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용ㅇ사?
#2. 용ㅇ사?
키메라!
이는 키홀을 대표하던 랭커, 제퍼드를 칭하는 이명이었다.
타고난 초감각을 비롯하여 이능계이면서 강화계이기까지 한 특성을 지닌 탓에, 여러 불법적인 실험실과 연구소에 의해 고난의 성장기를 겪었고, 그 때문에 자연스레 키메라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불행한 소년기였다.
그 때문일까?
뜻밖에도 연구소에 대한 기이한 집착 같은 게 있었다. 성장기의 악몽을 파괴가 아닌 군림으로 해소하려 든 것이다.
키홀의 수장 바이퍼는 이런 동생의 성향에 맞춰 주고자, 연구소를 여럿 운영했었다.
당연하게도 이는 전부 ‘불법’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결과물도 하나같이 정상적인 게 없었다.
비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파괴적이기도 했다.
‘힘이 필요해!’
키홀을 지키기 위해, 새 시대의 선두에 서기 위해, 힘이 필요했다.
형만 한 아우 없다?
어딘가의 격언과 달리, 그는 제퍼드에 비교하자면 한참 부족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제퍼드는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능력을 타고나고 또 깨우친 존재였다.
그렇기에 랭커라 불렸고 괴물이라 칭해진 것이다.
하지만 키홀의 수장은 바이퍼였고,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운영 능력이 윗줄이라 평가하고는 했다.
육체적인 재능은 동생이, 머리는 형이, 그렇게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이 역시 틀렸다.
‘제퍼드 그 녀석이 조금만 덜 게을렀으면, 길드의 수장 자리도 내 게 아니었지.’
제퍼드는 머리 역시 뛰어났던 것이다.
말 그대로 얼굴에 머리와 몸까지, 모든 걸 다 가진 사기 캐릭터의 정석이라 할 수 있었다.
대신 인성이 글러 먹었지만, 그 때문에 이면을 살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이면의 주민이라는 걸 상기해 봤을 때, 인성 부분은 문제로 칠 수 없었다.
너무도 뛰어난 동생이었고, 그로 인해 자격지심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생을 아꼈고 사랑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단 하나밖에 없는 핏줄로서,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서로 의지하며 버텨 온 형체이기 때문이었다.
짐작하건대 제퍼드가 그 똑똑한 머리를 쓰지 않았던 이유 중엔, 바이퍼의 자존감을 지켜 주기 위한 까닭도 있었으리라.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주는 존재가 바로 형인 바이퍼이지 않던가.
어쨌든 그렇게 서로를 아껴 주던 형제의 반쪽이 사라져 버렸고, 그로 인해서 키홀의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결국 금단의 힘에 손을 대 버렸다.
불법 연구소!
키홀이 운영하던 그곳의 결과물,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 싶은 걸 손에 대 버린 것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A급에서 정체되어 버린 상황에서 길드 운영이니 뭐니 하면서 제대로 된 수련도 등한시했다.
사냥을 나간 지도 상당히 오래됐다.
이제 와서 뒤늦은 성장을 기대하느니 도박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반쯤은 자포자기한 면도 있었다.
제퍼드의 죽음!
그는 단 하나뿐인 혈육이며 동시에 유일한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마음에 깊은 어둠이 자리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일까?
―힘을 원하나?
미지와 조우할 수 있었다.
초인? 랭커?
악마가 속삭였다.
* * *
전투가 끝나고, 세상이 잿빛으로 물들며 암전될 때, 귓가를 파고들던 한마디가 있었다.
“또 보자!”
그렇게 마루는 죽음을 경험했다.
로그아웃!
승부는 투신에게 돌아갔다.
예상했던 바였다.
나름 발악이라는 걸 해 봤지만, 상대는 말도 안 되는 괴물이었다. 이 시점에선 존재해선 안 될, 규격을 아득히 초월해 버린 4~5차 전직 수준의 괴물이었다.
뇌리를 스쳐 가는 몇몇 전율적인 장면들이 떠올랐다.
[사령마검]
칼죽이의 필살 검격이 정면으로 쏟아지고 있건만,
“으랏차!”
기합성과 함께 맨주먹으로 이를 받아 내는 투신의 모습이란, 다시 상상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광경이었다.
장비?
강철과도 같은 몸뚱이가 이를 대신했다.
스킬?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질풍가도!”
