
이건 존슨이라 할지라도 버틸 수 없으리라.
확신과 함께 이 흐름을 고스란히 끌어가려 재차 몸을 던지는 찰나였다.
―정지!
칼죽이의 일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뒤늦게 따라오는 섬뜩한 감각이 상황을 이해시켰다.
저 멀리 흙먼지 사이로 투신이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허….”
입이 쩍 벌어졌다.
필살의 약점검색을 정확히 찔러 넣은 일격이었다. 치명적인 일격일 것이건만, 투신은 너무도 멀쩡한 모습으로 제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느낌이 왔다.
‘그게 안 통했다고?’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듯, 한 줄기 핏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이에 투신이 민망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쪽팔리게 코피라니.”
뭔가 더 기대하고 싶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좀 전에 그대로 달려들었더라면, 제대로 한 방 먹었을지도 몰랐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투신의 몸 상태를 살피려 집중한 결과, 마루는 한 가지를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미친놈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꼽으라 한다면, 현재 투신의 의복 상태 때문이었다.
PP에선 ‘장비’로 분류될 경우, 그 내구도가 0으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외형을 유지하는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투신을 보라.
‘바바리맨이냐….’
좀 전의 공격의 여파로 완전히 찢겨져 흩날리고 있었다. 이는 아주 흔한 패션용 의복에서 발견되는 현상으로서, 말 그대로 평범한 ‘옷’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다.
아무런 특수 능력도 없는 천 쪼가리일 뿐이었다.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스킬도 없고, 장비도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건만, 왠지 그게 정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헐벗다시피 한 투신의 옷가지 너머, 강철 같은 근육이 드러나는데, 그 사이사이 조금 전 들어갔던 치명적 타격의 흔적들이 보였다.
마치 불길에 데인 듯,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는 게 보였는데,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모습 역시도 눈에 들어왔다.
말도 안 되는 회복력이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치는 가운데, 불현듯 드는 의문이 있었다.
세상에 퍼져 있는 투신의 사냥 영상이었다.
‘…거기 나온 게 정말 스킬이 맞나?’
이젠 투신에 관한 모든 것들이 의문으로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상대가 신화 등급 아이템의 소유자라는 걸 상기한다면, 그와 비슷하게 직업군에도 특수 사항이 추가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의문이 솟구치는 가운데, 투신이 돌연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게 보였다.
“크하하하하하!”
민망함 섞인 앞서와 달리 정말로 시원한 웃음이었는데, 별다른 기운이 담겨 있는 것 같지도 않건만, 그저 순수하게 목청만으로 천지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단 착각이 들었다.
폐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대한 폐활량이 대기를 사방으로 밀어내며, 폭풍과 같은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별다른 기운 없이 순수한 육신의 능력이었고, 그 때문에 더더욱 전율하게 만드는 광경이기도 했다.
목청껏 웃어젖힌 투신이 마루를 향해 외쳤다.
“제법 치는구나. 마룡의 가호를 받을 만한 재주는 있었어. 좀 전의 무례한 발언은 사과하지.”
거칠고 야만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던 앞의 모습과 달리, 지금은 왠지 모를 신사적인 분위기도 내비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부드럽게 풀려 간단 의미는 아니었다.
“사죄의 의미로 최선을 다해 박살 내 주마!”
오히려 더욱 험악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데?’
마루는 조금 전 짧은 공방을 통해 이미 상대에게 질려 버린 상황이었다. 눈앞의 존재가 말도 안 되는 괴물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 완벽한 손맛에도 불구하고 겨우 코피 한 줄기라니, 각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너무도 허무한 결말이 아니겠는가.
‘쌍코피도 아니고!’
3차 전직을 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고개가 저어졌다.
‘4차는 돼야….’
레벨로 비교하자면 300레벨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도 가정일 뿐이었는데, 아직 4차 전직에 대한 공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3차 전직이 풀리고 관련 콘텐츠가 오픈되고 있는 상황이지 않던가. 4차 전직은 아직까진 머나먼 이야기였다.
2차에서 3차에 이르던 과정을 생각해 봤을 땐, 적어도 3~5년 정도는 걸릴 거란 게 대다수의 예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300레벨이란 기준은 유저들 사이에서 떠도는 풍문 정도일 뿐이었다.
―건너건너 아는 사람 중에 PP의 운영진이 있는데, 4차는 300레벨로 잡고 있다더라.
―나도 건너건너 개발진 아는데, 300레벨일 확률 높다더라.
―나도나도 건너건너서….
건널목 소문이니만큼 정확도는 논할 수 없었다.
어찌 됐건 눈앞의 존재가 규격 외라는 건 확실해진 상황이었다.