그런 외침과 함께 주먹을 난사하는데, 이는 투사의 스킬 중 하나로서, 폭풍처럼 쏟아붓는 연타가 포인트인 스킬이었다.
다양한 잔상이 뒤따르며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서, 혼란을 야기하는 주먹질로도 유명한 폭격이었다.
한데, 황당하게 이를 맨몸으로 똑같이 재현해 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용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스킬인지 아닌지 명확히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전율적인 광경이기도 했다.
게다가 스킬로 발동되는 것보다 더욱 사납고 거칠었으며, 진짜 질풍가도와 달리 모든 주먹이 ‘진짜’라는 부분에서, 압도적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 때문일까?
로그아웃이 된 뒤, 투신의 지난 영상을 바로 찾아봤다.
PP의 사망 후유증으로 컨디션 난조가 찾아오며, 어차피 몸져 누워 있어야 하는 터라, 동영상 감상으로 그 시간을 알뜰히 보내기로 한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확인한 영상 가득, 화려한 스킬로 네임드급 던전의 보스들을 사냥하는 모습들이 나왔다.
하지만 앞서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일까?
왠지 그 모든 게 가짜처럼 보였다.
‘정말로… 스킬일까?’
죄다 맨몸 박투처럼 여겨졌다.
안타깝게도 기운을 볼 수 있는 용안도 영상 너머의 기운까지는 살필 수 없던 터라, 아쉬운 대로 남다른 스탯의 두뇌를 풀가동하며, 영상을 끊임없이 보고 또 보며 분석 작업을 반복했다.
그 결과,
“스킬도 쓰잖아!”
실로 뜻밖의 반전이었다.
나름대로 발악을 했다고 여겼건만, 그 와중에도 쌈짓돈은 남겨 두고 있었을 줄이야.
충격에 그렇잖아도 떨어진 컨디션이 더욱 다운되며 뒷목을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끙끙거리며 앓아누운 와중에, 마루의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은 하나였다.
‘대체 정체가 뭐야?’
그 해답은 뜻밖의 방향에서 들을 수 있었다.
“어라? 이거 용투사 아닌가?”
초롱이와 루미가 PP로 넘어가고, 홀로 남은 라미가 마루의 앓는 소리에 호기심을 보이더니, 대뜸 답안지를 꺼내 드는 것이 아닌가.
이에 마루가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꽤 유명한 인간이지.”
자연스레 이어지는 질문.
“누군데?”
이에 라미가 마루를 바라보다 답했다.
“용사.”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 * *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게 아니라, 잡는 법을 알려 줘야 한다.
이는 신의 철칙과도 같았다.
세계의 탄생과 생명의 시작 그리고 그 끝에 이르는 죽음의 안식까지.
신의 입김이 닿는 건, 그거면 충분했다.
이후로는 알아서 자립하는 시기였다.
그들은 세계가 스스로 잘 굴러가기를 원했다. 세계의 성장은 곧 신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물고기를 잡아 줘선 성장할 수 없다.
잘해도 제자리걸음일 뿐, 정체되는 건 원치 않았다.
그들의 우주가 끊임없이 확장되기 위해서라도, 더 넓은 세상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물고기를 잡아 줄 수 없었다.
물론, 제대로 기고 걷고 뛸 수 있도록, 어느 정도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신의 사자였다.
드래곤!
혹은 천사 등으로 분류되는 존재들을 통해, 신의 뜻이 전파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입도 일정 시기가 지나면 끝을 맺고, 세계는 자립을 준비하게 된다.
아이가 자라 성장을 하고 시야가 넓어지듯, 일종의 성인이라 할 만한 시기가 세계에 찾아오면, 드래곤은 자취를 감추고 세계는 홀로 굴러갈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속, 다양한 삶이 꽃을 피우고 지며, 수많은 깨달음을 별빛에 실어 보내고, 이는 양식이자 발판이 되며, 조금씩 세계를 넓히고 또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분명 신의 축복과 기적이 함께한다.
그 대표적인 행사를 꼽아 보라면?
용사!
신성한 축복을 진하게 받고 태어나는 존재들로서, 세계를 수호하는 사명을 타고나는 신의 아이들이었다.
이를 키우고 인도하는 건 신의 사자라 불리는 드래곤의 역할이다 보니, 용사는 따로 용이 부리는 투사라며 ‘용투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루는 라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하며 눈앞의 ‘거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용사 제트.”
그 물음에 투신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알았는지 궁금하군.”
“공짜로?”
이에 투신이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빌어먹을!’
또다시 로그아웃을 경험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입을 열었다.
“라미아타 베오닉 드라이크 비오데가닉.”
용군주 라미의 풀 네임을 입에 담았다. 거짓을 말하기도 어려운 게, 눈앞의 상대는 ‘용사’였다.
‘빌어먹을 진실의 눈!’
앞서 그가 떠보는 걸 단번에 알아맞힌 것 역시 용사의 특별한 눈 때문이리라. 라미에게 들은 제트의 특성 중 가장 까다로운 능력이었다.
투신 제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 용마녀가 이 세상에 있었나?”
아무래도 라미를 부르는 또 다른 별명인 듯싶었다. 방랑하는 무녀라는 별명처럼 다양한 세계를 돌아다녔고, 그만큼 이명도 여럿인 모양이었다.
마루는 제트를 보며 라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재수 없는 놈이야.
그리 표현한 이유가 특별했다.
‘신룡의 가호를 받은 용투사랬지.’
드라이크가 순리를 벗어남으로써 마룡이라 불리게 됐다면, 신룡은 그와 반대로 순리 속에서 계기를 얻은 이들이었다.
무수히 많은 믿음의 힘으로 신앙이 싹트고 격을 얻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신룡이라 불리는 이들이 제법 있었는데, 개중 제법 역사가 있는 신룡의 용투사가 바로 제트였다.
이어진 내용을 상기하니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제 놈 세상을 구하면서 오러홀이 파괴된 놈이야.
대개 그런 상황에 이르면 용사건 뭐건 폐인이 되어 술독에 빠지는 루트를 타는 게 보통이건만, 제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눈을 떠 버렸다.
―미친놈이야. 오러홀 없으면 몸뚱이를 더 단단히 하면 된다나 뭐라나.
오히려 새로운 도전거리가 생겼다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언급한 건, 투신의 본래 이명을 떠올렸다.
‘검신….’
말인즉, 투신은 원래 검을 썼다는 것이다.
칼죽이와 비슷한 성검을 든 채 마왕군과 격전을 치른 것인데, 신체를 단련하던 어느 날인가 맨몸의 강도가 한계를 돌파하면서, 검을 놓았다고 한다.
―그때부턴 투신이라고 불렸지.
여러 의미가 있었다.
싸움 귀신이라서 투신이란 표현이 붙기도 했지만,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 해서 투신이라 불리기도 한 것이다.
―세계 구원의 특전으로 관찰자의 능력을 얻은 놈이야. 그 재주로 다른 세상의 육성 시스템을 찾아다닌다고 듣기는 했는데, 웃기는 방법으로 이 세상을 즐기고 있었군.
마루의 표정 변화를 살피던 제트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이건 뭐, 용마녀가 있는 말 없는 말 죄다 나불거렸나 보네.”
뜨끔해선 시선을 피했다.
“흐… 하긴 마룡 드라이크의 가호가 이 세계에 떨어졌는데, 용마녀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겠지.”
고개를 끄덕인 투신이 입을 열었다.
“용마녀에게 들었다면 알겠지만,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어깨를 으쓱이는 그에게 마루가 물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며칠 전엔 그렇게 예의 발랄하더니, 그새 싸가지가 발랑 까졌네.”
로그아웃과 그 후유증에 시달린 여파였다. 슬쩍 주먹을 흔드는 모습에 마루가 긴장하는데, 이에 제트가 주먹을 풀며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이다. 장난. 크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그 모습에 마루는 짜증이 확 치밀었지만 꾸욱 눌러 참았다.
“참을 거면 표정도 좀 참아 봐. 큭큭큭큭….”
한 차례 더 마루의 속을 긁은 제트가 말했다.
“불구경하고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게 또 어딨겠냐.”
말인즉,
“이쪽에서 한판 크게 벌어진다기에 놀러 왔지.”
여러모로 짜증 나는 인간이었다.
와락 구겨지는 마루의 표정에 재차 웃음을 터트린 제트가 이야기했다.
“뭐, 이곳 세상의 육성 시스템도 관심이 가서 찾아왔지.”
그러며 뜻밖의 이름을 언급했다.
“실버 박사라고 했던가?”
마루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운데,
“네가 그 작자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면서?”
그즈음 묘한 예감을 받았다.
“나도 그 인간이 남긴 유산이니까. 받아라!”
아주 짜증 나는 예감이었다.
“크하하하하하!”