특히, 좀 전의 공방을 통해, 기존에 잡아 놨던 예상치를 한 단계 이상 더 높여야 한다는 결론까지 나왔다.
‘존슨 형님 이상!’
최소 사일론이며 최대 라미였다.
사일론은 분신의 전력밖에 모르는 터라 이렇게 놓은 것일 뿐이긴 하나, 어쨌든 그 규격 외의 괴물들과 같은 눈높이에 서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벨 제한이 풀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마루의 경우에는 여의주라는 아주 특수한 아이템을 통해, 현실과 PP의 양측에서 성장을 공유하기에, 일종의 ‘한계 돌파’가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하면, 투신은 어떻게 한계 돌파를 한 것이란 말인가.
제아무리 신화 등급 아이템의 소유자라 해도 불가능한 영역이 있는 것이다.
어찌어찌 기준점을 높이고 높여 마루와 동급의 실력은 보일 수 있다고 쳤다. 하지만 투신의 실력은 그마저도 아득히 뛰어넘어 버렸다.
말이 안 됐다.
그래서 묻고 말았다.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투신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갑자기 왜 이렇게 예의 발랄해졌어?”
“…당신께서 보통 존재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투신의 웃음이 뚝 그쳤다.
마치 맹수의 그것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마루를 주시하길 한참, 다시금 옅은 미소를 입가에 새긴 그가 실소하며 말했다.
“큭! 넘겨짚기는.”
정답이었다. 하지만 확신을 지닌 예측이었다.
“안 돼! 대답 안 해 줘.”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말했잖아. 직접 알아내 봐.”
이내 투신의 신형이 바람처럼 쏘아졌다.
―어딜!
먼저 반응한 건 칼죽이었다.
콰아아앙!
투신의 주먹과 칼죽이의 검신이 부딪치며 강렬한 파동을 퍼트리는 가운데, 마루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정면으로 대결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칼죽이를 보조하며 한 팔 거들 정도는 됐고, 지금도 시기적절하게 칼죽이가 열어 준 틈으로 몸을 집어넣으며 공격을 뻗어 낼 수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 한 방의 위력은 마루가 칼죽이보다 나았기에, 보조하며 틈틈이 크게 내지르는 게 중요했다.
이를 위해 사용된 건 [용안]과 [필살] 스킬이었다.
둘 모두 흐름을 읽고 틈을 노리기에 적합한 최고의 궁합이었던 터라, 지닌바 실력 이상의 서포트를 할 수 있었다.
‘크윽… 빌어먹을!’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그저 단순히 스킬을 발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닌바 스킬의 한계점까지 끌어 써야만 했고, 더 나아가서 장기적으로 유지할 필요까지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둘 다 안력을 초월적으로 사용하는 스킬들이 아니던가. 거기서 재차 한계점을 찍으려 하니, 그만큼 부담감 역시 커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킬의 연계를 멈출 수는 없었다.
파파파파파팡….
무시무시한 권격에 대기가 사방으로 폭발하며 터져 나가는 게 보였다. 바로 저 어마어마한 공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흐름을 읽는 걸 넘어, 앞서서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이는 마치 예측을 넘어 예지의 영역에 닿는 듯하여, 투신으로서도 선뜻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없었다.
투신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그의 권격이 올 것을 알았다.
마치, 대기가 긴장하듯 바르르 떠는 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건 세상이 보내는 신호 같았다. 경고처럼 여겨졌다.
파아아앙!
아니나 다를까 몸을 빼낸 자리로 지나가는 사나운 권풍이 있었다. 뒤이어 대기가 울부짖으며 찢겨 나가는 게 전해져 왔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위력이었다.
“쯧!”
투신이 혀를 찼다.
순수하게 1대 1의 승부였다면 모르겠지만, 칼죽이라는 방파제가 버티고 있는 터라, 더더욱 마루라는 목적지에 파도를 들이치기가 어려웠다.
‘마룡의 가호 외에도 이런 신기를 지니고 있다니. 큭… 재밌는 놈이야.’
실시간으로 마루에 대한 평가와 관련 점수가 올라가는 가운데, 투신은 한 가닥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다.
‘아깝군. 이놈 세상에서도 한판 어우러져 보면 좋을 텐데.’
현실을 완벽히 구현했건 뭐건, 이곳은 ‘게임’이며 ‘가상’일 뿐이기에, 마룡의 가호를 받은 사내의 ‘진짜’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었다.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즐겨야겠지.’
게임이기에 할 수 있는 과감한 선택지를 떠올렸다.
“한번 죽고 죽여 보자!”
시원한 외침과 함께 투신이 부상을 각오하며 온몸을 내던지는 게 보였다.
난도가 훌쩍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씨발!”
마루도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쏟아 냈다.
“크하하하하하!”
투신의 광소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